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14 - 18(4박5일) 동양의 그랜드캐년이라는 태항산을 가다. 꼬꼬부부와 함께

濟南은 샘물의 도시 泉城으로 4대 샘물이 있다. 도심에서 샘물이 솟는 흑호천을 찾았다

동상에서 물이

여기가 흑호천 黑虎泉. 수량이 엄청나다

세실의 기념 포즈

두 '이야기 할머니'가 정답게

해방각을 배경으로

넷이 함께

수양버들이 아주 아름답다

물이 맑아 속이 보이는 가운데 중국답게 유람선을 띄우고

샘물을 길어가는 사람도 있다

누각

뒤에는 해방각

대명호 大明湖. 시내의 샘물들이 모여들어 형성된 도심의 호수. 자연환경이 부럽다

'아주 좋아요!'

중국에 가서도 맨발걷기를

대명호 문루에서

늦은 연향도 풍긴다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회랑으로 이어진다

대숲길에서

맨발의 청춘

다리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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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24 - 27  중국 황산, 그리고 항주 상해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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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주의 거리

항주 대한민국임시정부 터에서 김구를 기리며

조선족 안내원이 안내를 잘한다

아내와 기념 촬영

감사합니다!

구름속의 황산

구름은 짙고 사람은 많고

많아도 너무 많다

그래도 기념은 남겨야

천해 지역

여기는 광명정, 해발 1860 미터

구름의 여전하고

황산의 명물 비래석飛來石도 구름속에

인증 샷

소나무

구름속의 정자

조금 보이나요?

조금씩 열리다가 그것으로 끝!

황산시의 인상, 흰 벽에 2층집들

정갈하도다!

항주의 서호에서

포즈 좋고

서호와 뇌봉탑

상해의 건물들

연무 속의 황포강과 동방명주탑

대단한 국제도시 상하이!

도심 모습

예원 옛 거리

인산인해

예원 구곡교와 연못

상해 신천지, 옛날 프랑스 조계

거리가 멋지다

가로수도 멋지고

황포강 뱃놀이와 야경

 

 

 

내가 좋아하는 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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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집서 63세 농부가 뽑은 양고기 국수 대접받다

 

홍은택의 중국 만리장정 <25> 허난성 싼먼샤(三門峽)의 동굴집, 야오둥(窯洞)

 

 

 

 

황토고원 일대 야오둥(窯洞)은 단열과 보온효과가 좋고 경작지를 전용할 필요가 없어 친환경적인 주거양식으로 주목받는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도시로 가버려서인지 버려진 야오둥이 많아 들어가볼 기회가 없다가 허우스스 집에 쳐들어갔다(작은 사진).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가장 큰 행복과 공포를 차례차례 느낀 날이었다. 허난(河南)성 쌴먼샤(三門峽)에서 310번 국도 대신 314번 성도(省道)로 핸들을 꺾으면서 하루치고는 파란만장한 여정이 시작됐다. 성도를 택한 이유는 어쩌면 황허를 볼 수 있겠다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지도로 보면 며칠을 동진했지만 아직 황허에 다가서지 못해 약간 조바심이 났다.

황허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지만 그랜드 캐년을 연상할 만큼 깊고 넓은 계곡들이 펼쳐진다. 고양이 뺨만 한 평지라도 있으면 모두 개간돼 녹색이나 연두색을 띠고 있다는 점이 황량한 캐년과 다르다. 수확기가 다가온 밀밭에는 농부들이 보이지 않았다. 길은 계곡의 결을 따라가면서 말발굽을 겹쳐놓은 소용돌이처럼 휘돌았다. 역풍이 횡풍으로, 횡풍이 순풍으로, 다시 횡풍으로, 역풍으로. 그리고 오르막에서 내리막으로, 내리막에서 오르막으로 시시각각 변한다. 은하철도 완행선이다.

‘나부터 여자아이를 아끼고 사랑하자(從我做起關愛女孩)’
‘토지를 개발해서 자손을 복되게 하자(土地開發造福子孫)’

 

 

1. 310번 국도 대신 314번 성도로 갔다가 거대한 채석 지대로 들어가는 바람에 혼쭐이 났다. 무거운 돌을 운반하는 트럭의 하중에 콘크리트 포장이 주저앉아서 내리막길에서도 속도를 낼 수 없었다. 2. 중국에서는 도시일수록 광고 간판이, 농촌일수록 구호 간판이 많다. ‘나부터 여자아이를 아끼고 사랑하자’는 구호. 아직도 농촌에서는 남아 선호현상이 많다는 것을 말해준다.
외진 동네일수록 구호가 많다. 잇따른 구호에 불안이 가라앉는다. 만약 강도짓을 한다면 여기만 한 곳도 없다. 죽여서 계곡 밑으로 던져버리면 독수리의 밥이 될 테고 내가 왔다는 건 먼 훗날 화석으로 입증될 것이다. 고고학자는 내 두개골을 보고 오히려 나를 이민족의 침입자로 판정할지도 모른다. 억울한 내 원혼은 이 계곡을 떠돌고…. 반대로 여기처럼 ROI(투자대비수익)가 안 나오는 곳도 없을 것 같다. 이렇게까지 외지고 험한 곳에 자전거와 짐을 끌고 오는 사람을 기다리다간 굶어 죽을 수도 있다. ‘그럼 안전한 곳이네.’ 그렇게 결론을 내려버린다. 구호를 보면 정부의 손길이 여기에도 미치고 있지 않은가. 가끔 뒤에서 과속하며 쫓아오는 오토바이와 트럭이 신경을 쿡쿡 찔렀지만 평안함이 무너질 만큼 자주 다니지는 않았다.

나는 산시(陝西)성에서부터 꼭 들어가보고 싶은 집이 있었다. 친링산맥을 넘을 때부터 자주 출몰하는 야오둥(窯洞). 산비탈을 파고 들어간 집이다. 인류가 혈거인 출신이어서 그런지 동굴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생래적 호기심을 갖고 있다. ‘인디애나 존스’를 비롯한 영화적 상상력의 원천이기도 하다. 중간에 몇 군데 가봤는데 버려진 듯 닫혀 있었다.

마오쩌둥, 대장정 때 야오둥서 폭격 모면
쌴먼샤시의 후빈(湖濱)구에 속해 있는 촨나오(泉腦)촌은 마을 전체가 야오둥으로 이뤄져 있었다. 야오둥들은 황토 담벽의 오솔길에 면해 있다. 요방이 세 개 있는 한 야오둥에서 말소리가 새어나온다. 햇빛을 빨아들여 황토는 주황색에 가까울 만큼 눈부시다. ‘제발 나와봐야 할 텐데.’ 한 아주머니가 대문 틈으로 보인다. “두이부치(對不起:실례합니다). 사진 한 장 찍어도 돼요?”(다시 말하지만 중국에는 존칭은 있지만 존댓말이 없다)

이 소리를 들은 아주머니가 요방에 대고 소리치니까 60대로 보이는 남자가 주발을 걷고 나왔다. 이 집의 주인 허우스스(侯石師). 밭에 갔다가 점심 먹으러 들어와서 친구인 양징탕(楊景堂)과 얘기 중이었다. 들어오라고 해서 얼른 자전거를 대문 안에 들여놓았다. 주발을 양쪽으로 가르고 머리를 집어넣으니 요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높이는 3m, 폭 역시 3m 정도, 그리고 길이는 6∼7m쯤 돼서 스커드 미사일 한 기 들여놓으면 딱 맞을 격납고처럼 생겼다. 상상한 것처럼 안에서 다른 요방으로 연결되는 통로는 없다. 중국 라오바이싱(老百姓·서민)의 집이 그렇듯 방안에는 침대와 책상 그리고 서랍 달린 궤짝 두 개밖에 없어서 질박했다.

이 일대에 야오둥이 많은 건 황토고원의 지질 덕분이다. 황토여서 구멍을 쉽게 팔 수 있고, 푸석푸석한 황토는 물에 적셔 불에 구워 말리면 강화벽돌처럼 단단해진다. 황허 일대에 벽돌로 쌓은 전탑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야오둥에는 세 가지가 있다. 돌로 쌓아 만든 석체요(石體窯), 벽돌을 쌓아 만든 전요(塼窯) 그리고 허우스스의 집처럼 벼랑에 굴을 파고 문과 창을 낸 토요(土窯). 천장 격인 요정(窯頂)을 아치형으로 만들어 압력을 분산시키기 때문에 수백 년을 내려오는 다리처럼 무너지지 않는다. 집 위로 차가 지나다닌다.

이 집은 20년 됐지만 옆에 딸린 부엌의 시공 연도는 기억하지 못한다. 아득한 먼 옛날부터 있었다고 한다. 과연 서늘했다. 야오둥은 단열과 보온효과가 크고 경작지를 전용할 필요가 없으며 지형을 건드리지 않아서 친환경적이다. 세계적 건축가들이 설계한 제주도의 휘닉스아일랜드와 롯데리조트의 별장주택에 가보면 지붕 대신 평평한 대지 밑에 주택을 지어놓은 걸 볼 수 있는데 야오둥을 참고했을 것 같다.

다른 효능을 찾자면 공중폭격기 조종사들을 약 올리는 용도가 있겠다. 상공에서 맴돌다 목표를 찾지 못해 퍼붓는 그들의 욕설이 들리는 듯하다. 실제 마오쩌둥도 옌안(延安)으로 도피할 대장정 당시 야오둥에서 국민당의 폭격을 피했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수백 년 된 집들이 버려진다. 젊은이들의 이농현상 때문이다. 허우스스에게도 두 아들이 있지만 모두 대처로 나갔다. 이 집도 허우 부부와 운명을 같이하게 될지 모른다.

올해 63세인 허우스스와 65세인 양징탕은 성년 이후 농사 외에 다른 일을 해본 적이 없다. 양징탕이 몇 번 같은 질문을 하는데 사투리 때문에 알아들을 수 없어 써달라고 했다. “你國家有萍果樹, 沒有枾樹?” 빙그레 웃었다. 한국에 사과나무와 감나무가 있느냐는 질문. 천상 농부임에 틀림없다. 농사 짓기에 언제가 제일 좋았느냐고 묻자 “농사라는 게 돈 벌 때가 있느냐”며 “그래도 지금이 가장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펼쳐온 농업·농민·농촌의 삼농정책이 효과를 거두고 있음을 그들로부터 확인한다. 2600년 수탈의 역사를 안고 있는 농업세가 2006년 폐지됐다. 그것만으로 농민 한 사람당 매년 1300여 위안(약 23만원)꼴의 혜택이다. 허우스스는 농촌에 사는 60세 이상 주민은 정부로부터 매달 62위안씩 지원금도 받고 있다고 했다.

삼농정책 효과로 농촌 생활 나아진 듯
20일쯤 지나면 밀밭은 황금빛으로 물결치고 밀을 수확한 자리에 옥수수를 심을 것이다. 허우스스의 밭은 1무(666.7㎡), 양징탕은 토질이 안 좋아서 2무를 배정받았다고 한다. 올해 밀 수확이 좋을 거라고 하면서도 한국의 농민처럼 곡가에 대해 불만이다. “한 근에 1.05위안(약 190원)밖에 받질 못하니….”

그만 일어서려는데 허우스스가 내 수첩에 써내려갔다. “吃我家飯 都吃手工麵條.” 손으로 뽑은 국수로 식사를 하고 가라는 뜻이다. 그렇게 하겠다고 했더니 그는 기뻐하면서 식사를 내왔다. 자신이 수확한 밀을 직접 손으로 뽑아낸 국수라고 말할 때 농부의 고집 같은 자부심이 느껴졌다. “이거 사먹으면 얼마나 줘야 해?” 하고 묻는다. “10위안은 줘야 할 것 같다”고 말하자 그가 자신이 창출한 가치에 득의만면한 표정을 지었다. 양고기 국물에 양배추를 넣어서 담백하게 우려냈다. 맛이 지루할 때면 생마늘을 까먹는다. 거기에 큼지막한 찐빵 하나까지. 식사 후 한숨 자고 가라고 했지만 몐츠()현까지 가려면 지체할 수 없었다.

오후에 맞바람이 거세졌다. 멀리서 산 하나를 반으로 쪼개듯이 작살내고 있는 게 보였다. 그것이 신호탄이었다. 나는 거대한 채석장에 들어선 것이었다. 돌을 나르는 화물차들은 흙먼지와 매연을 내뿜으면서 도로를 짓무르고 있었다. 내리막에서도 브레이크를 꼭 잡고 시속 10㎞로 서행해야 한다. 이제야 그동안 314번 성도에서 차를 볼 수 없었던 이유를 깨닫는다. 계곡을 넘고 넘어도 계곡이고, 도로는 갈수록 날카로운 돌밭으로 변한다.

그렇게 몇 시간을 달렸는데도 몐츠현은 시계에 들어오지 않는다. 해가 져서 어둠이 내렸다. 비가 내렸는지 도로는 군데군데 물에 잠겨 있다. 물을 피하자니 차에 받힐까 두렵다. 가는 길이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 ‘아, 가로등 있는 길은 언제쯤 나올까?’ 자전거에서도 고관절에서도 삐걱 소리가 난다. 휴대전화마저 배터리가 떨어져 더 이상 지도도 볼 수 없다. 끝없는 오르막에 ‘해도 해도 너무 한다’ 고개를 절레절레, ‘제발 평지야 나와라’ 긴 한숨, ‘아직도 더 가야 하나’ 망연자실, 그리고 컴컴한 길을 가야 하는 공포. 이때 누군가 나를 봤다면 내 눈에서 불을 뿜고 있는 것이 보였을 것이다. 그래도 살아야겠다. 페달을 밟는다.

초반 30㎞는 천국의 계단, 후반 47㎞는 악마의 길로 명명했다. 악마의 길이 기다리고 있는 걸 알았다면 천국의 계단으로 가려고 했을까? 그래서 야오둥에서의 점심이 더 각별하다. (홍은택 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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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지존 ‘후난 쌀국수’ 찾아 끝없는 젓가락질

홍은택의 중국 자전거 만리장정 19 ‘누들로드’ 312번 국도

 

1 허난(河南)성 카이펑(開封)의 시환청(西環城)로 북단에서 찍은 중국의 아침 풍경. 중국의 아침은 7시 이전부터 활기차다. 맞벌이 부부가 많기 때문에 부모와 자녀가 출근·등교하면서 함께 길거리 식당에서 만두와 전병, 국수와 같은 아침식사를 사 먹는다.2 허난성 난양(南陽)시의 한 국수가게에서 주인이 면발을 가지런히 뜯어내 펄펄 끓는 솥에 넣고 있다.3 허난성 전핑(鎭平) 부근 312번 국도변에 양고기가 마치 빨래처럼 걸려 있다.4 산시(陝西)성 상뤄(商洛)시 골목길에 있는 아침식사 노점. 다양한 양념을 미리 준비해 놓았다가 주문하면 바로 떠 준다.


중국여행을 자극한 동기 중 하나는 미국의 식단이었다. 대서양 연안에 바퀴를 담그고 출발해 10개 주를 가로질러 태평양에 입수할 때까지 카페라고 불리는 아침 식당을 수없이 들렀지만 기이하게도 메뉴가 똑같았다. 메뉴에서 당당히 한 줄씩 차지하고 있는 요리 이름이다.
계란 한 개
계란 두 개
계란 세 개
계란 네 개까지는 보지 못했다. 여기에 다양한 가짓수가 있는 양 '서니 사이드 업'이냐 '스크램블'이냐 하는 사소한 선택들이 있다. 그러고 나서는 치즈버거·비프버거·피시버거·에그샌드위치 등등 빵 두 조각으로 싸먹는 닮은꼴의 음식들이 잇따르고 마지막으로 오믈렛 메뉴가 있다. 항상 오믈렛만 먹었다. 짠맛과 단맛 이외의 맛은 이것뿐이었다. 점심 메뉴로 가면 여기에 스테이크류와 치킨 누들 수프가 추가된다. 뉴욕과 같은 도시는 예외로 하고 이 광대한 나라에 카페의 메뉴가 이렇게 같을 수 있을까? 개성을 존중한다는 미국이 오히려 획일적이라는 의심이 들었다.

근데 벽촌에 중국식당이 있었다. 내가 창안한 법칙인데 인구 300명만 넘으면 그 촌락에는 반드시 중국식당이 하나씩 있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맥도날드, 버거킹, 웬디스의 3대 패스트푸드 식당 전체를 합한 것보다 중국식당이 더 많다. 중국식당에서는 미국화된, 또는 국적 불명의 음식을 내놓기는 하지만 그래도 새콤하거나 매운맛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차라리 중국을 횡단한다면 아침이 더 즐거울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중국에서 음식이 입에 맞는지를 묻곤 했다. 기름을 너무 많이 쓰지 않느냐는 것. 우리는 끓이거나 삶지만 중국에서는 솥의 두꺼운 바닥을 뜨겁게 달군 뒤 기름을 넣고 볶거나 튀겨 먹기 때문에 생긴 인식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중국에는 삶고, 굽고, 찌고, 끓이고, 부치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지방에 따라 주요리가 다를 뿐이다. 식칼을 쓰는 방법만 해도 수평으로, 사선으로, 수직으로, 밀고 당기고 썰고 흔들면서 재료를 거의 분자 수준으로 해체한다.

 

5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볶음면의 일종인 치란차오몐, 돌솥면의 일종인 사궈몐, 면발이 넓적한 후이몐.

 

그래서 칼이 중요한데 중국에서 요리기자로 활동한 젠류류는 저서 인민에게 봉사하라(Serve the People)에서 칼만 보고 요리사의 출신지를 알 수 있다고 썼다. 검으로 협객의 유파를 아는 것과 같다. 상하이는 상어의 머리처럼 뾰족한 칼, 쓰촨(四川)은 종처럼 생긴 날, 광둥은 서양 칼처럼 좁고 날카롭고 긴 칼, 베이징은 공포영화에서 나올 법한 뭉툭하고 네모난 칼날을 쓴다. 허난에서는 베이징식 식칼을 많이 썼다. 양고기를 다루기 위해서는 두툼하고 네모진 칼날이 필요한 것 같다.

과연 중국의 아침 식사는 훌륭했다. 내가 들른 중국은 아침을 일찍 시작, 오전 7시면 길거리에서 아침을 사 먹을 수 있다. 부부 모두 일하기 때문에 등교하는 아이와 길가에서 오순도순 아침 먹는 모습은 마치 야외 식탁을 차린 것처럼 정겨워 보이기도 한다. 아침 식사로는 죽과 콩우유인 더우장(豆漿), 밀가루를 길다랗게 반죽해서 튀겨낸 유탸오(油條), 우리는 보통 찐만두라고 부르는 바오쯔(包子), 찐만두인데 속에 아무것도 넣지 않는 만터우(饅頭), 구운 빵 안에 숙주·계란 등을 넣은 사오빙(燒餠), 조를 쪄서 갈대 잎으로 싼 쭝쯔(粽子), 양고기탕에 구운 빵을 뜯어서 넣어 먹는 양러우파오모(羊肉泡饃)… 헤아릴 수 없다.

이 모든 것을 통칭해서 담대하게도 간단한 식사라는 뜻의 샤오츠(小吃)라고 부른다. 샤오츠 중에서 나의 탐구 대상은 국수다. 국수는 빨리 먹을 수 있고 국물도 있어 여행자의 허기와 갈증을 동시에 달래준다. 무엇보다 15년 전 워싱턴에서 일하던 시절 프레스센터 2층에서 4달러50센트를 내고 사먹던 비프 누들 수프를 찾아내야 했다. ‘후난익스프레스’라고 하는 중국 패스트푸드점에서 팔던 그 쇠고기 쌀국수는 내게 중국 국수의 세계로의 초대권이자 잃어버린 사진의 원판 같은 것이다. 그 몇 년 뒤 프레스센터에 일부러 찾아갔지만 그 집은 없어졌다. 실제 후난(湖南)성 창사(長沙)까지 순례했지만 짠맛과 매운맛이 기막히게 조화를 이룬 그 감동은 재현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반드시 찾아내리라. 도착 첫날 저녁부터 상하이에서 란저우 쇠고기 국수(蘭州牛肉拉麵)를 골랐다. 서북지방인 간쑤(甘肅)성의 수도인 란저우에서 회족인 마바오쯔(馬保子)가 1915년에 처음 지금과 같은 국수를 만들어내 ‘그 냄새를 맡으면 말에서 내리고 그 맛을 알면 차를 세운다(聞香下馬, 知味停車)’라는 명성을 얻었다. 란저우 안에만 수천 개의 라몐(拉麵)집이 있고 중국 전역에 퍼지고 있는 중이다.

원래 후난의 쇠고기 국수도 청나라 옹정제 때 ‘개토귀류(改土歸流)’ 정책에 따라 후난으로 강제 이주된 회족의 일종인 신장 위구르족이 만든 것이다. 누들로드의 저자 이욱정 PD에 따르면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국수는 바로 신장의 투르판 부근 화염산에서 발견된 2500년 전의 국수라고 한다. 신장은 그만큼 국수의 유서가 깊은 곳이다. 개토귀류 정책은 소수민족의 부족장을 중국의 내지로 보내고 중앙에서 임명한 관리를 파견, 서부를 장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강제 이주된 소수민족의 부족장과 그 가족들은 낯선 타향에서 국수를 먹으려고 하는데 밀이 없어 후난의 주식인 쌀을 썼다. 이후 현지화의 과정을 거쳐 원래 회족들이 먹는 맑은 국물이 아니라 걸쭉한 국물의 쌀국수로 재탄생했다.

란저우 국수는 맛도 맛이지만 위생적일 것 같다. 조리사들은 머리에 둥글거나 육각형 흰색 모자를 쓰고 여자들은 두건을 걸쳐 이슬람교도라는 것을 나타내는데 마치 전문적인 요리사 복장 같다. 돼지고기와 술에 손대지 않는 이슬람교도의 정결한 생활 태도 역시 맑은 국물로 표상되는 듯하다. 무엇보다 면을 만드는 과정 때문이다. 4 단계다. 깨끗하고 단백질 함유량이 많은 밀가루를 고르고(選麵), 물과 반죽할 때는 30도의 온도를 유지해 탄성과 신축성을 높이고(和麵), 30분 이상 숙성하고(醒麵), 찧고 주무르고 늘이고 내던지기를 되풀이하면서 면을 뽑아낸다(拉麵). 그 과정을 주방 안이 아니라 가게 입구에서 투명하게 보여준다.

그래도 나는 후난 국수처럼 걸쭉한 국물에 입맛이 당긴다. 장쑤(江蘇)성 전장(鎭江)에서 펄 벅의 옛집으로 올라가는 길 모퉁이의 허름한 국수집에서 무심코 면을 시켰다가 따뜻한 국물과 함께 상서로운 기운이 온몸에 퍼지는 것을 느꼈다. 이름은 솥뚜껑이라는 뜻의 궈가이몐(鍋蓋麵)으로 걸쭉한 후난 국수에 대한 일편단심을 흔들어놨다. ‘우연히 먹은 국수가 이 정도라면’ 하는 기대감으로 편안히 마지막 한 젓가락의 국수를 후르르 빨아들였다. 원래는 부주의하게 솥뚜껑을 솥에 빠뜨려서 끓여낸 면이라서 솥뚜껑 국수지만 지금은 더럽게(?) 솥뚜껑을 넣지는 않는다. 넣은 재료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는데 쇠고기를 실처럼 가늘게 잘라 넣은 뉴러우쓰(牛肉絲)면을 먹었다. 전장 특유의 간장을 써서 매운맛이 아니라 짭짤함을 기조로 하고 다진 마늘 등으로 시원한 맛을 낸다.

중국 국수의 작명은 계통적 과학 발전이 안 된 것처럼 무정부주의적이다. 면발의 굵기, 국수 뽑는 방법, 국수의 유래 등에 따라 제각각이다. 중국의 6대 국수 중에서 산시(山西)성의 다오샤오몐(刀削麵)은 각진 칼로 대패처럼 면을 잘랐다고, 베이징의 자장면은 춘장을 소스로 버무려서, 허난의 후이몐(烩麵)은 걸쭉하게 끓인다고, 쓰촨의 단단몐(擔擔麵)은 행상들이 어깨에 메고 판 국수여서, 우한(武漢)의 러간몐(熱乾麵)은 한 번 익힌 국수를 식혀서 말린 뒤 소스를 뿌려서 먹는다고, 란저우의 라몐은 국수를 손으로 잡아 늘였다고 해서 각각 이름이 붙었다. 위의 6대 국수가 절대적 기준은 아니고 산시(陝西)성의 쟈오즈몐(饺子麵)이나 광둥의 이푸몐(伊府麵)을 꼽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국수는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국수가 모래솥이라는 뜻의 사궈몐(砂鍋麵)이다. 허난의 정저우(鄭州)에서 두 자매가 시작해서 퍼지고 있는데 나는 광산현의 2호점에서 시식할 기회를 잡았다. 매운맛이 강렬하고 중독성이 있다. 한국의 고추장처럼 달짝지근한 매운맛(甛辣)이 아니라 쓰고 시큼한 매운맛(酸辣)이었다.
맛 기행은 아니지만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음식에서 맛을 발견할 때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된다. 상하이에서 시안까지 가는 312번 국도는 남쪽으로는 쌀, 북쪽으로는 밀가루의 경작지대를 가르는 분계선이다. 이 국도는 내게 쌀과 밀가루의, 수없이 많은 국수를 체험할 수 있는 ‘누들로드’다. 아직 나의 ‘후난 쌀국수’는 못 찾았지만 그에 맞먹는, 영원히 잊지 못할 국수가 나타났다. 시안으로 가는 친링산맥의 한 산골에서였다.

암흑 지옥 같던 터널 주행...'고양이귀 국수'로 보상받다

홍은택의 중국 자전거 만리장정 20 친링산맥~시안


 터널 5개를 통과해 중국의 남북을 가르는 친링산맥을 뚫고 나가자 내리막길 양쪽으로 수려한 풍경이 펼쳐졌다. 시속 40㎞로 달리다 급제동해 한 장 찍었다. 산맥 남쪽에선 비가 오락가락하는 흐린 날씨였지만 북쪽에는 뇌쇄적인 햇빛이 한창이었다.


만약 이 사실을 알았으면 처음부터 시안(西安)에서 특정한 날짜에 만나자는 무모한 약속에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행을 출발하기 전 지인은 한국에서 항공편으로 오고 나는 상하이부터 자전거를 달려 시안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4월 18일 시안으로 들어가는 312번 국도의 마지막 터널인 무후관(牧護關)이 막혔다. 산사태가 나서 도로를 덮친 것이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언제 통행이 재개될지 몰랐다. 우회로도 마땅치 않다. G40 고속공로는 자전거 진입이 허용되지 않고 다른 우회로로 가면 시안에 언제 닿을지 기약이 없다.

몰라서 그런 약속을 했고 몰라서 결과적으로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312번 도로관리공사가 내가 자전거로 통과하기 하루 전에야 통행을 복구한 걸 터널 앞에 아직도 수북이 쌓인 돌 더미 흔적을 보고 알았다. 만약 내가 자전거로 지나갈 때 산사태가 나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은 잘 안 하는 편이다. 실제 무후관에 앞서 통과한 마제링(麻街嶺)에선 지난해 9월 돌더미가 차량을 덮쳐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더라도 말이다.

 1 무후관 터널은 산사태로 20일 넘게 폐쇄됐다가 내가 통과하기 하루 전 극적으로 열렸다. 터널을 지나고 나서야 터널에선 자전거 주행이 금지됐다는 걸 알았다.2 지유링 터널을 넘고 나니 상가(喪家)에서 농민들이 음식을 먹고 있다가 내게 권했다. ‘누들로드’ 312번 국도에서 먹은 최고의 국수인 고양이귀 국수였다

산시(陝西)성 상난(商南)에서 시안까지 가는 마지막 229㎞ 구간은 후포산(琥珀山)·우관(武關)·지유링(資峪嶺)·마제링·무후관 등 터널 5개를 통과해 친링(秦嶺)산맥을 뚫고 나간다. 한국에서도 집 근처에 일원터널이 있고 서울 도심으로 자전거 통근을 할 때 금호·옥수터널, 홍천 다녀올 때는 6번 국도의 여러 터널 등을 겪어봐서 터널 주행에 관한 한 역전의 용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링의 터널들은 왕릉에 생매장되기 위해 지하갱도로 들어가고 있는 순장자의 공포를 연상시켰다. 언젠가 뒷문이 닫히면서 어둠 속에서 눈은 달려 있어야 할 의미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처음 만난 터널인 후포산 터널에 선글라스를 쓴 채로 들어갔다가 대낮에 암실에 들어간 것 같은 먹장의 어둠에 갇혀버렸다. 터널 내 전등이 전부 꺼져 있었다. 선글라스를 벗었지만 어둠은 밝아지지 않았다. 멀리서 무시무시한 굉음이 들려오고 노면은 울퉁불퉁해서 정주행하기가 어려웠다. 자전거 전등을 켰지만 촛불보다 더 가냘팠다. 공기는 차갑고 축축하다. 오히려 맞은편에서 차가 와줬으면 좋겠다. 앞길을 밝혀주고 뒤에서 오는 차에 나의 존재를 부각시켜줄 수 있을 테니까. 다시 터널 전등에 불이 들어온다. 전등의 간격은 넓고 셋 중 둘은 꺼져 있어서 여전히 나를 드러내지 못한다.

3 친링산맥 남쪽 사면엔 앵두가 지천이었다. 주민들이 다디단 앵두를 바구니에 담아서 길에서 파는데 1위안(180원)만 내도 한 움큼 집어준다.

 

터널 끝에서 작은 흰 반점이 점점 말발굽처럼 커지더니 진출구가 어렴풋이 보인다. 햇빛이 왜 광명인지 알 것 같다. 휴우, 빠져 나왔다. 세 번째 통과한 지유링 터널이 가장 무서웠다. 길기도 했지만 완전무결한 어둠의 고문을 당했다. 공포를 필요 이상 느끼는 이유는 중국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없을 거라는 짐작 때문이다. 한 개인의 죽음에 그렇게 연연해하지 않을 것 같은, 14억 명의 나라다.

지유링 터널을 빠져나오자 흰 종이꽃으로 장식한 천막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장례 치르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마주친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다칠까 봐 자전거를 길가에 대고 기색을 살폈다. 사람들이 그렇게 슬퍼하는 눈치가 아니어서 ‘악상(惡喪)’은 아니라고 생각해 다가갔다. 그들은 기꺼이 맞아주면서 식사를 권했다. 점심도 거르고 길을 서두르던 차여서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어 있었다. 염치없이 큰 양은냄비가 놓인 탁자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이게 상갓집의 육개장 같은 음식인가 보다. 양고기 국물에 감자·두부·배추를 넣고 걸쭉하게 끓여서 노란빛이 돈다. 오랫동안 사용한 듯 냄비 밑동은 찌그러져 있다.

느끼할 것 같았는데 도리어 구수하다. 중국식 고추장을 풀어서 먹으니 느끼함도 없다. 특히 탕 안에 든, 국수 같지도 않고 마카로니 같지도 않은 작은 덩어리가 쫀득쫀득했다. 자세히 보니 고깔모자처럼 생겼다. 이걸 뭐라고 부르지? 주민들은 합창하듯 ‘마오얼둬(猫耳朶)’라고 얘기해줬다. 못 알아듣자 누군가 귀를 잡고 누군가는 동물 우는 소리를 냈는데 고양이를 흉내 내는 것 같다. 순간 머리 속에 환한 불이 들어왔다. 이게 책에서 보고 꼭 한번 먹고 싶었던 고양이귀 국수였던 것이다. 마오(猫)는 고양이, 얼둬(耳朶)는 귀를 뜻한다.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밀가루 반죽에서 뜯어낸 조각을 손바닥에 놓고 엄지손가락으로 누르고 돌리면 이런 모양이 나온다. 산시성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그 특별한 국수를 친링산맥의 외진 산골에서 먹는다. ‘누들로드’ 312번 국도에서는 단연 최고의 국수다.

아마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았으면 양은냄비를 두 팔로 안아 코를 박고 흡입해 버렸을 것이다. 두 그릇 연거푸 퍼먹고 나자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장송곡이 귀에 들어오면서 망자에 대한 예의를 먼저 차렸어야 한다고 뉘우쳤다. 천막 안으로 들어가 영정을 찾았는데 망자의 사진이 책상 위에 놓인 액자사진만큼 작다. 연로하신 할아버지 얼굴이다. 1934년에 태어나셨다. 한국에서처럼 분향은 하되 재배는 올리지 않고 가볍게 묵념했다. 멀고 먼 이국의 문상객이 자신의 영전에 찾아온 걸 이 할아버지는 굽어보고 있을까? 굴건을 쓴 상주들이 흐뭇한 눈으로 쳐다본다. 한 그릇 더 먹고 가라고 붙잡는 걸 사양하고 길을 재촉했다.

마지막 터널인 무후관을 통과하고 나서 사진을 찍기 위해 뒤돌아봤을 때 자전거 진입금지 표지판이 보였다. 이제야 보기에 천만다행이다. 산사태 여부를 떠나 원래 갈 수 없었던 길이었다. 하지만 이 터널들이 없었더라면 자전거로 친링을 넘을 수 없었을 것이다. 상난현이나 단펑(丹風)현의 지세는 모두 산에 둘러싸인 손바닥 모양이다. 상난현은 80%, 단펑현은 90%가 산지다. 한(漢)고조가 되는 유방이 이 산길을 넘어서 시안으로 쳐들어갈 때 병사들이 겪어야 했을 고초가 상상이 안 된다. 그 때는 터널도 없었을 텐데.
그들에게 비할 바 아니겠지만 나도 난징을 떠난 이후 12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은 강행군이었다. 막판에 오르막길과 역풍의 악몽적 조합으로 자전거 바퀴는 원형에서 십이각형, 육각형, 이제는 사각형으로 변해버린 듯하다. 페달 한 발을 밟는 데 온몸을 실어야 한다. 이미 앞 기어는 1단으로 내린 지 오래다. 앞 기어 1단에 뒤 기어 1단까지 내려놓고 갈지자로 최대한 노면의 기울기를 낮춰서 오른다.

길가에서 강아지랑 놀고 있는 청년을 지나쳤다. 이 청년은 자전거에 상자를 매달고 강아지를 싣고 가다가 쉴 때면 강아지를 꺼내서 같이 놀았다. 처음엔 약간 모자라는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쉴 때는 그가 지나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몇 번 마주친 이후 말을 붙여봤다. 얼마나 더 가야 이 지긋지긋한 오르막이 끝나느냐고. 지금까지 중국 사람들의 길 안내는 틀리거나 부정확했다. 하지만 그의 안내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다. “2㎞만 더 올라가면 터널이 나오고 그 이후로는 시안까지 내리막이다. 저녁 8시 전에는 시안에 닿을 것이다.”

그의 말대로 마지막 터널인 무후관이 나오고 무후관부터는 이렇게 내려가도 되나 싶게 내려간다. 길 표지판에는 35㎞의 내리막길이라고 해서 다시 오르막이 나올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그의 말대로였다. 시안까지 60여㎞가 기본적으로 내리막이었다. 도중에 몇 번 더 그와 마주쳐서 말을 나눴다. 그는 중국 전역을 강아지 한 마리와 여행하는 중이었다. 그냥 세상을 보는 게 좋아서가 이유다. 꾸밈없는 여행자의 풍격이 느껴진다. 여관에서도 안 자고 캠핑 장비도 없다. 다리 밑이나 버려진 집 안에서 자고 먹고 여행한다. 자전거 짐칸에는 천으로 둘둘 만 침낭이 묶여 있고 앞 핸들에는 커다란 원형의 플라스틱 통을 매달았다. 나처럼 24단 기어가 달린 산악자전거도, 균형을 맞추기 위해 자전거 양쪽으로 짐을 싣는 패니어 가방도 없지만 주유천하하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란티엔(藍田)현의 109번 성도(省道)변 다리 밑에서 누군가 소리쳐서 쳐다봤더니 그가 한 손에 맥주병을 들고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가속하고 있는 상태여서 손만 흔들어주고 내처 갔는데 그게 그와의 마지막 스침이었다. 그는 그때까지 내가 만난 유일한 장거리 자전거 여행자였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는 중국의 어딘가를 돌고 있을 것이다.

무후관을 통과하고 나서는 전혀 다른 세계다. 친링산맥의 북쪽 사면은 암벽으로 이뤄진, 내리막에서 보기 아까운 절경이다. 시속 40㎞로 내리막길을 질주하면서 바라보는 경치는 물에 젖은 스케치북처럼 몽롱하다. 그래도 멈추고 싶지는 않다. 어떻게 확보한 높이인데 야금야금 내려오고 싶지 않았다. 장쾌하게 내달려 해발 2000여m의 고지에서 해발 500m의 중국 통일제국 최초의 수도 시안에 뚝 떨어졌다. 지인들은 약속장소인 호텔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상하이를 떠난 지 18일 만에 1700㎞를 달려 약속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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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 福建土楼

  客家土楼,也称福建圆楼,是中华文明的一颗明珠,是世界上独一无二的神话般的山村民居建筑,是中国古建筑的一朵奇葩,它以历史悠久、风格独特、规模宏大、结构精巧等特点独立于世界民居建筑艺术之林。土楼民居以种姓聚族而群居特点和它的建造特色都与客家人的历史有密切相关。客家人每到一处,本姓本家人总要聚居在一起。加之客家人居住的大多是偏僻的山区或深山密大之中,当时不但建筑材料蒉乏,豺狼虎豹、盗贼嘈杂,加上惧怕当地人的袭扰,客家人便营造“抵御性”的城堡式建筑住宅。这样也就形成了客家民居独特的建筑形式——土楼。土楼主要分布在福建省的龙岩、漳州等地区。

  福建土楼产生于宋元时期,经过明代早、中期的发展,明末、清代、民国时期逐渐成熟,并一直延续至今。福建土楼是世界上独一无二的山区大型夯土民居建筑,创造性的生土建筑艺术杰作。福建土楼依山就势,布局合理,吸收了中国传统建筑规划的“风水”理念(参见董斌《现代风水精鉴》),适应聚族而居的生活和防御的要求,巧妙地利用了山间狭小的平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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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广东开平市的田野上,一座座欧式古典风格的小楼与中国南方农村的传统土屋。 形成中国绝无仅有的乡间景色。碉楼中西合璧,融会了各种建筑风格的精髓。开平境内最多的时候共有3000多座碉楼,目前尚存1800多座,分布在开平15个镇、办事处。这些碉楼是上世纪开平华侨与村民主动把外国建筑文化与当地建筑文化相结合的结晶。其数量之多,建筑之精美,风格之多样,堪称世界最大的“碉楼博物馆”。

  雕楼类型及艺术特点

  建材上,有早期的泥墙楼(用灰沙、糖、盐、蚬壳、蚝壳等混合逐层锤打夯成),中期的青砖楼(用一般的青砖加厚建成),到最后的钢筋水泥楼(用钢筋混凝土按现代建筑用料建成)。  类型上,约分三大类:一是更楼或灯楼,这种楼一般建在村头或村尾,有些建在小山丘上,供民团及更夫使用,里面有探照灯及报警器,一旦发现匪贼立即报警,让村民准备。二是众楼,由十多户或几户人家合资兴建,这种碉楼有3~6层,每层设有2~4间房。




NO.3 王家大院

  王家大院位于山西省灵石县城东12公里处的静升历史文化名镇。距世界文化遗产平遥古城35公里、介休绵山风景区4公里,共有大小院落231座,房屋2078间,面积8万平方米。

王氏宗祠分上下两院,功能齐全,设计考究,祠前有精雕细刻的“孝义坊”。高家崖、红门堡、崇宁堡三组建筑群比肩相连,皆黄土高坡上的全封闭城堡式建筑。外观,顺物应势,形神俱立;其内,窑洞瓦房,巧妙连缀。博大精深壮观,天工人巧地利。于貌似千篇一律中千变万化,在保持北方传统民居共性的同时,又显现出了各自卓越的个性风采。总的特点是:依山就势,随形生变,层楼叠院,错落有致,气势宏伟,功能齐备,基本上继承了我国西周时即已形成的前堂后寝的庭院风格,再加匠心独运的砖雕、木雕、石雕,装饰典雅,内涵丰富,实用而又美观,兼融南北情调,具有很高的文化品位。




NO.4 乔家大院

  乔家大院位于山西省祁县乔家堡村,北距太原54公里,南距东观镇仅2公里。它又名在中堂,是清代中国著名的商业金融资本家乔致庸的宅第。始建于清代乾隆年间,以后曾有两次增修,一次扩建,经过几代人的不断努力,于民国初年建成一座宏伟的建筑群体,并集中体现了中国清代北方民居的独特风格。

  大院为全封闭式的城堡式建筑群,占地10642(约十六亩)平方米,建筑面积4175平方米,分6个大院,20个小院,313间房屋。大院三面临街,不与周围民居相连。外围是封闭的砖墙,高10米有余,上层是女墙式的垛口,还有更楼,眺阁点缀其间,显得气势宏伟,威严高大。大门坐西朝东,上有高大的顶楼,中间城门洞式的门道,大门对面是砖雕百寿图照壁。大门以里,是一条石铺的东西走向的甬道,甬道两侧靠墙有护墙围台,甬道尽头是祖先祠堂,与大门遥遥相对,为庙堂式结构。北面三个大院,都是芜廊出檐大门,暗棂暗柱,三大开间,车轿出入绰绰有余,门外侧有栓马柱和上马石,从东往西数,依次为老院,西北院,书房院。布所有院落都是正偏结构,正院主人居住,偏院则是客房佣人住室及灶房。




NO.5 皇城相府

  皇城相府(又称午亭山村)总面积3.6万平方米,是清文渊阁大学士兼吏部尚书加三级、《康熙字典》总阅官、康熙皇帝35年经筵讲师陈廷敬的故居。其建筑依山就势,随形生变,官宅民居,鳞次栉比,是一组别具特色的明清城堡式官宅建筑群。“绿树村边合、青山郭外斜”,皇城相府不仅是一幅古代“自然山水画”、更是一座具有强烈人文精神的东方古城堡。

  
地理环境

  皇城相府位于山西省东南部的晋城市北留镇境内,东与河南省焦作市毗邻,南与古都洛阳接壤,西与山西省的临汾市、侯马市相交,北与山西省长治市紧连,目前亚洲最大的坑口火力发电站——阳城电厂近在咫尺,皇城村居住着234户,680余口人家,耕种着480亩土地,全村总面积1.7平方公里。地下有丰富的、得天独厚的煤炭资源,地上有清代康熙皇帝的老师,《康熙字典》总阅官文渊阁大学士兼吏部尚书陈廷敬。




NO.6 大邑刘氏庄园博物馆

  建于1958年10月,1966年11月被国务院公布为第9批全国重点文物保护单位。为中国近现代社会的重要史迹和代表性建筑之一。该馆建立四十多年来,积累了丰富的藏品,内涵丰富。现有文物,藏品2700多件,一级品15件,规模宠大,保存完好的庄园建筑群,及庄园遗存的大量实物和文献资料,加上独具特色的庄园陈列,构成了一个有机整体,为认识和研究中国半封建、半殖民地社会经济、文化建筑及中国四川军阀史、民俗学的重要场所和实物现场,是旧中国农村的一个缩影,是中国社会发展史的一个断面。

  1965年,在原庄园主刘文彩的收租现场,雕塑家们将中国的传统雕塑技法和西方的现代雕塑艺术结合起来,运用典型化的创作手法,创作出了中外闻名,其思想性和艺术性高度统一的超级现实主义雕塑杰作《收租院》,对外展出后,在国内外产生了深远和广泛的影响。




NO.7 宏村

  地理位置:黟县东北部,距黟县县城11km  面积:9.17公顷(300多亩)

  宏村的选址、布局,宏村的美景都和水有着直接的关系,是一座经过严谨规划的古村落。村内外人工水系的规划设计相当精致巧妙,专家评价宏村是“人文景观、自然景观相得益彰,是世界上少有的古代有详细规划之村落”。被中外建筑专家称为“中国传统的一颗明珠”、“研究中国古代水利史的活教材”。 水在宏村的选址中作用重大。

  宏村被誉为“中国画里的乡村”,联合国专家称赞它为“举世无双的小城镇水街景观”。因为它背倚黄山余脉羊栈岭、雷岗山等,地势较高,有时云蒸霞蔚,如浓墨重彩,有时似泼墨写意,四周山色与粉墙青瓦倒映湖中,人、古建筑与大自然融为一体,好似一幅徐徐展开的山水画卷。



NO.8 西递村

  西递村建房多用黑色大理石,两条清泉穿村而过,99条高墙深巷,各具特色的古民居,使游客如置身迷宫。村头有座明万历六年(公元1578)建的三间四柱五楼的青石牌坊,峥嵘巍峨,结构精巧,是胡氏家族地位显赫的象征。

  村中有座康熙年间建造的“履福堂”,陈设典雅,充满书香气息,厅堂题为“书诗经世文章,孝悌传为报本”、“读书好营商好效好便好,创业难守成难知难不难”的对联,显示了儒学向建筑的渗透。村中另一古宅为“大夫第”,建于清康熙三十年(公元1691年)。“大夫第”为临街亭阁式建筑,原用于观景,楼额悬有“桃花源里人家。”六个大字”有趣的是,近人多将此楼当作古装戏中小姐择婿“热抛绣球”所在,现已成为西递村举办此项民俗活动的场所。“大夫第”门额下还有“作退一步想”的题字,语意双关,耐人寻味。




NO.9 姜氏庄园

  姜氏庄园位于米脂县城东南16公里桥河岔乡,建于清朝同治年间。姜氏庄园由该村首富姜耀祖请北京专家设计,招聚县内能工巧匠兴建而成,前后用时十三年。姜氏庄园设计巧妙,施工精细,布局紧凑,由上而下,浑然一体。对外严于防患,院内互相通联,是陕北罕见的庄园建筑。

  庄园占地40余亩,主体建筑为陕西地区最高等级的“明五暗四六厢窑”式窑洞院落。庄园三院暗道相通,四周寨墙高耸,对内相互通联,对外严于防患,整个建筑设计奇妙,工艺精湛,布局合理,浑然一体,是全国最大的城堡式窑洞庄园,也是汉民族建筑的瑰宝之一。

  整个庄园由山脚至山顶分3部分:第一层是下院,前以块石垒砌高达9.5米的寨墙,上部筑女墙,犹若城垣。沿第一层西南侧道路穿洞门达二层,即中院。院西南又耸立高约8米,长10余米的寨墙,将庄园围住,并留有通后山的门洞,正中建门楼。沿石级踏步到第三层上院,是全建筑的主宅,座东北向西南,正面一线5孔石窑,两侧分置对称双院,东西两端分设拱形小门洞,西去厕所,东侧下书院。整个庄院后设寨城一道,中有寨门可通后山。




NO.10 康百万庄园

  康百万庄园位于巩义市康店镇,距市区3公里,始建于明末清初。由于它背依邙山,面临洛水,因而有“金龟探水”的美称。1963年被定为省级文物保护单位,2001年定为国家级文物保护单位,是全国三大庄园(刘文彩、牟二黑)之一,比山西乔家大院大19倍。2005年被授予国家AAAA旅游景区。所谓“康百万”是由于当时的庄园主康应魁两次悬挂“良田千顷”的金字招牌,土地商铺遍及山东、陕西、河南三省八县,而被称为“百万富翁”。后来,慈禧太后逃难西安,回銮北京时,路过康店,康家出钱监工修造黑石关,县城、官殿行宫和“龙窑”,花费了100多万两银子,又向清延捐赠白银100万两,慈禧说不知此地还有一个康百万富翁。从此,“康百万”这个皇封就广泛地传开了。

  康百万庄园临街建楼房,靠崖筑窑洞,四周修寨墙,濒河设码头,集农、官、商风格为一体,布局严谨,规模宏大。总建筑面积64300平方米,有33个院落,53座楼房。





帝王宫苑承德避暑山庄

(承德은 옛날 熱河를 가리킴)

承德避暑山庄,清代皇帝避暑和处理政务的场所。位于河北省承德市北部。始建于一七零三年,历经清康熙、雍正、乾隆三朝,耗时八十九年建成。与全国重点文物保护单位颐和园、拙政园、留园并称为中国四大名园。它的最大特色是山中有园,园中有山。避暑山庄兴建后,清帝每年都有大量时间在此处理军政要事,接见外国使节和边疆少数民族政教首领。这里发生的一系例重要事件、重要遗迹和重要文物,成为中国多民族统一国家最后形成的历史见证。由于四周环山,阻滞了来自蒙古高原寒流的袭击,故温度要高于同纬度其他地区;夏季凉爽,雨量集中,基本上无炎热期,与北京紫禁城相比,避暑山庄以朴素淡雅的山村野趣为格调,取自然山水之本色,吸收江南塞北之风光,成为中国现存占地最大的古代帝王宫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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