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메르 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영화 포스터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술사학자 곰브리치(Ernst H. J. Gombrichㆍ1909~2001)가 “렘브란트 다음으로 위대한 화가”라고 지칭했던 얀 베르메르 반 델프트(Jan Vermeer van Delftㆍ1623~75)는 바로크시대 네덜란드의 델프트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화가다.

그가 남긴 그림은 40여 점에 불과하지만 그의 명성은 자자하다. 올 3월까지 일본 도쿄의 작은 분카무라(文化村) 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전시회에 단 3점으로 60만의 관객을 동원할 만큼 대단한 작가다.

 이런 그의 존재를 세상이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00여 년이 지난 19세기에 이르러서다. 이 때문에 베르메르에 대한 자료가 매우 부족하고 작가에 대한 연구가 미흡해 그의 인생과 작가로서의 삶 자체도 자신의 그림처럼 미묘하게 드러날 듯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그의 신비로운 삶과 예술을 더욱 더 신비롭게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피터 웨버가 감독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2003년)다. 베르메르의 동명 그림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 1660~65, 유화, 44.5×39cm, 마우리츠하위스 왕립미술관, 헤이그)에서 영감을 받아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쓴 소설을 바탕으로 콜린 퍼스가 베르메르로, 스칼렛 요한슨이 하녀 그리에트로 출연한다.

 1665년 플랑드르 지방의 델프트에 사는 화가 베르메르는 시력을 잃어버린 화가의 16세 난 딸 그리에트를 하녀로 들인다. 그녀는 청소하려고 아틀리에에 들어선 순간 딴 세상에 온 것 같은 형언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을 받는다. 물론 베르메르도 청순한 모습에 알 수 없는 신비함을 지닌 그녀에게 빠져든다.

 그는 하녀에게 물감제조 방법을 가르쳐 조수처럼 그녀와 함께 일한다. 하지만 6명의 자녀를 둔 가장으로 그리고 탐욕스러운 아내와 그림을 돈벌이 수단으로 외엔 의미를 두지 않는 장모는 베르메르의 이런 감정을 눈치 채고, 그를 감시한다. 여기에 후원자 라이벤까지 청순한 그리에트를 보고 탐욕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베르메르에게 그녀를 모델로 그림을 그릴 것을 명한다.

 그리에트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베르메르와 하녀라는 신분을 넘어서지 못하는 그리에트. 이 둘의 사랑은 애절하고 속절없이 시간만 보내며 애를 태우고 그러면 그럴수록 베르메르는 오묘하고 청순가련한 그녀의 모습에 빠져 들어가며 둘만의 플라토닉한 사랑은 깊어간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라는 그림을 보고 그 제작과정을 유추해서 쓴 소설과 영화는 그림이 갖는 신비로운 빛과 무언가 말을 건네는 듯한 소녀의 눈망울, 막 입을 열어 말을 건네려는 소녀의 반쯤 벌린 입술이 더해져 더욱 고혹적인 느낌을 준다.

베르메르는 화려하고 역동적인 루벤스나 렘브란트의 산란하는 빛과 달리 실내풍경인 탓에 창문을 통해 한번 걸러진 빛이 일정하게 들어온다. 따라서 명암의 대비가 분명한 동시에 온화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면서 그 생동감은 더욱 커진다.

 당시는 정물들을 세밀하게 그려내는 극 세밀화가 크게 유행했다. 인생의 덧없음과 자신이 이룩한 부와 풍요로움, 그리고 그 풍요에 내재된 허영심과 낭비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것을 암시하는 그림들이 바니타스류의 정물화로 많이 제작됐다.

물론 베르메르도 사실적인 필치로 대상을 분석·파악해서 그림으로 옮겨놓는 태도를 보여주지만, 그의 작품의 큰 특징은 세밀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화면이 부드러움으로 넘쳐나는 불가사의하고 독특한 조화다.

빛나는 명작으로 알려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수수하고 처연한 아름다움은 마치 진지 옆 양지에 봄날을 맞아 꽃대를 밀어 올리는 민들레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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