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 이슬 털기’ 미세동작 첫 포착 | |
충남 서산 부춘중 학생들 카메라에 담아 | |
이른 아침에 거미줄에 대롱대롱 달린 이슬방울들을 거미가 발과 입을 이용해 부지런히 털어내는 진기한 장면들이 카메라에 처음 포착됐다. 거미는 이슬을 발의 잔털로 흡착해 거미줄 밖으로 털어내거나, 입으로 빨아들여 농구공처럼 내던지기도 하며, 새총 쏘듯이 거미줄을 당겼다 놓아 퉁겨내기도 했다. 왕거미과에 속한 거미들이 이슬을 제거하는 이런 독특한 행동은, 올해 전국과학전람회에서 학생부 대통령상을 받은 충남 서산시 서산부춘중학교 1학년 조성민·최지우(13)군의 거미 관찰탐구를 통해 처음으로 세세히 밝혀졌다. 학생들은 238건의 동영상과 수많은 접사 사진을 찍으며 기생왕거미, 무당거미, 먼지거미, 긴호랑거미 등 13종 왕거미의 행동을 관찰했다.
■ 새총 쏘듯, 공 던지듯 이슬 제거 조군과 최군은 올해 초 탐구활동을 시작해 여름부터는 거의 날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거미가 이슬을 없애는 현장인 뒷산, 폐교, 저수지 같은 곳의 거미줄을 찾아다녔다. 이슬을 없애는 거미 행동들은 가지가지였다. “기생왕거미만 해도 세 가지 방법을 써요. 첫째 다리 끝의 미세한 털로 이슬을 흡착해요. 다음에 거미줄 아래쪽으로 재빨리 몸을 돌리고는 이슬을 거미줄에 놓고 새총 쏘듯이 줄을 퉁기면 이슬이 날아가요. 어떤 때엔 더듬이(촉지)와 첫째 다리를 써서 입으로 빨아들인 뒤에 내뱉는 식으로 던지기도 하지요. 이슬이 잘 털어지지 않으면 거미줄이 걸린 나무나 풀 쪽으로 가서 거기에 흡착시키는 방법도 있고요.” 어떤 거미는 한 번 줄을 퉁겨 여러 이슬방울을 한꺼번에 털어낸다. 또 어떤 거미는 거미알주머니 주변에 맺힌 이슬방울을 제거하는 데 공을 들인다. 발로 이슬을 걷어차기도 한다. 공통점도 있다. 이슬 제거는 대체로 동튼 뒤 2시간 전까지, 해지기 전 2시간 동안에 관찰됐으며, 털어내는 이슬 크기는 지름 1㎜ 정도였다. ‘바퀴통’(한복판의 바퀴 모양 거미줄)이나 먹이, 알주머니에 이슬이 달리면 95% 이상 꼼꼼히 없애는 행동도 대부분 거미들에서 나타났다. 이슬이 작을 땐? 거미는 작은 이슬을 모아 크게 만든 다음에 한꺼번에 털어냈다. 최대 일곱 방울까지 뭉치는 행동이 관찰됐다. 이들을 지도한 김만용(42) 교사는 “이슬 털어내기 동작은 순식간에 일어나 고속촬영을 한 뒤 0.01~0.1초 간격의 수많은 정지화면을 분석했다”며 “그냥 털어내기가 아니라 다리를 두세 번 회전하며 춤추듯이 털어내는 등 여러 동작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 “삶의 터전 거미줄 보호 본능” 거미는 이슬 털어내기에 왜 이토록 애쓸까? 두 학생과 김 교사가 관찰과 실험, 자료조사를 통해 얻은 결론은 “생존을 위해 거미줄 구조를 보호하려는 본능 때문”이라는 것이다. “거미줄은 거미한테 삶의 터전이자 먹이를 제공하는 생명줄이기에 거미줄 관리는 매우 중요한 거미의 본능”이다. 무엇보다 가로줄(가로 방향 거미줄)에 촘촘히 붙은 끈끈이 점액이 이슬 탓에 훼손될 수 있다. 두 학생은 “실험을 해 보니 습도가 95% 이상 되면 점액질이 녹기 시작해 이슬이 맺히면 점액질이 파괴될 수 있다”며 “끈끈이 보호를 위해서도 이슬을 서둘러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슬이 많이 달리면 이슬의 무게 때문에 먹이가 거미줄에 걸려도 흔들림(진동)이 둔해져 거미가 먹이를 감지하는 능력도 떨어질 수 있다. 게다가 이슬 무게 때문에 거미줄이 밑으로 처지게 된다. 김 교사는 “이슬 무게 탓에 가로줄이 축 처지면 옆쪽 가로줄까지 당겨지고, 그러다 보면 처진 줄이 다른 줄과 엉키는 등 거미줄 구조가 훼손될 위험이 커진다”고 말했다. 이슬 제거는 거미의 최적 설계작품인 거미줄의 구조를 사수하라는 특명 작전과도 같다. 거미의 영특함은 세 사람 모두 놀라게 했다. 조군은 “거미의 영리한 행동을 알게 되면서 소름이 끼쳤고 알주머니에 매달린 이슬을 일일이 털어내는 여덟혹먼지거미를 볼 땐 모성애를 느꼈다”고 말했다. 최군은 “어둠 속에서 사는 징그런 벌레로만 여겼는데 이젠 신기하고 귀엽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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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을 제거하는 거미의 습성은 학계에 보고된 적도 없고 거미를 수십년 연구한 나도 몰랐던 새로운 사실입니다. 학생들과 교사가 끈질기게 노력해 독창적 발견을 해냈어요.”
우리나라 ‘거미 박사 1호’로 일컬어지는 김주필(65) 동국대 생명과학과 교수(주필거미박물관장)는 17일 전국과학전람회 대통령상을 받은 서산부춘중학교 학생들과 지도교사의 탐구작품에 대해 “학술지에 논문으로 다듬어 발표해도 손색없을 정도의 연구 성과”라고 칭찬했다. 김 교수는 두 학생의 거미 탐구활동 과정에서 여러 가지 조언도 해 주었다.
김 교수는 거미가 상당한 지능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먹이를 포획하는 전략·전술이나 공격·방어 능력으로 볼 때에 거미는 아이큐(IQ) 60~70 수준의 지능을 갖춘 절지동물이라는 게 학자들의 견해”라고 소개했다. “세로줄(방사 모양 거미줄)은 끈끈이가 없어 거미가 오가는 통로가 되고, 촘촘한 가로줄은 끈끈이가 달려 먹이를 포획하지요. 이런 거미줄에 이슬이 달리면 가로줄의 끈끈이가 녹고 늘어져 먹이가 빠져나갈 틈도 넓어지지요. 이슬 제거는 거미의 생존 문제이겠지요.”
김 교수는 2004년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진중천 계곡의 6만6000㎡ 숲에 세계 유일의 거미생태수목원인 ‘아라크노피아’(거미 천국이란 뜻, arachnopia.com)와 ‘주필거미박물관’을 세워 운영하고 있다. 30년 동안 그가 새로 발견한 140여종을 포함해 국내외 5천여종의 거미 표본들이 소장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