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보수, 귀족·평민 공존하는 모차르트가 가장 좋아”

‘절대음감’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말하는 손열음

 

 

 

지난 6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차이콥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2위를 차지한 피아니스트 손열음(25·사진)씨. 그에겐 또 다른 직함이 있다. 중앙SUNDAY 최연소 칼럼니스트다. 6년째 독일 유학 중인 스물다섯의 이 ‘음악 천재’는 모국어를 잃어버리긴커녕 빼어난 인문학적 교양과 글솜씨로 지난해 5월부터 1년 넘게 중앙SUNDAY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대진 교수는 손씨에 대해 “그를 보면 천재라는 게 있다는 걸 느낀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음악적 재능과 글재주를 동시에 갖춘 천재를 찾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비결이 뭘까. 손씨는 “사실 저는 활자 중독자”라고 고백했다. 글자가 너무 좋아 세 살 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고, 길을 걷다가도 모르는 영어 단어를 보면 바로 사전을 찾아볼 정도라는 것이다. 손씨는 인터뷰 당일인 지난 8일 오후, 덜렁 여행가방 하나를 끌고 중앙일보에 찾아왔다. 원주에서 한 시간 반 동안 버스를 타고 왔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까르르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피아니스트는 손이 길어야 하나.
“저는 손가락 끝이 뭉툭한 편이에요. 피아노를 많이 쳐서 그런 건 아니고요. 원래 그랬어요. 제 키가 1m63㎝인데 손뿐 아니라 사실은 발도 커요. 악력도 센 편인데 몸이 유연한 것 같아요. 강원도에서 많이 뛰어놀고 옥수수를 많이 먹어 그런가 봐요.(웃음)”

-언제부터 피아노를 시작했나.
“1990년 1월부터니까 세 살 반? 동네 상가 1층에 있는 피아노 학원을 다녔어요.”

-음악적 재능을 부모님한테 물려받은 건가.
“엄마가 노래를 잘하세요. 교회 합창단 지휘도 하시는데 국어선생님이세요. 그래선지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어요. 서너 살부터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고 하더라고요.”

-주로 어떤 책을 읽었나.
“고전이나 외국 소설이죠. 한국 역사나 조선시대 문학, 역사·과학 책을 즐겨 읽었고요. 읽는 것 자체를 좋아했어요. 뭐라도 읽어야 직성이 풀려요. 비행기에서 책이 없으면 잡지 광고라도 읽거든요. 전 글자 자체가 좋아요. 그래서 어릴 땐 동화책이나 학교 교과서를 베껴 쓰면서 놀았어요.”

-스스로도 천재라고 생각하나.
“에이, 안 그래요. 한데 제가 남보다 절대음감이 있고 또 악보를 빨리 읽는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어요.”

-언제 알게 됐나.
“대학(한예종)에 가서요. 그 전엔 주변에 음악 하는 애들이 없어서 비교 대상이 없었죠. 남들도 다 나 같은 줄 알았어요.”

-악보를 보며 바로 연주를 한다는 얘긴가.
“대부분의 곡은 그렇죠. 음악을 들어보지 않아도 악보만 보고 연주할 수 있는데 슈베르트와 슈만 정도까지는 그래요. 물론 더 어려운 곡들은 연습을 해야 하죠. 악보를 보거나 음을 외우는 데 시간이 별로 안 걸렸어요.”

-비슷한 수준의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을 만난 적이 있나.
“한예종 동기 중에 작곡가 언니가 있는데 저보다 청음이 좋거나 비슷할 거예요. 2007년 독일에서 만난 스위스 친구는 오케스트라 스코어 리딩을 하더라고요. 오케스트라 전체 악보는 표기법이 다 달라서 배우지 않으면 읽지 못하는데 한 번에 악보를 보는 것을 봤어요. 청감이 무척 좋다고 생각했어요.”

-고교 과정을 건너뛰고 대학에 간 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한예종 교수인 김대진 선생님을 처음 뵀어요. 베토벤 소나타, 쇼팽 에튀드 등을 15분쯤 치니까 선생님께서 ‘무조건 너를 가르치겠다’고 하셨죠. 그때 우리 집 사정이 좀 어려웠었는데 선생님께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김 선생님한테 개인교습을 받다가 다음해 3월 서초동에 있는 한예종 예비학교를 들어갔어요. 원주여중 다니면서 매주 토요일 서울로 와 선생님께 3년간 지도를 받았어요. 여중 졸업 뒤 곧바로 한예종으로 간 거죠.”

-어릴 때부터 혼자 산 셈인데.
“학교 근처에 오피스텔을 얻어서 혼자 살았죠. 밥도 혼자 사 먹고. 어릴 때는 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2002년 이탈리아 비오티 국제 콩쿠르도 혼자 갔으니까요. 사실은 97년 초등학교 5학년 때도 영(young)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혼자 갔어요. 서울에서 보스턴으로 가 비행기 갈아타고 페테르부르크까지 갔어요.”

-5학년이면 한창 어리광 부릴 나이 아닌가.
“그때 키가 지금이랑 비슷했어요. ‘혼자 가면 되지 뭐’ 하고 편하게 생각했어요. 그 콩쿠르에선 2등을 했어요. 모차르트 콘체르토 21번이 결선 곡이었죠. 중학교 때도 외국에 나가면 언어가 잘 안 돼 답답했지만 두려움은 없었어요.”

-호기심이 많은 것 같다.
“좋아하는 것에는 그래요. 한데 싫은 건 나 몰라라 해요. 산수나 수학은 완전 관심 없어요. 초교 1학년 때는 다들 산수 100점 맞는데 전 80점 맞았어요. 숫자 세려고 손가락, 발가락까지 동원했으니까요. 한데 국어는 항상 잘했어요. 지금은 전화번호를 잘 외우고요.”

-IQ 테스트를 해 봤나.
“초등학교 1학년 때 했을 땐 152라고 하더라고요. 나이가 든 다음 본 시험에는 교과과정이 포함되고 숫자가 나왔는데 점수가 많이 내려갔어요.”

-피아노 연습은 어떻게 한 건가.
“어릴 때 악보 보는 걸 좋아해서 이 책 저 책 펼쳐놓고 내가 좋아하는 부분만 피아노로 치다, 말다 했어요. 그러면 엄마가 중간에 끊지 말고 반드시 끝까지 치게 했어요. 어릴 때는 저도 테크닉 위주로 연습했죠. 그 덕에 기본기가 튼튼해졌어요. 저는 악보를 보면서 어떻게 칠까 하는 구상·설계를 하는 연습을 많이 해요. 피아노를 치다가 어느 순간 머리가 딱 멈추죠. ‘아, 이제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면 그만해요. 보통 하루 5∼6시간 정도. 한예종 다닐 때는 몇 주씩 피아노를 안 칠 때도 있었죠. 연습을 오래 하는 게 능사는 아닌 것 같아요.”

-지금까지 몇 번이나 연주회를 했나. 무대에 서면 안 떨리나.
“첫 독주회는 6살 때 원주에서 했는데 말도 안 되게 쳤던 걸로 기억해요. 대학 들어간 뒤엔 한 달에 적게는 2~3회, 많으면 6~7회 했고요. 저는 항상 바로 전에 했던 연주가 가장 많이 생각나요. 매번 최선을 다하죠. 무대에서 거의 안 떠는데 독일에 가서 본격적으로 연습을 하면서 떠는 게 뭔지 알게 됐어요. 연습을 많이 하면 내가 연습한 대로 곡이 안 나올까 봐 떨리더라고요. 서울에서는 사람들의 기대치 때문에 좀 떨려요. 특히 예술의전당에서 할 때 더 떨려요. 거기가 집 같은 곳이고 다들 아는 사람들이어서 기대치가 높다는 게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아요.”

-외국서 혼자 공부하고 연주하는 생활이 외롭지 않나.
“많이 외로운데 그냥 버텨요. 어떤 때는 외로운 감정도 잘 알고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죠. 특히 미국에선 연주 전까지는 공항까지 나와서 모시고 다니다가 연주가 끝나면 호텔 셔틀버스 타고 공항에 가래요. 내가 상품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래도 사람은 어차피 혼자 아닌가요.”

-독일 하노버국립음대에는 왜 가게 됐나.
“김대진 선생님이 권유하셨어요. 선생님이 추천한 음악 코스에 가보니까 여기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딱 들더군요. 거기 선생님들은 음악에 대해 기술적인 게 아니라 추상적인 얘길 많이 해요. 그 작곡가가 살던 시대가 어땠고,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땠다는 등 가치관, 철학을 가르쳐요. 그래서 마음이 바쁜 애들은 싫어하죠.”

-학비는 어느 정도 되나.
“한 학기에 250유로쯤 내는데 거의 공짜죠. 저는 ‘솔로 클래스’에 다니는데 일반 대학의 박사과정과 비슷해요. 선생님 한 분의 클래스에 학생이 10명쯤 되고요. 잘하는 애들도 많고, 선생님도 좋아요. 저는 ‘아리에 바르디’라는 70대 이스라엘 선생님한테 배워요. 젊었을 때 연주자로 유명했다고 들었어요.”

-하노버 국립음대에 한국인이 많나.
“지금은 재학생의 절반쯤 돼요. 예전에 ‘줄리아드 음대’의 명성이 옮겨온 것 같아요. 여기서 3년쯤 더 배우고 싶어요. 예술 하기에 독일만큼 좋은 곳이 없어요.”

-한국과 뭐가 다른가.
“집중하는 데 좋아요. 한국은 분위기가 산만한데 다들 너무 바쁘게 살아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독일 사람들은 우리처럼 바쁘지 않아요. 미국처럼 완전한 자본주의 사회도 아니라는 느낌을 받아요.”

-피아노를 안 했다면 뭘 했을 것 같나.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저는 세 번 정도 더 태어나더라도 다시 음악을 할 것 같아요. 다섯 번 더 태어난다면 한 번쯤 다른 일을 해보고 싶겠지만….”

-음악을 하는 특별한 목표가 있나.
“그런 게 없는 게 제 인생관인 것 같아요. 강박관념이 없어요. 예전 선배님들은 한국을 알려야겠다, 혹은 성공해야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던 것 같아요. 반면에 요즘 친구들은 그냥 음악과 무대가 좋아서 활동해요. 저도 어릴 때는 성공하고 싶다, 집안을 일으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이젠 달라요. 잘하면 좋지만 꼭 무조건 잘해야 하느냐는 생각도 들어요. 못하는 것에도 나름의 미학이 있어요.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기보다 소수일망정 저처럼 클래식 음악을 다루고 공연하는 사람들, 취향이 닿는 매니어들이 오랫동안 좋아하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피아노 연주 외에는 하고 싶은 일이 없나.
“식당을 하고 싶어요. 음악회 할 수 있는 식당. 홀은 너무 진지해서 싫고, 식당이 친근해서 좋아요. 사실 디테일한 사업계획서가 제 머릿속에 다 있어요. 요즘 한국에 재즈 바는 많은데 클래식은 잘 안 되잖아요. 제 목표는 서른 살에 그런 식당을 여는 것이에요. 직업 연주가는 계속하되, 이건 완전히 별개로 하고 싶어요. 그런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게 걱정이죠.”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는 누군가.
“모차르트죠.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특수성도 많고 완벽해서 좋아요. 모차르트에게는 양 극단이 항상 같이 있어요. 그의 곡에는 진보와 보수, 평민과 귀족 등 모든 극단이 다 포함돼 있다는 게 느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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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살든 무슨 생각을 하든 음악이 있어 인간은 하나 될 수 있지요”

‘평화’를 지휘하는 다니엘 바렌보임에게 조윤선이 묻다

 
10일 저녁 예술의전당.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등 세계의 분쟁 지역을 골라 음악으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온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69)이 무대에 올랐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등 중동의 연주자들을 한데 묶어 ‘평화의 오케스트라’로 불리는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WEDO)와 함께다. 14일까지 서울에서 베토벤 교향곡 9곡을 모두 연주한 바렌보임은 15일엔 한국 공연의 하이라이트인 임진각 야외공연장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연주한다. 공연 첫날 자리를 가득 메운 객석엔 조윤선(한나라당) 의원도 있었다. 음악 애호가로『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를 쓰기도 한 조 의원은 바렌보임의 오랜 팬이다. 다음 날인 11일 조 의원과 만난 바렌보임은 남북의 인구·언어 차이 등에 관해 자세히 물으며 분단 상황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대담은 예정 시간을 훌쩍 넘겨 약 1시간 30분간 진행됐다.

-10일 공연 참 좋았습니다. 지휘하면서 받은 느낌은 어떠셨나요.
“예술의전당 음향시설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 놀랐습니다. 외국인으로서 의례적인 칭찬이 아닙니다. 리허설을 하면서는 공간의 울림이 좀 과하지 않나 싶었어요. 그런데 객석이 메워지자 공기의 흐름이 정리되면서 음색의 선명도와 울림에서 정확한 비율이 나오더군요. 음이 퍼지는 정도도 딱 맞아 오케스트라 소리가 하나의 유기체로 융합되는 게 놀라웠습니다.”

-지난달 우면산 산사태로 예술의전당이 피해를 보면서 많은 이가 마에스트로의 공연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더욱 반갑습니다. 관객인 저로서는 무대에 선 마에스트로의 몸짓과 풍성한 표현력을 직접 느낄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었습니다. 아마 청각장애가 있는 분들도 마에스트로가 지휘하는 모습을 보면 어떤 음악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을 정도입니다. 음악을 귀로 듣는 것만이 아니라 눈으로도 볼 수 있게 해주는 거죠.
“제 지휘 철학이 바로 그것입니다. 인간은 귀와 눈을 모두 동원해 예술을, 음악을 감상한다고 생각해요. 시각과 청각을 분리할 수 없죠. 그렇기 때문에 지휘자로서 관객이 제 몸짓을 보며 음악을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훌륭한 오케스트라인지 아닌지는 맨 뒷줄에 앉은 연주자 표정을 보면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WEDO는 정말 맨 뒤에 앉은 바이올리니스트까지 열정을 갖고 몰입해 연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더군요.
“저는 맨 뒷줄에 앉은 연주자들을 농담 삼아 제가 운전하는 차에 탄 승객들이라고 부릅니다(웃음). 일을 제대로 안 하는 군식구라는 의미가 아니지요. 함께 한 배를 탄 식구라는 겁니다.”

-WEDO는 1년에 두 달 정도만 연습을 하는데도 완벽한 하모니를 내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WEDO 멤버 중 40%에 달하는 단원들은 오케스트라 경험이 없는 연주자들이었습니다. 단기간에 오케스트라의 수준을 끌어올릴 방법을 찾아야 했죠. 그때 운 좋게도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정부가 매년 여름 WEDO를 위한 연습공간과 금전적 지원을 결정했습니다. 덕분에 약 두 달간 우리는 한 공간에서 연습을 거듭했습니다. 이렇게 연습을 함께 오래 하다 보면 생각도 같은 방식으로 하게 되죠. 이스라엘에서 온 단원이나 팔레스타인에서 온 단원이나 출신은 달라도 생각의 통일을 이루고, 하나가 되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5~6년 만에 질적 성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WEDO 단원들은 이스라엘과 아랍 여러 국가 출신이고, 대다수가 자신의 출신 지역 오케스트라에 소속돼 있습니다. 하지만 여름 동안엔 한 곳에 모여 같이 연주하고 교감합니다. 이들을 한데 묶는 건 WEDO에 대한 일종의 충성심입니다.
재능 있는 젊은 연주자도 같은 방식으로 발굴합니다. 예를 들어 팔레스타인의 젊은 연주자가 있다고 하면 7월 초에 안달루시아로 초청을 해 베를린 필하모닉의 솔로이스트 연주자와 함께 8월 말까지 지켜봅니다. 재능이 있다 싶으면 장학금을 제의해 10월부터 베를린에서 같이 일을 시작하는 거죠. 이젠 차세대 오케스트라를 전략적으로 키우고 있습니다. 재능 있는 어린이가 많아요.”

-저는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라말라에서 마에스트로가 펼친 공연을 DVD로 보며 많이 울었는데요. 특히 이스라엘 아이들이 국경을 넘어가기 전 팔레스타인 동료를 붙잡고 눈물 흘리는 장면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부각되다 보니 WEDO가 두 지역 출신 연주자들로만 구성돼 있다는 오해도 종종 사는 것 같아요.
“WEDO 프로젝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물론 레바논·시리아·터키 등 다양한 중동 지역 국가로 구성했어요. 일부러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비단 두 나라 간의 갈등으로 그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분쟁은 정치를 넘어 인간적 맥락으로 봐야 합니다. 같은 지역에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두 민족 간의 문제이다 보니 양측이 함께 화해를 이루지 못하면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인 겁니다. 군사적 해답도, 정치적 해답도 어려워요. 함께 사이 좋게 살지 않으면 서로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고, 이는 또 중동의 각 국가들에도 다 영향을 미치는 문제가 된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아랍 지역의 다양한 국가 출신으로 오케스트라를 꾸리기로 한 겁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측으로만 출신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국제 문제라는 것은 복잡한 접근을 필요로 합니다.”

-혹시 남북한의 연주자들도 포함시켜 좀 더 넓은 아시아를 아우르시는 건 어떨까요.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왜 안 되겠습니까. 양측의 훌륭한 연주자들이 동등하게 하나의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를 할 수 있다면 멋지겠군요.”

-많은 음악 거장이 남과 북의 연주자를 모으는 프로젝트를 꾸려볼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에스트로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중요한 건 정부 차원에서 먼저 나서면 안 된다는 겁니다. 정치인들의 개입이 없어야 합니다. 양측의 연주자들이 민간 차원에서 주도를 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음악을 통해 양측이 교감과 소통을 해야 하는 겁니다. WEDO를 꾸려온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저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측 정부와는 어떤 접촉도 일절 해오지 않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우리가 새로운 대안적 접근을 할 수 있었다고 봐요. 남북 양측을 모으는 오케스트라도 비슷합니다. 정치와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양측 사람들의 순수한 의지가 있어야 해요. 이집트에서 일어난 혁명을 보세요.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짓겠다고 나선 이집트 국민 모두의 의지가 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이처럼 실제적으로 변화를 이뤄내려면 사람들 하나하나의 의지가 모아져야 하는 거죠. 그리고 음악은 이런 점에서 굉장히 효과적이에요. 추상적이기 때문에 양측이 충돌할 메시지가 없기 때문이지요. 연주자들은 음악을 통해 머리뿐 아니라 마음으로 교감을 할 수 있습니다.”

-한국과 북한의 연주자들에 대해선 잘 알고 계신가요.
“한국의 연주자들은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뛰어나고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줄리아드 음대 같은 곳에 한국 학생이 얼마나 많고 또 실력이 뛰어난지 놀라울 정도입니다. 제 아들이 하는 현악 사중주단의 첼리스트도 한국인입니다.”

-얼마 전 차이콥스키 국제음악콩쿠르에서도 5명의 젊은 한국 청년들이 대거 수상을 해 화제가 됐습니다.
“맞아요. 그런데 북한의 연주자들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저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남과 북의 연주자들을 모아 오케스트라를 꾸린다고 할 때 중요한 건 철저히 ‘평등’의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너희보다 더 잘산다’거나 ‘너희보다 우리가 힘든 일을 더 많이 겪었다’는 생각이 은연중에라도 있으면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물론 정치적으로 남과 북이 대등하지 않다는 건 전 세계적으로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러나 음악의 세계에서만큼은 남과 북의 연주자들이 모든 정치적 맥락을 딛고 용기를 내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하나의 오케스트라 안에선 단원 모두가 동등합니다. WEDO 안에서도 아랍 출신 클라리넷 연주자는 이스라엘 출신 바이올리니스트보다 더 멋진 음을 내고 싶어하지만, 그건 그들이 서로 동등한 음악인으로서 바라보기에 가능한 겁니다. 서로 음악으로서만 경쟁을 하기에 우리가 함께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는 거지요.”


-예술은 정말 여러 의미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생각의 탄생』저자인 로버트, 미셸 루트번스타인 부부가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와 그렇지 않은 과학자의 결정적 차이가 무엇이냐”란 질문을 받고 “예술을 아는지 모르는지의 차이”라고 답한 게 기억나네요. 사실 예술은 과학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다 중요할 텐데요. 그런 의미에서 정치인들에게 예술과 관련한 조언을 해주신다면.
“예술은 정치적 노선의 차이를 뛰어넘습니다. 저는 모든 정치인이 좌우를 떠나 예술에 대해선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치인들에겐 권력이 있죠. 하지만 권력은 혼자 오는 게 아닙니다. 책임과 함께 오죠. 정치인들에겐 권력을 예술을 위해, 인류를 위해 이용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당장의 정치적 이득을 노리고 예술 관련 정책을 펴면 안 됩니다. 순수성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당장 자기들에게 이득이 안 되더라도 장기적 안목을 갖고 정책을 펴야 합니다. 예술 관련 정책은 더욱 그렇습니다. 단순한 복지뿐 아니라 삶의 질 전반을 높이려면 음악과 예술 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교육을 강화하면 사람들은 점점 스스로 먼저 예술을 찾아나설 겁니다. 삶은 더 풍요로워지겠지요.”

-그런데도 한국의 문화 관련 예산이 전체 정부 재정에서 1%를 조금 넘긴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아쉽습니다.
“음악은 모든 인간의 삶에 미칠 수 있기에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이 일반 교육과정에 반드시 포함돼야 하지요. 프로 음악인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음악을 전혀 접하지 않은 아이가 서른 세 살이 돼 갑자기 음악에 눈을 뜰 수 있을까요? 아니지요. 어렸을 때부터 천천히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음악, 예술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돈은 사실 문제가 안 된다고 봅니다. 음악 교사를 몇 명 더 고용하는 데 예산이 얼마나 더 들겠어요. 진짜 중요한 건 예술을 위한 정치인들의 의지죠.”

-지도자들의 의지도 중요할 것 같은데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오페라 애호가로 유명하기도 하고요.
“맞습니다. 독일의 전 대통령인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도 잘 알려진 음악 애호가였죠. 지도자들의 노력과 함께 어떤 성향의 정부가 들어서건 일관된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게 중요합니다.”

-복지와 관련된 논쟁이 의식주에만 제한된 것 같아 안타깝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사실은 예술을 즐기고 마음을 풍요롭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복지 정책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데요.
“지난 5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했던 공연이 생각나는군요. 공연을 마친 후 어떤 팔레스타인 시민단체 회원이 찾아와 이렇게 말하더군요. ‘세상은 가자 지구를 잊어버렸다. 식량지원이 계속되긴 하지만 먹을 것은 동물에게도 보낼 수 있는 거다. 하지만 당신의 음악 공연은 우리를 인간으로 느끼게 해줬다.’ 음악이 정치적 가치를 넘어 중요한 이유입니다.”

-작가 토마스 만은 이렇게 말했죠. “우리 할아버지 세대에는 경제를 했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정치를 했다. 이제 우리 세대에는 문화를 할 때다”라고 말이죠. 한국 정치에도 적용할 수 있는 면이 아닌가 합니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노태우 전 대통령까지는 경제에, 이후의 김영삼 전 대통령,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에 집중했지요. 현재 이명박 대통령은 나라를 선진국으로 업그레이드하려는 중이고, 문화와 예술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젊은 연주자들에겐 어떤 메시지를 들려주고 싶으신지요.
“음악은 인간의 삶에 파고들 수 있어야 합니다. 젊은 연주자들이 깊은 사고력을 길러야 하는 이유예요. 바깥 세상과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하는 거지요. 음악이 상아탑에만 갇혀 있으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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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고의 그림 '청명상하도'(청명절에 강을 오르다)- 북송 장택단(528.7cm*24.8cm)

현재 북송의 수도였던 河南省 開封시에 '청명상하원'으로 재현되어 있다


中国十大传世名画之一。北宋风俗画作品,宽24.8厘米,长528.7厘米,绢本设色,是北宋画家张择端存世的仅见的一幅精品,属一级国宝。《清明上河图》生动地记录了中国十二世纪城市生活的面貌,这在中国乃至世界绘画史上都是独一无二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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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초( 설 도 작시, 김 억 번안, 김성태 작곡 / 소프라노 이규도)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바람에 꽃이 지니 세월 덧없어
만날 길은 뜬 구름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소프라노 이규도 >

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줄리어드 대학원 수료
마리아 칼라스 마스터클래스 수료
제3회 동아콩쿨 대상, 2001년, 2004년 대한민국 문화 예술상 수상
현재 :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春望詞四首 춘망사 4수 - 설도의 시

花開不同賞 꽃피어도 함께 즐길 이 없고
花落不同悲 꽃 져도 함께 슬퍼할 이 없네
欲問相思處 묻노니, 그대는 어디 계신고,
花開花落時 꽃 피고 꽃 질 때에.

攬結草同心 풀을 따서 한 마음으로 맺어
將以遺知音 지음의 님에게 보내려 하네
春愁正斷絶 봄 시름 그렇게 끊어 버렸건만,
春鳥復哀吟 봄 새가 다시 슬피 우네.

風花日將老 꽃은 바람에 시들어 가고
佳期猶渺渺 만날 날은 아득히 멀어져 가네
不結同心人 마음과 마음은 맺지 못하고
空結同心草 헛되이 풀잎만 맺었는고.

那堪花滿枝 어찌 견디리 꽃 가득 핀 나뭇가지,
번作兩相思 괴로워라 사모하는 마음이여
玉箸垂朝鏡 눈물이 주르르 아침 거울에 떨어지네,
春風知不知 봄바람은 아는지 모르는지.
-----------------------------[번역: 류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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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발견한 화가 육심원
“세계 여성들이 내 가방 드는게 꿈”

● 신사동 가로수길에 ‘육심원 빌딩’

화가 육심원(36)은 이름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가 된 인물이다. 한국 미술사에서 유례없는 스타일을 완성하고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받는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일기장·수첩·달력·가방 등의 아트 상품을 만들었고, 그림 속 인물들은 고스란히 광고와 신용카드 등의 모델이 됐다. 백화점에서는 육심원 가방과 지갑, 휴대전화 고리 등이 불티나게 팔린다.

자신의 그림에서 파생된 수익으로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엔 이른바 ‘육심원 빌딩’이 들어섰다. 4층짜리 건물의 이름은 ‘빌라 와이’. 지하 1층은 전시장, 1층은 아트숍, 2~3층은 육심원 키친으로 운영되고, 4층은 작가의 작업실이다.

▲ 앞으로 그림을 더 열심히 그리겠다는 작가 육심원.
갤러리 AM 제공

● ‘육심원 핸드백 라인’ 내년 본격화

신작 30점을 선보이는 8번째 개인전이 한창인 전시장에서 만난 육심원은 “내가 꿈꾼 것은 여기까지”라며 설렘을 숨기지 않았다. 육심원 브랜드의 성장에 대해서는 “여전히 신기하고 솔직히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나는 처음 개인전을 할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이렇게 되는구나 싶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화가로서 하고 싶은 것은 벌써 다한 것 같다.”는 육심원은 이제 해외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그가 그린 여성의 얼굴이 크게 박힌 가방은 30~40대 여성에게 인기가 높다. 육심원 가방을 든 여성들이 뉴욕, 런던, 파리 등의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그가 꿈꾸는 또 다른 소망이다. 내년에는 가방 디자인을 더욱 다양화해서 본격적으로 ‘육심원 핸드백 라인’을 내놓을 예정이다.

‘육심원 빌딩’은 구석구석 꼼꼼하게 작가의 취향과 손길이 닿은 꿈의 공간이다. 건물 입구부터 육심원이 그린 여자 얼굴이 새겨진 대형 전등갓이 방문객을 반긴다. 2~3층 카페·식당의 메뉴와 쿠션에도 육심원의 그림이 있고, 앞으로는 그림이 들어간 컵도 나온다. 다락방 형식으로 지어진 볕이 잘 드는 아틀리에에선 이제 대형 작업도 맘 놓고 할 수 있게 됐다.

2002년 첫 개인전을 연 육심원은 인터넷에 올린 그림들이 미니홈피 배경화면 등으로 인기를 끌면서 아트 상품의 숫자를 하나씩 늘렸다. 육심원을 발굴해 인기 작가로 키워낸 갤러리 AM 정경일 대표와 둘은 3년 전 부부의 연을 맺었다.

“마케팅 하는 사람들이 제 그림을 더 넓은 시장과 더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려면 일단 그림이 좋아야 하잖아요. 전 그림을 더 열심히 그리면 될 것 같아요.”

처음에는 갤러리에서만 자신의 그림이 보여지는 게 안타까워 인터넷에 올렸고, 그림을 많은 사람이 소장했으면 하는 소망에 다이어리를 만들었다. 항상 육심원의 그림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육심원 빌딩’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 “평생 여자를 더 잘 그리고 싶다”

가로수길에 빌딩을 세운 것은 10년 전부터 그가 곧게 뻗은 이 예쁜 길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예전엔 오히려 오밀조밀 개성 있는 가게들이 더 많았다는 가로수길 가운데 자락에 터를 잡은 육심원 빌딩은 테라스마다 붉은색 장식을 달아 인근 건물 중 가장 돋보인다.

길거리에서 자신의 그림이 새겨진 가방이나 다이어리를 보면 여전히 신기하다는 육심원. “평생동안 여자를 더 잘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한때 개구쟁이 같은 소년의 모습도 그렸지만 남자는 다른 남자 작가들이 그리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가 그리는 여자는 ‘예쁜 여자’라기보다 ‘밝은 여자’다. 말괄량이나 새침데기 같던 초기작에 견줘 색채는 더 발랄해졌고 표정에는 살짝 관능미도 흐른다. 이번 개인전에서 처음 선보이는 작품으로는 스모키 화장을 한 여자와 요리하는 여자가 있다.

이화여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육심원은 장지에 분채로 그림을 그린다. 화려한 채색화라 얼핏 유화로 착각하기 쉽지만 동양화의 기법을 사용해 부드럽고 은은하며 자연스러운 느낌을 자아낸다.

● “흐트러진 여자도 그릴 작정”

앞으로는 스케치를 하고 색을 쌓아올리는 정형화된 작품이 아니라 좀 더 흐트러진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웃음을 지어도 입꼬리를 살짝 들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치아를 모두 드러내놓고 헤벌레 웃는 여자를 그릴 작정이다.

공지영이 ‘국민 작가’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높지만 문단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처럼, 육심원도 화단에서는 인기만큼의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작가는 “첫 전시부터 화단의 관심에 신경쓰지 않고 시작했으며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 한 방향으로만 달려왔다.”고 말했다.

육심원의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한 30대 여성은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나를 향해 생긋 웃어주는 그림 속 여자를 볼 때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대중이 발견한 작가 육심원의 미래가 얼마나 더 뻗어갈지 친구의 성장을 지켜보듯 궁금하고 흐뭇하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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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와 관능, 美와 광기가 싸우는 충격적인 영상 체험!!
이제껏 누구도 본 적 없는 '백조의 호수'
‘백조’를 탐한 ‘흑조’의 질투와 도발의 핏빛 욕망!


차이코프스키의 명곡과 함께 환상적인 세계가 펼쳐지는 '백조의 호수'를 모티브로 탄생한 상상을 넘어서는 충격적인 영화 <블랙 스완>. 이 영화가 발레 팬들 뿐만 아니라 전세계 평단과 발레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까지 끌어당기며 절대적인 지지와 호평을 받는 데에는 얼마간의 이유가 있다. 그 첫 번째가 우선, 각종 영화제에서 여우 주연상의 영예를 석권한 나탈리 포트만의 완벽한 연기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발레리나로의 변신은 물론, 순수하고 연약한 '백조'와 사악하고 유혹적인 '흑조'라는 상반된 캐릭터 변신은 마치 배우 ‘나탈리 포트만’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 노력하는 모습을 연상시키며 그녀의 연기에 대한 한결 같은 찬사를 끌어냈다. 그리고,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완벽한 커리어 구축을 위한 열정, 실패에 대한 두려움, 홀로 서기, 부모와의 갈등, 性에의 탐구와 흥미 등을 둘러싼 스릴 넘치는 전개와 보편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캐릭터 창조가 돋보이는 각본을 꼽을 수 있다. 특히, ‘백조’와 ‘흑조’라는 상반된 성격을 가진 나탈리 포트만과 밀라 쿠니스의 극중 라이벌 관계는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여기에 뱅상 카셀, 밀라 쿠니스, 바바라 허쉬 등 최고의 배우들이 펼치는 명연기 대결과 차이코프스키의 원곡을 영화의 색감에 맞게 편곡해 일관된 긴장감을 유지해가는 음악, 우아하면서도 화려하고 요염한 매력까지 뿜어내는 의상 등 영화라는 ‘종합 예술’의 매력을 한껏 선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을 세밀하고 완벽하게 직조해낸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천재(라 해도 부족함이 없는)적인 연출력은 마지막까지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한다. 클라이막스를 향한 니나의 열정적인 무대가 기적? 혹은 파멸? 과연 어디로 향할지 이제껏 누구도 본 적 없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가득한 '백조의 호수' 막이 열린다.



<블랙 스완>의 ‘흑조’는?


발레 '백조의 호수'의 음악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 역시 많지는 않을 것이다. ‘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 속의 미녀’와 함께 차이코스키의 3대 발레 음악으로 손꼽히는 ‘백조의 호수’는 일반인에게는 아마도 가장 유명한 발레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순수한 오데트(백조)와 악마의 화신인 오딜(흑조)을 한 사람의 발레리나가 연기해야 하는 것. 때문에 많은 발레리나에게 있어 ‘백조의 호수’ 프리마돈나를 맡는다는 것은 동경의 대상이자, 난이도가 가장 높은 연기에의 도전인 셈이다. 그것도 세계 정상의 발레단에서 공연하는 ‘백조의 호수’ 주역으로 발탁된다면 그 기쁨과 고뇌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거기에 영화 <블랙 스완>의 모든 시작이 있다. ‘성공’을 꿈꾸며 완벽을 추구하는 발레리나의 시련과 광기, 라이벌을 향한 질투와 동경을 극한의 심리극으로 영상화한 <블랙 스완>은 인간에게 감춰진 양면성과 변신을 향한 욕망의 표출을 통해 긴장감 넘치는 스릴의 세계로 관객을 유혹한다.



변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 나탈리 포트만!
2011년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과 전미 비평가 협회 여우 주연상 수상!
2011년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 유력 후보로 부상한 나탈리 포트만의 놀라운 변신!


주연 여배우에게 한계를 넘어선 캐릭터 창출을 요구하는 <블랙 스완>은 나탈리 포트만의 열정없이는 성립될 수 없었다. 10개월 동안 매일 8시간씩의 강도 높은 훈련과 9kg의 체중 감량이라는 가혹한 트레이닝을 거쳐 탄생한 발레리나 특유의 연약한 몸을 만들어, 극중 발레 씬의 대부분을 직접 연기해냄은 물론, '흑'과 '백'이라는 상반된 색깔을 가진 캐릭터의 복잡한 내면 변화를 혼신의 연기로 담아낸 나탈리 포트만. 마치 캐릭터에 빙의된 듯 경이적일만큼 연기에 몰입한 그녀는 이미 2011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유력 수상 후보라는 한결 같은 평가를 받고 있다. 1994년 <레옹>의 주연으로 데뷔한 이래 2005년 <클로저>로 골든 글로브 여우 조연상을 수상하며 연기파 배우로 거듭났지만, 이 정도로 연기에 대해 극찬받은 적은 없었다. 특히, 영화 초반 예술 감독을 맡은 뱅상 카셀이 니나(나탈리 포트만)를 향해 ‘흑조’의 관능적인 즉흥성은 없고, 순수하고 나약한 ‘백조’의 모습만 보인다고 다그치는 대사는 고스란히 여배우 나탈리 포트만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실제로 그동안의 나탈리 포트만은 부드럽고 연약한 이미지가 지배적이었던 탓에 종종 캐릭터의 긴장감이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블랙 스완>의 니나라는 극도로 파리하고 연약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그녀는 특유의 어린 목소리를 평소보다 하이톤으로 발성, 차츰 판단력을 잃어가는 캐릭터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표현해냈다. 이 때문에 그녀의 연기는 이전의 그 어떤 역할보다 위험하고, 또 이상한 방식으로 감동적이다.
욕망과 불안한 심리에 따른 분열 등을 통해 치명적인 아름다움의 세계, 잔혹한 예술의 세계를 한껏 펼쳐 보이며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나탈리 포트만의 완벽한 변신은, 골든 글로브를 비롯해 생애 첫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 수상까지도 높은 가능성을 점치도록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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