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갈나무 투쟁기』『숲의 생활사』 그리고 최근에 나온 『나무의 죽음』까지 모두 8권의 책을 펴낸 차윤정 씨는 지식과 감성을 두루 겸비한 숲 작가다. 전공인 산림생태학 외에도 호기심에 접한 다양한 학문들이 숲을 바라보는 시각을 훨씬 폭넓게 해 주었다고 믿는 그녀는 대중과의 교감을 위해 책 쓰는 과정 하나하나를 꼼꼼히 관리하는 ‘모범 필자’다. 평생 숲길을 걸었지만 아파트에 살고 있고, 학자이며 작가이기 전에 ‘주부’로서의 역할이 더욱 소중하다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나무처럼 강인한 삶의 향기가 묻어난다.
자연과 생태 2007년 11~12월호 Vol.12 글․사진_이주희 기자
이미 『신갈나무 투쟁기』(지성사, 1999)와 『숲의 생활사』(웅진닷컴, 2004)를 통해 숲과 나무에 대해 사람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독특한 시각과 감수성으로 풀어내 많은 이들을 감동시킨 차윤정(41) 씨. 최근 『나무의 죽음』(웅진지식하우스, 2007)이라는 책을 가지고 돌아온 그녀는 살아 있는 나무가 아니라 죽은 나무를 이야기함으로써 “숲과 나무에 관해 내가 할 말은 이제 다 뱉어냈다”고 말한다. 숲 전문가로 알려지면서 강의 요청도 많고 사람들의 관심도 많이 받지만, 그녀는 그런 주변의 평가나 기대가 자신을 왜곡하고 구속하는 것 같아 영 어색하고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아파트에 사는 숲 작가
차윤정 씨는 얼마 전까지 경기도 광주시에 살다가 남편 직장과 아이들 교육문제 때문에 경기도 성남시 경원대 근처 아파트로 이사 왔다. 경원대 조경학과 교수인 전승훈(45) 씨와 서울대학원 시절에 만나 결혼한 그녀는 현재 고등학교 1학년인 딸과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을 두고 있다. “남들은 제가 숲속이나 시골에 사는 줄 알아요.” 그녀가 숲에 대한 책을 쓰기 때문에 생긴 대표적인 오해다. 그러나 차윤정 씨 역시 시골을 좋아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도시의 편리함과 장점을 포기하지 못하는 평범한 우리시대 사람이다.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숲으로 인도한 차윤정 씨가 처음 집필을 시작한 것은 박사과정 때 우연히 삼림욕에 관한 책을 쓰면서다. 세계적으로 삼림욕에 대한 관심이 커가던 당시에 국내 모 출판사가 책을 써 줄 국내 연구자를 찾았고, 뜻하지 않게 그녀에게 기회가 왔다. 이렇게 책과 인연을 맺은 후 어느덧 8번째 책을 냈다.
스스로 아주 평범하다고 말하는 그녀가 책을 낼 때마다 각종 우수도서와 권장도서에 선정되고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그녀의 책을 읽으면 숲과 생명에 대한 깊은 이해를 넘어서 감동과 존경심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대중을 향해 자연과 생명에 대한 글을 쓸 때 많은 필자들이 저지르는 실수는 빈약한 정보를 갖고 지나치게 감성적인 글을 쓰거나, 너무 많은 정보만을 나열해 밋밋하고 재미없는 글을 쓰는 두 가지 경우다. 반면에 차윤정 씨의 글은 풍부한 정보와 감수성을 균형 있게 담고 있어 호소력이 크다. 그래서 그녀의 책을 읽고 나면 자연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함께 깊어지는지 모른다.
실제로 그녀는 책을 쓸 때 완성도 높은 구성과 계획을 먼저 세우고 충분한 자료 준비 기간을 거친다. 독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국내외 학술지를 두루 분석하는 것은 기본. 그 다음에 책의 주제와 상황에 맞게 스스로 자료를 소화하고 글 재로로 삼는다. 마지막으로 책 내용에 걸맞은 사진을 찾으면 준비 끝. 이후 두 달 정도 집중해서 글을 쓴다. 그런데 그녀는 자연 소재로 한 다른 작가들의 책은 잘 읽지 않는다고 한다. 마음에 드는 것에 쉽게 동화되는 성격이라 다른 사람의 글을 모방하게 될까봐서란다.
대학 이후 숲길을 걸어온 인생
부산에서 나고 자란 차윤정 씨는 어릴 때부터 학업 성적이 우수해 장래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기대를 크게 받았다. 그런데 어쩌다가 그녀는 의사의 길도, 변호사의 길도 아닌 숲길을 걷게 된 것일까? 고등학교 2학년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반장, 니는 무슨 과에 진학할끼고?” 라고 묻자 그녀는 “농대예” 라고 대답해 주변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했다. 우리 농업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애국심의 발로로 농과대학 진학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녀의 마음속에 언제나 곡식이 익어가는 들녘과 울창한 숲에 대한 알 수 없는 동경이 출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85년 서울대 농과대학에 가기로 결정한 그녀는 이왕이면 풀보다는 나무가 좋다고 여겨 임학과에 지원한다. 이공계에, 그것도 산림을 연구하는 임학과에 진학하는 여학생이 흔치 않던 시절이라 교수님들도 어린 차윤정 씨가 특이해 보였는지 “우리 과는 산을 많이 타야 하는데 할 수 있겠니?” 라고 물었단다. 그녀의 대답은 걸작이었다. “저 다리 튼튼합니다.”
고향을 떠나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학창시절을 보낸 차윤정 씨는 휴일에 대학원 선배들이 산림조사를 나갈 때마다 따라다녔다. 기숙사에서 딱히 할 일도 없었던 데다 워낙 숲을 좋아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산림을 연구하는 임학은 연구 대상이 워낙 방대해 생물학의 거의 전 분야를 골고루 섭렵해야 한다. 산림조사를 위해 측량법 같은 기술적인 요소도 배워야 하니 전공 공부만 소화하기도 버겁다. 그러나 차윤정 씨는 한술 더 떠 기상학처럼 다소 엉뚱한 수업까지 듣곤 했다. 다양한 학문들을 접한 경험은 결과적으로 숲을 바라보는 시각을 훨씬 폭넓게 해 주었고, 나중에 책을 쓸 때 큰 자산이 되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학부를 졸업하고 자연스럽게 대학원에 진학한 그녀는 식물생태학에 관심이 있었지만 관련 연구실이 없어 수목생리학으로 학위과정을 밟아야 했다. 그러나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생태학은 상당 부분 독학으로 공부해야 했지만, 생리학을 배운 것이 학위 논문을 쓰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그녀는 2001년에 산림 벌채 지역에 자라는 조릿대의 생리․생태적 특징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차윤정 씨는 옛날에 태어났으면 무당이 됐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이상하게도 주변 사물과 잘 교감할 수 있다는 것. 숲에 가서도 나무와 숲의 정령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그녀는 연구를 위해 나무를 자르거나 할 때도 혼잣말로 나무에 미안함을 전하곤 한다. 그런 습관은 숲에 통 못가는 요즘 집안에서 ‘혼자 놀기의 진수’로도 나타나는데, 집안에 틀어박혀 주변 사물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하루 종일을 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진짜 직업은 학자도 작가도 아닌 주부”
차윤정 씨는 지금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토양학, 수목관리학, 생물생태학 등을 가르치고 있지만 전임 교수가 되는 것에 욕심은 없다. 연구 실적과 학사 행정에 신경 쓰는 것이 딱 질색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자신의 직업은 학자도 작가도 아니라 주부라고 당당히 말한다. 엄마로서 아이들을 뒷바라지하고 가정을 돌보는 일이 무엇보다 그녀에게 소중하고 행복한 일이다. 사실 요즘은 한창 자라는 아이들 교육 때문에 숲에 갈 짬도 없다. 아이들 교육에 스트레스 받으며 극성스럽게 매달리는 엄마라서가 아니라, 아이들의 인생 진로에 조언을 하고 격려하고 부족한 공부를 도와주는 일을 즐기고 있다.
마지막으로 『나무의 죽음』 이후에 나올 책에 대해 기자가 궁금해 하자, 그녀는 2004년부터 2년간 미국에 있을 때 가족과 함께 서부지역 산림을 여행하면서 느낀 점을 글로 쓸 계획이라고 귀띔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