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습근평' 뭐가 맞나? 중국어 한글 표기문제
[2010-05-02, 22:16:04] 온바오 이동훈기자
한국어와 조선어 中고유명칭 표기문제


중국의지도자의 한 사람으로이름 높은 정치가의 이름은 '시진핑(習近平)이거나 '습근평'이다.

역사 이래 지난 2000년대 초반까지도 변치 않고 불러 온 강 이름인 '요하(遼河)'는 이제 한국에서는 언론에서든 지도책에서든 '랴오허'가 되었다. 그러나 정작 중국 조선족 언론에서는 여전히 '요하'라 부른다. 한국 언론매체에서는 괄호 안에 한자를 병기하는 것이 보통이다.

중국 관련 기사를 쓰려다가 중국의 어느 작은 도시 이름이 나오면 인터넷 사전에서 병음을 찾아야 하는 우리들과, 한자든 병음이든 훤히 알고 있으나 한글 원음을 쓰는 동포들 사이에는 이런 격차의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이것은 언어의 차이가 아니라 '의식'의 차이다. 한국인들이 중국의 지명이나 인명에 대해 인식하는 기준과 조선족들이 한글에 대해 인식하는 기준, 그 사이에 바로 시진핑과 습근평의 간격이 발생한 것이다.

한국인들은 중국의 고유명사에 대해 중국식 발음을 따라야 한다는 국제적인 언어 규칙에 근거하여 시진핑을 시진핑이라 한다. 그러나 조선족들은 우리 민족 고유의 발음체계를 지키기 위해 습근평이라 하는 것이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르냐를 논하기 전에 이 두 가지 발음현상은 모두 의미있는 일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한글이 세계 어느 언어라도 원어에 가깝게 옮겨 표기할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해야 한다. 우선 이 두 가지 발음현상이 안고 있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짚어 보자.

자, 이런 경우가 있다. 최근 중국의 경제 브레인으로 급부상한 리다오쿠이(李稻葵) 칭화대 교수의 경우 한국 언론에서는 '리다오쿠이'라고 쓰거나 '리다오퀴' 심지어 '리다오큐'라는 표기까지 있다.

물론 새롭게 주목받다 보니 공식 표기가 없어서 그렇기도 하고 '葵'자가 병음으로 'Kui'여서 뭐라고 써도 틀린 건 아니다. 이를테면 시버족(錫伯族,Xibe/Sibo)의 '백'(伯)자는 병음이 'bo'와 'bai' 두 가지로 나는데 'bo'의 경우는 '보'라고 해야 할 지 '버'라고 해야 할 지 판단하기 어렵다. 실제 발음 상으로는 '시버'에 가깝다. 때로는 '연변일보'의 기사를 인용하려면 '옌벤일보'라 하기도 그렇고 '옌벤르바오'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색해 그냥 연변일보라고 쓰기도 한다.

또, 최근 4천년 전 미이라가 발견된 신장위구르자치주의 '타림(塔里木)분지'의 경우도 고대부터 쓰여 온 영문 상으로는 'Tarim Basin'이므로 분명 '타림'이 맞으나 병음 상으로는 '타리무'라 해야 맞다. 새로 중국 땅이 되어서 '신강역'이라고 하는 그 쪽 지명은 어느 것을 따라야 하나. 이처럼 한국의 중국어 고유명사 표기는 갈길이 멀다.

한국에서는 "'쿠이'와 '퀴'", 그리고 "'타림'과 '타리무'"로 고민하지만 조선어에서는 간단히 '리도규'와 '석백족', '탑리목분지'로 간단히 정리가 된다. 이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조선어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 역시 만만치가 않다. 무엇보다 전달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크다. 이를테면 어느 신문기사에서 발췌한 다음 문장을 보자.

"길림동룡화공유한책임회사의 린산철리륨전지정극대상건설 제1기 공사가 지난 18일 화룡시의 공업집중구에서 있었다"
(2010.4.28.연변일보 기사 중)

그냥 지나쳐 볼 수 있는 문장이지만 위의 '길림동룡'이라는 어휘는 이 뉴스의 원천이 되는 기업체의 고유명칭이어서 그 의미를 알 수가 없다. 한자어로 쓰여진 이 회사 상호의 의미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경우에 따라 매우 크다.

땅이나 사람의 이름, 기업체의 이름은 그 존재의 정체성(Identity)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결코 작은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중국어에서 아이슬란드(Iceland)를 '氷島'라고 표기하는 것도 그 한 예다.

더욱 요즘은 조선족 매체에서 '하얼빈'과 '합이빈', 그리고 '할빈'을 번갈아 표기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그리고 영어권 용어를 원어 그대로 쓰는 경우와 한자와 병기하는 예도 볼 수 있다.

현대 한국어의 입장에서 볼 때 중국어 고유명사 표기는 빠른 시일 안에 공식 표기법을 제정하는 것이 시급하다. 현재로서는 대도시나 유명 인사들에 한하여 적용 예를 든 수준이며 아직은 초보단계이다.

이를테면 중등교과서인 사회과부도에서는 아직도 다싱안링(大興安嶺)산맥을 '대싱안링'으로 표기하고 네이멍구(內蒙古)를 '내몽골'이라 표기한다. 지린성은 '지린성'이라 표기하면서 랴오닝성은 '요녕성'이라 표기한다.

위의 지명 표기들은 사회과부도 한 페이지에서만 찾아 본 것들이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책이라고 보기에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너무 체계가 없다. 이러한 문제점은 하루빨리 고쳐져야 한다.

나는 이 글에서 어떤 표기법이 표준이며, 어떤 표기법이 문제가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법칙은 법칙으로서 지켜지고 그것이 보편적인 기준에 의해 통일되면 그것으로서 필요충분하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다만 불합리성이든 불편성이든 규칙의 편협성이든, 어떤 이유로든 세상에서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할 때 그 법칙은 수정되거나 사라지게 마련이다.

한국어의 중국명칭 표기에서 표준화가 시급한 만큼 조선어에서는 고유명칭의 한자어 병기표기가 시급하다고 본다. 아래 뉴스를 참조해 보자.

"중국의 어머니 강 황하(黃河)는 하늘을 나는 황용처럼 황토(黃土)고원을 지나 동으로 바다를 향해 가는데 도중에 산서(山西, Shanxi)와 섬서(陝西, Shanxi)사이의 협곡에 이르러 너비 400m의 수면이 갑자기 40m로 줄어들면서 거대한 말발굽 모양의 폭포를 형성한다."
(2009.7.7.중국국제방송 기사 중)

위 문장은 쓰기에 번거로울 정도로 극단적인 병기법에 의존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이렇게 '한한병기(韓漢竝記)'로 표기하면 한글의 고유성과 존엄성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 누가 만든 문자이건 간에 우리 민족이 5천 년 이상 써 온 문자가 한자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중국식 고유명사에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순 한글 표기가 이념적으로는 좋아 보이나 결코 실용성을 담보할 수 없다. 현대 한국어는 이 실용성을 확보하기 위해 수없는 논쟁을 통해 수정과 변화의 과정을 겪어 왔다. '한한병기'나 '두음법칙' 등이 만만치 않은 반론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채택된 것이 그 하나의 예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한글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자이자 동아시아인의 문화유산인 한자가 조화롭게 상호보완적으로 발전해 나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중국어 한글표기법, "따지지 말자"
[2010-05-31, 01:02:47] 온바오박정태 칼럼니스트
이곳 선양 땅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다. 당시만 해도 중국과의 수교 기간이 짧은 탓이었던지 중국어 표기법에 익숙하지 않은 기자들이 꽤나 있어서 일간지에서조차 ‘선양’과 ‘센양’이 혼용되고 있었다. 그래서 둘 중 어느 것이 더 정확한 중국어 발음에 가까우냐고 대외한어(對外漢語)를 담당하는 교수 양반에게 물어 보았다. 중국어 병음(拼音)으로 표기할 때의 ‘sh' 발음이 한국어에는 없는 탓에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둘 다 아니라는 답변이었다. 내 귀엔 아직도 오히려 ’션양‘이 더욱 정확한 발음에 가깝게 들린다. 그리고 이곳 선양 현지인들 특히 조선족 동포들은 ’세양‘ 혹은 강조하고자 된 발음을 할 경우 ’쎄이양‘에 가깝게 발음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어의 중국어 표기법에 대한 시비를 심심치 않게 본다. 물론 한국사회 전체적으로 화젯거리가 되는 건 아니다. 중국에서 살다 보니, 또 내가 언어교육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보니 그런 종류의 화제나 기고문에 상대적으로 관심을 많이 가질 뿐이다.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거나 이런 문제와는 담쌓고 지내는 사람에게야 이게 무슨 서푼어치 가치라도 있겠는가? 하지만 적어도 선양에 장기 거주하고 있는 한국사람에게는 비록 간접적일망정 이 문제는 꽤 피부에 와 닿는 사안일 수밖에 없다.

이 표기법에 대해 마뜩치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성조(聲調) 등 중국어의 특성상 정확한 우리말 표기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데도 왜 우리에게 익숙한 기존의 한국어 독음(讀音)을 젖혀 두고 교육 당국과 언론 매체에서 굳이 어거지처럼 꿰어 맞춘 듯한 표기법을 고집하느냐고 주장하고 있다. 그 중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인명과 지명이다. 즉 ‘大連’의 경우 정확히 '따롄'이 아닐 바에는 구태여 '다롄'이라 표기하지 말고 혼동을 피해 차라리 '대련'이라고 쓰자는 것이다.

우선 우리말 외래어 표기법의 중국어 관련 내용을 살펴 보자. ‘중국 인명은 과거인과 현재인을 구분하여 과거인은 종전의 한자음대로 표기하고, 현대인은 원칙적으로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한다’와 ‘중국의 역사지명으로서 현재 쓰이지 않는 것은 우리의 한자음대로 하고, 현재의 지명과 동일한 것은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한다’, 그리고 ‘중국 및 일본의 지명 가운데서 한국 한자음으로 읽는 관용이 있는 것은 이를 허용한다’로 되어 있다.

여기에 따르면 과거인인 중국 북송시대 시인 ‘蘇東坡’는 ‘쑤둥퍼’가 아니라 ‘소동파’이고, 현재인인 중국 총리 ‘溫家寶’는 ‘온가보’가 아니라 ‘원자바오’이다. (원래는 ‘원쟈바오’가 되어야 하나, ‘ㅈ, ㅉ, ㅊ’ 자음 뒤의 ‘ㅑ, ㅖ, ㅛ, ㅠ’ 음은 ‘ㅏ, ㅔ, ㅗ, ㅜ’로 적는다는 원칙에 의해 ‘원자바오’로 쓴다) 과거인과 현재인의 구분은 신중국 성립을 기준으로 삼기에 ‘毛澤東’부터는 ‘모택동’이 아니라 ‘마오쩌둥’이다. 그리고 역사지명인 ‘少林寺’는 ‘샤오린쓰’가 아니라 ‘소림사’이고, 역사지명이긴 하지만 현재의 지명과 동일한 ‘北京’, ‘西安’, ‘開封’ 등은 ‘북경’, ‘서안’, ‘개봉’이 아니라 ‘베이징’, ‘시안’, ‘카이펑’이다. 관용적으로 허용될 수도 있고 한자를 병기할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원칙은 ‘베이징’, ‘시안’, ‘카이펑’이라는 이야기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난 중국어 표기법이 현지 발음과 맞네 안 맞네 하는 진부한 논란은 이제 그만 두었으면 한다. 왜냐 하면 표기법은 문자 그대로 사회적 약속이므로 그걸 지키면 그만인 것이다. 또 지키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지키지 않아도 되고, 법규가 아닌 이상 그걸 지키고 싶은 사람이 지키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지키기를 강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만약 "~했습니다"의 자모 순서로 얘기하기로 한 사회적 약속을 지키지 않고 "~니습다했"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그 사람은 사회로부터 경원당하고 종국에는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나 개인의 소견은 전문가들이 고생스런 연구 끝에 이왕 만든 것이니 될 수 있는 대로 지키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다.

원래 언어간에는 이쪽에 있는 발음이 저쪽에 없고, 저쪽에 있는 발음이 이쪽에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어떤 언어든 반드시 자모와 발음부터 공부하는 것 아니던가. 영어 단어 ‘beautiful'의 발음이 한국어 표기법으로는 ’뷰티플‘이지만 발음까지 그러하던가? 내 귀엔 아직도 ’뷰러프~‘로 들린다. ’self'의 발음도 '셀프'가 아니라 실은 '세우프'이다. 독일어의 ’우믈라우트' 자모 3개 중 ‘O Umlaut'와 ’U Umlaut'도 우리말에 그런 발음은 없지만 표기할 때는 ‘ㅚ’, ‘ㅟ’로 하기로 정했다. 프랑스어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Versailles'와 ’Marseilles'가 발음상으로는 ‘벡사이’, ‘막세이’에 가깝지만, 표기할 때는 ‘베르사이유’, ‘마르세이유’이다. 일본어 자모 ‘つ’, 러시아어 자모 ‘Щ’, ‘ж’, ‘Ы’ 등도 우리말에는 없는 발음이지만 가장 근접한 한글 자모를 찾아서 표기할 수는 있다. 중국어의 경우는 이들 소리글자와는 체제가 전혀 다른 뜻글자이기에 우리말로 표기하기에 더욱 어려운 점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익은 한자어로 중첩되는 단어가 많아서 쉽사리 시비의 대상이 되는 모양이다.

중국어의 인명과 지명 중 외래어 부분을 살펴 보자. 라틴계 단어를 도입해 중국어 외래어로 만든 경우 소리를 딴 게 있는가 하면 뜻글자 체제상 원래의 뜻을 살려 만든 것도 많다. 즉 ‘뉴위에’로 발음되는 '紐約'은 'New York‘의 음을 딴 것이지만 ’聖○○'는 'Saint ○○‘의 뜻을 살린 것이다. 소리를 따온 것 중 원래의 발음과는 사뭇 다른 것이 많다. ‘洛衫磯(혹은 羅城)’는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溫哥華’는 캐나다의 ‘밴쿠버’인데, ‘뤄산지(혹은 뤄청)’, ‘원거화’라는 이 발음을 듣고 해당 지명을 연상하기란 쉽지 않다. 하물며 이를 한국어 독음 그대로 읽자는 주장에 따라 ‘낙삼기’, ‘온가화’라고 한다면 그건 그야말로 넌센스이다. ‘라무스페이얼더(拉姆斯菲尔德)'를 듣고 그게 ‘럼스펠드(Rumsfeld)’인지 깨닫기까지는 한참 걸렸다. 안 그래도 알아 듣기 어려운데, 그럼 이걸 또 ‘납모사비이덕’이라 해야 한단 말인가?

근대 이래 서양에서 문물과 함께 소리글자 체제의 단어들도 마구 밀려들었다. 호환성이 뛰어난 한글을 가진 우리와는 달리 뜻글자 언어체계를 가진 중국인들은 매우 곤혹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Celcius'와 ’Farenheit'의 경우 이를 ‘攝氏’와 ‘華氏’로 줄여버렸다. 'Ce 씨'가, 그리고 'Fa 씨'가 만든 것이라는 뜻이다. 우린 수고를 덜고 이걸 그대로 차용해서 ‘섭씨’와 ‘화씨’로 쓰고 있다. 비단 인명과 지명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영어의 ‘hot line', 'honey moon', 'make love'는 한 단어씩 뜻을 새겨 ’熱線‘, ’密月‘, ’做愛‘로 만들었다. 이 중 '밀월'은 우리도 쓰고 있다. 내가 심심풀이로 찾은 이런 중국어의 영어 외래어만 해도 100개가 넘는다. 국제화가 진전될수록 한자문화권이 아닌 나라의 단어를 뜻글자인 중국어로 풀어 내기에 중국인들은 이처럼 애를 먹고 있다. 소리글자와의 호환성이 없는 탓이다.

중국어 표기법이 중국어 발음에 근접하지 않다고 해서, 또 이미 만들어 둔 한국어 독음이 쓰기가 더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불평을 하는 건 국제화시대에 재고되어야 할 일이다. 외국어, 그 중 특히 까다로운 중국어 발음을 이나마 표기해 내는 건 한마디로 한글이 우수한 문자이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 언어 자모가 이만큼이나마 중국어 발음을 문자로 재현해 내고 있는가? 중국어의 병음이란 것도 워낙 소리글자의 문자로 풀어 내기가 어려웠기에 청나라 말기에 서양 선교사들이 로마자를 끌어들여 얼추 비교적 정교하게 만든 것이다.

중국어 표기법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한국어와 중국어 사이의 것만을 문제로 삼는다. 범위를 두 언어 사이에만 국한하면 그건 분명 타당성이 있다. 우리 선조들이 잘 가꾸고 다듬어 온 한국어 독음을 그대로 살려 가자는데 원칙적으로 누가 반대할까? 특히 조선족들의 경우 감성적으로 서운할 수도 있다. 이국 땅에서 100년을 어렵사리 ‘연변’과 ‘용정’을 지켜 왔는데, 큰집 격인 한국이 마치 변심해 버린 본댁처럼 난데없이 ‘옌볜’이니 ‘룽징’이니 하니까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이 곧 세계라고 생각했던 중세 조선과 지금은 시대상황이 다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지구촌 곳곳에서 쓰이고 있는 언어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그건 어디까지나 부분적으로만 맞는 이야기일 뿐이다. 조선족 역시 이러한 관점을 대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보다 미래지향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인명과 지명을 그렇게 표기하기로 한 것은 혼란을 막고 잘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중국어에만 꿰어 맞추려 하다 보면 중국어 아닌 외국어 표기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明月山’을 중국인들은 ‘밍위에산’, 한국인들은 ‘명월산’, 일본인들은 ‘아끼게츠야마’ 또는 ‘메게츠짠’이라고 읽는다. 같은 한자 문화권이지만, 이 예에서 보듯 표기와 발음은 다르다. 단지 일정 사회 구성원끼리 그렇게 읽고 그렇게 쓰기로 한 사회적 약속을 따르고 있는 것일 뿐이다. ‘카페’라고 쓰되 ‘까페’라 발음하고, ‘스페인’이라 쓰되 ‘스뻬인’이라 발음하면 되는 것과도 같다. ‘브릿지스톤(bridgestone)'이라 쓰고 모두가 ’브릳지스톤‘으로 읽고 있지 않은가? 실제 발음은 ’브릳지스토운‘이지만 말이다.

혹자는 중국인들이 저들 식으로 발음하는데 우리라 해서 마냥 그들 식을 따르기만 할 게 아니라 한국어 독음대로 쓰자고도 주장한다. 예컨대 내 이름은 ‘박정태’이다. 이런 나를 중국인들은 중국어 발음으로 ‘피아오딩타이’라고 부른다. 듣는 내가 그다지 유쾌할 리는 없다. 다만 의사소통의 편의를 위해 양해하는 것뿐이다. ‘압둘 무스타파 아브라힘’이란 긴 이름을 가진 아랍인이 소통의 편의상 스스로 ‘알리’라고 소개하는 것에 비하면 매우 수월한 편 아닌가? 그러나 어눌한 발음이지만 공을 들여가며 날 ‘박정태 씨’라고 불러 주는 중국인도 있다. 누구에게 더 호감이 가겠는가? 길거리 중국인들이 ‘바담 풍’하든 말든 우린 ‘바람 풍’하면 되는 것이지 국제화시대에 저들과 이만한 일로 아웅다웅할 계제가 아니다.

1988년을 기점으로 우리말 맞춤법이 개정되면서 대세를 따랐다. ‘상치’가 ‘상추’로 바뀌는 등 실제로 범용되고 있는 것을 많이 인정했다. 청나라 시대의 중국인과 신중국 이후의 중국인들이 쓰는 말이 같지 않듯 조선시대의 사람과 대한민국의 사람이 쓰는 말이 같지 않다. 이처럼 언어 자체는 계속 변화하는 것이지 정해진 법률이 아니다. 그러나 표기법이란 건 적어도 바뀌기 전까지는 그 시대 그 상황에 맞추어 지키기로 한 사회적 약속이니까 지키는 게 바람직하다. 물론 나의 이런 주장에 동의하든 안 하든 사람들은 읽고 쓰는데 ‘심양’과 ‘선양’을 제각기 편한대로 사용할 것이다. 그러면 된다. 단 공식적인 문건이나 외국인들도 함께 한 공개적인 장소에서만큼은 지켜주는 것이 옳을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선양'이라 표기하되 한국인끼리 얘기할 때는 '심양', 중국인과 대화할 때는 'shenyang'으로 발음해 주는 것이다. 마치 중국인들이 자기네끼리는 ‘원거화’라 얘기할지라도 외국인인 내게는 ‘밴쿠버’로 발음해 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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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간 사용된 수많은 옥새는 그 가짜로 찍힌 것이다.

나의 교장 임명장에 찍힌 것을 포함하여.....


공무원들 정말 정신 차리고 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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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 수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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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약력 및 저술의도

독서 교육 전문가인 릭 오스트로브는 IBM, AT&T, GE 등의 대기업 간부와 직원을 비롯해 과학자, 의사, 변호사, 교사, 비서, 근로자, 학생과 학부모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가르쳤다. 특히 텍사스대학교 공과대 교수 전원(박사 63)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다룬 다큐멘터리는 유명하다. 이 다큐멘터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사설 속독프로그램 회사 이블린 우드 리딩 다이내믹스(Evelyn Wood Reading Dynamics)에서 교재로 활용되었다. 그 후 30년 이상의 연구와 교육 경험을 바탕으로, 파워 리딩 2003년 제3판이 출간되었다. 파워 리딩은 독자가 학습이나 실무에 필요한 글을 읽으면서 속독과 독해력을 발전시키는 새로운 프로그램이다. 나아가 공부와 메모, 시험 준비, 업무 처리, 전문 서적과 인터넷 정보 탐색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까지 담겨 있다.

21C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항상 정보와 읽을 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수많은 자료와 E-mail, 그리고 전공분야 서적과 최신기술은 하루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한정된 시간에 어떻게 이 많은 정보를 소화할까, 누구나 고민하는 부분이다.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해 오랜 가르침과 연구를 기반으로 파워 리딩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교육과정을 통해 책을 보다 빨리 읽고 이해하는 방법을 알리고자 한다.

도서의 주제 및 요점

'인생의 질 향상은 작은 노력에서 출발한다.'

이 시대에는 무엇보다 정보를 빨리 읽고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정보의 질은 의사 결정의 질을, 의사 결정의 질은, 인생의 질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30일 동안 각 단계별 훈련을 매일 15분만 지속적으로 실시하면 속도와 독해력이 크게 향상된다. 그것은 곧 여러분 인생의 질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도서 요약

1. 독서력 향상의 필요성

지난 20년 사이에 쏟아져 나온 정보량은 그 이전까지 나온 정보량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다. 말 그대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아무리 성공한 사람이라도 최신 정보에 뒤쳐지면 정상을 지킬 수 없다. 그 어느 때보다 정보가 큰 힘을 발휘하는 시대이다.

정보라고 하면 다수의 사람들이 TV와 라디오 방송의 최신 정보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다.잠깐 보고 듣는 것이 아니라 심층적으로 읽고 이해해야 완전한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 그렇게 획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며 그 결과는 개인의 성공과 생존에 큰 영향을 준다.

미국의 성공한 기업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운 연구를 통해 나타났다. 그들은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대학을 졸업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으며, IQ도 각각 달랐다. 그런데 이들에게 유일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광범위한 독서를 했다는 것이다.

2. 파워 리딩이란?

오랜 경험과 연구와 교육의 결과로 탄생한 파워 리딩은 새로운 속독 프로그램이다.

목 적 : 글로 된 정보를 다루는 총체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

목 표 : 독해력 향상, 읽기 속도 향상, 전문자료와 공부 자료의 읽는 속도, 독해력 기억력 향상,

방대한 양의 정보를 빠르게 읽거나 그 가운데 중요한 정보 선별력 향상

방 법 : 4주 동안 매일 15분씩 단계에 맞춰 연습을 통해 숙달한다.

※ 속도를 낮추고 자세히 읽어 독해력을 향상 시키고 독해력이 향상된 다음 속도를 빨리한다.

- 사람들의 독해력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 가운데 필수적인 정보를 이해하지 못하는 기능적 문맹(functional illiterates) 1/3에 달한다고 한다. 이들은 글자를 읽을 수 있지만, 현대 사회에서 성공하는데 필용한 정보를 읽고 이해하고 활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회의 중심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간다.

효율적인 독서가는 책을 읽으면서 적극적으로 질문을 한다.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그렇게 말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 말이 이치에 맞는가? 그리고 불확실한 단어가 나오면 반드시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본다. 그러므로 책의 내용을 매끄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다시 읽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이것이 바로 파워 리딩의 기초이다.

3. 준비운동 및 사전 지식

자신의 읽기 속도 및 독해력 수준을 파악하라.

자신의 읽기 속도 측정은 1분 동안 읽은 글자 수로 계산하는데 이를 WPM 이라고 한다.

독해력 측정은 10분 동안 책을 읽고 최초 요약서를 자세히 작성한다. 그리고 다시 10분 동안 책의 똑같은 부분을 읽고 최초 요약서에 추가적인 사항을 기록하여 최초와의 차이를 확인한다.(잘못된 사실 또는 누락한 사실등을 체크한다.)

사실 독해력을 완벽하게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뇌 능력의 범위를 측정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지만 자신의 현재 수준의 속도와 독해력의 수준을 파악하고 연습단계별 수준 향상의 비교는 가능하다.

파워 리딩의 기본 3가지

첫째, 전체보기 또는 미리보기

책의 전체 구조를 이해하는 방법으로 사용된다. , 책을 읽기 전에 미리 살펴보는 단계이다. 책의 전체적인 흐름과 주제를 알아두면 각 부분을 정확히 이해하고 조합하는데 도움이 된다. 완성된 그림을 보고 나면 퍼즐 조각을 맞추기가 한결 쉬운 것과 같다.

전체보기 간 3가지의 질문을 생각하며 읽으면 도움이 된다.

① 중심 주제가 무엇인가? ② 이 책에서 무엇을 원하는가? ③ 이 책을 무슨 필요로 읽는가?

미리보기 방법으로는 2가지가 있다.

① 대부분 주제는 첫 단락이나 마지막 문장에 들어 있다. 또 머리글, 결론, 색인, 그림과 도표, 속표지, 목차, 겉표지 등을 읽어 주제를 파악한다.

② 한 부분에 집중하지 말고 전체를 빠르게 살펴보는 것이 핵심이다.

전체보기의 3가지 질문을 생각하며 미리보기를 하면 효과적이다.

둘째, 접근방법

접근방법이란 책을 읽는 방법을 말한다. 이는 책의 종류와 독서의 목적에 따라 달라야 한다. 가볍게 읽는 방법부터 철저히 집중 탐구하면서 읽는 방법까지 다양하다. 다시 말해 느긋하게 읽어도 되는 책이 있는가 하면 한군데도 빠뜨리지 않고 자세히 읽어야 하는 책도 있다. 책을 읽는 방법은 미리보기에서 얻은 정보에 따라 달라진다.

셋째, 속도조절

읽기 속도조절을 위해 속도 조절기(검지 손가락 또는 볼펜)를 사용해서 밑줄을 그으면서 읽어 나간다. 평소보다 빨리 읽으려고 애쓰지 말고 손가락을 자연스럽게 움직이면서 읽는다. 물론 시선은 손가락 끝이 아니라 글자를 향해야 한다.

※ 속도 조절기를 사용하는 이유

우리는 기본적으로 무의식적인 방법으로 글자를 읽고 인식한다. 여기에는 의식적인 통제가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뇌에 의식적인 차원에서 단순한 일을 하도록 명령해 놓으면 동시에 복잡한 일을 무의식적으로 수행한다. 따라서 뇌가 손가락을 움직이면서 글자를 읽을 때 거기에 필요한 복잡한 인식 분석 기능을 수행 하도록 신체에 지시한다. 이렇게 하면 무의식적으로 글자를 인식하는 습관이 바뀐다. 우리에게는 이미 넓은 시야를 보는 능력이 있다. 우리는 어떤 물체나 지평선을 볼 때 이 능력을 사용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능력이 있는데도 좁은 초점으로만 글자를 인식한다. 읽기 습관 때문이다. 조절기 사용은 이러한 인식 방법을 바꾸고 속도를 향상 시켜서 새로운 습관을 길러준다.

읽기 속도 및 독해력이 떨어지는 이유

① 대부분 어릴 때 이후 높은 수준의 독서 방법을 배우지 못 했다.

② 대개 사람들은 1쪽을 읽을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무려 40번이나 ‘퇴행(regress)’을 한다.

- 의도적으로 다시 읽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읽은 것을 다시 확인한다.

③ 하위 발성 읽기(sub-vocalizing)를 한다.

- 실제로 소리를 내지 않지만 머릿속으로 단어를 하나하나 발음하는 습관이다. 하위 발성 읽기를 하면 말하기 정도의 속도로 떨어진다.

책을 읽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이런 사람들은 단어와 문장 하나를 지나치게 열중해서 독서를 하다가 지루하게 느낀다.

한 번에 인식할 수 있는 단어 수가 적어 다음 단어 인식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 한 번에 몇 글자밖에 보지 못 하므로 한 번에 전체 단어와 어구를 보는 사람들보다 속도가 떨어진다.

4. 단계별 연습

첫째주 연습

준비 운동 및 사전지식이 준비 되었으면 단계별 학습에 들어간다.

매일 15분씩 독서에 투자한다.

② 조절기를 사용해서 책을 10분 동안 읽는다.

10분 동안 읽은 부분을 5분 동안 다시 읽는다. 처음에 빠뜨리거나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지 잘 살피면서 읽는다. 5분 안에 전부 읽지 못해도 괜찮다.

④ 책을 읽을 때 반드시 조절기를 사용한다.

⑤ 연습 내용을 일지에 기록한다.

둘째주 연습

이번 주는 제 1강의 연장선으로 조절기를 한줄 전체가 아니라 2/3 1/2만 밑줄을 긋는다.

둘째주 동안에는 독해력을 강조한다. 독해력은 독서할 때 가장 필요한 기본이기 때문이다.

매일 15분씩 독서에 투자한다.

10분 동안 읽은 수 있는 분량을 빠르게 살펴본다. 이 시간은 30초에서 1분 사이로 제한한다.

③ 완전히 이해하면서 10분 동안 책을 읽는다.

10분 동안 읽은 분량을 5분 동안 한 번 더 읽는다. 반드시 5분내에 전부 읽어야 한다. 이것은 독해력이 아니라 속도 향상을 위한 연습이다.

⑤ 연습 내용을 일지에 기록한다.

⑥ 읽을 때 항상 조절기를 사용한다.

셋째주 연습

① 매일 15분 씩 읽기에 투자한다.

10분 동안 읽을 수 있는 분량을 훑어본다. 이 시간은 30초를 넘지 않아야 한다.t

10분 동안 책을 읽는다.

④ 그 부분을 5분 동안 다시 읽는다. 반드시 정해진 시간 안에 다 읽어야 한다. 이것이 속도 향상을 위한 연습이라는 사실을 명심한다.

⑤ 연습 내용을 일지에 기록한다.

넷째주 연습

이번 주에는 초고속 속독법 가운데 하나를 골라서 연습한다.(요약은 기본 연습만 다룬다.)

※ 초고속 속독법이란?

이 기법은 비교를 위해 상당량의 정보를 살펴보거나, 특정한 답을 찾거나, 예전에 공부한 자료를 다시보기 할 때 아주 유용하다. 그리고 미리보기와 다시보기를 할 때도 사용하면 좋다. 다시말해 정상적인 독서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조하는 특별 도구로서 사용되어진다.

① 책을 5분 동안 읽고 끝부분을 표시한다.(읽는 동안 새로운 조절법을 사용한다.-한줄씩 밑줄을 긋는 것이 아니라 S, Z, 사선, 나선, 중앙을 직선으로 내려 그으면서 독서를 한다.)

② 읽은 내용을 요약한다.-1분간

1에서 읽은 부분을 3분 동안 다시 읽는다.

④ 요약서에 내용을 추가한다.-1분간

⑤ 똑같은 부분을 1분 동안 다시 읽는다.

⑥ 요약서에 내용을 추가한다.-30초간

⑦ 같은 책의 다른 부분으로 1~6번 반복한다.

⑧ 같은 책의 새로운 부분을 5분 동안 읽고 WPM을 계산한다.

5. 끝맺는 말

어떻게 해야 읽기 능력을 향상시키고 그 효과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여러분의 결심, 끈기 그리고 배운 것을 실생활에서 지속적으로 활용할 때 이루어 질 것이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을 항상 기억하기 바란다. 만일 10%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10%의 결과를 얻을 것이다. 하루라도 빠뜨리지 않고 연습하면 2배 이상 향상되리라고 장담한다. 이는 앞으로 평생 동안 막대한 양의 정보를 읽을 수 있다는 뜻이다.

지식과 상식은 성공의 기초이다. 처음에는 인류는 어떤 인종을 막론하고 모두가 원시인이었다. 그러다가 서서히 힘을 합치기 시작했고 지식을 쌓게 되었다. 지식을 바탕으로 인류는 문명을 창조했을 뿐 아니라 난관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역시 지식을 바탕으로 이 난관을 해결 해 왔다. 다시말해 지식과 상식은 문제를 푸는 열쇠이다. 모든 것이 가능하고, 모든 것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독서의 힘을 가진 여러분은 이제 세상에 대하여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여러분이 독서의 힘을, 자신은 물론 가족과 친구 동료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사용하기 바란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한다면 이 세상은 놀랄 만큼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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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표어에 사족 못쓰는 지자체의 '황당' 홍보

유코피아 | 기사전송 2010/09/12 04:14

[유코피아닷컴=ukopia.com]어느 사업을 운영하든지 간단 명료한 홍보 표어가 중요합니다. 장황한 사시 (社是)나 회사의 사명 (使命)문서도 중요하지만 일반 고객이 그런 문서나 내용을 기억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찰싹 붙어 기억에 오래 남는 홍보표어는 고객의 마음에 강하게 자리를 잡고 그런 업소에 발길을 돌리게 됩니다.

한국에서는 지자체를 홍보하는 표어를 공모하여 채택했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 표어들의 우열을 따지기 전에 우선 그들의 대부분이 냉소를 자아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하이 서울”, “다이내믹 부산”, “칼러풀 대구”, “온리 제주,” 프라이드 경북”, “울산 포유”, “굿모닝 진해”, “라이징 사천”, “액티브 양산”, “블루시티 거제”, “뷰티풀 경주”, “센트럴 김천’, “저스트 상주”, “러닝 문경”…. 어떻습니까?

한국어에 그렇게도 어휘가 부족한가요? 영어를 쓰지 않으면 멋진 표어가 될 수 없을까요? 16개 광역시와 도 중에서 전라북도와 전라 남도와 아예 표어를 만들지 않은 강원도를 제외하고 즉 80%가 넘는 13곳이 영어표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전국 75개 시 중에서 45 곳이 영어로 된 표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에 살고 있는 저 자신도 이와 같이 영어표어를 당연지사로 사용하고 있는 모국의 지자체들에게 냉소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멋진 홍보표어는 영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매우 효과적으로 창안할 수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남가주에는 멋진 표어를 10여년 간 사용하고 있으면서 큰 효과를 보고 있는 업소가 여러곳 있습니다.

“안깎아도 제일 싸다는 집…”, “돈도 좋고 명예도 좋지만 건강이 제일입니다…”, “깨끗한 손, 따뜻한 마음, 최고의 맛.” 등 이런 표어만 들으면 남가주는 물론이거니와 북가주와 시애틀에 있는 동포들까지 어떤 업소인지를 당장 압니다.

이렇게 효과적인 표어에는 영어가 한 마디도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미국 전역에 1,000 개 이상의 모텔을 소융한 모텔 식스(Motel 6)는 지난 30여년간 꾸준히 사용하는 표어가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위하여 외등을 켜 두겠습니다. 즉 We will leave the light on for you.”

역시 수십년간 사용되어 온 한 보험회사의 표어는 “당신은 좋은 손 안에 있습니다. You are in good hands with us.” “ 당신의 순간을 나누십시오. 당신의 생애를 나누십시오. Share your moment. Share your life.”도 오래 오래 사용되어 온 코닥 회사의 표어입니다. 기타에도 IBM의 “생각해보세요. Think.”, 버거킹의 “쇠고기가 어디에 있어? Where is the beef?” 는 미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표어입니다.

한국의 정치 역사중에도 효과적인 표어를 창안해서 정국을 흔든 예가 있었습니다. 신익희씨와 장면씨가 정부통령 후보자로 출마하여 이승만 이기붕 티켓에 도전했을 때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표어를 내걸어 민심을 흔들었습니다. 그 표어의 효과는 대단했엇습니다.

당시 여당인 자유당은 “갈아봤자 별수 없다” 또는 “갈아봤자 더 못 산다”는 표어로 대치했지만 “못살겠다 갈아보자”의 힘을 당하지 못했습니다.

신익희씨가 선거를 앞두고 타계하지 않았더라면 신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것입니다. 그 후에 조병옥 박사가 이승만막사와 대립했을 때에는 “죽나 사나 결판내자”로 여당을 공격하였고 자유당은 “트집마라 건설이다.”로 맞섰었습니다.

이때도 조 박사의 선거전 서거로 정권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국민의 개인 연간 소득이 겨우 $70이었을 당시 표어의 힘은 대단했었습니다.

홍보표어를 제대로 만들려면 다음의 열 가지 법칙을 따르라고 합니다.

1. 귀엽게 만들려고 하지 말라.
2. 고객에게 유익한 점에 초점을 맞추라.
3. 표어를 회사명에 삽입하지 말라.
4. 사전을 보고 표어를 만들지 말라.
5. 7 단어 이상을 사용하지 말라. (인간은 그 이상을 기억하기 어렵다.)
6. 짤막한 단어만을 사용하라.
7. 고리타분한 단어를 사용하지 말라.
8. 감정을 유발하는 단어 (고통, 즐거움, 안전, 등등) 를 사용하라
9. 좋은 마케팅이 수반하지 않는 표어는 효과가 없음을 알라.
10. 표어를 사용하기 전에 단골 고객에게 시험해보라.

이상입니다. 이 칼럼을 들으시는 모든 업체는 조속히 고객의 귀와 마음에 착 달라 붙는 홍보표어를 제작하여 사용하려는 노력을 강화하시기를 바랍니다.

홍병식 유코피아 칼럼니슽,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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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9일, 어느 해나 다름없는 8월 29일이 되었다. 8월 29일을 제대로 기억하는 분은 얼마나 될까? 바로 오늘이 어떤 날인가를 기억하는 분이 얼마나 될지 헤아려보지 않았고 통계도 내보지 않았으며, 표본 추출도 하지 않았으니 정확한 해답을 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달력에도 표기가 없고 일반 시중의 수첩에도 대체로 기재가 없는 것은 현대사회가 바쁘게 돌아가다 보니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치욕의 날을 되새겨 보고 싶지 않은 탓인지 모른다.

기사원문: 1983. 8. 29 [경향신문]

경술국치, 치욕의 사건


한일 합방 때 친일파 매수 전문 공개
한일합방 당시 일본의 친일파 매수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조선 통감부와 일본정부 간에 오고 간 전문 290통이 공개됐다.일본국립공문서관에서 입수한 마사타케 통감과다로 총리대신이 한일합방과 관련 주고받은 전문 가운데는 순종에게 한일합방조약 서명을 강요한 윤덕영의 매수과정을 나타내는 내용이 들어 있다. 데라우치 통감이 내각 총리 대신에게 보낸 8월 20, 21일자 전문에는 순종의 계비 윤씨의 백부이자 시종원경의 직위에 있는 윤덕영에게 50만원을 지급한다는 내용과협력자들에 대해 3천만원의 범위 내에서 임시 은사금을..

기사원문: 1995. 8. 11 [경향신문]


국치일에 공개된 치욕의 탁자
한일 합방조약이 이루어진 구 통감부 회의실에 놓였던 탁자, 의자 등 비품이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입수, 국치일인 29일 상오 공개됐다. 1910년 8월 22일 대한제국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과 일제통감 데라우찌 사이에 이루어진 한일 합방조약은 이날 공개된 탁자 위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다시 한번 새롭게 했다. 이날 공개된 비품은 조약을 서명한 가로88㎝ 세로1백28㎝ 크기의 탁자 1개와 대형 소파 2개, 소형 의자 5개, 찬장, 테이블 위 천장에 달려있던 전등 유리 갓 등이다.
기사원문: 1977. 8. 29 [경향신문]

'한일병합 무효' 증명할 사료들


을사조약은 한·일 국왕 비준 없었다
제국주의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 한국을 반식민지화 한 을사5조약이 고종의 비준도 없는 국제법상 불법 조약이었음이 확인됐다. 한국독립운동사를 정리중인 윤병석 교수(인하대)는 지난 1월말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이 공개한 을사5조약 일건문서를 조사한 결과 대한제국을 일본보호국으로 전락시킨 을사5조약은 친일주구였던 박제순(외부대신)과 일본특명전권대사 임권조의 도장만이 찍힌 한문과 일문으로 된 2통의 문서만이 있을 뿐 고종과 목인(일본천황)이이 조약을 인정한 비준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기사원문: 1984. 2. 13 [경향신문]


"을사조약 무효" 고종 친서 발견
1905년 대한제국과 일본 간의 을사보호조약은 국제법적으로 무효임을 선언한 고종 황제의 친서가 작성된지 87년만에 처음으로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학의 귀중도서 및 수고 도서관에서 발견됐다. 가로 30㎝ 세로40㎝ 정도 크기의 이 고종 친서는 을사보호조약이 강제 체결된 지 7개월 뒤인 1906년 6월 22일에 일본과 청국을 제외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탈리아 벨기에 등9개국 국가 원수들에게 발송하기 위해 작성된 것으로 최근 서울대 김기석 교수 에 의해 발굴됐다.
기사원문: 1993. 10. 24 [동아일보]


순종 황제 칙유 조작 가능성
한일합방의 불가피성을 간곡한 문체로 표현한 순종황제의 칙유와 합방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있는 데라우치 총독의 유고는 양태진씨가 최근 발견.. (중략) 특히 순종황제의 칙유는 전통 한지가 아닌 일본식 양지에 목판본으로 찍어 옥새를 날인한 것으로 일인들의 조작 가능성이 높다는게 양씨의 지적이다. 양씨에 따르면 을사오적을 비롯한 합방지지세력과 일본인들이 순종황제를 위협, 자신들이 작성한 포고문에 옥새를 찍게했거나 아니면 옥새를위조해 칙유자체를 조작했을것으로 판단하고있다.

기사원문: 1990. 8. 15 [경향신문]

반복되는 사과와 망언 '청산되지 않은 양국 관계'

[1995 무라야마 회담] 日총리「침략」인정
일본의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는 15일 종전 50주년에 즈음한 특별담화를 발표,일본의 전쟁이「침략」이었음을 공식 인정하고「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명했다. 일본의 총리가 각의결정 형식을 거쳐「침략」이라고 명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무라야마 총리는 "한 시기 국가 정책을 그르쳐 전쟁에의 길을 걷고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려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의해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 분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고 말했다.

기사원문: 1995. 8. 16 [경향신문]


[1995 에토장관 망언] 일 각료 또 과거사 망언
무라야마 도미이치 일본총리의 한일합방 관련 발언 파문이 미해결상태로 남아있는 가운데 현직 각료인 에토 다카미 총무처장관이 "식민 시대에 일본이 한국에 좋은 일도 했다" 는 등 과거사 관련 망언을 한 사실이 7일밝혀졌다. 자민당 출신인 에토장관은 무라야마총리의 발언 파문이 한창 진행되던 지난 10월 11일 기자간담회에서 "한일합방은 강제적인 것으로 무라야마총리의 발언은 잘못된 것"이라고 전제한뒤 "한일합방을 무효라고 말하기 시작한다면 국제 협정은 성립되지 않는다. 당시 나라가 약해서 당했던 때인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사원문: 1995.11. 8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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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日 간나오토 총리 "식민지배, 한국인 뜻 반해…통절한 반성 - 사죄한다"

간 나오토 총리는 각료회의 의결을 거친 이날 담화에서 "100년 전 8월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되어 이후 36년에 걸친 식민지 지배가 시작됐다"며 "3·1운동 등의 격렬한 저항에서도 나타났듯이 정치·군사적 배경하에 당시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하여 이루어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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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되지 않은 '친일파' 문제


해방~6공 변신의 명수 "생존 친일파 2500명"
'베일 속의 행적' 추적 '옐로 카드' 작성 중. 조선총독부 관보 등 자료기준. 반민족연, '인명사전' 발간 추진 문인·학자·의원에서 역대 대통령까지…

백범 김구선생 암살범 안두희씨(75)가 자신의 배후를 자백하는데만 무려 43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오랜 침묵을 깬 그의 증언조차 위증 투성이라는 사실이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다. 암살범 안씨의 배후에 거대한 친일세력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 명백한 실체는 아직도 베일속에 가려져 있는 것이 '해방 후 47년'이 지난 오늘의 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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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섭과故박용하


[미디어스]박용하 죽음과 친구 소지섭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듭니다. 저런 친구가 한명이라도 있다면 그 어떤 고난과 역경도 다 헤쳐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박용하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나는 살아오면서 저런 소지섭 같이 진심으로 맘을 나누는 친구를 만났는가... 나는 친구들에게 소지섭 같은 친구인가...

박용하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소지섭

친구 박용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소지섭은 가장
먼저 빈소로 달려와 오열을 했습니다. 정말 이보다 서러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찡하게 만들었는데요. 게다가 떠난 친구를 위해 그렇게 진심으로 슬퍼하고 울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모두가 갑작스런 죽음으로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 직접 나서서 상주가 되어 모든 장례식 절차를 책임지고 4일 삼우제까지 엄수하였습니다.

용하야. 내가 다 할께.

어머니, 용하가 간 게 아니에요. 용하가 저를 두고 간 거에요.

어머니, 이제부터는 제가 아들이에요.

친구를 잃은 자신의 슬픔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소지섭은 3일 내내 빈소에서 손님을 맞았는데요. 고인의 어머니를 위로할 뿐만 아니라 고인의 매니저, 지인들까지 모두 직접 챙기면서 위로를 해주고, 바쁜 와중에 친구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지섭은 가족
몰래 수천만원이 넘는 장례비를 직접 계산하기도 했죠.

그렇게 소지섭은 조금도 쉬지 않고 모든 마음을 다 쏟아부으며, 친구 박용하가 마지막 길을 마음 놓고 떠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마 고인이 된 박용하도 하늘에서 이런 소지섭을 보며 많은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故 박용하가 말하는 친구 소지섭은

박용하와 소지섭은 지금의 인기를 얻기 전부터 둘도 없는 친구 사이라고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 둘은 촬영이 없을 때면 매일같이 만나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도 하고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며 서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여느 다른 친구들처럼 비슷한 만남을 가지곤 했지만, 그들이 나눈 마음은 그 어떤 친구들보다도 깊고 진실 되었던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998년 가을 경주에서 열린 앙드레 김 패션쇼라고 하는데요. 둘 다 모델로 패션쇼에 참가하면서 동갑인 것을 알게 되고, 박용하는 소지섭과 친해지려고 적극적으로 접근을 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항상 밝은 모습의 박용하에게는 다소 무거운 분위기의 소지섭이 본능적으로 끌렸던 것 같은데요. 며칠 뒤 박용하와 소지섭은 다시 MBC 로비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고, 연락처를 교환하며 이후부터 자주 연락하고 친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소지섭은 일단 마음을 열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한번 마음을 열면 진짜 좋은 것만 주려고 하는 친구에요. 지섭이에게 거짓이란 없거든요. 자상하고 친절하지는 않지만, 마음만은 한없이 여리고 따뜻한 친구죠.

소지섭은 어깨에 많은 힘이 들어가 있는 친구에요. 자기 외에는 자기를 지켜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지섭이에게는 어깨힘을 자연스럽게 풀고 기댈 수 있도록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여자가 필요한 것 같아요.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고, 정신적으로도 안정을 주는 그런 스타일의 여자 친구가 생기면 지금보다는 휠씬 밝은 미소를 갖게 될 거에요.

그렇게 박용하는 소지섭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소지섭이 진심으로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비록 안타까운 선택으로 소지섭의 행복을 지켜보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자신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주는 소지섭을 보면서 역시 자신이 친구 소지섭을 보는 눈이 틀리지 않았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을 것 같습니다.

당신에게는 소지섭 같은 친구가 있습니까?

그 두 사람의 우정을 보면서 친구라는 존재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데요. 학창시절까지만 해도 매일같이 붙어 다니고 세상에 둘도 없을 정도로 친하게 지냈던 친구에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니 참 미안하기만 합니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하면서 연락도 제대로 못하다가, 겨우 명절 때마다 고향으로 내려가 만날 때면 항상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들을 보면서, 참 앞으로는 자주 안부도 묻고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요즘같이 삭막한 세상 속에서 놀 때만 그리고 즐거울 때만 친구가 아니라,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고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진짜 친구를 소중히 여겨야겠습니다.

당신에게는 소지섭 같은 친구가 있습니까? 그리고 당신은 소지섭 같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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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과이 월드컵 대표팀의 다섯 번째 키커 오스카르 카르도소의 발 끝에서 자블라니가 날아오르던 순간 그들 파라과이 사람들은 엔니오 모리코네가 연주한 '천상의 오보'에 소리를 들었을까.

자블라니가 일본 대표팀 골키퍼 가와시마 에이지의 손 끝을 비켜 골 망을 흔드는 순간 옛
과라니족의 후예들은 영화 '미션'을 적셨던 선교사 가브리엘의 눈물을 보았을까.




파라과이가 월드컵 8강 고지에 섰다. 29일 일본과의 16강전에서 연장 무승부와 뒤이은 승부차기 혈전 끝에 5-3 승리를 거뒀다. 그들에게 8강은 그저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1930년 이후 80년 만에 찾아온 영광이 아니다. 140여년의 멀고 먼 역사를 돌고 돌아 자신의 영토를 갈가리 찢어 간 침략자들 브라질·아르헨티나·우루과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승리의 전장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8강에 진출한 남미 4개국 파라과이·아르헨티나·브라질·우루과이의 비극은 식민지 시대를 막 벗어난 1865년 시작됐다.

아르헨티나·브라질과 국경 분쟁을 벌여온 파라과이는 우루과이에 대한 브라질의 내정 간섭을 경계하기 시작했고, 날로 힘이 커져 가는 그들이 두려워 전쟁을 감행했다.

파국이었다. 파라과이와 이웃한 아르헨티나의 바르톨로메 미트레 대통령은 즉각 브라질, 우루과이와 동맹을 맺고는 1865년 5월1일 파라과이의 옆구리를 쳤다.

'3국 동맹 전쟁'으로 불리는 이
파라과이 전쟁의 결과는 처참했다. 군사강국이었던 파라과이도 동·서·남 세 방향에서 밀고 들어오는 동맹군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전쟁은 파라과이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가 숨지면서 5년 만에 막을 내렸다. 그리고 파라과이는 모든 것을 잃었다.

52만명에 이르던 인구는 22만 1000명으로 반 토막 났다. 남자의 90%가 전장에서 스러졌다. 살아남은 성인 남성은 단 2만 8000명. 남자의 씨가 말랐다. 남녀 인구비는 끔찍했다. 남자 1명에 여자 4명꼴. 심지어 여자가 20명이면, 남자는 1명뿐인 곳도 나왔다.

여성과 아이들만 남겨진 파라과이의 영토는 갈가리 찢겼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14만㎢에 이르는 영토를 빼앗겼고, 전쟁이 끝나고도 6년간 두 나라의 통치를 받아야 했다.

2010년 여름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파라과이는 4일 스페인과 맞붙는다. 3국동맹 전쟁을 한참 거슬러 올라 1525년부터 식민지 침탈의 역사를 쓰게 만든 스페인이다. 파라과이 원주민 인디오 과라니족의 평화로운 일상을 참혹하게 깨버린 그들이다.

1750년대 남미를 식민 지배하고 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파라과이와 브라질 사이에 새롭게 영토 경계선을 그었고, 포르투갈령으로 편입을 거부한 과라니족은 저항 끝에 한 줌의 재가 됐다. 강대국에게 짓밟힌 과라니족의 비극적 운명은 1986년
롤랑 조페 감독이 만든 영화 '미션'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지 199년이 흘렀다. 그들을 갈라놓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30일 새벽 남아공
케이프타운 그린포인트 스타디움에서 자웅을 겨뤘고 스페인이 남았다.

이제 파라과이가 스페인 앞에 선다. 500년을 이어온 질곡의 역사가 4일 엘리스파크 스타디움에서 또 한 페이지를 맞는다.

FIFA 랭킹 2위다. 질지 모른다. 아니 질 가능성이 훨씬 크다. 그러나 그래도…좋다. 아름다웠던, 하지만 강대국들의 침탈에 한껏 작아져 슬픈 파라과이의 가슴 벅찬 월드컵은 결코 골 스코어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

[서울신문]

Gabriel's Oboe / The Falls

Yo-Yo Ma, Cello / Ennio Morricone, d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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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인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선 정대세선수

북한의 선전과 정대세의 눈물

16일 새벽 북한과 브라질의 조별 예선 경기가 있었습니다.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의 16강 진출 확률을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보았고 3패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네티즌들도 브라질, 포르투칼, 코트디브아르와 함께 죽음의 조에 들어간 북한이 불쌍하다는 여론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경기를 보고 난 후 반응은 북한이 패한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목소리가 더욱 컸습니다. 그 이유는 비단 세계랭킹 104위인 북한이 세계랭킹 1위인 브라질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비록 극단적인 수비전술을 들고 나왔지만 북한의 수비는 질식수비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투지를 보이며 전반 내내 브라질을 강하게 압박했고 후반에도 2골을 먹긴했지만 다른 팀들과 달리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멋진 한골을 넣었습니다. 바로 이런 북한의 끈질긴 승부근성과 그들의 열악한 환경에서 거둔 성과라는 것을 알기에 세계 축구팬들은 놀랐고 경기를 본 많은 사람들은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경기 내용 외에도 이번경기가 사람들의 큰 관심을 끌어모은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경기 전 국가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던 정대세 선수의 모습입니다. 경기를 마친 후 인터뷰에서 정대세 선수는 세계최강의 팀과 싸울 수 있어 기뻐서 울었다고 말하였지만 그 장면을 보며 같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울컥했던 많은 사람들은 그 이유 뿐 아니라 그 눈물에서 정대세 선수가 겪었던 아픔과 우리가 처한 현실을 보았기 때문에 함께 슬퍼했을 것입니다.


정대세, 세 개의 고향을 가진 남자

정대세 선수는 재일교포이고 국적은 대한민국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는 북한대표팀으로 뛰게 되었을까요? 어느 한 인터뷰에서 정대세 선수에게 본인의 국적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거기서 정대세 선수는 “나를 키운 곳은 조선이기 때문에 국적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대한민국도 북한도 아닌 조선이라고 말한 데에는 어느 정도 배경이 있습니다.

알려진 이야기로는 정대세 선수의 외할아버지는 일제시대 때 일본에 오시고 해방 후에도 계속 일본 생활을 하면서 외국인법에 의해 조선국적을 취득하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귀화자격이 주어졌지만 정대세 선수의 아버지는 조선 국적에서 한국 국적으로 변경하였고 어머니는 무국적인 조선국적을 계속 유지하면서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정대세 선수 또한 이런 부모님의 영향으로 일본인 학교가 아닌 북한이 지원을 하는 조총련계의 학교와 조선대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그리움을 키워나간 것이 경계인으로 살 수 밖에 없던 그가 나를 키운 곳은 조선이라고 말하고 북한대표팀으로 뛰게 된 가장 큰 원인일 것입니다.

정대세, 국적을 떠난 재일동포들의 희망

정대세 선수는 또한 재일동포들 사이에서 갖는 존재의 의미 또한 남다릅니다.

조선대학 졸업생 최초로 일본 J리거가 되면서 본인의 꿈을 이룬 것 뿐만 아니라 많은 설움과 고통을 받아왔던 재일동포들에게 한줄기 희망을 주는 선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J리거로써의 길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예전 인터뷰를 보면 “일본선수랑 실력이 비슷하면 일본선수를 기용하니까 내가 선발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보다 더 나은 실력을 보여 주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 쉬지 않고 노력했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그는 보이지 않는 차별 속에서 굴하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실력으로 인정을 받으며 C급연봉에서 A급 연봉을 받는 가와사키프론탈레의 주전 공격수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그의 과정이 재일동포들 사이에서 좋은 본보기로 비춰지게 됩니다. 그리고 북한대표로 뽑힌 후 일본과의 경기에서 통쾌한 골과 함께 승리를 거두면서 일본에서 이방인으로 힘들게 살던 많은 재일동포들에게 기쁨을 선사해주면서 그들의 희망이자 아이들의 꿈이 되었습니다. 그 자신도 자신이 한 개인이 아니라 재일동포들의 대표로서 행동하나하나에 부끄럼없이 행동하겠다고 말을 한 것만 봐도 그에게 축구는 개인의 명예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남아공 월드컵, 정대세가 얻은 또 다른 기회

정대세 선수는 이런 특이한 이력 뿐 아니라 선수로서도 큰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강인한 체력과 이를 바탕으로 한 저돌적인 돌파력과 볼터치는 수준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장점이 그의 인생스토리와 엮어져 이번 월드컵에서 주목받는 선수 중 하나로 급부상하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어쩌면 우리나라, 북한, 재일동포 이 세 곳에서 다함께 응원해 주는 유일한 선수인만큼 아직 남은 두 경기를 성공적으로 치러 세계 속에서 뛰는 정대세 선수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http://blog.daum.net/loveacrc

정대세의 눈물과 조선적, 그리고 디아스포라

5년 전 한 선배의 소개로 만난 재일교포 3세 김향청(33)씨의 글을 읽게 됐다. 김씨의 할아버지는 경북 의성에서 태어났다. 1912년 조선총독부의 토지조사령 때 생활수단을 잃고 만주를 거쳐 일본에 정착했다. 식민지 때 할아버지는 한반도에 살든 일본에 살든 '일본인'이어야 했다. 하지만 해방이 되면서 할아버지는 '외국인'이 됐고, 일본 정부는 1947년 할아버지의 외국인등록증에 '조선'이라고 표기했다. 당시는 남한도 북한도 정부가 수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조선적(朝鮮籍)이 탄생한 배경이다. 현재 대략 7만여 명의 조선적 교포가 일본에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1965년 한국과 일본이 수교를 맺으면서 많은 이들이 표기를 '한국'으로 바꿨다. 하지만 김씨와 가족들은 조선적을 유지했다. 김씨는 "나와 내 가족은 분단된 한반도의 어느 한쪽의 국적도 갖고 싶지 않다. 분단정책에 대한 저항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언젠가 '한반도' 국적을 가질 날이 왔으면 한다고 했다.


북한 축구대표팀의 정대세(26)는 16일 남아공월드컵 브라질과의 경기 전 국가가 흘러나오자 감정이 북받쳐 오른 듯 몸을 떨며 뜨겁게 울었다. 축구인으로서 월드컵 본선에서 뛸 수 있다는 감동에 더해 국가를 들으며 공동체 안에 속하게 됐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경계인으로서 불안정한 지위를 가져왔던 삶, 재일교포로서 일본이란 집단사회에서 당했던 온갖 배척의 설움이 역설적으로 재확인되지 않았을까. 아주대 사회학과 노명우 교수는 이에 대해 "국가 내부에 포획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국가는 성가신 틀일 수 있으나 정대세처럼 국민으로 포획되지 못한, 모호한 국민의 지위를 갖고 있는 디아스포라적[각주:1] 존재에겐 국민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과 국가대표가 되어 월드컵에 나선다는 것 자체가 황홀한 경험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대세의 할아버지 역시 경북 의성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한국' 국적, 어머니는 '조선적'이다. 정대세는 아버지를 따라 '한국' 국적을 가졌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를 조총련계 민족학교에 보냈다. 자연스레 그들의 문화와 습속에 익숙해졌다. 고3때 평양으로 수학여행을 간 자리에서 정대세는 "꼭 조국대표가 돼서 평양으로 돌아오겠다"고 결심했다고 회상한 적이 있다. 그런 면에서 여전히 경계인으로 남고자하는 김향청씨와 달리 정대세는 지금 하나의 공동체와 접합하는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대세를 보면서 '국민이 되는 감동'을 얘기했지만, 이 지점에 이르러 국적이랑 개념 규정에 의문이 든다. 한국에서 태어나면 한국인이고, 일본에서 태어나면 일본인이란 규정이라면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 국적 혹은 조선적들은 한국인인가 일본인인가 아니면 그 무엇도 아닌가. 한국 사회의 단일민족 순혈주의와 일본의 배타적 민족 혹은 국가주의는 국적의 개념에 의해 규정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천안함 사건을 일으켰다'는 북한 정부의 폭력성에 분노하던 한국인들이 북한 인민들을 북한 정부와 구분지어 그들에게 친숙함을 느끼는 양가적인 태도는 상당히 징후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던 국민이란 개념에서 '국'과 '민'이 분리되기 시작하는 상징이지 않을까 싶어서다.


디아스포라라는 주제에 천착해온 한국 국적의 재일조선인인 서경식 도쿄게이자이대 교수는 이를 두고 "사람을 국민이냐 아니냐, 우리 민족이냐 아니냐, 우리 국경 안에 사느냐 밖에 사느냐로 가르려는 시각 자체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인이나 일본인이기이전에 그저 존재하는 하나의 삶 그 자체로 오롯할 순 없을까.

http://nomad-crime.tistory.com

  1. 디아스포라란 특정 인종 집단이 기존에 살던 땅을 자의적이거나 타의적으로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유목과는 다르며, 난민 집단 형성과는 관련돼 있다. 난민들은 새로운 땅에 계속 정착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나, 디아스포라란 단어는 이와 달리 본토를 떠나 항구적으로 나라 밖에 자리 잡은 집단에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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