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사진학과에 출강하는 까닭은?
가족부터 조개까지 카메라 없이 X레이 사진 찍는 정태섭 박사
문을 열자 '훅' 하고 묵은 향기가 코끝을 건드린다. 시간을 이겨낸 누런 책들만이 선사할 수 있는 향기 같은 거다. 10평도 안 되는 방에는 녹이 슬고 껍질이 벗겨진 물건들이 쌓여 있다. 오래된 화폐들, 천체망원경, 각종 기계장치들, 엑스(X)레이 사진들. 족히 100년은 넘어 보이는 것들도 있다. "재미있는 거 보여드릴까요?" 정태섭(56·연세대 의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사진) 박사가 주섬주섬 책장에서 한 뭉텅이의 물건을 꺼낸다. 1800년대 카메라가 발명되던 시절의 다게레오타이프 사진들이었다.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세련된 현대미술관에 지금 걸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예술적인 향취가 물씬 풍긴다.
낮에는 의사 밤에는 사진가…즐거운 이중생활
그는 의사이면서 사진가이다. 스스로 '엑스레이 사진 아티스트'라고 이름붙인 남다른 예술가이다. 그의 독특함은 사진 작업에서 출발한다. 그는 카메라 없이 사진을 찍는다. 빛도 마음대로 조종한다. 엑스선으로 사진을 찍기 때문에 가능하다. 수집한 물건들이나 사람을 엑스선 아래 눕히는 것이 '사진찍기'의 시작이다.
15년 전이다. 가족사진 아래 한 장의 사진을 덧붙였다. 그 사진은 가족들의 해골 사진이었다. 괴짜 의대 영상의학과 교수만이 생각해 낼 수 있는 일이었다. 사진에는 아내와 아이들의 피부가 사라지고 크기가 다른 뼈만 남았다.
그때부터 정씨는 꽃이나 조개, 주변의 사소한 물건들까지 엑스선 아래 놓고 사진을 찍었다. 밤을 새우는 날들이 많았다.
그의 사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6년. 기형도 시인의 시 '입 속의 검은 잎'을 차용해서 찍은 사진 때문이다. 그는 금속으로 만든 잎 모양의 브로치를 아내에게 물게 했다. 엑스선으로 그 형태를 찍었다. 사람의 입안에 검은 잎이 보였다. 이 사진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다. 사람들의 뼈 사이에 하트를 넣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발명왕이었던 정 박사의 머리에는 상상력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흑백의 엑스선 사진은 서서히 색이 입혀졌다. 찍은 엑스선 사진을 파일로 저장하고 그 파일을 컴퓨터에 다시 띄워 포토샵 작업을 했다. 튤립에는 붉은색이 입혀지고 노란색이 춤을 췄다. 수백개의 땅콩이 한 장의 사진 속에 리듬감 있게 등장하고 그중 일부는 붉은색이 되었다. 그의 열정은 대단했다. 600가지의 장미를 찾아 꽃시장을 헤매기도 여러 번이다.
그는 재미있는 합성 사진도 만들었다. 호두 껍데기 속에 사람의 뇌를 단층촬영한 사진을 넣었다. 모양이 다른 여러 꽃을 찍어 수백개로 복사해서 자신만의 감성으로 사진을 만들었다. 이 사진들은 독특하면서 예술적인 감성이 넘친다. 하지만 작업은 간단하지 않다. "한 장 만드는 데 100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는 낮에는 의사로, 밤에는 사진가로 지내는 '이중생활'이 즐겁기만 하다.
카메라가 없이도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만들어진 이미지는 다시 여러 장으로 복제된다. 이런 일련의 작업들은 디지털시대와 맞닿아 호평을 얻기 시작했다. '엑스레이 포토 아트'(X-ray Photo Art)(2008년), 'X-레이로 봄을 보다'(2010년) 등 개인전을 7차례, 그룹전을 14번이나 열었다. 2009년 서울국제판화사진아트페어, 2010년 한국국제아트페어 등에 초청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에 소장되었다. 의대 대신 사진학과에 출강하고, 여느 사진가들처럼 작품도 팔았다. 작품 판매금은 치료비가 부족한 이들을 위해 쓰기도 했다. "의사가 국민들의 건강만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감성 교육에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낀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말하는 엑스선 사진의 매력은 질감의 표현에 있다. 귤의 단면과 미세한 껍질의 농도 차이가 엑스선을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화가도 사진가도 재현할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이다. 이제 사진은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그는 작업을 하면서 "빈 공간은 나의 공간이 아닙니다. 그 부분은 사진을 감상하는 이들의 것이지요. 빈 공간에 대한 배려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말한다.
2010년에는 특이한 사진도 찍었다. 그가 찍은 'R16'(비보이 국제행사)의 포스터는 기묘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비보이의 뼈 사진이다. 이 사진은 한 사람을 18장 찍어 합성했다. 몸의 이곳저곳을 부분적으로 찍어야 했기 때문에 18장이 필요했다.
요즘 그는 새로운 사진에 도전하고 있다. 3차원 영상기법을 활용한 사진이다. 영화 < 아바타 > 처럼 특수안경을 끼고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꽃과 조개가 3차원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을 맞는다. [한겨레]
낮에는 의사 밤에는 사진가…즐거운 이중생활
그는 의사이면서 사진가이다. 스스로 '엑스레이 사진 아티스트'라고 이름붙인 남다른 예술가이다. 그의 독특함은 사진 작업에서 출발한다. 그는 카메라 없이 사진을 찍는다. 빛도 마음대로 조종한다. 엑스선으로 사진을 찍기 때문에 가능하다. 수집한 물건들이나 사람을 엑스선 아래 눕히는 것이 '사진찍기'의 시작이다.
15년 전이다. 가족사진 아래 한 장의 사진을 덧붙였다. 그 사진은 가족들의 해골 사진이었다. 괴짜 의대 영상의학과 교수만이 생각해 낼 수 있는 일이었다. 사진에는 아내와 아이들의 피부가 사라지고 크기가 다른 뼈만 남았다.
그때부터 정씨는 꽃이나 조개, 주변의 사소한 물건들까지 엑스선 아래 놓고 사진을 찍었다. 밤을 새우는 날들이 많았다.
그의 사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6년. 기형도 시인의 시 '입 속의 검은 잎'을 차용해서 찍은 사진 때문이다. 그는 금속으로 만든 잎 모양의 브로치를 아내에게 물게 했다. 엑스선으로 그 형태를 찍었다. 사람의 입안에 검은 잎이 보였다. 이 사진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다. 사람들의 뼈 사이에 하트를 넣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발명왕이었던 정 박사의 머리에는 상상력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흑백의 엑스선 사진은 서서히 색이 입혀졌다. 찍은 엑스선 사진을 파일로 저장하고 그 파일을 컴퓨터에 다시 띄워 포토샵 작업을 했다. 튤립에는 붉은색이 입혀지고 노란색이 춤을 췄다. 수백개의 땅콩이 한 장의 사진 속에 리듬감 있게 등장하고 그중 일부는 붉은색이 되었다. 그의 열정은 대단했다. 600가지의 장미를 찾아 꽃시장을 헤매기도 여러 번이다.
그는 재미있는 합성 사진도 만들었다. 호두 껍데기 속에 사람의 뇌를 단층촬영한 사진을 넣었다. 모양이 다른 여러 꽃을 찍어 수백개로 복사해서 자신만의 감성으로 사진을 만들었다. 이 사진들은 독특하면서 예술적인 감성이 넘친다. 하지만 작업은 간단하지 않다. "한 장 만드는 데 100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는 낮에는 의사로, 밤에는 사진가로 지내는 '이중생활'이 즐겁기만 하다.
카메라가 없이도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만들어진 이미지는 다시 여러 장으로 복제된다. 이런 일련의 작업들은 디지털시대와 맞닿아 호평을 얻기 시작했다. '엑스레이 포토 아트'(X-ray Photo Art)(2008년), 'X-레이로 봄을 보다'(2010년) 등 개인전을 7차례, 그룹전을 14번이나 열었다. 2009년 서울국제판화사진아트페어, 2010년 한국국제아트페어 등에 초청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에 소장되었다. 의대 대신 사진학과에 출강하고, 여느 사진가들처럼 작품도 팔았다. 작품 판매금은 치료비가 부족한 이들을 위해 쓰기도 했다. "의사가 국민들의 건강만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감성 교육에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낀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말하는 엑스선 사진의 매력은 질감의 표현에 있다. 귤의 단면과 미세한 껍질의 농도 차이가 엑스선을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화가도 사진가도 재현할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이다. 이제 사진은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그는 작업을 하면서 "빈 공간은 나의 공간이 아닙니다. 그 부분은 사진을 감상하는 이들의 것이지요. 빈 공간에 대한 배려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말한다.
2010년에는 특이한 사진도 찍었다. 그가 찍은 'R16'(비보이 국제행사)의 포스터는 기묘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비보이의 뼈 사진이다. 이 사진은 한 사람을 18장 찍어 합성했다. 몸의 이곳저곳을 부분적으로 찍어야 했기 때문에 18장이 필요했다.
요즘 그는 새로운 사진에 도전하고 있다. 3차원 영상기법을 활용한 사진이다. 영화 < 아바타 > 처럼 특수안경을 끼고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꽃과 조개가 3차원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을 맞는다. [한겨레]
'BOARD'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량산 (2) | 2010.11.05 |
---|---|
`천안아산역(온양온천)`??? (4) | 2010.11.03 |
부끄러운 3대 세습 (0) | 2010.10.14 |
공고한 우의? (0) | 2010.10.14 |
칠레 광부 33명 (0) | 2010.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