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소도시 언어권 갈등 촉발 위험
네덜란드-불어권 갈등 어린이 소풍까지 영향

(브뤼셀=연합뉴스) 이상인 특파원 =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 인접한 플랑드르(네덜란드어권) 지역의 소도시 리데케르케에서 벨기에를 남북으로 쪼갤 수 있는 언어권 갈등을 촉발시킬 위험을 키우고 있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이 14일 보도했다.

리데케르케는 브뤼셀에서 기차로 15분 거리인 21㎞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인구 1만2천명의 소도시로 벨기에 인구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북부 플랑드르에 속해 있다. 벨기에의 나머지 인구 40%는 불어권인 남부 왈로니아에 거주하고 있다.

문제는 시 의회가 학교수업과 상업활동은 물론 하이킹, 수영 등 어린이들의 휴일 소풍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네덜란드어 이외의 언어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비롯됐다.

시의 소풍 프로그램이 좋은 경치와 시설로 알려지면서 인근 브뤼셀에서 불어권 학생들의 참여가 늘어나고 있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궁극적으로 브뤼셀의 잘사는 불어권 주민들의 이주를 막기 위한 포석도 담긴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시 공무원인 마르크 메르텐스(53)은 과거 불어권의 지배를 받았던 플레미시 지역에서 다시 불어권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원치않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여기 사는 사람들은 자치권을 얻었으며, 다시 불어를 말하는 사람들의 지배에 놓이는 것을 원치않고 있다"면서 "과거 어렸을 때엔 다른 언어가 들리지 않았지만 지금은 매일 불어를 말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극우 반이민정당인 블람스 벨랑 소속의 시 의원인 요한 달만은 불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로 인한 범죄와 인종적 긴장을 막기 위해서도 그러한 결정이 필요하다면서 "리데케르케가 파리의 교외처럼 변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불어권 사람들이 우리를 지배하는데 익숙해 있다"면서 "벨기에에서 모든 문제가 언어공동체 사이 문제로 초현실적인 광경을 연출하고 있으며, 최선의 답안은 벨기에를 분리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어린이 소풍에까지 언어사용을 제한하려는 리데케르케의 노력은 연방정부는 물론 플랑드르 지방정부의 반대라는 장애물을 맞게 됐다.

마리노 쾰렌 플랑드르 내무장관은 "잘못된 환상이자 방식"이라며 "나는 그러한 결정이 즉각 취소됐음을 알린다"고 무효화를 선언했다.

하지만 쾰렌 내무장관도 이러한 사태의 근원엔 뿌리깊은 언어권 갈등이 자리 잡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는 "우리 플랑드르가 다수지만 우리 지역에서도 소수 불어권이 거부권을 행사해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있다"고 자치권 확대에 반대하는 불어권을 겨냥했다.

이처럼 벨기에를 남북으로 쪼갤 위기로 몰아가곤 하는 언어권 분열의 배경엔 언어권 사이 뒤바뀐 처지에서 오는 해묵은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

플랑드르 지역은 90년대 들어 물류 및 화학 등 지식기반 산업으로의 전환에 성공하면서 영국, 독일을 앞지르는 풍요를 누리고 있다.

반면 과거 지배계급으로 부유했던 왈로니아는 철강.석탄 산업이 사양화를 맞으면서 플랑드르 쪽에서 떼어주는 일종의 교부금에 의존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실업률만 해도 플랑드르는 6%에 불과한 반면 왈로니아는 16%에 달하고 있다.

이 같이 처지가 뒤바뀌면서 플랑드르쪽에선 왜 우리가 못사는 왈로니아까지 먹여살려야 하느냐며 분리 또는 독립 주장을 쉼 없이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특히 리데케르케는 브뤼셀 선거구에 속한 플랑드르 할데-빅보르데 지역에 포함돼 있어 언어권 갈등의 핵심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최근 네덜란드어권 정당들은 할레-빌보르데 지역에 거주하는 7만명의 불어권 주민들이 브뤼셀의 불어권 정당에 투표하고 있는데 대해 브뤼셀에서 자기네 입지가 축소된다며 브뤼셀 선거구 분리안을 의회에 상정, 통과시키려 했다.

이에 불어권 정당들은 브뤼셀 선거구에서 외곽의 플랑드르 지역이 떨어져 나갈 경우 그 지역에 거주하는 불어권 주민들은 네덜란드어권 정당에만 투표해야 하는, 사실상 투표권을 잃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연정탈퇴 위협으로 맞불을 놓았다.

하지만 불어권 정당들이 표결을 120일간 지연시키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일단 정면충돌을 모면했다.

sangin@yna.co.kr 연합 뉴스: 기사입력 2008-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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