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하남성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世界遗产)인 용문석굴(龙门石窟)이었다. 중국의 3대 석굴인 용문(龙门), 운강(云冈), 돈황(敦煌) 중에서도최고라고 한다.

북위(北魏) 효문제(孝文帝)가 대동(大同)에서 낙양으로 수도를 옮긴 494년부터 400년간 조성된 용문석굴은 이하(伊河)를내려다 보는 감람석 절벽 1.5km에 2,345개의 석굴과 10만개의 불상, 50여개의 불탑을새겨넣은 일대 파노라마이다. 이하(伊河)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는 백거이(白居易)가 노년을 보내고 묻힌 향산사(香山寺)가 있어쇠북소리가 끊임없이 들려 왔다.






황하의 지류 낙수(洛水), 그 낙수의 지류인 이하(伊河).

이 강의 양쪽에 용문석굴(龙门石窟)과 향산사(香山寺)가 마주 한다



안내판. 우리 한글도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용문석굴의 정화 봉선사(奉善寺) 대불.
키 17.4m, 머리 4m, 귀 1.9m로 수려한 용모는

공양주인 측천무후(则天武后)의 모습을 닮았단다



봉선사 대불을 옹위하는 금강역사상(金刚力士像). 아래 사람에 비해 그 크기를 알수있다



다른 한쪽의 역사상(力士像)은 참혹히 훼손되었다



석굴의 모습1



석굴의 모습2


당대(唐代)의 불상이 통통하다면 북위의 불상은 좀 말랐다



문 옆에는 금강역사(金刚力士), 문 위에는 비천상(飞天像)을 새겼다



근육이 살아날 듯한 금강역사상. 역시 머리가 없다


가장 단아하고 아름다웠던 좌불상.

검은 부분은 사람들이 기원하며 끊임없이 쓰다듬은 흔적이다

미륵보살입상(弥勒菩萨立像). 옷자락 선이 잘 살아 있다


이런 불상은키가 아주 작아 수 cm에 불과하다



이렇게 탑도 새겼다



사람 손이 타면 오히려 선이 살아난다



불상은 이렇게 무수한데 관리가 안되던 시절 불법반출로 대부분 머리를 떼어가 안타까웠다



석벽의 모습


어린이의 해맑은 미소가 부처님 미소와 다름없다

용문석굴(龍門石窟)에서

김 성 련


굴 위에 굴 있고

굴 아래 굴 있다.

굴 안에 굴 있고

굴 밖에 굴 있다.


굴 안에 부처 있고

굴 밖에 부처 있다.

굴 위에 부처 있고

굴 아래 부처 있다.


굴은 굴로 이어져

수천을 이루고

부처는 부처로 이어져

십만을 이루었다.


수십 길 높이의 부처에서

새끼손가락만한 보살까지

석공들의 염원(念願)은

수백 년 염원(念願)으로 이어져

오리 길 석벽을

극락(極樂)으로 바꾸었다.


출렁이는 이하(伊河)를 내려보며

건너 향산사(香山寺) 종소리에

몸을 맡기고

쪼아내는 정 끝에서

몸이 살아나고 웃음이 살아나고

자태가 살아나고 옷자락이 살아났다.


그리하여

부처(佛陀)와 보살(菩薩)과

금강역사(金剛力士)와 인왕(仁王)과

나한(羅漢)과 비천(飛天)이

높고 낮게

크고 또 작게

굵고 가늘게

깊고 또 얕게

어우러져 또 한 세계를 이룬

용문석굴(龍門石窟).

2007. 4. 30

'CHIN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림사 少林寺  (3) 2007.05.08
낙양洛阳 관림  (1) 2007.05.08
낙양洛阳 백마사,모란원  (2) 2007.05.08
개봉开封 청명상하원  (0) 2007.05.08
개봉开封 포공사,대상국사  (2) 2007.05.0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