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1% 시대>① 팽창하는 조선족 타운
2호선 따라 대림에서 건대 앞까지

<※ 편집자주= 국내 체류 외국인 130여만명 중 조선족(재중동포)은 50여만명(귀화자 포함)으로 우리 인구의 1퍼센트를 넘어섰다. 1992년 한중수교 후 조선족이 국내에 본격 유입된 지 20년이 채 못됐지만, 이제 '조선족이 없으면 우리 경제가 굴러가지 못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됐다. 조선족은 개인의 이주를 넘어 점점 가족 단위로 정착하고 있고, 가사도우미, 건설현장 노동자, 식당 종업원 등 '3D업종'에 그치지 않고, 기업가, 교수 등으로 활동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일원이 된 조선족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직 부정과 긍정으로 엇갈리고, 동포로 볼지, 외국인으로 볼지 기본적인 질문에조차 사회적 합의점이 없는 상태다. '국가'와 '민족'이 교묘하게 맞물려 진행되는 세계화 물결 속에, 다문화 한국사회 내 '1퍼센트 조선족'과의 상생 파트너십을 모색하기 위해 조선족의 역할과 위상 등을 짚어보는 기획기사를 4일부터 5회에 걸쳐 송고한다.>

(서울=연합뉴스) 양태삼 기자 = 서울 지하철 2호선 건대입구역 인근 '동일로 18길'. 길 양쪽으로 붉은 바탕에 붓글씨체 한문 상호를 내건 식당 간판들이 한 집 건너 달려 있다. 마치 중국 거리를 걷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매화반점(梅花飯店), 양꼬치(洋肉串), 샤브샤브(火鍋), 중국 식재료 상점임을 짐작케 하는 '중국식품(中國食品)', 간혹 보신탕을 뜻하는 구육(狗肉)도 눈에 띈다.

주말과 휴일에는 고된 노동으로 단련된 듯한 인상의 40∼50대 남성들과 유행에 뒤진 듯한 옷차림에 손매가 투박한 여성들이 어울려 가끔 중국어를 섞어가며 북한식 말투로 왁자지껄 얘기를 나눈다. 조선족들이 대부분 생업으로 바쁜 평일에는 양꼬치 거리에 대한 소문을 들은 한국인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양꼬치 음식점은 한국인과 조선족 간 접점을 넓히는 매개체가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중국 서북지역에서 기원한 양꼬치는 한국에 와서 고춧가루와 깨소금이 섞인 한국식 양념에다 중국 양념인 쯔란을 찍어먹는 방식으로 진화해 대표적인 한중 퓨전요리로 자리잡았다.

동일로 18길에는 10여년 전만 해도 인근 공단에서 일하는 이들을 위한 식당과 자동차 정비부품 업체들이 몰려 있었다. 하지만 4∼5년 전부터 조선족들이 하나, 둘 이 동네로 이주하고, 이들이 즐겨 먹는 양꼬치집이 생기기 시작해 이제 80여개에 이르렀다. 이제는 '동일로 18길'보다 '양꼬치 거리'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조선족 타운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공장이 밀집한 서울의 구로동과 가리봉동, 대림동 일대에 국한됐지만, 조선족 동포가 꾸준히 늘어나고 지역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서울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조선족 타운은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서울을 동쪽으로 돌아 신림.봉천.서울대입구역을 거쳤고 4∼5년 전부터는 건대입구역과 신설동역 등지로 팽창했다.

이 지역 음식점은 한글과 한문이 섞인 간판을 달고 한자로 된 메뉴판을 내놓고, 중국식 붉은색 등으로 장식해 영락없이 중국 거리를 연상시킨다. 이곳 종업원은 틀림없이 '연변 이모'이고, 대다수 손님들은 중국어를 간간이 섞어가며 북한 억양의 연변 말투를 구사한다.

◇ 서울에 약 20만명..영등포구에 가장 많아
행정안전부가 집계하는 '외국인 주민현황'에 따르면 올해 1월1일 현재 서울에 사는 조선족은 한국으로 귀화한 이들 2만6천650명을 포함하면 모두 20만9천명. 전국의 조선족이 약 50만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5명 중 2명은 서울에 사는 셈이다.

이들을 비자 형태로 보면 방문취업(H2) 자격인 조선족은 12만5천명, 귀화하지 않은 결혼이주자는 1만4천명, 투자 자격은 1만3천명, 연수비자(D-3) 2만9천명, 유학생은 1천500명 등으로 나뉜다.

이들은 영등포구에 3만7천명을 비롯해 구로구(2만8천명), 금천구(1만8천명), 관악구(1만5천745명) 등지에 산다.

5천명 이상 거주 지역으로는 광진구(9천703명), 동작구(8천715명), 동대문구(6천50명), 송파구(5천903명) 성동구(5천84명) 등이다.



<가리봉동 입구의 조선족 음식점 거리>
◇ 원조는 대림역 '연변거리'
지하철 2호선 대림역과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과 가산디지털단지역 인근의 남부순환로와 우마길이 만나는 '연변거리'는 조선족 타운의 원조격이다.

정부가 2002년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사면 조치를 취하며 조선족에게 출국 준비기간으로 1년을 부여하자 이를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으로 이해한 불법체류 조선족들이 거리로 나오며 조선족 거리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옛 공단 지역이라 이른바 쪽방 타운이 있고, 반지하와 옥탑방이 많아 주거비가 싼 게 이들이 밀집한 이유다.

그러나 이 지역 인근에 가산디지털 3단지와 구로디지털 1단지가 들어서고, 재개발이 이뤄질 예정이라 조선족들은 인근 대림, 신대방, 신림 등지로 옮겨살기 시작했다. 이렇게 지하철 2호선 노선을 따라 조선족 타운이 확산되는 모양새가 됐다. 건대입구역 일대는 가장 최근에 생긴 조선족 타운이다.


<대림역 연변거리 모습>
◇ 양꼬치거리 vs. 중국음식거리
지하철 2호선 건대입구역에서 남쪽으로 200m 내려가면 동쪽의 능동로와 서쪽의 동일로를 잇는 약 700m 구간의 행정명칭은 '동일로 18길'이다.

하지만 이 길 입구에 광진구청은 행정명칭과 별도로 '양꼬치거리', '중국음식거리'라고 쓴 이정표 두 개를 나란히 세워 놓았다. 일반인들에게는 양꼬치거리, 연변거리, 중국음식거리로 더 잘 통하기 때문이다.


<양꼬치거리와 중국음식거리를 병기한 이정표>
길 양편에는 양꼬치구이와 각종 중국음식 요리를 파는 식당이 80여개가 성업중이다. 작년에만 약 40여개가 개업했다고 한다. 꼬치집이 몰리면서 서비스 경쟁도 불붙어 요리 하나를 시키면 물만두같은 요리를 덤으로 주는 '원 플러스 원'까지 등장했다.

이곳의 46개 업소 주인들의 모임인 '동포상인회' 한태희 총무(아리랑꼬치성)는 "한국인 입맛에 맞게 양념을 많이 하지 않고 서비스 요리도 넉넉히 제공하며 손님을 끌고 있다"며 "이곳 거리를 홍보하는 게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은 옛 공단 지역인 성수동과 가까워 반지하 또는 옥탑방 등 주거비가 싼 주택이 많고 지하철 7호선이 강남으로 이어줘 식당이나 숙박업소에서 일하는 조선족에게는 교통도 편리하다.

광진구는 조선족 주민 수가 2007년 4천900명에서 2008년 7천904명으로 크게 늘었고, 2009년 9천18명, 지난해 8천813명, 올해 9천703명으로 서울 25개 구청 중 다섯 번째로 많다.

지하철 2호선인 신설동역에서 동대문역까지인 왕산로에도 20여개 양꼬치집이 몰려 있다.

동대문 재래시장에 납품하는 의류를 만드는 소규모 공장이 밀집한 창신동 일대가 임대료가 싸 조선족이 많이 살기 때문이다.

신설동의 한 부동산업소 직원은 "임대료가 가장 싼 집은 조선족이 산다고 보면 틀림없다"며 "거리가 중국풍으로 변한다고 불평도 있지만 이들 덕에 쇠락하는 지역 경제가 그나마 굴러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광진구 자양동에 사무실이 있는 한국다문화가족지원연대의 정동주 사무처장은 "양꼬치집을 운영하는 조선족은 10년 전 이곳에 와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양꼬치 집을 개업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장사가 잘 돼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업주도 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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