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한티 가는 길

                                김성련

 

엄니 대간하쥬

아녀 감나무서낭 가서 쉬먼

산모롱이 억새꽃 눈부신 날

까까중 머리 중학생 시절

하숙쌀을 엄니는 이고 아들은 메고

차부까지 시오리 산길을 걸었다

 

산길은 멀고 짐은 무거워

이인 고개 올라 쉬고

감나무서낭에서 또 쉬고

산의리 동네앞 정자나무에서 쉬면

피천말 지나 차부였다

그리고 엄니는 아들 탄 버스를 아득히 바라보다

시오리 산길을 혼자 넘어 갔다

 

지금 다시

하늘 푸르르고 억새꽃 눈부신데

콘크리트 포장된 시오리길을

예순 다된 아들이 운전하며 넘는다

여기쯤이 정자나무 섰던 자리이고

감나무서낭은 자취도 없네

여수가 뒤따르던 고개 넘으면

계룡산이 그대로 보이네

 

고향집 마루 끝에서

구순의 엄니는 콩을 까고 있다

가을볕에 그으른 얼굴

파뿌리로 흩어지는 머리칼을 하고

하염없이 콩만 까고 있다

엄니 저 왔슈

누구여 아이구 애비구먼

 

엄니의 흐트러진 머리칼은

시오리 산길의 억새꽃처럼 흔들리고

주름져 터진 손가락 사이로

잡히지 않는 갈바람이 부는데

살아온 구순 세월 아랑곳없다는 듯

엄니는 하염없이 콩을 까고 있다

 

'LITERA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기·몸·살/  (0) 2013.10.20
/그 소리 어디로 갔을까/  (0) 2013.10.20
/겨울 기도/  (0) 2012.12.04
/근육 파열/  (0) 2012.10.26
/갈대의 노래/  (0) 2012.10.22

 

 

 

겨울 기도  /   김성련


겨울밤은 깊고

생각은 또렷하여

온통 당신께로 향합니다.


순간을 살며

감히 영원을 바라보게 하시고

미천함에 묻혀서도

감히 거룩을 꿈꾸게 하신

당신을 바랍니다.


지나온 발걸음이

너무 하찮아 부끄러워도

내다보는 앞날이

문득 깊은 안개속이어도

당신께서 손잡아 주시면

고개 들고 어디라도

따라설 듯합니다.


바람을 꾸짖어

호수를 잔잔하게 하시고

말 한 마디로

나자로를 사망굴에서 불러 세우신

당신의 능력,

간음한 여인을 향한

분노한 군중의 돌팔매를 거두시고

열두 제자의 거친 발을

하나 하나 씻고 닦아주신

당신의 사랑,

그러나 무엇보다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고

애타게 거듭하신

하느님을 건 당신의 진실에

기꺼이 몸 던져

당신을 따라나섭니다.


밤은 심연인 듯 깊고

먼 소식 눈으로 내리는데

당신 향한 마음의 심지 돋우고

오늘밤은 그저

하얗게 새우고 싶습니다.



'LITERA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소리 어디로 갔을까/  (0) 2013.10.20
/엄니한티 가는 길/  (0) 2012.12.09
/근육 파열/  (0) 2012.10.26
/갈대의 노래/  (0) 2012.10.22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는/  (0) 2012.08.31

 

 

 

근육 파열 / 김성련

알 것 같다.
천주 믿는다고
몽둥이로 다스려지던 그들,
생사의 진리 부여잡고
생사를 넘나들던 그들,
내리꽂히는 곤장에
얼마나 당황스럽고
또 얼마나 아팠을까

 

알 것 같다.
몸을 세우려해도 무너지고
손잡으려해도 놓치는 불구의 몸,
그 몸으로 험한 세상 헤쳐나가는
장애로 불리는 그들,
달리 보는 많은 눈들에
얼마나 실망스럽고
또 얼마나 좌절스러웠을까



몇 가닥 근육 파열되었다고
쥘힘도 잡을힘도 없어진
한쪽 팔을 늘어뜨리고
옛날을 생각해 보고
옆에도 바라보면서
몸으로 알 것 같다
조금은

 

 

'LITERA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니한티 가는 길/  (0) 2012.12.09
/겨울 기도/  (0) 2012.12.04
/갈대의 노래/  (0) 2012.10.22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는/  (0) 2012.08.31
[黑山]  (0) 2012.07.01

 

 

 

 

 

 

갈대의 노래 / 김성련

 

나른한 봄날

여린 잎으로

세상을 만났습니다

여름 내내

서로 어석이며

몸을 뒤섞었습니다

이제 가을볕 아래

푸른 옷을 벗고서야

나는 제철을 만났습니다

새하얀 나의 변신(變身)

길 가는 이 눈길을 주고

밭머리에서 산자락에서

나는 봄꽃보다

더 눈부십니다

 

지난 시간 나를 지킨 건

구할이 바람이었습니다

바람은 늘 나를 흔들어 주었고

바람 자는 고요한 시간이

오히려 어색했습니다

세상 이야기를 다 실어다 주던

바람에 온통 몸을 맡기고

나는 지금 서서히 산화(散華)합니다

하얀 날개에 실어

까만 분신(分身)

세상으로 떠나보내며

나는 가을볕의 울림 속에서

기쁨으로 흔들립니다

 

 

'LITERA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 기도/  (0) 2012.12.04
/근육 파열/  (0) 2012.10.26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는/  (0) 2012.08.31
[黑山]  (0) 2012.07.01
/자귀나무꽃 연가/  (0) 2012.06.21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는

                             김성련

하늘은 흐리고

바람은 흐르고

걸음은 흐트러진다.

웃는 사람이 없고

웃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바닥까지 내려가는 한숨,

사람이 어찌 이럴 수 있느냐는

아니 사람만이 이럴 수 있다는 절망.


아득한 절망은

이중철조망에 걸려 있고,

막사의 창턱에 얹혀 있고,

닳아 움푹 패인 계단에 묻어 있고,

드디어

가스실을 거쳐 소각로를 거쳐

검붉은 굴뚝 끝에 머물다가

굴뚝을 타고 내려와 바닥으로 깔린다.


폴란드 땅 아우슈비츠는

불행히도 유럽의 중심.

그 중심으로 영문도 모르고 실려와

더 내려갈 수 없는 바닥까지 내려가,

그 바닥의 종점인 죽음까지 내려가,

그러고서도 사람된 것이 서러워

떠나지 못하는 고혼들이 떠돈다.

헝클어진 금발 머리에

구겨진 붉은 숙녀화에

동그란 테의 안경에

전 재산 챙겨넣은 가방에.


프란츠, 벤야민, 사라, 야곱, 파스테르나크

‘클레멘트 헤드비히 1898.10.8’

'LITERA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근육 파열/  (0) 2012.10.26
/갈대의 노래/  (0) 2012.10.22
[黑山]  (0) 2012.07.01
/자귀나무꽃 연가/  (0) 2012.06.21
문학답사  (0) 2012.06.03

 

김훈의 장편소설 [黑山]을 읽다.

멀지 않은 140년전의 그들의 신앙과 순교.
피가 튀고 살이 찟기는 그 가운데 내가 있었다면,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주여, 이제 섬마 섬마 섬마로 혼자 서서,
따로 따로 따로 걸음으로 주님께 걸어가옵니다.
주여 손을 잡아 주소서" - 황사영의 기도

 


'LITERA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갈대의 노래/  (0) 2012.10.22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는/  (0) 2012.08.31
/자귀나무꽃 연가/  (0) 2012.06.21
문학답사  (0) 2012.06.03
/사려니숲길에 가보셨나요/  (6) 2011.12.16



자귀나무꽃 연가(戀歌)

 

'꽃이 참 곱네'

'자귀나무꽃이야'

'꽃술이 꼭 공작 같애'

'정말 그렇지'

 

여자는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

'향기도 너무 좋다!'

 

해지는 어스름

자귀나무 잎도 다정히 포개졌다

 

'LITERA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는/  (0) 2012.08.31
[黑山]  (0) 2012.07.01
문학답사  (0) 2012.06.03
/사려니숲길에 가보셨나요/  (6) 2011.12.16
/손톱을 깎으며/  (0) 2011.10.19

2012. 6. 2(토) 독서교과연구회 문학답사

남양주 마재마을의 다산박물관에서


솜사탕 사세요


두물머리의 호숫가


보리가 익어 갑니다


잔아문학박물관에서 - 즐거운 대화


괴테 테라코타상


박물관 일우


황순원소나기 마을에서


잠시 내린 인공 소나기에

'LITERA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黑山]  (0) 2012.07.01
/자귀나무꽃 연가/  (0) 2012.06.21
/사려니숲길에 가보셨나요/  (6) 2011.12.16
/손톱을 깎으며/  (0) 2011.10.19
高仙芝 安西四鎭節度使  (0) 2011.09.08

 

2011. 12. 16. 제주도 '사려니숲길'(10km)

原始의 숲이 연출하는 畏敬의 極上을 걷다

天地는 아득히 눈만 내리고.....

 












사려니 숲길에 가보셨나요

김성련

 

사려니 숲길에 가보셨나요

아무도 손대지 않은 곳

누구라도 갈 수 있는 곳

 

길은 길로 이어지고

숲은 숲으로 펼쳐지는데

백설(白雪)로 울리는 진동(振動)

묵언(黙言)으로 올리는 기도(祈禱)

생명(生命)으로 어울어진 극상(極上)

 

사랑하는 사람은 둘이라도 좋으리

사랑 잃은 사람은 혼자라도 좋으리

늘 그리운 친구라면 더욱 좋으리

 

사려니 숲길에 가보셨나요

그 곳에 서서

새소리, 바람소리, 숲소리에

귀 기울여 보세요

 

사려니

사려니

끊임없이 울리는......


'LITERA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귀나무꽃 연가/  (0) 2012.06.21
문학답사  (0) 2012.06.03
/손톱을 깎으며/  (0) 2011.10.19
高仙芝 安西四鎭節度使  (0) 2011.09.08
/달맞이꽃/ [月見草]  (0) 2011.08.06


손톱을 깎으며

김성련

 

손톱을 깎는다

몸은 자라기를 멈췄는데

손톱은 수시로 자란다

무시로 일어나는 근심처럼

손톱은 자나깨나 자란다

근심을 잘라내듯 손톱을 깎는다

 

한 쪽에서 시작하여

조금씩 돌아간다

너무 짧아도 아프고

길거나 각이 져도 안 된다

돌려 깎는 마지막

손톱깎이의 한 끝이

틈을 파고 들어간다

그래도 남는 꺼스렁이

잘못 자르다가는

연한 살을 다칠 판이다

 

결국은 잡아뗀다

피가 배고 곧 붓는다

욱신거리고 부딪치면

자지러지게 아프다

번번이 당하고서도 또

일을 저지른 것이다

서두르지 말고 차분히

잘라내야 할 것을

순간에 저지르고

여러 날을 고생한다

 

우리네 매사가 이러하리니

끝마무리를 잘 해야 하리니

경대 앞의 젊은 어머니

정성으로 머리 빗어

쪽 짓고 비녀 꼭 지르듯

 

 

'LITERA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학답사  (0) 2012.06.03
/사려니숲길에 가보셨나요/  (6) 2011.12.16
高仙芝 安西四鎭節度使  (0) 2011.09.08
/달맞이꽃/ [月見草]  (0) 2011.08.06
这条小鱼在乎  (0) 2011.07.2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