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광부, 신과 악마 사이, 결국 신의 손 잡았다"
"칠레 광부, 신과 악마 사이, 결국 신의 손 잡았다"
한국일보
땀 쥔 구조순간
시작 지연돼 가족들 속타
첫 생환자 나오자 열광, 구조광부들 침착·여유…
"희망캠프 이름 아주 적절" 대통령, 성지로 조성 추진
오후 11시 20분, 광산 구조 전문가인 마누엘 곤살레스를 실은 캡슐이 지하를 향해 출발했고, 16분 뒤 매몰 광부들이 보내오는 영상을 통해 캡슐이 무사히 도착하는 장면이 지상에서 목격됐다. 첫 구조 대상자인 광부 플로렌시오 아발로스(31)를 실은 캡슐이 출발한 지 16분 후인 13일 0시 11분 캡슐 '피닉스(불사조)'가 마침내 지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69일간 갇혀 있던 희망도 함께 올라왔다. 아발로스는 곧장 울먹이는 아들 바이론(7)을 힘껏 껴안았다. 광부 아빠를 존경하고, 아빠와 축구하는 걸 가장 좋아하던 아들이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아들과 축구장으로 달려갈 수 있을 만큼 건강해 보였다.
이 순간 구조 작업을 생중계하던 미 CNN방송 화면 하단에는 '구조 광부(Miners Rescued) 1'이라는 굵은 글씨가 선명히 박혔다. 구조 광부의 수를 전하는 방송 자막은 약 1시간 간격을 두고 2→3→4→5로 바뀌어 갔고, 세계의 기쁨도 함께 커졌다.
아발로스를 비롯해 두 번째로 구출된 마리오 세풀베다(40) 등은 구조 직후 놀라울 만큼 침착함과 여유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특히 세풀베다는 땅에 발을 딛기도 전에 소리를 지르며 귀환을 자축한 데 이어 주위를 에워싼 구조대원들과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에게 손수 가져 온 돌멩이들을 건네며 "지하 감옥에서 기념품으로 가져왔다"고 말해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줄곧 신과 악마 사이에서 싸워야 했다"며 힘들었던 순간을 떠올린 뒤 "나는 결국 신의 손을 잡았다. 신이 우리를 이곳에서 꺼내 줄 것이라 믿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광부로 일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9번째로 나온 최고령자 마리오 고메즈(63)는 구조 직후 칠레 국기를 꼭 쥔 채 무릎을 꿇고 고개 숙여 기도하는 모습으로 주위를 숙연케 했다.
구조 첫 날인 12일 밤부터 이튿날까지 칠레 전역은 감격에 겨워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인근 코피아포 시내의 아르마스 광장에서는 1만 명 가량의 시민들이 광장을 가득 메우고 밤을 지샜다. 칠레 전역 교회에서는 첫 광부가 구조된 순간 일제히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사람씩 구출될 때마다 칠레 전역엔 마치 거대한 자명종이 울리듯 환호성이 퍼져 나갔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광산이 된 이 지역은 앞으로 광부들의 성지가 될 전망이다. 피녜라 대통령은 첫 광부 아발로스가 구출된 직후 "희망캠프라는 이름은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이름이었다"며 "이곳에 담긴 정신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기념지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계적 관심을 모은 이번 구조 작전을 칠레인 모두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칠레 정부의 노력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구조 캡슐 피닉스의 외장은 빨강, 파랑, 흰색으로 3등분돼 칠해졌는데, 이는 칠레 국기를 구성하는 색깔이다.
"세계가 하나된 22시간"..칠레 광부 33명 전원 구조
노컷뉴스
감동의 눈물과 환호의 박수로 전 세계를 하나로 만들었던 22시간의 '휴먼 드라마'가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기적과도 같은 이번 '인간 승리 드라마'는 칠레 국민은 물론 전 세계인의 가슴에 잊을 수 없는 감동의 순간으로 남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하 700미터 아래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69일동안이나 갇혔던 33명의 광부들은 13일(현지시간) 9시 57분 작업반장인 루이스 우르주아(54)가 맨 마지막으로 구출되면서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세상과 다시 만났다.
맨 마지막 구조 대상자 우르주아를 기다리고 있던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우르주아와 뜨거운 포옹을 나눈 뒤 "당신은 정말 대단한 지도자"라고 말했고, 우르주아는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길 바란다. 모든 구조대원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칠레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어 피녜라 대통령과 우르주아, 구조대원들은 목청껏 칠레 국가를 합창했다.
칠레 당국의 이번 구조작업은 지름 66cm의 캡슐 '불사조(phoenix)'를 통해 이날 0시 10분 플로렌시오 아발로스(31)의 구출에 성공한 뒤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당초 예상보다 빠른 22시간만에 광부 33명 전원을 구출하는 개가를 올렸다.
피녜라 대통령은 "우리는 전 세계에 헌신과 노력, 희망의 모범을 남겼다"면서 "칠레의 가장 큰 보물은 구리가 아니라 광부들"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광부들이 갇혔던 산호세 광산을 국가기념물로 지정해 미래 세대를 위한 '희망의 상징'으로 남기겠다고 말했다.
구조된 광부들은 대부분 건강한 모습이었으며 간단한 건강검진을 받은 뒤 헬기편으로 코피아포의 병원으로 이송돼 48시간 동안 정식 진료를 받게 된다.
한편 전대 미문의 기록으로 남게 될 이번 구조작전에는 광산 기술자와 구조 전문가, 의료요원 등 250여명과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첨단기술이 동원됐으며, 작업 비용만도 2천200만달러(약 247억원)가 투입됐다.
또 이번 구조작업 실황은 칠레 국영TV의 생중계 화면을 받은 CNN과 BBC 등을 통해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방송됐고, 구조현장에는 내외신 기자 2천여명이 몰려들었으며, 각국 주요 지도자들은 환영과 축하의 메시지를 잇달아 발표하는 등 전 세계의 이목이 칠레에 집중됐다.
칠레인 32명과 볼리비이안 1명 등 광부 33명은 지난 8월5일 산호세 광산에서 발생한 붕괴 사고로 갱도에 갇힌 뒤 삶과의 사투를 벌이다 매몰 17일만에 생존 사실이 알려지면서 구조작업이 본격화됐고, 이들은 지하 700미터 아래서 세상과의 재회를 간절히 기도하며 바로 오늘을 꿈꿔 왔다.
칠레 매몰광부 33인 중 화제의 인물들
작업반장 루이스 우르주아(54)는 광산이 무너진 지난 8월5일부터 현재까지 작업반장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그는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에게 광산이 무너진 당시 상황을 전하며 지하에 갇혀있는 것이 "지옥"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리더'답게 그는 동료들이 모두 구조된 뒤 가장 마지막에 나올 예정이다.
마리오 고메즈(63)는 33명 광부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다. 12세 때부터 광산일을 해온 그는 지상에서는 무뚝뚝한 남편이었지만 지하에 갇힌 동안 자신의 사랑을 편지로 표현해 부인을 감동시킨 '로맨티스트'이기도 하다.
'갱도 속 막내'인 지미 산체스(19)는 최연장자 고메즈보다 무려 44살이나 어리다. 그는 이 광산에서 일을 시작한 지 5개월 만에 평생 잊지 못할 참사를 겪게 됐다.
아리엘 티코나 야녜스(29)는 갱도 속에서 아빠가 됐다. 갱도 속에서 얻은 딸의 이름은 에스페란사, 스페인어로 '희망'을 뜻한다.
갱도 속에서 집을 얻은 사람도 있다. 카를로스 마마니(23)가 그 주인공으로 33명의 광부 중 유일하게 칠레 국민이 아니다. 그는 가난한 볼리비아 출신으로 일자리를 찾아 칠레로 왔으며 광산을 전전하다 산호세 광산으로 옮긴 지 닷새 만에 사고를 당했다. 그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수백만명이 일자리를 찾아 이웃나라로 이주한 볼리비아인들의 심금을 울리자 에모 모랄레스 대통령이 집과 일자리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으며, 그의 생환을 보기위해 산호세광산 구조현장을 직접 찾기도 했다.
칠레와 볼리비아는 19세기 말의 영토분쟁으로 100년 이상 앙숙관계를 유지해왔는데 이번 광부매몰 사태로 피녜라 대통령의 초청으로 모랄레스 대통령이 칠레를 방문해 두 나라의 관계개선에 도움이 될지 외교가의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전직 축구선수 프랭클린 로보스(53) 역시 갱도 속에서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바로 바르셀로나 소속 축구선수 다비드 비야의 사인 티셔츠.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모두 광부였던 다비드는 전직 축구선수였던 프랭클린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며 자신의 사인을 담은 티셔츠를 지하로 내려보냈다. (끝)
칠레 인간드라마 '주역' 마지막 구출자
칠레대통령 "당신도, 칠레도 달라졌다"
(서울=연합뉴스) 박용주 기자 = 33명의 광부 중 마지막으로 구출된 작업반장 루이스 우르수아(54)는 69일간에 걸친 비극을 희극으로 바꿔놓은 주인공 중에서도 주연이었다.
우르수아는 생과 사를 가르는 공간에서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로 괴로워하는 동료들을 때로는 유머와 위트로, 따로는 단호한 지도력으로 다잡은 지도자였다.
추가 붕괴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지하 약 700m 갱도에서 다른 동료들이 모두 떠난 자리를 지키는 막대한 스트레스도 견뎌냄으로써 전 세계가 시청한 인간 승리의 인간 드라마에 마침표를 찍었다.
13일 9시50분께(현지시간) 작업반장이었던 우르수아가 지상으로 올라오자 구조현장에는 환희가 가득했다.
지하 약 700m 아래 매몰된 광부 33명 전원이 69일간에 걸친 지하생활을 이겨내고 생환할 것이라는 꿈이 실현된 순간이었다.
AFP.AP.dpa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마지막 구출자 우르수아는 캡슐에서 나온 직후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에게 "우리가 열심히 싸운 약 70일이 헛되지 않았다"면서 "전 세계가 기다린 일을 우리가 해냈다"고 말했다.
우르수아는 "우리는 힘과 정신력을 갖고 있었고 싸우길 원했다. 가족을 위해 싸웠다"면서 "이는 위대한 일이었다"고 덧붙였다.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당신도, 우리나라도 옛날의 모습이 아니다"면서 "당신이 내게 영감을 줬다"고 이날의 환희를 표현했다.
우르수아 곁에 선 피녜라 대통령은 구조현장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칠레 국가를 부르면서 감동을 함께했다.
우르수아의 지도력은 자칫 비극이 될 가능성이 컸던 매몰 사고를 희극으로 바꿔놓은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다.
우르수아는 매몰사고 이후 광부들 간 질서를 유지하고 각자에게 임무를 할당하는 한편, 지하 갱도의 지도까지 만드는 등 리더역을 충실히 수행한 인물이다.
특히 세상과 단절된 최초 매몰 이후 17일간은 그의 지도력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쉽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는 구조작업에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가정하에 광부들이 48시간마다 한 번씩 스푼 2개 분량의 참치와 쿠키 반 조각, 우유 반 컵으로 버티도록 했다.
그는 광부들의 헬멧에 달린 전등의 사용도 엄격히 제한했다.
몇 대의 장비를 갖고 있었지만 식수를 확보하기 위해 불도저를 사용한 것으로 제외하곤 장비도 쓰지 않았다.
장비를 사용하는 것이 부족한 산소를 고갈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광부들이 절망적인 분위기로 빠져들면 농담을 건네면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유도할만큼 전술도 능수능란했다.
광부들의 리더 역할을 한 그가 마지막 구출자로 자원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라우렌세 골보르네 광업장관은 "광부들이 이번 사태에 대처하는 방법이 모두 그렇듯이 식량을 배분한 방법도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된다"고 치하했다.
(끝)
(코피아포<칠레>=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무너진 광산 갱도에 69일간 갇혀있다 극적으로 구조되면서 일약 `칠레의 영웅'으로 떠오른 33명의 생환 광부들이 구조 하루 만에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지하 700m 갱도의 어둠 속이 아닌 지상의 밝은 병원에서였다.
코피아포 시내 병원에서 검진을 받으며 요양중인 이들은 14일 오전(현지시간) 병원을 방문한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을 함께 맞았다.
환자복을 입고 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여전히 선글래스를 착용한 채였지만 광부들은 모두 건강하고 밝은 모습이었으며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농담을 주고 받으며 한데 모여 기념촬영을 했다.
이 자리에서 피녜라 대통령은 이달 25일 대통령궁인 라 모네다에 33명 광부들과 가족들을 모두 초대하면서 대통령궁에서 정부 대표팀과 함께 축구 시합을 벌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광부 대표팀의 감독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전직 국가대표 축구선수였던 광부 프랭클린 로보스.
대통령이 "이기는 팀은 대통령궁에 남고 진 팀은 광산으로 돌아가기로 하자"고 웃으며 말하자 광부들 사이에서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피녜라 대통령은 또 광부들에게 "노동자들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 것"이라며 "노동자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건강과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고 보완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한편 병원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는 33명의 광부들은 모두 건강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전해졌다.
광부들 가운데 클라우디아 야녜스를 비롯해 상태가 좋은 2-3명이 이날 중 퇴원할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최소 48시간 이상 병원에서 상태를 지켜봐야한다는 규정에 따라 이들의 퇴원은 15일 자정을 넘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병원 앞에는 이들의 퇴원을 기다리는 수많은 취재진과 시민들이 진을 치고 있으며 언론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광부들과의 인터뷰를 시도하고 있는 상태다.
칠레 국영방송 TVN은 11월이면 아빠가 되는 스물여덟 번째 구조 광부 리차드 비야로엘과의 전화 통화를 성사시켜 "아들이 태어나는 것을 지켜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그의 음성을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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