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다오 랑예타이에 있는 진시황이 서복에게 불로약을 구해오라며 보내는 장면 상>


“아는 만큼 보고 보는 만큼 느낀다”는 90년대 한국에 문화여행의 열기를 불러왔던 유홍준 교수의 말로 기억한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소쇄원, 다산초당 등 남도 땅은 물론이고 예산, 경주, 낙산 등 수많은 곳에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소중한 역할을 했다. 유홍준 선생의 가장 큰 작업은 그 지역에서 활동했던 인물이나 역사를 환기해주는 역할이었다. 사실 아무리 아름답고, 위대한 유산이라도 그곳의 이야기가 없으면 여행객들이 그곳을 받아들이는데 많은 한계가 있다.

이글을 읽는 이들 가운데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을 여행한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 여행길에서 가장 기억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볼까. 대부분은 별다른 여행의 추억이 없을 것이고, 일부는 임시정부 유적 등이 기억난다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베이징과 상하이는 우리나라에 있는 유적지에 비기지 못할지 못하겠지만 수없이 많은 우리 역사와 인연이 있다. 필자는 베이징의 곳곳에서 선조들의 온기를 느낀다. 진스팡지에, 스텅후통, 따헤이후 후통 등에서는 빈궁한 삶 가운데도 민족의 독립의지를 잃지 않았던 단재 신채호 선생의 숨결을 느끼고, 징산공원 옆 후통에서는 ‘아리랑’으로 세계를 감동시킨 김산을 만난다. 류리창에서는 당시 청나라의 거대함을 보고 탄식하던 연암 박지원을 만나고, 우리 사신들이 머물던 옥하관(명대는 회동관)이나 왕푸징 교당(동당)을 보면 소현세자나 강빈의 비통함이 느껴진다. 그럴 때 베이징은 그저 지나가는 한 여행지가 아닌 나의 심연으로 들어와서 나를 역사의 한 줄기 속으로 집어넣는 느낌을 얻는다.

상하이도 마찬가지다. 1894년 상하이를 가로지르는 쑤저우허 옆 한 여관에서 홍종우에게 살해당했던 김옥균으로부터 시작된 우리와 상하이의 만남은 그후 너무나 깊었다. 1919년 우리 임시정부가 만들어진 이후에는 수많은 이들이 상하이를 경유해서 독립의지를 불태웠다. 이런 역사는 상하이 등 대도시만이 아니다. 이런 역사와 이야기 속에서 중국을 만나면 그 장소는 더욱 더 의미가 깊어진다. 이런 이야기는 최근 유행하는 콘텐츠 산업에서도 가장 중요한 분야인 스토리텔링이다.

그럼 중국인들에게 한국 땅은 어떤 의미일까. 또 어떤 이야기가 한국을 그들에게 친숙하게 느껴지게 할까. 우선 남도의 경우 서복(徐福, ?~?)이라는 흥미로운 인물이 있다. 중국 진나라 때의 방사로 알려진 서복은 진시황제(始皇帝)가 불로불사(不老不死)약을 구하라고 동방으로 보낸 인물이다. 그는 진시황의 지시로 수천 명의 동남동녀(童男童女)를 데리고 영약(靈藥)을 찾아 바다 끝 신산(神山)을 찾아 배를 타고 떠났다. 그는 곧바로 제주도에 도착했고, 이후 경남 남해 등지를 거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홀연히 사라져버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수많은 영화를 통해 증명됐듯 진시황의 이야기는 수없이 반복되는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의 소재다. 거기에 제주도는 불로불사나 영주산(瀛州山)의 신성한 이미지가 있어서 수많은 이야기의 소재다. 또진시황은 돌아오지 않은 서복이 괴씸해서 무사를 보내어 그를 잡기했다고 하니 얼마나 변화무쌍한 이야기가 가능할까. 그냥 아름다운 경치로만 제주도를 이해한 이들과 서복이라는 인물을 통해 건강, 신성한 이미지를 같이 얻는 여행자는 다를 것이다.

필자는 2년전 제주시에 여행 비수기를 이용해 ‘서복 영화제’를 개최해 여행객들을 모으고, 궁극적으로는 건강문화제나 중일과 같이하는 서복 콘텐츠개발 등을 제안한 적이 있다. 만약 영화나 드라마 등을 통해 중국인들에게 제주도가 서복과 매칭될 경우 그 각인효과는 휠씬 클 것이다.

한라산이 영주산의 이미지가 있다면 지리산은 산심산의 하나인 방장산(方丈山)의 이미지가 있다. 중국인들의 신화속에서는 서방의 곤륜산과 동방의 삼신산은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이야기 속에서 삼신산에는 높이 3만 리에 금과 옥으로 지은 누각(樓閣)이 늘어서 있고, 주옥(珠玉)으로 된 나무가 우거져 있으며, 그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불로불사(不老不死)한다고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 중국인들에게 삼신산은 무릉도원과 같은 이미지다. 최근에 둘레길로도 부각되는 지리산은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차를 비롯해 음식, 레저 등 갖가지 요소를 갖고 있다. 또 여수 엑스포와도 연결되어 여행 중심지로 부각될 가능성이 충분하지만 중국인들을 감동시킬 이야기가 부족한 상황이다. 이런 이 지역에 방장산의 이미지와 더불어 음식의 다양한 스토리를 만들 필요가 있다. 또 전라도 광주(혹은 나주)는 중국 당대 음악계의 거장인 정율성의 고향이다. 전라도는 몰라도 정율성을 아는 이가 많은 만큼 정율성의 스토리를 살릴 필요가 있다.

그럼 경상도는 어떨까. 보통 우리나라 여행사들은 중국 관광객이 오더라도 대부분 우리나라가 선호하는 석굴암이나 불국사 등지를 주요한 여행코스로 넣는다. 실제로 중국 최대의 여행포털인 씨트립에 소개된 경주의 여행지는 경주박물관을 비롯해 석굴암, 불국사 등지다. 사실 이런 여행지들이 중국 여행객들에게 어떤 인상을 줄지는 좀 의문이 든다. 우선 중국에는 둔황, 롱먼, 윈깡 등 3대 석굴을 비롯해 수많은 석굴 문화가 있고, 4대 불교 명산을 비롯해 엄청난 규모의 사찰이 있다. 물론 필자 역시 그런 거대 석굴과 경주의 석굴암을 비교하는 우는 범하지 않는다. 단지 중국 여행자들에게 공감을 말하는 것 뿐이다.

그런데 잘 기억해보면 경주에는 중국인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엄청난 여행콘텐츠가 있다. 바로 김교각 스님이다. 필자가 이 공간을 통해 ‘중국 진출 최고의 성공사례는 신라왕자 김지장’이라는 글을 통해 자세히 소개한 김교각 스님은 바로 경주가 수도였을 때 신라의 왕자였다.

김교각 스님이 지장보살의 현신으로 추앙받는 안후이성 지우화산(九華山)은 중국 4대 불교명산 가운데도 가장 신령한 산으로 손꼽힌다. 다른 산들이 문수보살(우타이산)이나 관세음보살(푸투오산), 보현보살(어메이산) 등 불교의 주요한 인물을 모신 반면에 지우화산은 현신이 있는 산이기 때문이다. 경주가 만약 중국인들에게 문화적으로 어필하기 위해서는 김교각 스님에 관한 장소들을 많이 개발해야 한다. 현재 경기도 남양주에 ‘김교각 기념관’이 있지만 경주에도 이런 전시관을 만들고, 생가 등도 복원하면 중국인들에게 경주가 결코 낯선 땅이 아니라는 인상이 들 것이다.

또 씨트립에서 경주의 오락거리를 살펴보니 승마장, 활쏘기, 전통오락 등이 있다. 너무나 상투적인 오락거리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그

밖에 야외 공연장이 있는 데 주요한 공연은 ‘전통춤이나 악기, 퓨전 음악’이다. 물론 아주 좋은 문화 콘텐츠다.

하지만 필자는 경주시가 의지가 있다면 대형 버라이어티쇼를 한번 기획해 봤으면 싶다. 중국에 가면 항주의 '인상서호'를 비롯해 구이린의 ‘인상유삼제’, 리지앙의 ‘인상여강’ 등 대형 야외 공연이 있다. 이 공연들은 천연의 배경에 조명으로 배경을 삼고, 현지인들이 참여해 공연을 하는데, 그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상품이 됐다. 야외공연이 아니라도 괜찮다. 경주역시 보문호수라는 소중한 공간이 있기에 야외공연이 가능할 것이다. 이게 부담된다면 상설 공연장도 괜찮을 것이다. 베이징의 ‘금면왕조’나 ‘북경지야’ 항주의 ‘송성’ 등을 비롯해 많은 곳에서 독특한 대형 공연을 만들었다. 서울 올림픽이나 2002년 월드컵에서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인 우리가 중국의 이런 공연들보다 못한 공연을 할 이유는 없다. 또 스토리도 김교각 스님의 이야기 등 각 나라간의 아름다운 교류 이야기나 신화와 같이 보편적인 것으로 할 경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감동하기 충분할 것이다. 또 개관한 후 일년에 한두건의 대형행사가 열리는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도 서복을 소재로한 상설 공연이 있다면 많은 이들에게 호응을 받을 것이다.

사실 필자의 경험에서 경주 여행은 그다지 달갑지 않다. 수학여행을 갔다가 들른 식당에서 받아든 비빔밥이 너무 맛이 없어서 일행중 한명이 그걸 거꾸로 업자, 뒤이어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 위로 그릇을 업고 나왔던 안좋은 기억이다. 우리 여행자들조차 이런 인상의 경주가 국제적인 여행도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런 문화 콘텐츠를 보강해야 할 것이다.

만약 이런 공연이 생길 경우 수학여행을 가는 이들도 대부분 이 공연을 보고, 신라시대의 아름다운 한중 교류와 중국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필자가 듣기에 장예모 감독이 최근 김교각 스님의 이야기를 콘텐츠화할 마음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어찌보면 중국 최대 문화 인물의 힘을 빌어서 경주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문제는 우리쪽에서도 이 콘텐츠 제작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잘못하면 그 영화속에 신라는 김교각을 몰아내기 위한 궁중의 암투와 비정한 인물들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江苏 兴化

河有万湾多碧水,田无一垛不黄花

"강은 만 갈래 물길마다 푸르고,논밭 이랑마다 온통 유채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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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는 전통 악기 얼후(二胡)

올 8월은 유난히도 덥다. 베이징도 그렇다. 필자는 베이징에서 한 중국어 학습지 회사의 중국언어문화캠프를 진행했다. 8박9일 동안 전국 각지에서 모인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학생 190명을 데리고 움직이는 캠프는 정말이지 긴장의 연속이다. 하루에도 수명씩 나타나는 아픈 친구들로 인해 걱정은 태산 같고, 혹시 야외 활동에 길을 잃을까 노심초사다. 하지만 짧은 기간 동안 아이들이 중국의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중국이 얼마나 변하고 있는지 알아가는 모습을 보면 한동안의 고생은 금방 씻긴다.

그런데 이번 캠프에서 우리가 역점을 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얼후(二胡)' 배우기다. 얼후라는 말에 얼른 어떤 악기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떨림이 강한 얼후의 음을 기억하면서 회상에 잠기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필자가 얼후라는 악기를 접한 지는 7년 남짓 됐다.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중국 장애우 공연단을 취재하는 일을 동행했는데 그 단원 중에 한 분이 얼후 연주자였다. 지휘를 하는 저우저우나 아름다운 무용수 타리화도 있었지만 정신지체 장애우인 그 얼후 연주자가 유독 기억에 남은 것은 그 얼후의 음색 때문이었을 것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전통악기에는 피리(笛)나 비파(琵琶), 호금(胡琴), 쟁, 북(鼓) 등이 있지만 많은 이들이 얼후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두 줄의 단조로운 악기지만 얼후는 중국인들이 가진 독특한 슬픔의 정서를 지니고 있다.

얼후가 중국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당나라 때다. 그 때는 해금(奚琴)으로 불리었는데 송(宋)나라 때 학자 진척는 악서(樂書)에서 해금이 북쪽 오랑캐의 악기라고 적었으며, 당대 시인 잠참도 “사령부에 술상 차려놓고 돌아가는 객 전송하니, 호금(얼후) 비파 오랑캐피리 소리라고 묘사했다. 이후 얼후는 장강 중하류에서 유행해 난후(南胡)로 불리기도 했으며 주로 중고음역을 담당했다. 얼후는 근대에 들어서 중국의 전통악기의 중심에 올라섰다. 샘에 달이 비추다(二泉映月), 은송, 소군 변경에 가다(昭君出塞) 등으로 유명한 아빙(阿炳 1893~1950)과 류톈화(劉天華 1895-1932) 같은 걸출한 얼후 연주자가 나오면서 그 명성이 더해졌다.

얼후는 기본적으로 현악기 구조다. 가령, 바이올린으로 봤을 때 위쪽 머리에 해당하는 것이 금축(琴軸)이다. 다음으로 목에 해당하는 것이 금간(琴杆)이다. 앞판 뒷판 등 몸통을 금통(琴筒)으로 부른다. 금통은 장고처럼 앞뒤가 있는데 앞은 구렁이 등 뱀의 가죽으로 만든다. 줄의 마찰이 이 구렁이 가죽에 닿아 소리가 나는 만큼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혈과 가죽은 직접 만나지 않고 사이에 나무로 된 작은 금마(琴碼)라는 보조장치를 끼운다. 이 재질에 따라 음색이 많이 달라진다. 지금은 다양한 재료들이 사용되어 악기의 특색을 만들기도 한다. 또 줄과 목 사이에는 천근(千斤)을 두어 음색을 조절한다. 보통 면(綿)이나 비단을 사용하지만 최근에는 유기유리(有機硫璃)나 소료(塑料)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얼후를 소리를 내게 하는 활은 궁자(弓子)라고 불린다. 줄과 만나는 부분은 수십가락의 나일론으로 만드는데, 이 나일론줄에 송진을 묻혀서 접촉 강도를 조절한다.

얼후의 소리가 나는 원리는 활이 금속줄과 마찰하면서 나는 진동이다. 이 진동은 금마를 지나서 금통의 가죽에 닿아 소리를 내게 된다.

얼후의 명곡은 1900년대 초반에 명성을 떨친 류톈화의 10대 명곡이 여전히 꼽힌다. 병중음(病中吟 1915), 월야(月夜 1918), 공산조어(空山鳥語 1918), 고민의 노래(1926), 비가(悲歌1927), 양소(良宵 1928), 한거음(閑居吟 1928), 광명행(光明行 1931), 독현조(獨弦操 1932), 촉영요홍(1932) 등이다. 또 아빙의 은송(隱松 1939), 이천영월(二泉映月), 한춘풍곡(寒春風曲)도 명곡으로 연주된다.

얼후는 경극은 물론이고 치엔콩(섬서 등 중국 서북지역의 전통 공연), 이쥐(허난성 주변의 전통 공연), 위에쥐(광둥성의 전통 공연), 추안쥐(쓰촨 주변의 전통공연) 등에도 대부분 부속 악기로 쓰인다.

이렇게 광범위하게 쓰이는 것은 얼후가 그 만큼 중국 악기 가운데 보편성을 띠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번에 우리 캠프를 지도한 이들은 중국에서 저명한 얼후 전문가들이었다.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중국 얼후 경연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얼후에서 제대로 된 소리를 내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두 줄의 현을 잘 조절하고, 활에 송진을 잘 묻혀서 소리를 내는 것은 고된 노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교육을 맡은 분은 3시간 정도의 교육이면 아이들이 간단한 곡을 연주할 수 있다고 호언했다.

그리고 3번의 교육시간이 지나자 아이들은 정말 짧지만 음악을 연주하고, 나름대로 음색을 파악하고 있었다.

사실 필자는 음악에 대해서 문외한인 만큼 얼후의 음을 제대로 들을 수 없다. 하지만 얼후의 구조나 음색이 주는 독특한 느낌은 중국인의 심사를 이해하는 작은 단초가 되기도 한다.

얼후의 음색은 대부분 구렁이 가죽으로 된 금통에서 나온다. 그 음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나는 그 구렁이라는 파충류에 유독 마음이 간다. 사실 많은 뱀의 종류에서 왜 중국인들은 구렁이를 얼후의 가죽으로 사용했을까. 구렁이는 그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뱀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크다. 또한 크기는 하지만 독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게 구렁이의 특징이다. 필자는 여기서 구렁이 가죽이 중국인들과 소리로 접속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얼후와 고향이 비슷한 몽골에는 마토우친(馬頭琴)이라는 악기가 있다. 몽골어로 ‘머린-호르’로 불리는 이 악기는 슬픈 이야기로도 유명한데, 마토우친은 뱀 가죽의 떨림으로 나는 것이 아니라 기타처럼 줄과 공명통이 어울려서 소리를 내는 악기다. 비슷한 악기지만 음을 만드는 것에서 큰 차이가 중국과 몽골의 차이로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중국문화카페(http://cafe.naver.com/chinatour.cafe)

아빙이 연주하는 월야

첨부파일 yueye.mp3

베네치안 호텔 2층. 실내 천정에 푸른 하늘을 담았다



베니스의 곤돌라를 재현


카페의 손님들


천장화1


천장화2


호텔 로비


중심 홀


연주단. 주변은 대형 카지노인데 촬영 금지


러시아 연주단


객실


포루투갈식 식사


광동성과 마카오를 겸한 부호들의 이중 번호판


일행과 함께


돌아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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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셔맨 부두 마을



마카오의 좁은 골목


몬테 요새의 가족 풍경


포르투갈의 요새인 몬테 요새


요새의 대포와 리스본 호텔


성 바울 성당 파사드


파사드 뒷면


마리아상과 천사상 부조들


모여든세계의 관광객들


파사드를 배경으로


엄청 붐비는 세나도 거리


성 도미니크 성당


성당 내부


성모자상


예수상


마카오 정부 청사


주교좌 성당앞 광장


포루투갈은 마카오를 반환하며 모든 거리를 포장하고 철수했다고 한다.

무늬는 모두 바다를 상장하는 것들로 해양국가 포루투갈의 상징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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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국 민속촌



한산사(寒山寺) 모형 앞에서



대형 민속쇼 '용봉무중화'(龍鳳舞中華)



혼을 빼는 아름다운 무희들



마카오 가는 배 항성(恒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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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심천-마카오 여행 : 2011.2.15-18.


홍콩 거리


리펄스 베이


인연석


장수교


오션 파크


해양관



점보 레스토랑


점보 레스토랑2


빅토리아 산정의 야경이 일품이라는데 날씨가 너무 흐려서

야경 2

홍콩섬 야경


몽콕 야시장

황대선 도교사원


제비뽑기 기도로 나온 숫자를 가지고점술사가 점을 친다


가는 곳마다 복숭아꽃이 장식되었다




홍콩한국국제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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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중앙학교

중국공산당의 경쟁력 두 번째 글을 올리는데
참으로 오래 걸렸습니다.
이런저런 사연이 있었지만 각설하고,
두 번째 글로는 중국 리더십의 사관학교라고 할 수 있는
중국공산당중앙학교, 약칭 중앙당교에 관해 소개해 드립니다.

먼저 퀴즈로 시작하지요.
베이징대학의 도서관 사서로일한 적이 있는
마오쩌둥이 교장을 역임한 학교는 어디일까요.
마오의 후계자 화궈펑(華國鋒)도 이 학교 교장으로 있었고,
현재 중국의 1인자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10년 가까이 교장이었지요.
내로라하는 중국의 최고 지도층 인사가 아니고선
'교장이 되려는 꿈'은 꾸지도 말아야 될 듯 합니다.
현재의교장은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이고요.

정답은 아시겠지만 중국공산당중앙당교(약칭 中央黨校)입니다.
중국에서 고급간부로 성장하기 위해선 꼭 거쳐야 하는 관문입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은 지도상에 표시되지 않았습니다.
물론전화번호부에도등록되지 않았구요.
당 간부를아주 은밀하게 양성하고 싶어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중앙당교가 이제 베일을 벗고 있다고 합니다.
사영 기업가는 물론 중국 내 다국적기업의 경영층에게도 수업을 합니다.

베이징시 하이뎬구에 위치한 중앙당교의 학생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뉩니다.
고급 당 간부, 청년 간부와 소수민족 간부, 이론 공부하는 석·박사생 등입니다.

고급 당 간부 반은 다시 장관급반, 청장급반, 현서기급반 등으로 갈라지는데
여기서초점은 장관급반입니다.

장관급반은 당중앙 조직부가 직접 챙깁니다.
당 조직부가 각 성이나 정부 기구에 입학생 수를 할당해 통보하면
해당 부서에선 미리 준비해 놓은 순서에 따라
고위 간부들을 중앙당교에 입학시킨다고 합니다.

장관급반 학생들은 상하이 시장, 중국인민은행장 등 장관급 인사들이지만
중앙당교에선 그저 학생일 따름입니다.
한때권력서열 6위까지 올랐던 황쥐(黃菊) 전 국무원 부총리가
상하이 시장으로 있을 때중앙당교에서 공부하다 특별 외출을 위해
상하이 시위원회 조직부의 도장까지 받아 온 이야기는 아직도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입니다.

약 4개월 과정에 50명 가량이 모이는 장관급반에선 무얼 배울까요.
핵심은 '3개 기본(三基本)'과 '5개 당대(五當代)'라고 합니다.
'3개 기본'은 정신 무장을 위한 성격이 짙습니다.
'마르크스주의 기본문제' '마오쩌둥사상 기본문제' '중국특색사회주의이론체계 기본문제' 등

'기본기를 다지려는 듯' 다소딱딱한 과목들이지요.
반면 '5개 당대'는현실에서벌어지는문제들을 다룹니다.
'당대 세계경제' '당대 세계과학기술' '당대 세계법제' '당대 세계군사'
'당대 세계사조' 등. 최근엔 '당대 세계민족종교'가 추가됐습니다.
중국 사회에광범위하게 번지고 있는 종교 열기를 반영하는 것이지요.

하루 일과는 오전 7시~7시30분 아침 식사, 오전 수업,
오후 자습, 오후 6시~6시30분의 저녁 시간 이후엔 자유입니다.
숙소는 3성급 호텔 방 수준이라고 합니다.

중앙당교의 모든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지만
장관급반 학생들은 특별 대우를 받는지 '과제 연구조사'로 대신합니다.
6~7명이 조를 짜 직접 현장 조사를 한 뒤 보고서를 내는 형식이라고 합니다.
장관급반은 학생들의 신분이 워낙 높은데다 각 분야 전문가가 많아
스트레스를 받는 건 오히려 중앙당교 교수진이라고 하지요.
교수들은 장관급 학생들로부터 평가를 받습니다.
10점 만점에 9점 미만이면 '강의 사고'로 치부된다고 하네요.

중앙당교가 세간의 주목을 받는 건 우선 당 고위 간부가 양성되는데다
이들이 중국 최도 지도자와 끈끈한 관계를 맺게 되는곳이기 때문입니다.
차세대 지도자 시진핑은 입학식과 졸업식은 물론
수시로 중앙당교를 찾아 장관급 인사들과 인맥을 다집니다.
평시엔 중국의 최고 집단 지도부를 구성하는
당중앙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찾아와 학생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게다가 각 부서에서 모인 장관급 인사들이서로 공부하면서
'동창생'이라는 아주 그럴 듯한 '학연 꽌씨(關系)'를 형성하는 것이지요.

중앙당교는 치국(治國) 방침이 발표되는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1978년 5월엔 상무 부교장이던 후야오방(胡耀邦)의 지지 아래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기준'이라는 논문이
중앙당교 간행물을 통해 발표됩니다.
이를 계기로 '마오쩌둥이 생전에 내린 결정과 지시는 모두 옳은 것'이라고
주장하던 화궈펑 당시 중앙당교 교장을 축출하는작업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2004년엔 후진타오 주석이 장관급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치국 이념인 '조화사회(和諧社會) 건설'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후 자신도1983년에 중앙당교 청년 간부반에서 직접 연수를 했습니다.

이때문에 중앙당교 입교는 최고 지도부에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을 수 있는 좋은기회로 간주됩니다.
하나 학업 성적이나 품행이 불량하면 제적되기도 합니다.
당중앙조직부가 '연락원'으로 파견한 관찰자가 수업을 따라다니며
학생들을일일이 체크하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한 학기에 약 1600명을 선발하는 중앙당교에 입학한다는 것 자체가
중국에선 튼튼한 출세의 끈을 잡는 것과 같은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앙당교=1933년 3월 마르크스 사망 50주년을 기념해 장시(江西)성
루이진(瑞金)에 세운 '마르크스 공산주의 학교'가 모태가 됐습니다.
1935년 11월 중앙당교로 이름을 바꿨구요.
마오쩌둥, 류사오치(劉少奇), 화궈펑, 차오스, 후진타오(1993.2~2002.12),
쩡칭훙(曾慶紅)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쟁쟁한 인사들이 교장을 역임했습니다.

2007년 12월부터는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교장을 맡고 있습니다.
중국공산당 최고학부로 교훈은 마오쩌둥이 만든 '실사구시(實事求是)'입니다.

<중앙당교 역대 교장>
(중국 건국전)
1933년 리웨이한(李維漢) 당중앙정치국 상임위원
1935년 둥비우(董必武) 당중앙당무위원회 서기
1937년 리웨이한
1938년 캉성(康生) 당중앙서기처 서기
1939년 덩파(鄧發) 당중앙직공위원회 서기
1942년 마오쩌둥(毛澤東) 당혁명군사위원회 주석
(중국 건국후)
1949년 류사오치(劉少奇) 당중앙서기처 서기
1953년 카이펑(凱豐) 당중앙선전부 부부장
1954년 리줘란(李卓然) 당중앙선전부 부부장
1955년 양셴전(楊獻珍) 중국과학원 위원
1961년 왕총우(王從吾) 당중앙감찰위원회 부서기
1963년 린펑(林楓) 전인대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1977년 화궈펑(華國鋒) 국무원 총리·당중앙위원회 주석
1982년 왕전(王震) 국무원 부총리
1987년 가오양(高揚) 당중앙고문위원회 위원
1989년 차오스(喬石) 당중앙정치국 상임위원
1993년 후진타오(胡錦濤) 당중앙서기처 제1서기
2002년 쩡칭훙(曾慶紅) 당중앙정치국 상임위원
2007년~현재 시진핑(習近平) 당중앙정치국 상임위원

유상철의 중국산책 http://blog.joinsmsn.com/ysc08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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