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히브리어 탄생의 배경
현대 히브리어 탄생의 배경 /총론

안 유 섭 목사
( 아르케 원장, 반석교회 담임)



히브리어는 불과 100 여 년 전만 하더라도 문자로만 존재했지 일상 언어로 사용되지 않았다.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조국 이스라엘 땅을 잃어버리고 세계에 흩어져 유리표박하며 지내는 2000 여 년의 세월 동안 그들은 모국어인 히브리어 대신 각지의 방언을 사용했기 때문에 일상에서 사용하는 유대인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므로 히브리어는 살아 있는 언어가 아닌 죽은 언어였다. 적어도 현대 히브리어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벤 예후다가 현대 히브리어를 살려내기 전까지 히브리어로 의사소통하는 날이 오리라는 것을 예상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죽었던 히브리어를 오늘날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일상의 언어로 살려낸 사람은 1858년부터 1922년까지 살았던 벤 예후다( )이다. 그는 러시아에서 태어난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는데, 원래 랍비가 되는 교육을 받으면서 성경 히브리어를 습득했다. 그러나 그는 성장하면서 단순히 랍비가 되기보다는 유대 민족의 독립과 조상의 땅을 회복하고 조국어인 히브리어를 회복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벤 예후다는 조국에 가서 유대인 공동체를 위해 일하려면 의사가 되어 봉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20세 무렵에 의학 공부를 위해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폐결핵 때문에 의학 공부를 중단하고 3년 뒤에 팔레스타인으로 가서 정착하게 되었다. 당시 팔레스타인은 터키가 통치하고 있었는데, 그는 조국의 땅이 남의 나라에 의해 통치되는 것을 통탄하였으며, 특히 유대인들이 그들의 원래 언어였던 히브리어를 더 이상 실제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하였다.

그래서 벤 예후다는 히브리어의 부활을 위해 가정과 학교에서 히브리어를 가르치고 배워야만 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첫 단계로 유대인들과 히브리어로 말하기를 시도했다. 특히 무엇보다 자신의 가정에서는 히브리어로만 말하기로 결심했다. 벤 예후다는 그의 부인에게도 히브리어 이외에는 말하지 못하게 했을 뿐 아니라 아들이 태어나자 그에게도 히브리어로만 말을 가르쳤다. 아들에게는 히브리어가 아닌 다른 언어는 듣지도 못하도록 철저히 교육시켰다고 한다. 따라서 그의 아들은 히브리어 이외의 언어는 배우지도 못한 유일한 첫 번째 사람이 되었고, 또한 이스라엘 현대사에서 완전하게 히브리어를 구사하는 첫 번째 사람이 되도록 했다.

히브리어의 보급을 위해서 자신의 가정에서 뿐 아니라, 학교에서 젊은이들에게 히브리어를 가르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벤 예후다는 예루살렘의 한 학교에서 교사직을 제안했을 때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사실 그 당시 팔레스타인에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유대인의 2세들이 학교에서 공통의 언어도 없이 배우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때 벤 예후다는 그 학생들에게 공용의 언어로 히브리어를 가르친 것이다. 그의 히브리어 교습은 성공적이었고 이것은 다른 교사들에게 영향을 미쳤지만, 한편으로는 반대에도 부딪혀서 종교적인 신성한 언어를 가지고 세속적인 언어를 만들고 있다는 악평까지 감수해야 했다.

벤 예후다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히브리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는데, 특히 신문을 발행하여 큰 효과를 보았다. 그가 만든 히브리어 신문은 히브리어가 종교적인 언어일 뿐 아니라 일상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언어라는 것을 증명했다. 점차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큰 어려움 없이 그의 히브리어 신문을 읽을 수 있었다. 또 그는 신문에서 새로운 히브리어 단어를 만들어 소개하기도 하였다. 이는 나중에 히브리어 사전 편찬에 전초 작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방대한 이 사전은 그가 죽은 후까지 계속되어 그의 아들에 의해 완성되었다.

벤 예후다가 가지고 있던 히브리어 부활의 꿈은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인 사회 분위기와 부합했기에 실현이 가능했다. 그가 팔레스타인에 이주해 올 때 그곳에는 이미 많은 수의 젊은 이상주의자들이 새로운 유대인 사회를 건설하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조국의 땅에서 그들의 모국어로 히브리어를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그 결과 벤 예후다의 히브리어 보급 운동은 폭넓게 지지를 받고, 이들로 인해 가정과 학교에서 히브리어 사용은 금방 확산되었다. 벤 예후다를 비롯한 히브리어 부활을 꿈꾸던 이들의 노력으로 히브리어는 유대인들의 일상 언어가 되었고, 마침내 당시 팔레스타인의 위임 통치권을 갖고 있던 영국은 1922년에 히브리어를 팔레스타인의 공식 언어로 지정했다.

그렇다면 성경 히브리어와 현대 히브리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현대 히브리어는 모음 기호 없이 사용되며 또 필기체가 있다는 것이다. 원래 히브리어는 모음이 없이 자음만으로 이루어진 언어였으나, 히브리어가 일상 언어가 되지 않자 발음의 혼란 때문에 AD 7-8 세기경 맛소라 학자들이 정확한 모음의 보존을 위하여 모음 기호를 고안했다. 따라서 성경 히브리어란 보통 맛소라 모음으로 표기되는 맛소라 사본을 말하는데, 현대 히브리어에서는 이런 모음 기호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도 모음 기호를 전혀 배우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처음 히브리어 단어를 배울 때는 모음을 붙여서 정확하게 읽는 법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언어와 문자를 다소 혼동하여 설명하고 있으므로 읽는 데 주의: 주인장 씀)

성경 히브리어와 현대 히브리어의 차이는 그밖에 동사의 시제에서 발견된다. 시제에서 차이가 난다. 성경 히브리어는 시제를 완료와 미완료의 두 가지로만 구별하지만, 현대 히브리어에서는 시제를 과거, 미래, 현재형의 세 가지로 구분하는 것이 다르다. 성경 히브리어의 완료형은 현대 히브리어에서는 과거형으로 사용되며, 미완료형은 미래형으로, 그리고 분사는 현재형으로 사용된다. 아무튼 현대 히브리어는 전혀 근거 없이 만들어진 언어는 아니며 성경 히브리어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현대 히브리어와 성경 히브리어의 단어의 뜻은 대체로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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