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선 정대세선수
북한의 선전과 정대세의 눈물
16일 새벽 북한과 브라질의 조별 예선 경기가 있었습니다.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의 16강 진출 확률을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보았고 3패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네티즌들도 브라질, 포르투칼, 코트디브아르와 함께 죽음의 조에 들어간 북한이 불쌍하다는 여론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경기를 보고 난 후 반응은 북한이 패한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목소리가 더욱 컸습니다. 그 이유는 비단 세계랭킹 104위인 북한이 세계랭킹 1위인 브라질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비록 극단적인 수비전술을 들고 나왔지만 북한의 수비는 질식수비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투지를 보이며 전반 내내 브라질을 강하게 압박했고 후반에도 2골을 먹긴했지만 다른 팀들과 달리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멋진 한골을 넣었습니다. 바로 이런 북한의 끈질긴 승부근성과 그들의 열악한 환경에서 거둔 성과라는 것을 알기에 세계 축구팬들은 놀랐고 경기를 본 많은 사람들은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경기 내용 외에도 이번경기가 사람들의 큰 관심을 끌어모은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경기 전 국가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던 정대세 선수의 모습입니다. 경기를 마친 후 인터뷰에서 정대세 선수는 세계최강의 팀과 싸울 수 있어 기뻐서 울었다고 말하였지만 그 장면을 보며 같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울컥했던 많은 사람들은 그 이유 뿐 아니라 그 눈물에서 정대세 선수가 겪었던 아픔과 우리가 처한 현실을 보았기 때문에 함께 슬퍼했을 것입니다.
정대세, 세 개의 고향을 가진 남자
정대세 선수는 재일교포이고 국적은 대한민국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는 북한대표팀으로 뛰게 되었을까요? 어느 한 인터뷰에서 정대세 선수에게 본인의 국적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거기서 정대세 선수는 “나를 키운 곳은 조선이기 때문에 국적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대한민국도 북한도 아닌 조선이라고 말한 데에는 어느 정도 배경이 있습니다.
알려진 이야기로는 정대세 선수의 외할아버지는 일제시대 때 일본에 오시고 해방 후에도 계속 일본 생활을 하면서 외국인법에 의해 조선국적을 취득하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귀화자격이 주어졌지만 정대세 선수의 아버지는 조선 국적에서 한국 국적으로 변경하였고 어머니는 무국적인 조선국적을 계속 유지하면서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정대세 선수 또한 이런 부모님의 영향으로 일본인 학교가 아닌 북한이 지원을 하는 조총련계의 학교와 조선대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그리움을 키워나간 것이 경계인으로 살 수 밖에 없던 그가 나를 키운 곳은 조선이라고 말하고 북한대표팀으로 뛰게 된 가장 큰 원인일 것입니다.
정대세, 국적을 떠난 재일동포들의 희망
정대세 선수는 또한 재일동포들 사이에서 갖는 존재의 의미 또한 남다릅니다.
조선대학 졸업생 최초로 일본 J리거가 되면서 본인의 꿈을 이룬 것 뿐만 아니라 많은 설움과 고통을 받아왔던 재일동포들에게 한줄기 희망을 주는 선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J리거로써의 길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예전 인터뷰를 보면 “일본선수랑 실력이 비슷하면 일본선수를 기용하니까 내가 선발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보다 더 나은 실력을 보여 주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 쉬지 않고 노력했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그는 보이지 않는 차별 속에서 굴하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실력으로 인정을 받으며 C급연봉에서 A급 연봉을 받는 가와사키프론탈레의 주전 공격수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그의 과정이 재일동포들 사이에서 좋은 본보기로 비춰지게 됩니다. 그리고 북한대표로 뽑힌 후 일본과의 경기에서 통쾌한 골과 함께 승리를 거두면서 일본에서 이방인으로 힘들게 살던 많은 재일동포들에게 기쁨을 선사해주면서 그들의 희망이자 아이들의 꿈이 되었습니다. 그 자신도 자신이 한 개인이 아니라 재일동포들의 대표로서 행동하나하나에 부끄럼없이 행동하겠다고 말을 한 것만 봐도 그에게 축구는 개인의 명예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남아공 월드컵, 정대세가 얻은 또 다른 기회
정대세 선수는 이런 특이한 이력 뿐 아니라 선수로서도 큰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강인한 체력과 이를 바탕으로 한 저돌적인 돌파력과 볼터치는 수준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장점이 그의 인생스토리와 엮어져 이번 월드컵에서 주목받는 선수 중 하나로 급부상하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어쩌면 우리나라, 북한, 재일동포 이 세 곳에서 다함께 응원해 주는 유일한 선수인만큼 아직 남은 두 경기를 성공적으로 치러 세계 속에서 뛰는 정대세 선수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정대세의 눈물과 조선적, 그리고 디아스포라
5년 전 한 선배의 소개로 만난 재일교포 3세 김향청(33)씨의 글을 읽게 됐다. 김씨의 할아버지는 경북 의성에서 태어났다. 1912년 조선총독부의 토지조사령 때 생활수단을 잃고 만주를 거쳐 일본에 정착했다. 식민지 때 할아버지는 한반도에 살든 일본에 살든 '일본인'이어야 했다. 하지만 해방이 되면서 할아버지는 '외국인'이 됐고, 일본 정부는 1947년 할아버지의 외국인등록증에 '조선'이라고 표기했다. 당시는 남한도 북한도 정부가 수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조선적(朝鮮籍)이 탄생한 배경이다. 현재 대략 7만여 명의 조선적 교포가 일본에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1965년 한국과 일본이 수교를 맺으면서 많은 이들이 표기를 '한국'으로 바꿨다. 하지만 김씨와 가족들은 조선적을 유지했다. 김씨는 "나와 내 가족은 분단된 한반도의 어느 한쪽의 국적도 갖고 싶지 않다. 분단정책에 대한 저항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언젠가 '한반도' 국적을 가질 날이 왔으면 한다고 했다.
북한 축구대표팀의 정대세(26)는 16일 남아공월드컵 브라질과의 경기 전 국가가 흘러나오자 감정이 북받쳐 오른 듯 몸을 떨며 뜨겁게 울었다. 축구인으로서 월드컵 본선에서 뛸 수 있다는 감동에 더해 국가를 들으며 공동체 안에 속하게 됐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경계인으로서 불안정한 지위를 가져왔던 삶, 재일교포로서 일본이란 집단사회에서 당했던 온갖 배척의 설움이 역설적으로 재확인되지 않았을까. 아주대 사회학과 노명우 교수는 이에 대해 "국가 내부에 포획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국가는 성가신 틀일 수 있으나 정대세처럼 국민으로 포획되지 못한, 모호한 국민의 지위를 갖고 있는 디아스포라적[각주:1] 존재에겐 국민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과 국가대표가 되어 월드컵에 나선다는 것 자체가 황홀한 경험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대세의 할아버지 역시 경북 의성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한국' 국적, 어머니는 '조선적'이다. 정대세는 아버지를 따라 '한국' 국적을 가졌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를 조총련계 민족학교에 보냈다. 자연스레 그들의 문화와 습속에 익숙해졌다. 고3때 평양으로 수학여행을 간 자리에서 정대세는 "꼭 조국대표가 돼서 평양으로 돌아오겠다"고 결심했다고 회상한 적이 있다. 그런 면에서 여전히 경계인으로 남고자하는 김향청씨와 달리 정대세는 지금 하나의 공동체와 접합하는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대세를 보면서 '국민이 되는 감동'을 얘기했지만, 이 지점에 이르러 국적이랑 개념 규정에 의문이 든다. 한국에서 태어나면 한국인이고, 일본에서 태어나면 일본인이란 규정이라면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 국적 혹은 조선적들은 한국인인가 일본인인가 아니면 그 무엇도 아닌가. 한국 사회의 단일민족 순혈주의와 일본의 배타적 민족 혹은 국가주의는 국적의 개념에 의해 규정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천안함 사건을 일으켰다'는 북한 정부의 폭력성에 분노하던 한국인들이 북한 인민들을 북한 정부와 구분지어 그들에게 친숙함을 느끼는 양가적인 태도는 상당히 징후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던 국민이란 개념에서 '국'과 '민'이 분리되기 시작하는 상징이지 않을까 싶어서다.
디아스포라라는 주제에 천착해온 한국 국적의 재일조선인인 서경식 도쿄게이자이대 교수는 이를 두고 "사람을 국민이냐 아니냐, 우리 민족이냐 아니냐, 우리 국경 안에 사느냐 밖에 사느냐로 가르려는 시각 자체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인이나 일본인이기이전에 그저 존재하는 하나의 삶 그 자체로 오롯할 순 없을까.
http://nomad-crime.tistory.com
- 디아스포라란 특정 인종 집단이 기존에 살던 땅을 자의적이거나 타의적으로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유목과는 다르며, 난민 집단 형성과는 관련돼 있다. 난민들은 새로운 땅에 계속 정착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나, 디아스포라란 단어는 이와 달리 본토를 떠나 항구적으로 나라 밖에 자리 잡은 집단에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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