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집서 63세 농부가 뽑은 양고기 국수 대접받다

 

홍은택의 중국 만리장정 <25> 허난성 싼먼샤(三門峽)의 동굴집, 야오둥(窯洞)

 

 

 

 

황토고원 일대 야오둥(窯洞)은 단열과 보온효과가 좋고 경작지를 전용할 필요가 없어 친환경적인 주거양식으로 주목받는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도시로 가버려서인지 버려진 야오둥이 많아 들어가볼 기회가 없다가 허우스스 집에 쳐들어갔다(작은 사진).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가장 큰 행복과 공포를 차례차례 느낀 날이었다. 허난(河南)성 쌴먼샤(三門峽)에서 310번 국도 대신 314번 성도(省道)로 핸들을 꺾으면서 하루치고는 파란만장한 여정이 시작됐다. 성도를 택한 이유는 어쩌면 황허를 볼 수 있겠다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지도로 보면 며칠을 동진했지만 아직 황허에 다가서지 못해 약간 조바심이 났다.

황허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지만 그랜드 캐년을 연상할 만큼 깊고 넓은 계곡들이 펼쳐진다. 고양이 뺨만 한 평지라도 있으면 모두 개간돼 녹색이나 연두색을 띠고 있다는 점이 황량한 캐년과 다르다. 수확기가 다가온 밀밭에는 농부들이 보이지 않았다. 길은 계곡의 결을 따라가면서 말발굽을 겹쳐놓은 소용돌이처럼 휘돌았다. 역풍이 횡풍으로, 횡풍이 순풍으로, 다시 횡풍으로, 역풍으로. 그리고 오르막에서 내리막으로, 내리막에서 오르막으로 시시각각 변한다. 은하철도 완행선이다.

‘나부터 여자아이를 아끼고 사랑하자(從我做起關愛女孩)’
‘토지를 개발해서 자손을 복되게 하자(土地開發造福子孫)’

 

 

1. 310번 국도 대신 314번 성도로 갔다가 거대한 채석 지대로 들어가는 바람에 혼쭐이 났다. 무거운 돌을 운반하는 트럭의 하중에 콘크리트 포장이 주저앉아서 내리막길에서도 속도를 낼 수 없었다. 2. 중국에서는 도시일수록 광고 간판이, 농촌일수록 구호 간판이 많다. ‘나부터 여자아이를 아끼고 사랑하자’는 구호. 아직도 농촌에서는 남아 선호현상이 많다는 것을 말해준다.
외진 동네일수록 구호가 많다. 잇따른 구호에 불안이 가라앉는다. 만약 강도짓을 한다면 여기만 한 곳도 없다. 죽여서 계곡 밑으로 던져버리면 독수리의 밥이 될 테고 내가 왔다는 건 먼 훗날 화석으로 입증될 것이다. 고고학자는 내 두개골을 보고 오히려 나를 이민족의 침입자로 판정할지도 모른다. 억울한 내 원혼은 이 계곡을 떠돌고…. 반대로 여기처럼 ROI(투자대비수익)가 안 나오는 곳도 없을 것 같다. 이렇게까지 외지고 험한 곳에 자전거와 짐을 끌고 오는 사람을 기다리다간 굶어 죽을 수도 있다. ‘그럼 안전한 곳이네.’ 그렇게 결론을 내려버린다. 구호를 보면 정부의 손길이 여기에도 미치고 있지 않은가. 가끔 뒤에서 과속하며 쫓아오는 오토바이와 트럭이 신경을 쿡쿡 찔렀지만 평안함이 무너질 만큼 자주 다니지는 않았다.

나는 산시(陝西)성에서부터 꼭 들어가보고 싶은 집이 있었다. 친링산맥을 넘을 때부터 자주 출몰하는 야오둥(窯洞). 산비탈을 파고 들어간 집이다. 인류가 혈거인 출신이어서 그런지 동굴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생래적 호기심을 갖고 있다. ‘인디애나 존스’를 비롯한 영화적 상상력의 원천이기도 하다. 중간에 몇 군데 가봤는데 버려진 듯 닫혀 있었다.

마오쩌둥, 대장정 때 야오둥서 폭격 모면
쌴먼샤시의 후빈(湖濱)구에 속해 있는 촨나오(泉腦)촌은 마을 전체가 야오둥으로 이뤄져 있었다. 야오둥들은 황토 담벽의 오솔길에 면해 있다. 요방이 세 개 있는 한 야오둥에서 말소리가 새어나온다. 햇빛을 빨아들여 황토는 주황색에 가까울 만큼 눈부시다. ‘제발 나와봐야 할 텐데.’ 한 아주머니가 대문 틈으로 보인다. “두이부치(對不起:실례합니다). 사진 한 장 찍어도 돼요?”(다시 말하지만 중국에는 존칭은 있지만 존댓말이 없다)

이 소리를 들은 아주머니가 요방에 대고 소리치니까 60대로 보이는 남자가 주발을 걷고 나왔다. 이 집의 주인 허우스스(侯石師). 밭에 갔다가 점심 먹으러 들어와서 친구인 양징탕(楊景堂)과 얘기 중이었다. 들어오라고 해서 얼른 자전거를 대문 안에 들여놓았다. 주발을 양쪽으로 가르고 머리를 집어넣으니 요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높이는 3m, 폭 역시 3m 정도, 그리고 길이는 6∼7m쯤 돼서 스커드 미사일 한 기 들여놓으면 딱 맞을 격납고처럼 생겼다. 상상한 것처럼 안에서 다른 요방으로 연결되는 통로는 없다. 중국 라오바이싱(老百姓·서민)의 집이 그렇듯 방안에는 침대와 책상 그리고 서랍 달린 궤짝 두 개밖에 없어서 질박했다.

이 일대에 야오둥이 많은 건 황토고원의 지질 덕분이다. 황토여서 구멍을 쉽게 팔 수 있고, 푸석푸석한 황토는 물에 적셔 불에 구워 말리면 강화벽돌처럼 단단해진다. 황허 일대에 벽돌로 쌓은 전탑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야오둥에는 세 가지가 있다. 돌로 쌓아 만든 석체요(石體窯), 벽돌을 쌓아 만든 전요(塼窯) 그리고 허우스스의 집처럼 벼랑에 굴을 파고 문과 창을 낸 토요(土窯). 천장 격인 요정(窯頂)을 아치형으로 만들어 압력을 분산시키기 때문에 수백 년을 내려오는 다리처럼 무너지지 않는다. 집 위로 차가 지나다닌다.

이 집은 20년 됐지만 옆에 딸린 부엌의 시공 연도는 기억하지 못한다. 아득한 먼 옛날부터 있었다고 한다. 과연 서늘했다. 야오둥은 단열과 보온효과가 크고 경작지를 전용할 필요가 없으며 지형을 건드리지 않아서 친환경적이다. 세계적 건축가들이 설계한 제주도의 휘닉스아일랜드와 롯데리조트의 별장주택에 가보면 지붕 대신 평평한 대지 밑에 주택을 지어놓은 걸 볼 수 있는데 야오둥을 참고했을 것 같다.

다른 효능을 찾자면 공중폭격기 조종사들을 약 올리는 용도가 있겠다. 상공에서 맴돌다 목표를 찾지 못해 퍼붓는 그들의 욕설이 들리는 듯하다. 실제 마오쩌둥도 옌안(延安)으로 도피할 대장정 당시 야오둥에서 국민당의 폭격을 피했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수백 년 된 집들이 버려진다. 젊은이들의 이농현상 때문이다. 허우스스에게도 두 아들이 있지만 모두 대처로 나갔다. 이 집도 허우 부부와 운명을 같이하게 될지 모른다.

올해 63세인 허우스스와 65세인 양징탕은 성년 이후 농사 외에 다른 일을 해본 적이 없다. 양징탕이 몇 번 같은 질문을 하는데 사투리 때문에 알아들을 수 없어 써달라고 했다. “你國家有萍果樹, 沒有枾樹?” 빙그레 웃었다. 한국에 사과나무와 감나무가 있느냐는 질문. 천상 농부임에 틀림없다. 농사 짓기에 언제가 제일 좋았느냐고 묻자 “농사라는 게 돈 벌 때가 있느냐”며 “그래도 지금이 가장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펼쳐온 농업·농민·농촌의 삼농정책이 효과를 거두고 있음을 그들로부터 확인한다. 2600년 수탈의 역사를 안고 있는 농업세가 2006년 폐지됐다. 그것만으로 농민 한 사람당 매년 1300여 위안(약 23만원)꼴의 혜택이다. 허우스스는 농촌에 사는 60세 이상 주민은 정부로부터 매달 62위안씩 지원금도 받고 있다고 했다.

삼농정책 효과로 농촌 생활 나아진 듯
20일쯤 지나면 밀밭은 황금빛으로 물결치고 밀을 수확한 자리에 옥수수를 심을 것이다. 허우스스의 밭은 1무(666.7㎡), 양징탕은 토질이 안 좋아서 2무를 배정받았다고 한다. 올해 밀 수확이 좋을 거라고 하면서도 한국의 농민처럼 곡가에 대해 불만이다. “한 근에 1.05위안(약 190원)밖에 받질 못하니….”

그만 일어서려는데 허우스스가 내 수첩에 써내려갔다. “吃我家飯 都吃手工麵條.” 손으로 뽑은 국수로 식사를 하고 가라는 뜻이다. 그렇게 하겠다고 했더니 그는 기뻐하면서 식사를 내왔다. 자신이 수확한 밀을 직접 손으로 뽑아낸 국수라고 말할 때 농부의 고집 같은 자부심이 느껴졌다. “이거 사먹으면 얼마나 줘야 해?” 하고 묻는다. “10위안은 줘야 할 것 같다”고 말하자 그가 자신이 창출한 가치에 득의만면한 표정을 지었다. 양고기 국물에 양배추를 넣어서 담백하게 우려냈다. 맛이 지루할 때면 생마늘을 까먹는다. 거기에 큼지막한 찐빵 하나까지. 식사 후 한숨 자고 가라고 했지만 몐츠()현까지 가려면 지체할 수 없었다.

오후에 맞바람이 거세졌다. 멀리서 산 하나를 반으로 쪼개듯이 작살내고 있는 게 보였다. 그것이 신호탄이었다. 나는 거대한 채석장에 들어선 것이었다. 돌을 나르는 화물차들은 흙먼지와 매연을 내뿜으면서 도로를 짓무르고 있었다. 내리막에서도 브레이크를 꼭 잡고 시속 10㎞로 서행해야 한다. 이제야 그동안 314번 성도에서 차를 볼 수 없었던 이유를 깨닫는다. 계곡을 넘고 넘어도 계곡이고, 도로는 갈수록 날카로운 돌밭으로 변한다.

그렇게 몇 시간을 달렸는데도 몐츠현은 시계에 들어오지 않는다. 해가 져서 어둠이 내렸다. 비가 내렸는지 도로는 군데군데 물에 잠겨 있다. 물을 피하자니 차에 받힐까 두렵다. 가는 길이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 ‘아, 가로등 있는 길은 언제쯤 나올까?’ 자전거에서도 고관절에서도 삐걱 소리가 난다. 휴대전화마저 배터리가 떨어져 더 이상 지도도 볼 수 없다. 끝없는 오르막에 ‘해도 해도 너무 한다’ 고개를 절레절레, ‘제발 평지야 나와라’ 긴 한숨, ‘아직도 더 가야 하나’ 망연자실, 그리고 컴컴한 길을 가야 하는 공포. 이때 누군가 나를 봤다면 내 눈에서 불을 뿜고 있는 것이 보였을 것이다. 그래도 살아야겠다. 페달을 밟는다.

초반 30㎞는 천국의 계단, 후반 47㎞는 악마의 길로 명명했다. 악마의 길이 기다리고 있는 걸 알았다면 천국의 계단으로 가려고 했을까? 그래서 야오둥에서의 점심이 더 각별하다. (홍은택 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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