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사, 예수님의 몰아적 사랑


 '서울주보'에 실린 한 신부님 이야기가 코끝을 찡하게 한다.


 <<사제는 자신이 몸담았던 공동체를 평생 짝사랑처럼 마음에 담고 삽니다. 한번은 장례식이 있어서 먼저 있던 성당에 가야 했는데, 멀리서 성당 종탑이 보이자 심장이 쿵쿵 뛰었을 정도입니다.

 공동체와 맺은 추억은 사제 생활에서 큰 행복과 위로가 됩니다. 그런데 인사 이동이 반복되고 이별의 아픔을 겪으면서 나름대로 마음을 강하게 먹으려고 노력합니다. 새 임지에서는 냉정하게 마음을 먹고 정을 주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정작 임지를 떠날 때 고별사를 하다 보면 어느새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아려 옵니다.

 첫 주임신부로 사목했던 구파발성당을 떠날 때입니다. 마지막 고별 미사가 있던 일요일 내내 4학년짜리 꼬마가 하루 종일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그 녀석은 내가 성당에 처음 부임했을 때 꽃을 준 화동이었습니다. 그 당시는 유치원을 다니는 꼬마였는데, 어느 틈에 키도 훌쩍 크고 늠름해져 있었습니다.

 막상 내가 떠난다고 하니 내심 섭섭했나 봅니다. 낮부터 집에 안 가고 내 주위를 서성였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와서 "신부님과 헤어지는 것을 무척 섭섭해 한다"고 귀띔해 주었습니다. 그 아이는 밤이 됐는데도 집에 가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려, 나는 일부러 야단을 쳤습니다.

 "이 녀석아, 이제 집에 가야지. 하루 종일 공부도 안하고 성당에서 뭐 하는 거야?"

 나는 녀석 마음을 모른 척했습니다.

 "신부님, 내일이면 다신 못 만나잖아요. 그래서…."

 금방이라도 아이 눈에서 눈물이 흐를 것 같았습니다. 그 애 눈을 보자 나도 하루 종일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난 눈물을 안 보이려 돌아서면서 짧게 소리쳤습니다.

 "그래도 이젠 어서 집으로 가" 하고는 사제관 문을 쾅 닫았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문을 열어 보니 그 녀석이 서 있었습니다.

 "신부님, 이제 집으로 갈 테니까,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신부님이 쓰시던 손수건 한 장만 주세요. 손수건 보면서 신부님 생각할게요."

 이윽고 녀석은 내 손수건을 받아 들고 기뻐하면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난 한참 동안이나 멍하니 그 아이 뒷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지금도 가끔 생각합니다. 세월이 흘러서 어엿한 청년이 됐을 그 녀석이 아직도 내 손수건을 가지고 있을까….>>

(2004년 3월21일 '서울주보')


 사람은 정(情)을 지닌 동물이다. 정 때문에 울고웃고 하며, 그 정을 추억하며 흐뭇한 미소에 잠기기도 한다. 그 정을 길이 간직하려고 정표를 주고받기도 한다. 보이는 물건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담아둘 줄 아는 게 사람이다.


 이처럼 우리의 소중한 마음과 추억을 담고 있는 사물들은 우리 주변에 많다. 가족이 함께 쓰던 찻잔, 어머니가 쑨 옥수수죽, 아버지가 남겨 놓으시어 내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재떨이, 낡은 책상, 성탄절에 선물 받은 굵직한 양초, 꽃병, 고향 마을 오솔길, 부모님과 함께 살던 옛집 등등….


 이런 사물들에서 우리는 무언의 말을 듣는다. 이들을 볼 때마다 우리는 이들 목소리와 메시지를 듣게 된다. 이들은 다른 것들과는 구별되면서 그 안에 현존하는 그 무엇을 간직하고 표현하고 회상시키고 보여주며 전해 준다.


 상징이나 징표를 원하는 사람의 속성을 하느님께서는 잘 알고 계신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보이지 않는 사랑을 표현하시려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물건들을 사용하신다. 결국,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회 가르침을 체험적으로 수긍하게 된다.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이러한 피조물들은 인간을 거룩하게 하시는 하느님 활동이 표현되는 수단이며, 동시에 하느님께 경배 드리는 인간 행위를 표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인간의 사회생활을 위한 표징과 상징도 마찬가지다. 씻고, 기름 바르고, 빵을 떼고, 잔을 나누는 행위들은 거룩하게 하시는 하느님 현존을 드러내며 창조주께 대한 인간의 감사를 표현할 수 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148항).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싶어하고 손으로 만지고 싶어한다. 심지어 하느님 사랑까지도 무언가 보이는 것을 통해 확인하고 싶어 한다. 이런 사람의 욕구를 하느님은 나무라지 않으셨다. 오히려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당신 사랑을 드러내주셨다. 이것이 바로 성사(聖事)다.


 요컨대, 하느님께서 보이지 않는 거룩한(聖) 은총을 보이는 것(事)을 통해 베푸시는 것을 성사(聖事)라고 한다. 예수님께서 보이지 않는 사랑의 보이는 정표로서 남겨주신 성사의 전범(典範)이 성체성사이다.


 마지막 작별의 때가 오자 예수님께서는 당신 사랑을 빵으로 볼 수 있게 해 제자들에게 나눠 주셨다. 당신 몸을, 곧 그 만큼 사랑을 생명의 빵으로 내어놓으셨다. "받아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마태 26,26).


 이윽고 예수님은 당신 피를, 죄의 용서를 위한 계약의 증표로 내어주셨다.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마태 26,28).


 실제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이 말씀을 이루셨다. 이로써 양의 피흘림을 통한 구약의 파스카(희생) 제사가 예수님 피흘림을 통해 추월불가능하게 완성됐다. 하느님 구원(救援)섭리가 예수님 십자가 제사를 통해 궁극적으로 완수됐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이 기묘한 사랑의 업적이 모든 세대에 대물림하며 생생하게 재현되기를 바라셨다. 그래서 명하셨다.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루가 22,19).


 그 덕에 우리는 오늘도 '밥'이 되시는 예수님을 먹으며 살고 있고, 그 피흘리심의 능력으로 날마다 죄를 용서받으면서 '거룩한 사람'(사도 26,1)이 되어 감지덕지하게 살고 있다.


 성체성사뿐이 아니다. 다른 성사들에도 이러한 자기희생적 사랑이 녹아들어 있다. 모든 성사에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만나는 것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몰아적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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룡정에서 명동촌을 가려면 선바위가 먼저 반긴다.



명동촌 입구에 자리한 시인 윤동주의 생가이며 유년의 꿈을 키운 곳!!!



생가의 뒤켠. 멀리 선바위가 보이고 저녁이면 별을 헤어보았음직하다.



시인의 방. 시작을 위하여 귀한 아들한테 방을 한칸 주었단다.



정지간 한켠. 유년의 윤동주와 함께 했을 가구들.



윤동주가 마시던 우물. 그의 우물에 비친 '자화상'이 옆에 새겨져 있다.



외조부 김약연선생이 세운 교회가 집옆에 있다. 지금은 명동역사전시관으로 활용중.


역사전시관 안내를 맡은 청년.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열심히 진실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명동촌 중앙에 있는 명동학교 옛터. 윤동주가 다니고 근동의 인재가 다 모이던 교육의 산실이었는데 지금은 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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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 한반도

- 너무나 소중한 -

중국에 와서 느끼는 조국은 전과 다르다.

특히 한 나라의 영토라는것이 민족의 자존을 지키고

생명을 영위해 나가는데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절실하게 느낀다.

한반도는 작다.

그것도 남북으로 나뉘어 언제 통일될지 기약할 수 없다.

중국으로 치면 한반도 정도의 성은 크기로나 인구로나 여럿이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면 한반도가 22만km2이고 인구가7천만 정도이면

유럽의 영국과 비슷하고독일이나 프랑스와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워낙 우리 주위에 중국, 러시아, 일본 등 큰 나라가 있어 그렇지

세계적으로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도 작은 나라가 아니다.

남북통일이 되고 민족이 화합하여 잘 살아낸다면

대한민국과 일본의 비교는

유럽에서 프랑스와 독일의 비교로 견주어 볼 수 있다고 본다.

우리 민족은 개성이 강하고 창의적이고 예술적이며 낭만적인데

일본은 단합을 잘하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면이 비교된다고 볼때

우리가 프랑스 정도라면 일본은 독일 정도로 비교해 볼수 있으리라.

우리 민족의 미래는 밝다.

남북통일과

민족의 단합과

자존을 위한 노력이 전제된다면.

한반도의 위성사진을 보면서

7천만이 살아갈우리 민족의 터전을 보면서

그 소중함을 다시 한번 절실히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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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지도층, 이젠 反韓넘어 조롱까지

[동아일보] 2005-10-28 03:27

[동아일보] 미국 워싱턴 지식인층의 ‘반한(反韓) 인식’에 새로운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전에 없던 조롱 섞인 비판이 터져 나오고, 공화당 인사들 사이에 주로 보이던 반한 감정이 민주당 핵심부로 확산되는 징후까지 포착된다. 지한파(知韓派) 인사들은 이런 기류에 대해 “그게 아니다”라는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피터 브룩스 헤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은 21일 LA타임스 기고문에서 한국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조지 W 부시 1기 행정부에서 국방부 부차관을 지낸 그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 논란을 언급하면서 “은혜를 저버리는 자(ingrate)보다 나쁜 건 없다. 금주의 ‘배은망덕 1등상’은 한국이 차지함 직하다”고 퍼부었다.

케이토(CATO) 연구소의 덕 밴도 선임연구원은 17일 지식층을 대상으로 발간되는 중도보수 월간지 ‘이성(Reason)’ 최근호를 통해 ‘한국은 미국에 의존하는 사회보장 여왕(welfare queen)’이라고 썼다. 소득이 넉넉하면서도 저소득층 사회보장보험금을 불법으로 받아내 호화롭게 사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는 주한미군에 대해서는 “미국에는 세금을 축내고, 한국에선 인기가 없는, 양국에 불필요한 존재”라고 평가했다.

25일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한국인의 역사적 망각(historical amnesia)’ 발언을 포함하면 불과 열흘도 안 되는 사이에 한국인의 부정적 대미 인식에 대한 비판이 줄줄이 터져 나온 셈이다.

그동안 한국의 역대 정부를 겨냥한 비판이 적지 않았지만, 한국을 이처럼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조롱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워싱턴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논란이나 북한보다 미국이 더 위협적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일부 지식인들이 더는 인내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물론 댄 버튼(공화) 하원의원처럼 동료 의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비록 논란에 빠져 있지만 한미관계는 가장 역동적인 양자관계로 유지해야 한다”고 한 우호적인 목소리도 남아 있다. 그러나 의회나 싱크탱크에 몸담고 있는 지한파 인사들은 서로 “밴도 선임연구원의 글을 읽어 봤느냐”거나 “표현이 지나치긴 했지만 브룩스 선임연구원의 글이 틀리지 않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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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主敎 聖地 八道 마을을 찾아서

2005. 10. 23(일)

몸이 찌부둥해서인지 일어나 보니 8시 15분전이다. 8시 미사는 못간다. 아침을 먹고 잠깐 학교에 들렀다가 10시 중국말 미사에 참여한다. 조선말 미사 때보다 사람이 훨씬 적다. 그래도 중국어의 강세 때문인지 기도나 찬송 소리가 작지 않다. 미사후 西시장에 들러 쌀과 김치와 돼지고기를 사가지고 와서 찌개를 끓인다. 맛이 저번보다 못하고 고기도 질기다. 확실히 재료와 조리법에 따라 음식맛이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八道 마을을 가보기로 하고 집을 나선다. 八道는 행정구역으로 中國 吉林省 龍井市 朝陽川鎭 八道이다. 이곳 연변지역에서는 天主敎의 聖地로 알려진 곳이어서 延邊에 온 이후로 꼭 가보고 싶던 곳이다. 시내를 벗어나자 넓은 들판이 펼쳐진다. 이미 된서리가 몇 차례 오고 첫눈도 내렸건만 아직 볏단이 줄지어 탈곡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 베지도 않은 논도 있다. 새로난 길을 한참 가니 비포장이 나온다. 중국의 농촌은 아직 비포장이 많다. 좌우로 이어지는 논에는 농부들의 손길이 바쁘다. 멀리 들이 끝나는 곳에 울멍줄멍 산이 둘러쳐 있다. 연변의 산들은 대개 긴 능선으로 이루어지는데 이곳은 마치 한국의 산과 아주 흡사하다. 그 산자락에 넓은 들을 내다보며 背山臨水 형으로 앉은 동네가 바로 팔도이다. 왜 지명이 八道인지, 朝鮮 八道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지는 더 알아볼 일이다.

마을이 제법 큰데도 진입로나 안길이 모두 비포장이다. 초가집도 어지간히 있다. 멀리 마을 뒤 언덕으로 聖堂의 뾰족탑이 선명하다. 聖堂 가는 길을 못 찾아 몇 번 헤매다가 골목 하나를 찾아든다. 텃밭에 닭들이 놀고 처마 밑에는 강냉이가 주렁주렁 말라간다. 볏단을 높이 쌓아 올리느라 부부의 손길이 바쁘다. 골목에는 실팍한 황소가 몇 마리나 매여 있다. 초가집은 아직 추수가 안 끝나 새로 이엉을 덮은 집이 없어서 좀 추레하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인지 집에는 마루가 없고 출입문과 창문도 모두 비닐로 덧댔다. 지붕은 초가지만 외벽은 모두 흰 색이고 창틀은 파란색인 것이 전형적인 이곳의 농가 주택 모습이다. 離農 現狀 때문인지 여기저기 쓰러져 가는 집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울퉁불퉁 패인 골목길을 오르니 聖堂이 나온다. 살짝 열린 옆문으로 조심스럽게 성당 경내로 들어선다. 문옆에 두레박 우물이 있다. 두레박도 그대로 옆에 놓여 있고 넘겨다 보니 물이 저 아래로 보인다. 성당건물을 보니 ‘팔도천주교’라고 선명히 쓰여 있다. 이곳도 文化革命 때 다 부숴버린 것을 다시 세운 것이라고 한다. 聖母像 아래 쪽에 옛 성당의 礎石이 남아 있다. ‘一九一六年 성당기초돌’이라고 글씨도 선명하다. 90여년 전에 성당을 세웠으니 信仰의 씨는 훨씬 전부터 이곳에 뿌리 내렸으리라.

성당으로 들어가는데 신발장에 털신이 꽉 차있다. 주일 신자수가 농번기라 요즘은 백명 정도이나 겨울에는 백오십명은 된단다. 시골 성당으로서 상당한 숫자이다. 성당 안은 아주 깔끔하다. 예수고난 14처상이 벽을 한바퀴 돌았다. 뒷벽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종교사무국 명의의 ‘우수종교활동장소’라는 패가 붙어있고, 그 옆에는 ‘종교활동장소동록증‘이 붙어있다.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이고 종교활동도 등록이 되고 허가를 받아야 가능한 것이다. 맨 앞줄로 나아가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팔도의 敎友를 위해서, 우리 조선족 동포의 진실한 삶의 나아짐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 자신의 더 깊은 믿음을 위해서.....


성당을 나와 옆 건물에서 사람 소리가 나서 들어가 보니 小聖堂이다. 겨울 미사를 위하여 몇 분이 祭臺를 수리하고 있었다. 여자분과 인사를 나누고 보니 修女님이시다. 釜山 분도수녀회에서 오셨다고 한다. 두 분이 일하고 계신데 公州 신관동 성당 黃토마스 수녀님 말씀을 드렸더니 선배 수녀님이라고 하시며 잘 안다고 하신다. 젊은 수녀님 두 분이 부산에서 이곳 연변 땅 팔도까지 오셔서 모든 개인적인 것을 버리고 이곳 羊들을 위하여 봉사하고 계신 것이다. 수녀님이 안내해 주신 길로 성당 뒤 언덕길을 오른다. 올라보니 아득히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이 온통 하얀 十字架로 덮여 있다. 요한 패트릭신부, 감정옥안나수녀, 비오엄신부, 그리고 ‘나는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 것입니다(요한11.25)’라는 말씀 아래 여러 수녀님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베로니카라우스수녀 출생 1889년 서원 1914년 선종 1986. 4. 8’ 등과 같이 일곱 분의 이름과 연도가 하얀 비석에 새겨져 있다. 무덤은 비좁고 주위는 황량하다. 그러나 죽어도 산다는 永生을 바라며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碧眼의 신부님 , 그리고 수녀님들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이곳 延邊 八道 땅에까지 와서 일하고 善終하고 끝내 이곳에 묻혀 있는 것이다. 여러 핍박 속에서도 면면히 이어오는 信仰의 延長線을 생각하며 언덕을 내려온다.



성당 아래에는 學校가 있다. 초중이 함께 배우는 八道九年一貫制聯合民族學校이다. 主日이라 학교 농구장에서 콩을 추수하는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눈다. 원래 이 학교는 성당을 세운 獨逸 神父님들이 세웠다고 하는데 입구에 소나무가 도열한 것이 근사하다. 먼 데서 와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작은 기숙사도 있다. 그러나 학생수는 줄고 한쪽 건물은 텅 비어 있다. 농촌지역의 조선족 학교를 가보면 늘 가슴 한 쪽이 휑하니 서늘해 옴을 느낀다. 좀더 좋은 환경에서 알찬 내용으로 공부해야 하는데 학생수는 줄고 투자는 않고 속속 폐교는 늘어가고 있다.


그래도 학업을 포기하지 않는 그 열성이 훌륭하다. 아주머니 또한 아들 둘을 대학까지 畢業(=卒業)시켰는데 아들 하나는 연변과기대를 필업하고 한국의 光州에 가서 硏究生 課程(=석사과정)을 마치고 계속 연구하고 있단다. 그러니 열심히 일하고 농한기에는 시내에 나가 다른 일을 해서 또 돈을 벌어야 한단다. 나이가 쉰넷이어 나와 두 살 차이건만 겉보기에는 예순이 넘어 보인다. 자식을 위하는 그 마음이 우리의 부모님과 똑같아 머리가 숙여진다.

어둡기 전에 마을을 빠져나온다. 聖堂에서 나올 때 ‘또 오겠습니다’ ‘예 오세요’하고 修女님과 나눈 인사를 상기하며 빠른 시일내에 다시 찾아 같이 미사도 드리고 성당 이야기, 마을 이야기도 듣고 조그만 도움이라도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八道 마을을 떠나왔다.


八道의 가을

- 김성련

가을은 깊어가고

논밭에서 손길들은 바쁘다.

어릴적 황혼녘 들판

손끝에 피배며

볏단을 묶고 나르고 쌓았던 일

지금 수십년을 훌쩍 넘어

연변땅 팔도 마을에서 다시 본다.

차가운 저녁 어스름 속에서

남편과 아내는 재게 손을 놀리고 있다.

소는 마른 옥수수 잎사귀 씹고

신작로길을 차 한대가 먼지 일며 지나간다.

어릴적 가을 어스름은 늘 바빴다.

한기는 옷깃을 파고 드는데

아버지와 형제들 식구들

볏단을 묶고 나르고 또 쌓았다.

어둠에 밀려 일마치고

흙발로 사립문 들어서면

초가집 처마에 호야불 비치고

어머니가 바삐 준비하신

늦은 저녁을 먹으며 시장기를 달랬다.

오늘 연변의 팔도에서

어릴적 늦가을 저녁이 한없이 그립다.

※ 사진은 길림성 용정시 조양천진 팔도마을의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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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문시 조선족 유치원 - '어린이 락원'


열심히 율동하는 조선족 어린이들과 지도교사들.


소학교 교문앞. 교문은 전동문으로 닫아 놓고, 통학용 자전거는 학교 앞에 거치했다.


연길시 보행자 거리. 물자와 사람이 넘쳐나고 소음과 함께생명력으로 가득하다.


겨울옷패션쇼. 길가에서 즉석으로 벌어진 쇼로 가끔 관중들에게 양말을 뿌려준다.


학교 잔반을 실러온 나귀. 조그만 놈이 제법 힘도 세고 빠르다.


인력삼륜차. 어디가 앞인지 안장의 방향에 주목하시기 바람.


추석에 먹는 월병(月餠).맛도 좋고 비싸며표면에 글씨가 다 다르게 쓰여 있다.


연변지역 음식점, 미장원, 술집 등 간판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진.한국의 어떤 탤런트인지알아맞춰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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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편지가 중국까지 따라왔다.

유치원 초등학교 다닐 때의 편지니

정말 오래 된 것들이다.


1993년 5월 6일에 유치원에서 쓴 아들의편지


1998년 11월 28일에 쓴 딸의 생일축하편지.


같은 날 쓴 아들 편지. 컴퓨터와 서바이벌에 빠져 있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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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조선족자치주왕청현 백초구진에 만천성(滿天星) 선녀봉풍경구가 있다. 선녀는 백의선녀인데, 알고보니 바로 우리 단군신화에 나오는 웅녀이다. 왜 이곳 만천성(滿天星) 지구에단군신화가 전해오는지는 연구해 보아야 할 것이다. 중국측에서의 설명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백의선녀는 조선민족 고대신화에 나오는 시조모이다. 옛날에 곰과 호랑이가 같은 굴에서 살면서 늘 천신께사람이 되기를 빌었다. 이때 천제의 아들 환웅이 그들에게 영험한 쑥 한다발과 마늘 20매를 주면서 말했다.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동안 햇볕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되리라" 호랑이는 햇볕을 못보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굴밖으로 나와 결국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곰은 스무하루를 참았더니드디어 변하여 미녀가 되었다.그녀가 곧 백의선녀이고 환웅과 결혼하여 자손이 번창했는데 이들이 고대조선민족이다.

백의선녀의 조상은 2001.9.18 준공했는데 높이 18미터, 무게 500톤으로 용귀도북단의 산정상에 우뚝 서있다. 백의선녀상은 중국 조선족 부녀의 근면, 용감, 선량, 미려함을 상징하고 있다.]


만천성 관광은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합니다. 왕복 20위안.


매표소 입구. 백의선녀를 곰과 호랑이가 호위하고 있고 기둥에는 물동이를 머리에 인 조선여인상이 조각되어 있다.


긴 능선을 따라 다다른 백의선녀상. 족두리에 용잠을 하고 오른손에는 마늘을 왼손에는 쑥을 들고 있다.


선녀상 가는 길의곰상. 곰은 선녀상을 바라보고 있는데 발아래 마늘과 쑥이 있다.


호랑이는 선녀상을 등지고 있다.


지명이 용귀도라서 그런지 용거북상이 있고 주위에는 팔괘가 그려져 있다.


선녀상 앞에서 내려다본 산줄기. 강이 크게 감돌고 있는 멋진 지형이다.


산을 등지고 강을 앞두고마을 앞에는 비옥한 논이 있는 조선족 농촌이다.


그 마을로 들어가는 다리. 현수널판지(?) 다리인데 아주 특이하여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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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내리는 '하얀 山' 백두산

과학기술부 산하 한·중대기과학연구센터(소장 정용승·鄭用昇)는 9일 미국해양기상청(NOAA) 위성을 통해 이날 오전 11시17분 관측한 눈 쌓인 백두산의 위성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 사진 오른쪽 위의 흰 원처럼 보이는 부분이 백두산의 흰 눈. 아직 물이 얼지 않은 천지(天池)도 검은 점 모양으로 또렷하게 보인다.

정 소장은 “이달 3일에 이어 7일에도 제법 많은 눈이 내리면서 백두산 고지대에 새로 쌓이고 있다”며 “쌓인 눈은 내년 6월쯤까지 녹지 않고 계속 백두산을 덮고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1월 초부터 내년 5월 말까지는 천지도 물이 얼어붙어 그 위로 눈이 쌓이면서 위성사진에서 모습을 감추게 된다.

(조선일보 10.10자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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