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主敎 聖地 八道 마을을 찾아서
2005. 10. 23(일)
몸이 찌부둥해서인지 일어나 보니 8시 15분전이다. 8시 미사는 못간다. 아침을 먹고 잠깐 학교에 들렀다가 10시 중국말 미사에 참여한다. 조선말 미사 때보다 사람이 훨씬 적다. 그래도 중국어의 강세 때문인지 기도나 찬송 소리가 작지 않다. 미사후 西시장에 들러 쌀과 김치와 돼지고기를 사가지고 와서 찌개를 끓인다. 맛이 저번보다 못하고 고기도 질기다. 확실히 재료와 조리법에 따라 음식맛이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八道 마을을 가보기로 하고 집을 나선다. 八道는 행정구역으로 中國 吉林省 龍井市 朝陽川鎭 八道이다. 이곳 연변지역에서는 天主敎의 聖地로 알려진 곳이어서 延邊에 온 이후로 꼭 가보고 싶던 곳이다. 시내를 벗어나자 넓은 들판이 펼쳐진다. 이미 된서리가 몇 차례 오고 첫눈도 내렸건만 아직 볏단이 줄지어 탈곡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 베지도 않은 논도 있다. 새로난 길을 한참 가니 비포장이 나온다. 중국의 농촌은 아직 비포장이 많다. 좌우로 이어지는 논에는 농부들의 손길이 바쁘다. 멀리 들이 끝나는 곳에 울멍줄멍 산이 둘러쳐 있다. 연변의 산들은 대개 긴 능선으로 이루어지는데 이곳은 마치 한국의 산과 아주 흡사하다. 그 산자락에 넓은 들을 내다보며 背山臨水 형으로 앉은 동네가 바로 팔도이다. 왜 지명이 八道인지, 朝鮮 八道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지는 더 알아볼 일이다.
마을이 제법 큰데도 진입로나 안길이 모두 비포장이다. 초가집도 어지간히 있다. 멀리 마을 뒤 언덕으로 聖堂의 뾰족탑이 선명하다. 聖堂 가는 길을 못 찾아 몇 번 헤매다가 골목 하나를 찾아든다. 텃밭에 닭들이 놀고 처마 밑에는 강냉이가 주렁주렁 말라간다. 볏단을 높이 쌓아 올리느라 부부의 손길이 바쁘다. 골목에는 실팍한 황소가 몇 마리나 매여 있다. 초가집은 아직 추수가 안 끝나 새로 이엉을 덮은 집이 없어서 좀 추레하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인지 집에는 마루가 없고 출입문과 창문도 모두 비닐로 덧댔다. 지붕은 초가지만 외벽은 모두 흰 색이고 창틀은 파란색인 것이 전형적인 이곳의 농가 주택 모습이다. 離農 現狀 때문인지 여기저기 쓰러져 가는 집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울퉁불퉁 패인 골목길을 오르니 聖堂이 나온다. 살짝 열린 옆문으로 조심스럽게 성당 경내로 들어선다. 문옆에 두레박 우물이 있다. 두레박도 그대로 옆에 놓여 있고 넘겨다 보니 물이 저 아래로 보인다. 성당건물을 보니 ‘팔도천주교’라고 선명히 쓰여 있다. 이곳도 文化革命 때 다 부숴버린 것을 다시 세운 것이라고 한다. 聖母像 아래 쪽에 옛 성당의 礎石이 남아 있다. ‘一九一六年 성당기초돌’이라고 글씨도 선명하다. 90여년 전에 성당을 세웠으니 信仰의 씨는 훨씬 전부터 이곳에 뿌리 내렸으리라.
성당으로 들어가는데 신발장에 털신이 꽉 차있다. 주일 신자수가 농번기라 요즘은 백명 정도이나 겨울에는 백오십명은 된단다. 시골 성당으로서 상당한 숫자이다. 성당 안은 아주 깔끔하다. 예수고난 14처상이 벽을 한바퀴 돌았다. 뒷벽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종교사무국 명의의 ‘우수종교활동장소’라는 패가 붙어있고, 그 옆에는 ‘종교활동장소동록증‘이 붙어있다.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이고 종교활동도 등록이 되고 허가를 받아야 가능한 것이다. 맨 앞줄로 나아가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팔도의 敎友를 위해서, 우리 조선족 동포의 진실한 삶의 나아짐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 자신의 더 깊은 믿음을 위해서.....
성당을 나와 옆 건물에서 사람 소리가 나서 들어가 보니 小聖堂이다. 겨울 미사를 위하여 몇 분이 祭臺를 수리하고 있었다. 여자분과 인사를 나누고 보니 修女님이시다. 釜山 분도수녀회에서 오셨다고 한다. 두 분이 일하고 계신데 公州 신관동 성당 黃토마스 수녀님 말씀을 드렸더니 선배 수녀님이라고 하시며 잘 안다고 하신다. 젊은 수녀님 두 분이 부산에서 이곳 연변 땅 팔도까지 오셔서 모든 개인적인 것을 버리고 이곳 羊들을 위하여 봉사하고 계신 것이다. 수녀님이 안내해 주신 길로 성당 뒤 언덕길을 오른다. 올라보니 아득히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이 온통 하얀 十字架로 덮여 있다. 요한 패트릭신부, 감정옥안나수녀, 비오엄신부, 그리고 ‘나는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 것입니다(요한11.25)’라는 말씀 아래 여러 수녀님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베로니카라우스수녀 출생 1889년 서원 1914년 선종 1986. 4. 8’ 등과 같이 일곱 분의 이름과 연도가 하얀 비석에 새겨져 있다. 무덤은 비좁고 주위는 황량하다. 그러나 죽어도 산다는 永生을 바라며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碧眼의 신부님 , 그리고 수녀님들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이곳 延邊 八道 땅에까지 와서 일하고 善終하고 끝내 이곳에 묻혀 있는 것이다. 여러 핍박 속에서도 면면히 이어오는 信仰의 延長線을 생각하며 언덕을 내려온다.
성당 아래에는 學校가 있다. 초중이 함께 배우는 八道九年一貫制聯合民族學校이다. 主日이라 학교 농구장에서 콩을 추수하는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눈다. 원래 이 학교는 성당을 세운 獨逸 神父님들이 세웠다고 하는데 입구에 소나무가 도열한 것이 근사하다. 먼 데서 와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작은 기숙사도 있다. 그러나 학생수는 줄고 한쪽 건물은 텅 비어 있다. 농촌지역의 조선족 학교를 가보면 늘 가슴 한 쪽이 휑하니 서늘해 옴을 느낀다. 좀더 좋은 환경에서 알찬 내용으로 공부해야 하는데 학생수는 줄고 투자는 않고 속속 폐교는 늘어가고 있다.
그래도 학업을 포기하지 않는 그 열성이 훌륭하다. 아주머니 또한 아들 둘을 대학까지 畢業(=卒業)시켰는데 아들 하나는 연변과기대를 필업하고 한국의 光州에 가서 硏究生 課程(=석사과정)을 마치고 계속 연구하고 있단다. 그러니 열심히 일하고 농한기에는 시내에 나가 다른 일을 해서 또 돈을 벌어야 한단다. 나이가 쉰넷이어 나와 두 살 차이건만 겉보기에는 예순이 넘어 보인다. 자식을 위하는 그 마음이 우리의 부모님과 똑같아 머리가 숙여진다.
어둡기 전에 마을을 빠져나온다. 聖堂에서 나올 때 ‘또 오겠습니다’ ‘예 오세요’하고 修女님과 나눈 인사를 상기하며 빠른 시일내에 다시 찾아 같이 미사도 드리고 성당 이야기, 마을 이야기도 듣고 조그만 도움이라도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八道 마을을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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