[스토리텔링 Why] 뇌의 차이, 남녀 차이

남-두정엽·편도체 발달, 여-전두엽·변연피질 발달

금강일보2010.11.25

“결혼한 지 20년이 다 돼 가지만 아직까지도 아내를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아요”
내일 모레면 결혼 20년차라는 가장 이 모(49) 씨의 말이다. 궁극적으로 이 씨는 여자는 원래 이해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런 상황은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사랑해서 만나고 결혼까지 골인을 했지만, 부부사이에 이해할 수 없는 많은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남편입장에선 아내가 왜 화가나 사사건건 귀찮게 하는지 항상 답답하기만 하고, 아내입장에서는 무심하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남편의 태도에 화가 난다.
티격태격하는 부부사이 즉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는 연구결과나 경험에서 우러나는 주장은 허다하다.
서로에게 고개를 갸우뚱하는 근본적인 태초의 경계선은 뇌에 있다.
남자와 여자는 염색체가 다르다. 당연히 DNA가 다르고 뇌가 달라져 성격과 행동을 달리하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뇌의 생김새 차이에서 비롯된다. 이로 인해 성격과 행동은 물론이고 시각, 청각, 후각, 언어사용량, 생각까지 다양한 부분에서 달라진다”고 말했다.


남자와 여자의 뇌는 시상하부, 편도체, 섬유분계줄, 해마, 일부 피질 영역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특히 언어의 기능과 관련이 있는 측두평면, 상측두회 등이 전체 뇌에서 차지하는 면적 비율이 남자보다 여자의 뇌에서 더 큰 반면, 공간 능력과 관련이 있는 우반구 두정평면은 남자의 뇌가 더 크다.
특정 기능을 담당하는 영역이 더 크다는 것은 그 기능을 담당하는 뉴런(neuron · 신경세포)이 더 많고 따라서 그 기능이 더 잘 발달됐다는 것이다.
여자는 큰 대뇌의 전두엽과 변연피질이 발달해 정서, 기억, 감정표현에 남자보다 우위를 보이며 인간관계를 맺거나, 애완동물의 보살핌, 상담, 조언, 수다 등에 관심을 갖는다.
남자는 큰 대뇌 두정엽과 편도체가 발달해 정보처리나 공간지각 우위를 보이며 운전, 수학, 컴퓨터 게임 등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성격에 따라 조금은 차이가 있지만 특히 여자의 언어 사용은 하루에 2만 단어, 분당 250개를 사용하는 반면 남자는 하루 7000 단어, 분당 125개의 단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남자는 집에오면 말이 없고, 전화를 통화해도 필요한 말만할 뿐인데 여자들은 이런 남자들을 무심관하다거나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것으로 오인하고 예민하게 반응할 때가 있다.
뇌의 차이는 호르몬에도 영향을 미쳐 남녀사이를 더욱 분명히 가른다.
남녀의 유전자는 99% 이상이 같지만 각자의 뇌에서 여자를 여자로, 남자를 남자로 만드는 것이 호르몬이다.
여자는 에스트로겐으로 공격성이 억제되고 여성으로서의 습성을 가지며, 결혼적령기에 다다르면 배우자를 찾고 가정을 지키는데 열중한다.


임신을 하면 프로게스테론으로 인해 에스트로겐이 약해지며 모성을 갖게 돼 자식 키우는데 열성적이 되며 남편보다는 자식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따라서 남편의 속옷을 사주는 것보다는 자식의 속옷을 사주는 것에 더욱 뿌듯함을 느끼는 것이다.
갱년기를 거치며 프로게스테론은 줄어들고 다시 에스트로겐이 강해져 여성으로 환원되면 이제 관심은 자신에게로 쏠린다.
가정에 쏟은 청춘은 농섞어 한탄하며 자신을 가꾸는 일에 열중하는 식이다.
반면 남자의 경우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으로 인해 공격성이 강하다.
사춘기가 되면 테스토스테론 활동이 활발해지며 여성성을 추구하기 시작하고, 호르몬 비율이 급격하게 변하면서 심리 역시 갈팡질팡하는 사례가 많다.


중년에 이르면 남성성의 상징인 테스토스테론이 급격히 줄어든다. 논리력이 강화되면서 자녀 양육이나 직장 문제 등에서 해결책을 찾는 데 집중한다. 노년은 포용하고 대화하려는 욕구를 자극시키는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분비가 활발해진다. 공격성은 현저히 떨어지고 애정과 감정에 민감해진다.
남자의 노년기는 여자의 뇌와 가장 비슷해지고 드라마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외로움을 갖지만 , 이 시기 여자의 뇌는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남자의 외로움이 더욱 심해진다고 한다.
흔히 기혼 여성들이 구박이나 홀대를 받았다고 생각되면 “늙어서 보자” 엄포를 놓는 것이 공연한 공갈은 아닌 셈이다. 노년에 밥이라도 얻어먹으려면 젊어 잘하라는 남편들 사이의 푸념도 우스갯소리만은 아닌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성격이 다 다르기 때문에 단정할 수 없으나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이렇듯 성(性)적 색채가 상이하다.
남자의 관점에서 여자를 이해하려 하지 말고, 사랑하는 아내이니만큼 아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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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 아키모토 왕기춘 페어플레이에 “존경과 경의”

한겨레신문 | 기사전송 2010/11/16 08:17


[한겨레] 왕기춘은 너무나 아쉬웠다. 연장 종료 23초를 남기고 다리잡아매치기로 유효를 내준 뒤 자리에 그대로 누웠다.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승자와 심판진이 모두 떠난 뒤에도 한동안 매트 위에 머물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갈비뼈 부상으로 금을 놓친 불운과 지난해 용인의 한 나이트클럽에서의 20대 여성에 대한 손찌검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데 대한 속죄까지 이번 아시안게임의 금메달로 모두 씻어내고 싶었는데.

 결승전까지 왕기춘은 승승장구했다. 8강에서는 인도의 라마쉬레이 야다브를 업어치기 한판으로 간단히 이겼고, 4강 전에서는 다크호스 북한의 김철수를 누르기 한판으로 제압했다. 드디어 결승. 상대는 숙적 아키모토 히로유키. 올해 세계선수권 4강전에서 판정패로 자신을 꺾어 대회 3연패를 좌절시킨 선수다. 더구나 상대는 정상의 컨디션이 아니었다. 4강전에서 발목 부상을 당한 아키모토는 왕기춘에게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예상대로 경기는 왕기춘의 압도적인 우위 속에 진행됐다. 하지만 왕기춘의 공격은 단조로웠다. 유도 선수들이 흔히들 잡기 과정에서 보여주는 발목 공격을 하지 않았다. 주특기인 업어치기 공격에만 주력했다. 아키모토는 수비에 급급했다. 그럼에도 심판은 지도를 주지 않았다. 종료 23초전 왕기춘은 공격을 벌이다 아키모토로부터 역습을 당했다. 몸을 돌려 떨어졌지만 심판들은 유효를 선언했다. 골든스코어제로 치러지는 연장전. 패배였다.

 그러나 왕기춘은 비운의 은메달리스트만은 아니었다. 경기를 마친 뒤 상대방의 부상 부위에 대한 공격을 피한 그의 페어플레이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금메달리스트 아키모토는 “나의 부상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이용하고 싶었을 텐데 그러지 않은 것에 대해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아키모토는 준결승을 치르다 왼쪽 발목을 다쳐 결승에서 내내 절룩이는 모습을 보였지만 왕기춘은 주로 업어치기 공격을 폈다. 경기를 압도했지만 기술은 단조로울 수밖에 없었다. 유도 선수들이 잡기 과정에서 흔히 하는 발목 공격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아키모토는 “지도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자신의 말처럼 수비에만 치중했다.

 경기가 끝난 뒤 일본 언론은 왕기춘에게 왜 다친 발목을 공략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했다. 왕기춘은 “아키모토가 발목을 다친 것을 알고 있었지만 부상 부위를 노리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해서 이기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왕기춘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왜 그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며 “내가 넘기지 못해 졌으니 다음번에는 넘길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는 말만 하고 자리를 떴다. 베이징 올림픽에 이어 또 한 번의 불운에 속울음을 삼켜야했지만 왕기춘은 페어플레이를 통해 45억 아시아인들에게 금메달리스트 못지 않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e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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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이 시 짓던 길, ‘퇴계 오솔길’ 체험기

문화가 흐르는 강 2010/05/19 18:19




“퇴계 선생은 맑고 트인 것을 좋아하고, 막히고 가린 것은 싫어하셨다.그래서 나무 같은 것도 반드시 쳐내서 앞이 가리지 않도록 했다.”

퇴계 이황의 제자인 학봉 김성일이 전하는 말이다.

경북 안동시 예안면에서 태어난 이황은 12세에 작은아버지(이우)한테서 초보적인 학습지도만 받다가 14세 무렵부터 혼자서 공부에 전념했다. 그는 특히 중국 송나라 시인 도연명의 시를 사랑하고 그 사람됨을 흠모했다.

정치가라기보다 학자였기에 임금이 부르면 벼슬길에 나갔다 다시 고향으로 내려오기를 몇 차례. 그동안 풍기군수와 성균관 대사성, 홍문관 부제학과 의정부 좌찬성이란 벼슬에 올랐다. 그가 마지막으로 귀향한 것이 68세 때였다.

이황은 경북 안동의 도산면에 도산서원이 세워지기 전 봉화군 명호면 청량산에 ‘청량정사’를 짓고 학문을 닦으며 후학들을 가르쳤다. 청량정사는 ‘오산당(吳山堂)’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 연유로 도산서원에서 청량산 가는 낙동강 길이 ‘퇴계 오솔길’로 명명됐는데, 그 이름이 지어진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도산서원에서 이황의 묘소가 있는 안동 하계마을을 지나 고개를 넘으면 원촌마을에 이육사 문학관이 있다. 이황의 14대 후손인 이육사는 본명이 이활인데 대구형무소 수인번호가 264번이었다. 여기에서 고개를 넘으면 단사, 백운지 마을이 보이고 그곳에 낙동강이 흐르며 여기서부터가 바로 퇴계 오솔길이다.

강물은 유장하게 흐르고, 강 따라 펼쳐진 길은 아득하다. 안동댐 건설로 옮겨 지은 농암 이현보 종택이 있는 을미재를 지나면 가송리에 이른다. 일명 ‘가송협’이라고도 부르는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건너편에 그림같이 서 있는 정자가 고산정(孤山亭)이다. 가송리는 낙동강 천삼백 리 물길 중에서도 가장 경관이 빼어난 곳 중 하나. 협곡 사이로 여울져 흐르는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청량산 기슭에 이른다.

퇴계가 나고 자란 예안면 온혜리에서 청량산까지는 40여 리로, 한나절이면 갈 수 있는 명승지다. 퇴계가 사랑한 청량산의 아름다움은 중종 대의 성리학자인 신재 주세붕이 지은 <청량산록(淸凉山錄)> 발문에도 들어 있다.

“청량산은 예안현에서 동북쪽으로 수십 리 거리에 있다. 나의 고장은 그 거리의 반쯤 된다. 새벽에 떠나 산에 오를 것 같으면 오시(午時)가 되기 전에 산 중턱에 다다를 수 있다. 비록 지경은 다른 고을이지만, 이 산은 실지로 내 집의 산이다. 어릴 때부터 아버님을 따라 괴나리봇짐을 메고 이 산에 왕래하면서 독서하던 것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풍기군수를 지낸 주세붕은 <청량산록>에서 청량산을 두고 다음과 같은 글도 남겼다.

“산의 둘레가 백 리에 불과하지만 산봉우리가 첩첩이 쌓이고 절벽이 층을 이뤄 수목(樹木)과 안개가 서로 어울려 마치 그림 같다. 산봉우리들을 보고 있으면 나약한 자가 힘이 생기고, 폭포수의 요란한 소리를 듣고 있으면 욕심 많은 자도 청렴해질 것 같다.”

주세붕이 청량사에서 맑은 물을 마시고 만월암에 누워 있으면 비록 하찮은 선비라도 신선이 될 것이라고 한 청량산(8백70미터)은 1982년 경북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마이산과 같은 수성암(水成岩)으로 이뤄진 청량산은 경일봉, 문수봉, 연화봉, 축융봉, 반야봉, 탁필봉 등 우뚝우뚝 솟은 암봉이 어우러져 마치 한 송이 연꽃을 연상시킨다. 산세는 그리 크고 높지 않지만 아름답게 솟아 있는 그 기이한 경관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이황은 스스로 호를 ‘청량산인’이라 짓고 청량산을 이렇게 노래했다.

“청량산 육육봉(六六峰)을 아는 이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훤사(喧辭·말을 함부로 해서 소문을 내다)하랴 못 믿을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뜨지 마라, 어주자(魚舟子) 알까 하노라.” 복사꽃 꽃잎이 강물에 떠내려가면 어부가 무릉도원이 있다는 걸 알까 염려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는 이황의 시다.

낙동강 변에 펼쳐진 퇴계 오솔길을 걷는 즐거움은 그 어떤 즐거움에도 비할 바가 아니다. 그 길을 걷다 보면 “강물 위 맑은 바람(淸風), 산간의 밝은 달(明月)”이라던 중국 북송의 시인 소동파의 시 한 귀절이 떠오르지 않을까.


글/사진 : 신정일(사단법인 우리땅걷기 이사장)
출처 :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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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사진학과에 출강하는 까닭은?

가족부터 조개까지 카메라 없이 X레이 사진 찍는 정태섭 박사


문을 열자 '훅' 하고 묵은 향기가 코끝을 건드린다. 시간을 이겨낸 누런 책들만이 선사할 수 있는 향기 같은 거다. 10평도 안 되는 방에는 녹이 슬고 껍질이 벗겨진 물건들이 쌓여 있다. 오래된 화폐들, 천체망원경, 각종 기계장치들, 엑스(X)레이 사진들. 족히 100년은 넘어 보이는 것들도 있다. "재미있는 거 보여드릴까요?" 정태섭(56·연세대 의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사진) 박사가 주섬주섬 책장에서 한 뭉텅이의 물건을 꺼낸다. 1800년대 카메라가 발명되던 시절의 다게레오타이프 사진들이었다.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세련된 현대미술관에 지금 걸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예술적인 향취가 물씬 풍긴다.

낮에는 의사 밤에는 사진가…즐거운 이중생활

그는 의사이면서 사진가이다. 스스로 '엑스레이 사진 아티스트'라고 이름붙인 남다른 예술가이다. 그의 독특함은 사진 작업에서 출발한다. 그는 카메라 없이 사진을 찍는다. 빛도 마음대로 조종한다. 엑스선으로 사진을 찍기 때문에 가능하다. 수집한 물건들이나 사람을 엑스선 아래 눕히는 것이 '사진찍기'의 시작이다.

15년 전이다. 가족사진 아래 한 장의 사진을 덧붙였다. 그 사진은 가족들의 해골 사진이었다. 괴짜 의대 영상의학과 교수만이 생각해 낼 수 있는 일이었다. 사진에는 아내와 아이들의 피부가 사라지고 크기가 다른 뼈만 남았다.

그때부터 정씨는 꽃이나 조개, 주변의 사소한 물건들까지 엑스선 아래 놓고 사진을 찍었다. 밤을 새우는 날들이 많았다.

그의 사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6년. 기형도 시인의 시 '입 속의 검은 잎'을 차용해서 찍은 사진 때문이다. 그는 금속으로 만든 잎 모양의 브로치를 아내에게 물게 했다. 엑스선으로 그 형태를 찍었다. 사람의 입안에 검은 잎이 보였다. 이 사진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다. 사람들의 뼈 사이에 하트를 넣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발명왕이었던 정 박사의 머리에는 상상력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흑백의 엑스선 사진은 서서히 색이 입혀졌다. 찍은 엑스선 사진을 파일로 저장하고 그 파일을 컴퓨터에 다시 띄워 포토샵 작업을 했다. 튤립에는 붉은색이 입혀지고 노란색이 춤을 췄다. 수백개의 땅콩이 한 장의 사진 속에 리듬감 있게 등장하고 그중 일부는 붉은색이 되었다. 그의 열정은 대단했다. 600가지의 장미를 찾아 꽃시장을 헤매기도 여러 번이다.

그는 재미있는 합성 사진도 만들었다. 호두 껍데기 속에 사람의 뇌를 단층촬영한 사진을 넣었다. 모양이 다른 여러 꽃을 찍어 수백개로 복사해서 자신만의 감성으로 사진을 만들었다. 이 사진들은 독특하면서 예술적인 감성이 넘친다. 하지만 작업은 간단하지 않다. "한 장 만드는 데 100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는 낮에는 의사로, 밤에는 사진가로 지내는 '이중생활'이 즐겁기만 하다.

카메라가 없이도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만들어진 이미지는 다시 여러 장으로 복제된다. 이런 일련의 작업들은 디지털시대와 맞닿아 호평을 얻기 시작했다. '엑스레이 포토 아트'(X-ray Photo Art)(2008년), 'X-레이로 봄을 보다'(2010년) 등 개인전을 7차례, 그룹전을 14번이나 열었다. 2009년 서울국제판화사진아트페어, 2010년 한국국제아트페어 등에 초청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에 소장되었다. 의대 대신 사진학과에 출강하고, 여느 사진가들처럼 작품도 팔았다. 작품 판매금은 치료비가 부족한 이들을 위해 쓰기도 했다. "의사가 국민들의 건강만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감성 교육에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낀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말하는 엑스선 사진의 매력은 질감의 표현에 있다. 귤의 단면과 미세한 껍질의 농도 차이가 엑스선을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화가도 사진가도 재현할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이다. 이제 사진은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그는 작업을 하면서 "빈 공간은 나의 공간이 아닙니다. 그 부분은 사진을 감상하는 이들의 것이지요. 빈 공간에 대한 배려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말한다.

2010년에는 특이한 사진도 찍었다. 그가 찍은 'R16'(비보이 국제행사)의 포스터는 기묘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비보이의 뼈 사진이다. 이 사진은 한 사람을 18장 찍어 합성했다. 몸의 이곳저곳을 부분적으로 찍어야 했기 때문에 18장이 필요했다.

요즘 그는 새로운 사진에 도전하고 있다. 3차원 영상기법을 활용한 사진이다. 영화 < 아바타 > 처럼 특수안경을 끼고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꽃과 조개가 3차원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을 맞는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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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김정일 부자에 `의미있는' 선물‥후계 동의?



父에 "우호협력 증진", 子에 "전통적 우의 계승"

(서울=연합뉴스) 조민정 기자 = 중국이 북한의 당창건 65주년을 맞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후계자 김정은(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게 각각 '우호협력 증진'과 '전통적 우의 계승'의 뜻이 담긴 선물을 전달해 주목된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3일, 축하사절단을 이끌고 방북한 저우융캉(周永康)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정법위원회 서기((당서열 9위)가 지난 11일 김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전달한 선물 사진을 2장 공개했다.

이 사진들을 보면, 김 위원장한테 전달된 액자에는 지난 8월 하순 방중 기간 중국 창춘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악수하는 장면과 하단에 '조선노동당 창건 65주년을 축하한다. 중국과 조선의 전통적 우의를 부단히 공고하게 발전시키자'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김정은에게 전달된 선물은, 젊은 시절 김일성 주석이 마오쩌둥(毛澤東)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환담하는 사진과 함께 상단에 `상호협력과 전통적 우의를 대대로 전하자'는 요지의 문구가 들어간 접시였다.

김 주석과 마오쩌둥 주석의 얼굴, 배경 등을 볼 때 이 사진은 1953년 11월 두 정상이 베이징에서 처음 공식 회담을 가졌을 때 장면인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중국 측은 이번에 북한의 현재와 미래 지도자에게 양국 정상의 첫 만남과 마지막 만남을 담은 선물을 전달함으로써 북중 협력의 전통을 강조하고,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암묵적 동의을 해준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낳고 있다.

한편 중국 정부는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국제 사회의 비난과 조롱이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지난 11일 후계자 김정은을 포함한 새 북한 지도부를 자국으로 초청해 눈길을 끌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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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광부, 신과 악마 사이, 결국 신의 손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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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쥔 구조순간
시작 지연돼 가족들 속타
첫 생환자 나오자 열광, 구조광부들 침착·여유…
"희망캠프 이름 아주 적절" 대통령, 성지로 조성 추진


뿌연 담배 연기가 잠시 '희망'을 가렸다. 당초 12일 오후 8시(한국시간 13일 오전 8시ㆍ이하 현지시간)로 예정됐던 구조 개시 시간이 오후 10시로 미뤄지더니 오후 11시가 넘도록 구조 캡슐은 내려가지 않았다. 매몰 광부의 가족들이 머물던 인근 '희망캠프'에서는 담배를 꺼내는 손길이 부쩍 잦아졌다. 갱도붕괴 사고 후 죽은 줄만 알았던 17일, 그들이 컴컴한 지하 622m에서 '살아서' 땅 위의 가족들을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안 뒤로 다시 52일. 몇 시간 더 기다린다고 문제될 건 없었다. 그래도 가족들의 속은 타 들어갔다.

오후 11시 20분, 광산 구조 전문가인 마누엘 곤살레스를 실은 캡슐이 지하를 향해 출발했고, 16분 뒤 매몰 광부들이 보내오는 영상을 통해 캡슐이 무사히 도착하는 장면이 지상에서 목격됐다. 첫 구조 대상자인 광부 플로렌시오 아발로스(31)를 실은 캡슐이 출발한 지 16분 후인 13일 0시 11분 캡슐 '피닉스(불사조)'가 마침내 지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69일간 갇혀 있던 희망도 함께 올라왔다. 아발로스는 곧장 울먹이는 아들 바이론(7)을 힘껏 껴안았다. 광부 아빠를 존경하고, 아빠와 축구하는 걸 가장 좋아하던 아들이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아들과 축구장으로 달려갈 수 있을 만큼 건강해 보였다.

이 순간 구조 작업을 생중계하던 미 CNN방송 화면 하단에는 '구조 광부(Miners Rescued) 1'이라는 굵은 글씨가 선명히 박혔다. 구조 광부의 수를 전하는 방송 자막은 약 1시간 간격을 두고 2→3→4→5로 바뀌어 갔고, 세계의 기쁨도 함께 커졌다.

아발로스를 비롯해 두 번째로 구출된 마리오 세풀베다(40) 등은 구조 직후 놀라울 만큼 침착함과 여유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특히 세풀베다는 땅에 발을 딛기도 전에 소리를 지르며 귀환을 자축한 데 이어 주위를 에워싼 구조대원들과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에게 손수 가져 온 돌멩이들을 건네며 "지하 감옥에서 기념품으로 가져왔다"고 말해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줄곧 신과 악마 사이에서 싸워야 했다"며 힘들었던 순간을 떠올린 뒤 "나는 결국 신의 손을 잡았다. 신이 우리를 이곳에서 꺼내 줄 것이라 믿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광부로 일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9번째로 나온 최고령자 마리오 고메즈(63)는 구조 직후 칠레 국기를 꼭 쥔 채 무릎을 꿇고 고개 숙여 기도하는 모습으로 주위를 숙연케 했다.

구조 첫 날인 12일 밤부터 이튿날까지 칠레 전역은 감격에 겨워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인근 코피아포 시내의 아르마스 광장에서는 1만 명 가량의 시민들이 광장을 가득 메우고 밤을 지샜다. 칠레 전역 교회에서는 첫 광부가 구조된 순간 일제히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사람씩 구출될 때마다 칠레 전역엔 마치 거대한 자명종이 울리듯 환호성이 퍼져 나갔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광산이 된 이 지역은 앞으로 광부들의 성지가 될 전망이다. 피녜라 대통령은 첫 광부 아발로스가 구출된 직후 "희망캠프라는 이름은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이름이었다"며 "이곳에 담긴 정신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기념지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계적 관심을 모은 이번 구조 작전을 칠레인 모두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칠레 정부의 노력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구조 캡슐 피닉스의 외장은 빨강, 파랑, 흰색으로 3등분돼 칠해졌는데, 이는 칠레 국기를 구성하는 색깔이다.

"세계가 하나된 22시간"..칠레 광부 33명 전원 구조

노컷뉴스

감동의 눈물과 환호의 박수로 전 세계를 하나로 만들었던 22시간의 '휴먼 드라마'가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기적과도 같은 이번 '인간 승리 드라마'는 칠레 국민은 물론 전 세계인의 가슴에 잊을 수 없는 감동의 순간으로 남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하 700미터 아래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69일동안이나 갇혔던 33명의 광부들은 13일(현지시간) 9시 57분 작업반장인 루이스 우르주아(54)가 맨 마지막으로 구출되면서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세상과 다시 만났다.


우르주아는 매몰사고 이후 불안감에 빠진 광부들을 격려하고 질서를 유지하면서 지하 갱도의 지도까지 만드는 등 리더역을 충실히 수행한 인물이다.

맨 마지막 구조 대상자 우르주아를 기다리고 있던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우르주아와 뜨거운 포옹을 나눈 뒤 "당신은 정말 대단한 지도자"라고 말했고, 우르주아는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길 바란다. 모든 구조대원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칠레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어 피녜라 대통령과 우르주아, 구조대원들은 목청껏 칠레 국가를 합창했다.

칠레 당국의 이번 구조작업은 지름 66cm의 캡슐 '불사조(phoenix)'를 통해 이날 0시 10분 플로렌시오 아발로스(31)의 구출에 성공한 뒤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당초 예상보다 빠른 22시간만에 광부 33명 전원을 구출하는 개가를 올렸다.

피녜라 대통령은 "우리는 전 세계에 헌신과 노력, 희망의 모범을 남겼다"면서 "칠레의 가장 큰 보물은 구리가 아니라 광부들"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광부들이 갇혔던 산호세 광산을 국가기념물로 지정해 미래 세대를 위한 '희망의 상징'으로 남기겠다고 말했다.

구조된 광부들은 대부분 건강한 모습이었으며 간단한 건강검진을 받은 뒤 헬기편으로 코피아포의 병원으로 이송돼 48시간 동안 정식 진료를 받게 된다.

한편 전대 미문의 기록으로 남게 될 이번 구조작전에는 광산 기술자와 구조 전문가, 의료요원 등 250여명과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첨단기술이 동원됐으며, 작업 비용만도 2천200만달러(약 247억원)가 투입됐다.

또 이번 구조작업 실황은 칠레 국영TV의 생중계 화면을 받은 CNN과 BBC 등을 통해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방송됐고, 구조현장에는 내외신 기자 2천여명이 몰려들었으며, 각국 주요 지도자들은 환영과 축하의 메시지를 잇달아 발표하는 등 전 세계의 이목이 칠레에 집중됐다.

칠레인 32명과 볼리비이안 1명 등 광부 33명은 지난 8월5일 산호세 광산에서 발생한 붕괴 사고로 갱도에 갇힌 뒤 삶과의 사투를 벌이다 매몰 17일만에 생존 사실이 알려지면서 구조작업이 본격화됐고, 이들은 지하 700미터 아래서 세상과의 재회를 간절히 기도하며 바로 오늘을 꿈꿔 왔다.

칠레 매몰광부 33인 중 화제의 인물들

(코피아포 < 칠레 > AFP.dpa=연합뉴스) 지하 700m 갱도에서 70일 가까이 갇혀있던 칠레 광부 33명에 대한 구조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생존자 개개인의 사연에 대해서도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먼저 매몰 광부 33명 가운데 가장 먼저 생환한 플로렌시오 아발로스(31)는 지하에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동료들의 모습을 담아냈던 '갱도 속 카메라맨'이었다. 그는 구조과정에서 발생할지 모르는 돌발상황에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침착성이 인정돼 첫 번째 구출자로 선정됐다. '갱도 속 의사'역할을 해온 그의 동생 르낭(29)은 아직 지하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작업반장 루이스 우르주아(54)는 광산이 무너진 지난 8월5일부터 현재까지 작업반장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그는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에게 광산이 무너진 당시 상황을 전하며 지하에 갇혀있는 것이 "지옥"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리더'답게 그는 동료들이 모두 구조된 뒤 가장 마지막에 나올 예정이다.

마리오 고메즈(63)는 33명 광부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다. 12세 때부터 광산일을 해온 그는 지상에서는 무뚝뚝한 남편이었지만 지하에 갇힌 동안 자신의 사랑을 편지로 표현해 부인을 감동시킨 '로맨티스트'이기도 하다.

'갱도 속 막내'인 지미 산체스(19)는 최연장자 고메즈보다 무려 44살이나 어리다. 그는 이 광산에서 일을 시작한 지 5개월 만에 평생 잊지 못할 참사를 겪게 됐다.

아리엘 티코나 야녜스(29)는 갱도 속에서 아빠가 됐다. 갱도 속에서 얻은 딸의 이름은 에스페란사, 스페인어로 '희망'을 뜻한다.

갱도 속에서 집을 얻은 사람도 있다. 카를로스 마마니(23)가 그 주인공으로 33명의 광부 중 유일하게 칠레 국민이 아니다. 그는 가난한 볼리비아 출신으로 일자리를 찾아 칠레로 왔으며 광산을 전전하다 산호세 광산으로 옮긴 지 닷새 만에 사고를 당했다. 그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수백만명이 일자리를 찾아 이웃나라로 이주한 볼리비아인들의 심금을 울리자 에모 모랄레스 대통령이 집과 일자리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으며, 그의 생환을 보기위해 산호세광산 구조현장을 직접 찾기도 했다.

칠레와 볼리비아는 19세기 말의 영토분쟁으로 100년 이상 앙숙관계를 유지해왔는데 이번 광부매몰 사태로 피녜라 대통령의 초청으로 모랄레스 대통령이 칠레를 방문해 두 나라의 관계개선에 도움이 될지 외교가의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전직 축구선수 프랭클린 로보스(53) 역시 갱도 속에서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바로 바르셀로나 소속 축구선수 다비드 비야의 사인 티셔츠.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모두 광부였던 다비드는 전직 축구선수였던 프랭클린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며 자신의 사인을 담은 티셔츠를 지하로 내려보냈다. (끝)

칠레 인간드라마 '주역' 마지막 구출자

칠레대통령 "당신도, 칠레도 달라졌다"

(서울=연합뉴스) 박용주 기자 = 33명의 광부 중 마지막으로 구출된 작업반장 루이스 우르수아(54)는 69일간에 걸친 비극을 희극으로 바꿔놓은 주인공 중에서도 주연이었다.

우르수아는 생과 사를 가르는 공간에서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로 괴로워하는 동료들을 때로는 유머와 위트로, 따로는 단호한 지도력으로 다잡은 지도자였다.

추가 붕괴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지하 약 700m 갱도에서 다른 동료들이 모두 떠난 자리를 지키는 막대한 스트레스도 견뎌냄으로써 전 세계가 시청한 인간 승리의 인간 드라마에 마침표를 찍었다.

13일 9시50분께(현지시간) 작업반장이었던 우르수아가 지상으로 올라오자 구조현장에는 환희가 가득했다.

지하 약 700m 아래 매몰된 광부 33명 전원이 69일간에 걸친 지하생활을 이겨내고 생환할 것이라는 꿈이 실현된 순간이었다.

AFP.AP.dpa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마지막 구출자 우르수아는 캡슐에서 나온 직후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에게 "우리가 열심히 싸운 약 70일이 헛되지 않았다"면서 "전 세계가 기다린 일을 우리가 해냈다"고 말했다.

우르수아는 "우리는 힘과 정신력을 갖고 있었고 싸우길 원했다. 가족을 위해 싸웠다"면서 "이는 위대한 일이었다"고 덧붙였다.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당신도, 우리나라도 옛날의 모습이 아니다"면서 "당신이 내게 영감을 줬다"고 이날의 환희를 표현했다.

우르수아 곁에 선 피녜라 대통령은 구조현장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칠레 국가를 부르면서 감동을 함께했다.

우르수아의 지도력은 자칫 비극이 될 가능성이 컸던 매몰 사고를 희극으로 바꿔놓은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다.

우르수아는 매몰사고 이후 광부들 간 질서를 유지하고 각자에게 임무를 할당하는 한편, 지하 갱도의 지도까지 만드는 등 리더역을 충실히 수행한 인물이다.

특히 세상과 단절된 최초 매몰 이후 17일간은 그의 지도력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쉽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는 구조작업에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가정하에 광부들이 48시간마다 한 번씩 스푼 2개 분량의 참치와 쿠키 반 조각, 우유 반 컵으로 버티도록 했다.

그는 광부들의 헬멧에 달린 전등의 사용도 엄격히 제한했다.

몇 대의 장비를 갖고 있었지만 식수를 확보하기 위해 불도저를 사용한 것으로 제외하곤 장비도 쓰지 않았다.

장비를 사용하는 것이 부족한 산소를 고갈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광부들이 절망적인 분위기로 빠져들면 농담을 건네면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유도할만큼 전술도 능수능란했다.

광부들의 리더 역할을 한 그가 마지막 구출자로 자원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라우렌세 골보르네 광업장관은 "광부들이 이번 사태에 대처하는 방법이 모두 그렇듯이 식량을 배분한 방법도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된다"고 치하했다.

(끝)

<지상에서 다시 한데 모인 칠레 광부들>

피녜라 대통령 "대통령궁서 축구 시합하자"

(코피아포<칠레>=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무너진 광산 갱도에 69일간 갇혀있다 극적으로 구조되면서 일약 `칠레의 영웅'으로 떠오른 33명의 생환 광부들이 구조 하루 만에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지하 700m 갱도의 어둠 속이 아닌 지상의 밝은 병원에서였다.

코피아포 시내 병원에서 검진을 받으며 요양중인 이들은 14일 오전(현지시간) 병원을 방문한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을 함께 맞았다.

환자복을 입고 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여전히 선글래스를 착용한 채였지만 광부들은 모두 건강하고 밝은 모습이었으며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농담을 주고 받으며 한데 모여 기념촬영을 했다.

이 자리에서 피녜라 대통령은 이달 25일 대통령궁인 라 모네다에 33명 광부들과 가족들을 모두 초대하면서 대통령궁에서 정부 대표팀과 함께 축구 시합을 벌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광부 대표팀의 감독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전직 국가대표 축구선수였던 광부 프랭클린 로보스.

대통령이 "이기는 팀은 대통령궁에 남고 진 팀은 광산으로 돌아가기로 하자"고 웃으며 말하자 광부들 사이에서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피녜라 대통령은 또 광부들에게 "노동자들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 것"이라며 "노동자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건강과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고 보완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한편 병원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는 33명의 광부들은 모두 건강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전해졌다.

광부들 가운데 클라우디아 야녜스를 비롯해 상태가 좋은 2-3명이 이날 중 퇴원할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최소 48시간 이상 병원에서 상태를 지켜봐야한다는 규정에 따라 이들의 퇴원은 15일 자정을 넘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병원 앞에는 이들의 퇴원을 기다리는 수많은 취재진과 시민들이 진을 치고 있으며 언론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광부들과의 인터뷰를 시도하고 있는 상태다.

칠레 국영방송 TVN은 11월이면 아빠가 되는 스물여덟 번째 구조 광부 리차드 비야로엘과의 전화 통화를 성사시켜 "아들이 태어나는 것을 지켜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그의 음성을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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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공교육에 새바람 불어넣고 떠난 미셸 리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빌 게이츠까지 나서 찬사를 아끼지 않던 던 미셸 리 워싱턴 D.C. 교육감이 마침내 사퇴했다.

자신을 교육감에 기용했던 에드리언 펜티 현 워싱턴 D.C. 시장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경선에서 패배하고 자신과 교육개혁 부문에서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빈센트 그레이 시의회 의장이 차기 시장으로 유력시됨에 따라 미리 거취를 결정한 것이다.


3년반에 걸친 리 교육감의 공교육 개혁작업은 교육환경이 열악하기로 이름난 워싱턴D.C.에 새바람을 불러왔을 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은 물론 바다건너 한국으로부터도 대단한 주목을 받았다.

리 교육감이 한국계라는 점 때문에 한국 미디어에 비중있게 다뤄진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국 학부모들의 입장에서 볼 때 리 교육감이 추진했던 개혁이 한국 교육 현장에 절실히 요구되는 내용이라는 점 때문에 더더욱 주목을 끌었다고 보는게 정확한 평가다.

2007년 6월 미셸 리가 워싱턴 D.C.의 교육감에 임명됐을 당시 워싱턴D.C.는 미국내에서 대표적인 공교육의 실패 사례로 인용되던 곳이었다.

백악관과 의회의사당, 연방대법원이 소재한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거주 인구의 70% 이상이 저소득층 흑인들로 구성돼 교육예산이나 교사들의 열의,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등은 형편없었다.

특히 학교운영 경험이 전혀 없고 출신지도 오하이오인 한국계 인사 미셸 리가 D.C.의 교육감에 임명된데 대해 워싱턴 교육계는 전혀 뜻밖으로 받아들였다. 미셸 리 자신도 훗날 "아마 지구상 최악의 인사였을 것"이라고 술회할 정도였다.

그러나 취임과 동시에 우수교사 발굴과 무능교사 퇴출이라는 정책기조 아래 과감한 공교육 개혁에 나서 단기간에 놀랄만한 성과를 이뤄냈다.

2008년 11월 시사주간지 타임은 빗자루를 든 리 교육감의 사진을 표지에 실으면서 그의 개혁성과를 대서특필했다.

당시 타임은 재임 1년반만에 시 전체 학교의 15%에 해당하는 21개 학교를 폐쇄하고 교육청 직원 900여명 가운데 100명을 해고하는 한편 36명의 교장과 270명의 교사를 퇴출시켰다고 보도했다.

리 교육감에 의해 해고당한 사람 가운데는 자신의 두 딸이 다니는 학교의 교장도 포함돼 있었다.

이런 성과를 두고 당시 민주당의 대선후보였던 버락 오바마와 공화당의 대선 후보 존 매케인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까지도 "워싱턴D.C.의 교육감은 대단히 어려운 자리지만 리 교육감이 대단한 능력을 발휘, 교육여건을 개선시키고 있다"고 치켜세웠다.

교육현장에서 무능교사들을 빗자루로 쓸어내던 리 교육감은 그러나 교원노조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리 교육감이 워싱턴 D.C.에서 가장 인기있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가장 인기없는 인물로 꼽힌 것은 바로 일선 교사들의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용과 해고가 손바닥 뒤집기만큼 손쉬운 미국에서도 교원노조를 버팀목으로 하고 있는 교사들를 해고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해고했다가는 법정에서 오랜 다툼으로 이어지기가 쉽상이다.

실적에 따라 보수와 승진이 좌우되는 미국의 기업 풍토와 달리 교육현장에서는 학생들의 성적 부진에 따른 책임을 교사들에게 엄중하게 묻는 것이 쉽지 않은 편이다.

이런 풍토를 바꿔놓겠다고 팔을 걷어부친 리 교육감이 엄격한 평가시스템을 도입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에 따라 교사들의 실적을 따져 최하등급을 받은 교사들을 냉정하게 퇴출시키자 학부모들에게는 희망의 전도사로 비쳐졌지만 일선교사들에게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결국 교원노조의 지지를 업은 인물이 차기 워싱턴 D.C.의 시장으로 유력시됨에 따라 설땅을 잃게 된 미셸 리가 교육감에서 물러났지만 그의 교육개혁 의지는 이것으로 꺾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내에서 최고 학군 가운데 하나인 메릴린드주 몽고메리 카운티가 미셸 리의 영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온 것을 비롯해 여기저기서 그에게 개혁 청사진을 펼쳐줄 것을 주문하며 러브콜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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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아찌아족은 왜 한글을 선택했을까?

[한겨레] 과학향기

"이소오 꾸라꾸라 보도! 비나땅 뿌리에 빠깔루아라노 하떼노? 불라이!"

"찌아모 마이 까라지아 아가아노 땅까노모 띠뽀자가니 마이돔바…"

이것은 대체 어느 나라 언어일까? 뜻은 알 수 없지만 이 기사를 보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읽을 수는 있을 것이다. 이는 한글로 나타낸 찌아찌아어(語)로, 2009년 7월 21일부터 교육에 활용 중인 '한글로 된 찌아찌아어 교과서'에 나온 내용이다.

인도네시아 소수 민족인 찌아지아족이 한글을 사용한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2010년 7월에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한글 사용을 공식 승인했다. 한글이 찌아찌아족의 공식 문자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한글을 사용하게 됐을까? 인도네시아 중부 술라웨시주 부톤섬 바우바우시(市)에 살고 있는 찌아찌아족은 그들 부족의 고유 언어인 찌아찌아어를 갖고 있다. 하지만 수백 년 동안 그 언어를 기록할 문자가 없어 역사를 비롯한 그 무엇도 기록으로 남길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찌아찌아어를 기록할 문자로 우리나라 한글을 채택한 것이다. 이는 훈민정음학회가 한글을 세계화하고자 노력한 결과다.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한글은 과학적인 원리로 만들어진 문자라고 알려져 있다. 게다가 199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록됐다. 이제는 다른 나라로 수출될 만큼 한글의 가치와 우수성을 인정받았는데, 그 우수성을 정확히 알고 있는 한국인은 그리 많지 않다.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한글의 우수성을 제대로 알아보자.

한글은 띄어쓰기가 발달된 언어지만 굳이 띄어쓰기를 하지 않아도 읽을 수 있다. 이는 영어보다 우수한 점 중 하나다. 영어는 알파벳 철자를 하나씩 옆으로 늘어 쓰는 반면, 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한데 모아 글자를 하나씩 만들고 이 글자(음절)를 이어 쓴다.

한마디로 영어는 늘어 쓰는 데 비해 한글은 모아쓰는 방식을 취한다는 뜻이다. 한글은 글자마다 의미가 있어 띄어쓰기를 안 하더라도 대강의 의미를 알 수 있다. 명사 전체의 70%가 한자어이고 명사에 붙는 은·는·이·가·도 같은 조사를 쉽게 가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점은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낼 때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휴대전화 문자는 글자 수 제한이 있어 대부분 띄어쓰기를 하지 않고 보내는데, 그 의미를 파악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소리에 따라 기록하는 소리글자로 만들었다. 소리글자는 사람이 말하는 소리를 그대로 기호로 나타내는 글자이다. 이러한 장점으로 인해 로마자나 아랍어로 적을 수 없는 찌아찌아어의 소리를 한글로는 쉽게 표기할 수 있었다.

한글은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음은 발음기관인 입술, 이, 혀, 목구멍의 모양, 어금니에 혀뿌리가 닿는 모양을 본떠 만든 기본자(ㄱ, ㄴ, ㅁ, ㅅ, ㅇ)에 획을 더해 총 17개로 만들어졌다. 모음은 하늘, 땅, 인간이라는 철학적인 원리를 반영한 기본자 세 자(·, ㅡ, l)를 바탕으로 획을 더해 총 11자로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우리 머릿속에서도 인식하는 한글도 소리글자일까? 이는 뇌의 일부가 망가져 글자를 잘 읽지 못하는 난독증 환자를 연구해 확인할 수 있다. 같은 소리글자인 영어와 비교하면 이 사실이 더욱 분명해진다.

난독증환자가 '책상'이란 글자를 읽으면 '책책…상상…책상!'이라고 발음한다. 하지만 영어권 난독증 환자는 알파벳 철자를 하나씩 나눠 발음한다. 책상에 해당하는 단어인 'desk'를 발음한다면 'd…e…s…k…desk!'라고 말하는 식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 한글은 철자가 아니라 소리를 따라 기억된다. 이처럼 우리 머릿속에는 시각적인 철자 모양이 아니라 발음 소리로 저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고려대 심리학과 남기춘 교수팀이 단어를 인식할 때 '철자이웃'과 '음운이웃'에서 반응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연구해 얻은 결과다. 철자이웃은 한 단어와 철자 하나가 같은 단어이고, 음운이웃은 한 단어와 발음 하나가 같은 단어를 말한다. '반란('발란'으로 읽음)'이란 단어를 예로 들면 반구, 반도, 반대 등이 철자이웃이고 발달, 발표, 발명 등이 음운이웃이다.

남 교수팀은 36명을 대상으로 철자이웃과 음운이웃이 모두 많은 단어, 철자이웃은 많지만 음운이웃이 적은 단어, 철자이웃은 적지만 음운이웃이 많은 단어, 철자이웃과 음운이웃이 모두 적은 단어를 각각 17개를 제시하며 단어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게 했다.

실험 결과 음운이웃이 많은 경우에 어휘 판단 시간이 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머릿속의 국어사전이 음운(소리)정보를 바탕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으로 음운이웃이 많으면 그 이웃끼리 경쟁하는 상황이 벌어져 판단이 오래 걸리는 것으로 연구팀은 풀이했다.

또 연구팀이 시각적으로 제시되는 단어가 뇌에서 음운 정보를 바탕으로 처리되는지를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으로 확인한 결과 측두엽을 비롯해 음운 정보를 처리하는 데 관여하는 뇌영역이 활성화됐다. 특히 음운이웃이 많은 경우가 적은 경우에 비해 활성화 정도가 더 크게 나타났다. 세종대왕이 소리글자로 창제한 한글이 한국인의 뇌 속에도 소리글자로 깊이 박혀 있다는 사실이 현대과학으로 밝혀지고 있는 셈이다.

훈민정음학회는 찌아찌아어 사례를 바탕으로 문자를 갖지 못한 소수민족들에게 한글을 전파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이제 그 첫발을 내디딘 한글, 앞으로 한반도를 넘어 역사와 문화를 기록하지 못하는 소수민족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지 않을까.

글 : 과학향기 편집부

※ 과학향기 제662호 '한글에 대한 자부심의 근거를 알려주마(2007년 10월 3일자)'에서 일부 내용을 발췌했음을 알려드립니다.

한글에 대한 자부심의 근거를 알려주마!

한국인이 선조에게 물려받은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값어치 있는 것 하나만 골라내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한글을 꼽을 것이다. 숭례문(남대문) 대신 간송미술관이 간직하고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을 국보 1호로 새롭게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간간히 들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한국인이 한글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근거는 무엇일까.

한글은 띄어쓰기가 발달된 언어지만 굳이 띄어쓰기를 하지 않아도 읽을 수 있다. 다음 예를 보자.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시대를 앞서간 천재문학가 이상이 쓴 시 ‘오감도 제1호’의 일부다. 이 시는 봉건적 질서와 식민지 사회에 저항하기 위해 기존 문법의 띄어쓰기를 무시했다. 일상의 가장 상식적인 질서를 거부한 셈이다. 하지만 시를 읽는데 무리는 없다. 그렇다면 영어를 이렇게 쓰면 어떨까.

“Tobeornottobethatisthequestion.”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쓴 희곡 ‘햄릿’에 나오는 명대사다. 그런데 붙여 써놓으니 그 의미를 도무지 모르겠다. 원문대로 띄어쓰기를 하면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란 햄릿의 대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글이 영어보다 우수하다고 볼 수 있는 하나의 예다.

영어는 알파벳 철자를 하나씩 옆으로 늘어 쓰는 반면, 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한데 모아 글자를 하나씩 만들고 이 글자(음절)를 이어 쓴다. 한마디로 영어는 늘어 쓰는 데 비해 한글은 모아쓰는 방식을 취한다는 얘기다. 한글은 글자마다 의미가 있어 띄어쓰기를 안 하더라도 대강의 의미를 알 수 있다. 명사 전체의 70%가 한자어이고 명사에 붙는 은·는·이·가·도 같은 조사를 쉽게 가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젊은이들은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낼 때 글자수 제한 때문에 대부분 띄어쓰기를 하지 않고 보낸다.

또 한글은 영어보다 한눈에 들어오는 정보가 더 많다. 이것도 모아쓰기의 장점이다. 우리 눈의 망막에 초점이 맺히는 곳에는 보통 6~10개의 글자가 들어온다. 따라서 똑같은 글자수가 눈에 들어올 경우, 한글을 읽을 때 영어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는다. ‘한국인은 우수하다’(Koreans are excellent)란 문장을 예로 들면 한글 문장은 전체가, 영어 문장은 Koreans만 한눈에 들어온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소리에 따라 기록하는 소리글자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우리 머릿속에서도 인식하는 한글도 소리글자일까? 이는 뇌의 일부가 망가져 글자를 잘 읽지 못하는 난독증 환자를 연구해 확인할 수 있다. 같은 소리글자인 영어와 비교하면 이 사실이 더욱 분명해진다.

난독증환자가 ‘책상’이란 글자를 읽으면 ‘책책…상상…책상!’이라고 발음한다. ‘ㅊ…ㅐ…ㄱ…’ 이런 식이 아니란 말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영어권 난독증 환자는 다르게 발음한다. 즉 알파벳 철자를 하나씩 나눠 말한다. 책상에 해당하는 단어인 ‘desk’를 발음한다면 ‘d…e…s…k…desk!’라고 말하는 식이다. 한글이 철자가 아니라 소리를 따라 기억된다는 뜻이다.

이처럼 우리 머릿속의 국어사전은 시각적인 철자 모양이 아니라 발음 소리로 저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ㄱㄴㄷ’ 순으로 분류된 뒤 ‘ㅏㅑㅓㅕ’ 순으로 나눠진 국어사전과 다른 방식이라 경제적이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철자로 기억하는 대신 음절로 기억하면 자음과 모음으로 단어를 만드는데 드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고려대 심리학과 남기춘 교수팀이 단어를 인식할 때 ‘철자이웃’과 ‘음운이웃’에서 반응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연구해 이같은 결과를 얻었다. 철자이웃은 한 단어와 철자 하나가 같은 단어이고, 음운이웃은 한 단어와 발음 하나가 같은 단어를 말한다. ‘반란’(‘발란’으로 읽음)이란 단어를 예로 들면 반구, 반도, 반대 등이 철자이웃이고 발달, 발표, 발명 등이 음운이웃이다.

남 교수팀은 36명을 대상으로 철자이웃과 음운이웃이 모두 많은 단어, 철자이웃은 많지만 음운이웃이 적은 단어, 철자이웃은 적지만 음운이웃이 많은 단어, 철자이웃과 음운이웃이 모두 적은 단어를 각각 17개를 제시하며 단어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게 했다.

실험 결과 음운이웃이 많은 경우가 어휘 판단 시간이 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머릿속의 국어사전이 음운(소리)정보를 바탕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으로 음운이웃이 많으면 그 이웃끼리 경쟁하는 상황이 벌어져 판단이 오래 걸리는 것으로 연구팀은 풀이했다.

또 연구팀이 시각적으로 제시되는 단어가 뇌에서 음운 정보를 바탕으로 처리되는지를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으로 확인한 결과 측두엽을 비롯해 음운 정보를 처리하는데 관여하는 뇌영역이 활성화됐다. 특히 음운이웃이 많은 경우가 적은 경우에 비해 활성화 정도가 더 크게 나타났다.

세종대왕이 소리글자로 창제한 한글이 한국인의 뇌 속에도 소리글자로 깊이 박혀있다는 사실이 현대과학으로 밝혀지고 있는 셈이다. 한글날을 맞아 소리글자인 한글의 위력을 새삼 느끼게 된다. (글 : 이충환 과학칼럼니스트)

※ 소리글자(표음문자)는 소리나는 대로 쓰는 글자입니다. 소리글자에는 음운글자, 음소글자가 있습니다. 음운글자는 일어처럼 ‘가’라는 발음을 나타내는 글자가 ‘が’로 표시되는 글자를 말합니다. 한글과 영어는 음소글자입니다. ‘가’라를 발음을 나타내기 위해 한글은 ‘ㄱ+ㅏ’, 영어는 ‘g + a’로 표시하는 글자입니다. 한자는 소리글자가 아니라 뜻글자(표의문자)입니다.

[가져옮: Kisti의 과학향기 제662호/2007-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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