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 갑(回甲)

 

                           김성련


'너희 부부 좋은 걸로 사 신어'


엄니는 백만원을 주셨다


'왜 구두를 산대유'


'그렇게 하는게 좋댜'


'돈이 너무 많어유'


'젤 좋은 걸루 사 신어'

 

 



엄니가 사주신 구두는


가볍고 발이 편하고


무엇보다


볼에서 코까지 이뻐서


의자에 앉으면


발을 쭉 뻗어보고


발목도 돌려보고


걸으면 가뿐하고


허리도 쭈욱 펴지니


먼길도 쉬이 갈듯하다

 

 



갑오생인데 다시 갑오년이니


회갑이 분명한데


회갑에 구두를 사는 뜻은 아마도


나이 들어도 깨끗하게 다니고


튼튼한 다리로 오래 살라는 것이려니


구십을 산다면 삼분지이를 살았고


팔십을 산다면 사분지삼을 살았는데

 

남은 햇수 부디 건강하게 살라는 것이려니

 

 



엄니는 그 말을


힘도 안 들이고 하셨다


'그렇게 하는게 좋댜'



2015.1.8 백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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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니가 보는 풍경/ 김성련

 

엄니는 늘 밖을 봅니다

풍경속에서는 해마다

잎이 피고 우거지고

단풍지고 또 눈이 내립니다

풍경은 겹치고 포개져

세월이 됩니다.

 

밖을 내다보는 것은

기다림입니다

긴 세월 구순을 살면서

하많은 사연 다 거쳐도

일제시대에 인공난리에

보리고개에 피난시절을

다 거쳐와도

엄니의 눈빛은 늘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지금 은행나무

노랗게 눈부시고

들녘은 비어 갈바람 부는데

엄니는 문을 열어놓고

하염없이 밖을 내다봅니다

 

아무도 오지않는

정적속을

은행잎 하나

빙빙 돌며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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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에게/ 김성련



'바람이' 너와 함께


저 가을빛 속으로 떠나리라


삽상한 바람


온몸으로 받으며


들길로 가리라


산길로 가리라


오르는 길 가쁘지만


내리는 길 바람보다 빠르리라


가다가 가다가


이름모를 동네 들어서면


우물가에서 목도 축이리라

 

 



돌아오는 길은


간 만큼 멀지만


가슴속까지 싱그러운 바람


가득 안고 회귀하리라


돌아온 '바람이' 너에겐


꽃내음이, 풀향기가 묻어 있고


한 줄기 바람과


가을 햇볕이 젖어 있어


또다른 떠남을 꿈꾸리라


꿈꾸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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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현리를 지나며 

                                         김성련

동현리를 지난다
다시 가을인데
온 산천이 저리도 붉게 타오르는데
수줍게 알밤을 건네던 소녀
쓸쓸한 미소가 잔영으로 흐리다

그리도 무겁고 버거웠던가
가슴으로 흐르던 바람
끝내 가라앉히기 어려웠던가
차라리 수줍던 소녀로
그 자리에 멈출 수는 없었을까

다시 가을이고
소녀의 손에 있던 알밤처럼
온 산천은 다시 붉은데
바람을 재우지 못하고
바람 따라 흩어져 버린 너

너를 배웅하던
동현리를 지난다

2013.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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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숙인 J에게

가을꽃 아름다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리
산천이 순백으로 뒤덮여도
마음은 새카맣게 물들었으리

누우면 꿈인듯 희미해지다가도
아침이면 또렷이 다가오는 현실
차라리 꿈이라면 수없이 바랬건만...
돌아서면 다가서는 콱막힌 절벽

이제 겨울 가고 봄 오는데
저 산자락 진달래 붉어지는데
마음 속 차가운 얼음은 어이하리
벗어나버린 이 걸음은 어이하리

2013.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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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 그 곳에는

                  김성련

 

지금쯤 그 곳에는

갈바람 빈들을 달리고

밤새 옥수수 잎은

서로 비벼 서걱이것다.

  

지금쯤 그 곳에는

자랑으로 무성하던

잎도 지고

가을강 갈대를 거느려

잠시 눈부시것다.

 

지금쯤 그 곳에는

여름날 열기 다 거두고

안으로 접는 갈무리

산은 더 멀어지고

물은 더 깊게 흐르것다.

 

곧 이어

찬 바람 불고

눈 내리면

언덕과 들과 동네

태고의 침묵인 듯

온통 겨울로 파묻히것다.

 

늦가을 지금

그 곳 북간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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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온 아이들

                                      김성련

 

누추하지만 화려하다

가난하지만 명랑하다

 

아프리카 케냐

먼지 가득한 뒷골목길

거기에 가면

창문 없는 학교가 있고

조명 없는 어두운 교실이 있고

맨발의 곱슬머리 아이들이

소복히 모여앉아

벽칠판을 보며 공부한다

 

조도(照度)를 따질 수도 없고

청결(淸潔)을 요구할 순 없어도

충분히 호기심 많고

기꺼이 다가오는

살이 까매서 눈이 더 맑은 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입 맞추어 공부한다

 

아시아의 끝에서 온

이방의 선생님들에게 온전히 흡인되어

뛰고 그리고 불면서

부르고 만들고 칠하면서

타고난 아프리카의 열정으로 공감해 준

케냐 루이루의 단조스, 가통고라 학교 아이들

 

수만리 떠나왔어도

아이들의 까만 눈동자는 오히려 또렷하고

말소리는 여전히 귓가에서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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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의 땅 암보셀리

                                     김성련

 

여기는 시원(始原)의 땅

아프리카 케냐의 大平原,

大平原에서

나는 왜소하며

자잘한 내 생각들은

더욱 왜소하다

일찍이 洪績世부터 키워온 生命들이

지금도 싱싱하게 살아 지키는 땅,

地平線地平線 사이에서

나의 生命 또한 저들과 같이

맥박쳐 흐름이 마땅하다

 

生命의 흐름은

우열(優劣)도 없고 귀천(貴賤)도 없고

빈부(貧富)도 없고 미추(美醜)도 없으리니

여기서 우리는 누구를 탓하랴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부러워하랴

 

까마득한 時空이 맞닿은 原初의 사바나,

물과 풀이 무수한 生命을 길러온 이곳에서

나는 그저 하염없이 왜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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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

                              김성련

몸져 누운 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시 저녁에서 아침까지

길게 누워 있다

낮인듯 밤인듯

꿈 안인듯 꿈 밖인듯

어린 시절 고향도 나오고

젊었던 엄니도 나오고

소 띠끼던 구리고개가

리쟝 넘어가는

운남의 가파른 산길도 된다

 

몸부려 누운날

생각도 다 놓아버리고

일일회의 업무보고

모두다 놓아버리고

침대맡 라디오와

물컵과 티슈가 더 가깝다

어떻게 베면 베개가 편한지

어떻게 덮으면 발이 따뜻한지

그게 훨씬 중요하다

 

몸놓아 누운 날

눈물에 콧물에

닦아도 또 흐르고

풀어도 또 나오고

티슈가 어지럽다

겨우내 침전된 찌꺼기들

겹겹이 쌓인 불순물

다 흘려내고

다 닦아내고 싶다

그리고 다시

정결히 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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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리 어디로 갔을까

                                        김성련

 

이젠 안 들린다

해마다 5월이면

아파트 거실까지 채우던 소리

밤이 깊을수록 더 와글거리며

침실까지 점령하던

개구리 울음소리

 

그 소리에 편승하면 쉽게도

어릴적 고향으로 달렸다

동구를 돌아 내를 건너면

봄물 가득한 논과 논둑

뚝방에는 아카시아 향기 아찔하고

찔레순이 붉고 통통하게 솟으면

꿩소리가 마을까지 내려왔다

하물며 밤길이면

그 소리에 마음까지 둥둥 떴다

 

이젠 들리지 않는다

개구리 운동장은 매립되고

구획이 정리되고

새 아파트가 올라가고

음식점에 세탁소에 슈퍼가 들어서고

5월이 되어도 거실을 채우는 건

달리는 자동차 소리뿐

 

다 어디로 갔을까

와글거리던 그 소리

다 어디로 갔을까

갑작스런 매립공사

새로 나버린 포장도로에 갇혀

그 소리들

어디로 갈 수나 있었을까

 

소리가 묻히고

그 소리에 실려 가보던

고향도 묻히고

찔레순 꿩소리도

따라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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