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을 보내고 간절히 봄을 기다리는 연길의 석양은 크고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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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기억하는, 그리고 기억할 이연걸


당신이 기억하는 이연걸은 어떤 사람인가? 반짝이는 변발을 하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중국 무협물의 배우? 혹은 11세였던 1974년부터 5년 연속 중국 전국무술대회 성인부 종합우승을 한 무술 천재이자 빠른 몸놀림으로 1초에 7,8회의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절대 고수? 그도 아니면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불교 신자? 미안하지만 이건 모두 옳은 답이 아니다. 이연걸의 영화와 현실은 이 모든 것을 합친 어떤 것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무인 곽원갑]을 통해 25년 무술 연기의 총망라를 시도한 이연걸은 무술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 영화에 모두 쏟아 넣었다.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은 무술 정신을 모두 담은 [무인 곽원갑]을 마지막으로 이연걸은 더 이상 무술 액션영화를 만들지 않겠다는 ‘폭탄 선언’을 해 많은 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이에 오직 맨몸으로 유려한 우슈의 아름다움을 전했던 무인 이연걸의 기억을 반추할 시간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것은 이소룡, 성룡, 견자단과 함께 중화 무술을 대표하는 그의 무술 인생을 총정리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글은 이연걸의 공식 웹사이트(www.jetli.com)에 실린 그의 에세이를 중심으로 이연걸이 말하는 이연걸과 그의 영화 속 캐릭터를 통해 바라본 이연걸의 이야기다.

천재 소년 이연걸

“사람들은 나를 ‘다재다능한 중국의 챔피언’이라고 불렀다. 중국에선 모두 나에게 ‘모든 것에 능한’이란 수식어를 붙여 주었고 난 정말 내가 모든 것에 능해야 하는 줄 알았다. 내가 할 일은 아직 모르는 것을 배워 모든 것에 능한 인물이 되는 것이었다” - 공식 웹사이트 SPIRIT 페이지


1963년 베이징 출생인 이연걸은 8세 때부터 무술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하루 8시간씩 뼈를 깎는 노력으로 10년간 수련한 이연걸은 사실 무술이 그의 인생에 이렇게 큰 의미를 차지할 줄은 미처 몰랐다. 우연히 학교 운동서클에 가입하기 위해 줄을 선 곳이 무술반이었고 이후 무술 신동으로 각종 종목의 메달을 거머쥔 이연걸은 1979년 [소림사]로 영화 데뷔를 치르기 전까지 전세계를 돌며 무술 시연을 했다. 위의 회상처럼 이연걸은 당대 최고의 화제를 모은 무술 신동이었다. 10대 소년이 성인부 무술대회에서 장장 5년 동안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연걸은 무술을 통해 홀어머니를 포함한 다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었고 당시 엄격한 공산주의 사회였던 중국에서 무술을 통해 유럽과 중동, 아시아 지역을 돌며 흥미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1976년 필리핀 투어에 대해 이연걸은 아래와 같은 재미있는 회상을 덧붙인다.

“예전 중국은 해외에서 중국으로 물건을 반입할 시 엄격한 가격 통제가 있었다. 필리핀 공연 당시 대통령의 공식 게스트인 우리의 지위는 많은 선물 공세로 이어졌다. 어느 옷 가게에 들렀을 때 주인은 우리에게 마음에 드는 옷을 한 벌씩 고르라는 호의를 베풀었다. 우리는 신나게 옷을 골랐다. 다음으로 들른 신발 공장에서는 가죽 부츠를 제공했다. 모두 너무나 신나 있는 상황에서 해외 물품 반입 가격 제한은 우리의 선물들을 무용지물로 만들 참이었다. 우리는 이것들을 낡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 하루 종일 새 옷을 입고 바닥에 뒹굴거나 새 가죽 부츠를 신고 축구를 했다. 그것도 모자라 벽에 마구 발길질을 해댔다. 숙소로 돌아오니 코치가 '너희들의 시연이 너무 훌륭해 정부에서 선물들을 반입하도록 허가했다'고 말했다. 왜 좀 더 일찍, 하루만 더 일찍 알려주지 않았을까?” - 공식 홈페이지 LIFE 페이지


중화 영웅 이연걸

이연걸의 데뷔작 [소림사]는 천재 무술 소년 이연걸의 존재를 중화권 전역에 알린 계기가 되었다. 이연걸은 이 영화를 찍을 당시를 “영화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이라고 회상한다. 이연걸은 영화의 내용도 모른 채, 감독이 “이번엔 악당이 더 강해야 해” 혹은 “이번엔 네가 더 강한 신이야” 등의 대강의 컨셉만으로 합을 짜고 촬영을 진행했다. 그러나 그는 4계절을 꼬박 보낸 힘겨운 일정에도 불구, 하루 8시간씩 계속되는 무술 수련 대신 촬영 후 동료들과 축구나 농구를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촬영장을 좋아했다. 이연걸의 풋풋한 미소를 감상할 수 있는 [소림사]는 잔인한 권력자에게 억울한 죽임을 당한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소림사로 흘러온 소년 소호의 복수담을 담고 있다. 이 영화는 다분히 이연걸의 개인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설정들이 눈에 띄는데, 소호가 불교에 귀의한 후 소림 무술을 연마하는 과정을 계절의 변화를 암시하는 다양한 배경을 통해 선보이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소림사] 이후 이연걸은 멜 깁슨의 상대 악역으로 등장한 [리셀 웨폰 4](1998)를 제외하고 단 한 번도 주연 자리를 놓친 적이 없는 불세출의 액션 영웅으로 살았다. 그렇다. 이연걸만큼 영웅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배우도 드물 것이다. 실제 유려한 무술 실력을 바탕으로 영화 속 이연걸은 중국 민중의 한을 잔뜩 짊어지고 악에 맞서 싸웠다. 이연걸은 세 편의 [황비홍]시리즈(1991~1993)와 이소룡의 [정무문]을 리메이크한 [이연걸의 정무문](1994), 미국 로케이션을 시도한 [용행천하](1995), 직접 메가폰을 잡은 [중화영웅](1998) 등을 통해 영웅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이연걸의 영화 속 캐릭터가 곽원갑을 비롯 황비홍, 방세옥처럼 존경받는 중화권 실존 인물들이 많다는 점은 그의 이미지 구축에 큰 몫을 했다. 이연걸의 필모그래피에서 최근작 [무인 곽원갑]과 관련한 재미있는 사실은 [정무문]의 진진이 실제로 독살 당한 사부 곽원갑의 원수를 갚기 위해 중국으로 돌아온 인물이란 점이다. 이연걸은 젊은 시절 혈기방장한 진진을 연기하고 40대에 접어들어선 곽원갑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연걸의 영화에서 눈에 띄는 것은 거대한 체구 서양인과의 결투다. [무인 곽원갑]에서 깨달음을 얻은 곽원갑은 승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중국인의 자긍심을 위해 거대한 미국인과 결투를 벌인다. 길다란 서양인과 마주보고 선 곽원갑의 모습은 흡사 다윗과 골리앗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무식한 물리력으로 주먹만 휘두르는 거인을 상대하는 곽원갑은 유연한 몸놀림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이 같은 대결은 뤽 베송과의 인연으로 제작된 [키스 오브 드래곤](2001), [더 독](2005)과 같은 영화에서도 등장하지만 [중화영웅]이나 [용행천하]의 그에게선 의협심이 더욱 돋보인다. 해외에서 제작된 두 편의 영화에서 서양인과 싸우는 이연걸이 흥미로운 이종격투기를 관람할 때 느끼는 쾌감을 전한다면, 작은 체구의 동양인이 단단한 근육질의 몸으로 무장한 서구인을 굴복시키는 장면은(이는 극중 역사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상처받은 자존심의 회복을 모티브로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화교권의 자존심을 건 대리 복수의 냄새가 강했다. 실제로도 불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던 이연걸은 [남북소림]([소림사] 3편, 1986) 이후 그가 직접 [중화영웅]을 감독한 이유를 “내 사회적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중국의 개방화 정책이 가속화되면서 외국인과 비교해 차별 받는 본토 중국인들의 처지를 시대적 배경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회적 불평등과 분노에 대해 자각한 계기를 담은 이연걸의 혈기 어린 회고담을 살펴보자.

“[남북소림]은 정말이지 촬영하고 싶지 않은 영화였다. 홍콩에서 온 유명 감독이 연출을 맡자 처음 두 편처럼 배우들이 창작에 참여할 기회가 없었다. 홍콩 스탭은 한달 15,000위안을 받을 당시 나와 다른 배우들은 하루 3위안의 출연료를 받았다. 본토 스탭들이 평범한 점심을 먹을 당시 홍콩 스탭들은 케이터링 서비스로 조달된 특별식을 제공 받았다. 사건은 새벽 4시로 예정돼있던 촬영장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새벽 2시부터 현장에서 기다렸지만 감독은 오전 10시에 나타나 '광량이 틀렸으니 여명 장면을 미루자'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난 곧장 제작자에게 불공정한 처사를 설명하고 감독이 사과하지 않으면 당장 집으로 돌아가 다시는 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따졌다. 그리고 보다시피 난 지금까지 영화를 만들고 있다. 이 사건은 나에게 권력과 계층에 대해 자각하게 해주었다” - 공식 웹사이트 WORK 페이지

복수를 초월한 불자 이연걸

이연걸은 뤽 베송과 함께 한 첫 영화 [키스 오브 드래곤]을 통해 불완전한 한 남자가 위기와 공포에 맞서 나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완벽한 영웅보다 평범하지만 점차 발전해가는 캐릭터에 끌린다는 이연걸은 [무인 곽원갑]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전했다. 승자의 영광에 집착하던 젊은 곽원갑은 ‘최고수’란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욕망임을 깨닫고 무술의 참 정신을 깨치기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내던진다. 이러한 캐릭터의 변화는 이연걸의 일련의 영화들을 통해 흥미롭게 드러난다. [소림사]에서 오직 복수를 위해 소림 무술을 배우려는 소호에게 주지스님은 “어떤 경우에도 살생을 하지 않겠는가?”란 질문을 던진다. 이에 소호는 “살생은 안되지만 정의를 위해선 가능합니다”라고 주저없이 답한다. 독살당한 사부의 복수를 위해 무술을 연마하던 [정무문]의 진진은 “일본인들이 많은 곳이 어디냐. 가서 박살을 내자”라며 복수를 향한 망설임 없는 걸음을 내딛는다. 그러나 [무인 곽원갑]에 이르러 그의 캐릭터는 포용의 정신을 피력한다. 곽원갑은 중국인의 기를 꺾기 위한 음모로 기획된 4:1의 불리한 결투에도 순순히 응하고, 온몸에 독이 펴져가는 와중에도 끝까지 상대와 겨룬다. 그리고 상대는 곽원갑의 정신에 탄복하고 스스로 패배를 인정한다. 이러한 캐릭터의 변화는 자연인 이연걸의 종교적 신념과 무관하지 않다.

“1997년 나는 영화에서 완전히 은퇴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유는 단지 내가 너무 지쳤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난 8살 때부터 10년간 매일 8시간씩 수련을 했고, 이후엔 계속 영화를 만들었다. 기자들은 언제나 감언이설로 날 카메라 앞에 세워 포즈를 잡게 했지만 유명해지고 부유해져도 상처는 있는 법이다. 난 더 이상의 명예도 돈도 원하지 않았다”
- 공식 웹사이트 SPIRIT 페이지


모든 것을 이뤘다고 느낀 이연걸은 불교를 수양하며 정신적인 삶을 살길 원했다. 그러나 그의 발길을 다시 영화로 돌린 것 또한 불교였다. 티벳 정신적 지도자와의 만남에서 이연걸은 자신이 가진 것을 통해 불교를 전하겠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겨나게 됐다.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후 만나는 스승마다 “불교와 연이 있다”는 말을 듣던 이연걸은 불교와의 인연을 [소림사]로부터 꼽는다. 당시 배역을 위해 불교 의식을 전수받던 이연걸은 절에 있던 사람들로부터 “스님이 되어야 한다”는 강한 권유를 받기도 했으며 또한 이 무렵부터 그는 "철학적인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회고한다.

[와호장룡]의 배역을 아내의 출산을 지키기 위해 포기한 이연걸은 영화의 기록적인 흥행 이후 한동안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 공세에 시달렸다. 그러나 이연걸은 “영화는 내 삶의 한 단면일 뿐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다”라는 말로 세간의 호기심을 일축했다. 그의 팬들은 이처럼 무술에 대한 열정과 욕심 없이 살아가고자 하는 자연인 이연걸의 모습을 큰 매력으로 꼽는다. 한없이 해맑은 미소 속에 빛나는 고수의 카리스마는 이연걸의 전매특허다. 이연걸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팬들의 다양한 질문과 이연걸의 답변이 가득하다. 그 질문들은 스타 배우에 대한 시시콜콜한 개인사뿐 아니라 무술과 불교에 대한 기초적인 질문부터 일상생활에서 수련하고 명상하는 법에 대한 조언까지 너무나 다양해 더욱 인상적이다. 팬들에게 그는 단순한 액션 스타가 아니라 삶에 대한 조언을 얻을 수 있는 '사부'와 같다. 와이어와 특수효과로 누구나 액션 스타가 될 수 있는 시대에 끊임없이 수련하는 무술인 이연걸의 존재는 컴퓨터와 마우스만으로 대체될 수 없는 단단한 그 무엇을 품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기억할 이연걸의 모습이다.

영화와 네티즌의 만남 "시네티즌(www.cinetizen.com)"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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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생활패턴 10대 기술이 바꾼다

- 미국 <포브스> 선정 -

컴퓨터나 증기기관처럼 우리 생활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차세대 기술로 연료전지, 유전자 요법, 컴퓨터 촉각기술 등이 꼽혔다. 미국의 경제주간지 <포브스>는 이들을 포함해 '앞으로 생활을 바꿀 10가지'를 선정했다고 19일 밝혔다.

<포브스>는 △ 많은 사람들에게 빠르게 영향을 미칠 것△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을 것△ FDA(미국식품의약국)로부터 거절되지 않을 것 등을 선정기준으로 삼았다.

▣ 연료전지(Fuel Cells) =세계 경제를 바꿀 차세대 연료. 충전할 수 있어 영구적이며 자동차에 특히 획기적이다. 석유 등 화학연료 사용을 줄일 뿐만 아니라 공해물질 배출도 억제할 수 있다.

▣ 유전자 요법(Gene Therapy) = 유전자를 끼워 넣은 새로운 세포를 사용하는 치료법. 손상된 세포를 통째로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질병은 물론 다운증후군 등 유전병도 치료할 수 있게 된다.

▣ 컴퓨터 촉각기술(Haptics) =컴퓨터의 입력장치를 통해 촉각과 힘, 운동감 등을 느끼게 하는 기술. 이미 휴대폰이 떨리거나 게임기의 조이스틱이 떨리는 등 일상생활에서 쓰이고 있다.

▣ 인터넷2(Internet2) = 세계 200개 대학이 공동개발 중인 차세대 인터넷. 현재 인터넷보다 속도가 훨씬 빠르다.

▣ 생명빨대(Life Straw) =휴대용 정수 필터. 어떤 물이라도정수할 수 있어 지구상의 물 부족 현상을 해결할 빨대로 꼽힌다. 이질, 장티푸스, 디프테리아, 콜레라를 일으키는 미생물을 효과적으로 걸러 준다.

▣ M램(MRAM) = 현재 일반적인 D램보다 속도가 6배 바른 램. 자기를 이용해 정보를 기억하는 새로운 형태의 기억소자로 전원을 차단해도 기억화 정보가 지워지지 않는 특성으로 차세대 메모리로 꼽힌다.

▣ 100달러짜리 노트북 = MIT가 저개발국 어린이를 위해 개발한 초저가 노트북.

▣ 배럴당 200달러 석유 = 새로운 기술이나 발명품은 아니다. 그러나 세계 경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 인터넷 전화(VoIP) = 인터넷을 통해 통화할 수 있는 통신기술. 기존 전화보다 값이 훨씬 싼 데다 인터넷망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지 통화가 가능하다.

▣ 와이맥스(WiMax) = 광대역(브로밴드) 무선 접속장비의 호환성과 상호 운용성을 향상시키고 인증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 단체 또는 여기서 개발하는 기술. 상용화할 경우 유선 없이 무선으로 쉽고 빠르게 인터넷 접속이나 통신이 가능해진다.

- 베이징 저널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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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1665년

유화, 캔버스, 45 x 39 cm, 마우리츠후이스 미술관, 헤이그, 네덜란드



영화 '진주 귀걸이의 소녀'





영화의 마지막 장면

Girl with a Pearl Earring (Vermeer)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2003)
O.S.T, Grief's Theme
음악 Alexandre Desplat
Pro Arte Orch of London




주인과 하녀, 스승과 제자, 화가와 모델

그러나 그들에게 사랑은 허락되지 않았다.


1665년 네덜란드 델프트. 16세 소녀 그리트는 아버지가 사고로 시력을 잃자 화가 베르메르 집의 하녀로 들어간다. 베르메르의 작업실을 청소하기 위해 방에 들어선 순간 그리트는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은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게 되고 그런 그녀를 본 베르메르는 신선한 영감을 얻게 된다. 베르메르는 그리트에게 색을 보는 법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서 가까워 지지만 탐욕스러운 아내, 장모와 함께 살면서 여섯 명의 아이들을 건사해야 하는 베르메르는 안타까운 시선 이상의 관심을 그리트에게 표현할 수가 없다.


“내 영혼을 담아… 널 그리고 싶어”

이루어질 수 없는, 그래서 영원히 간직된 사랑

(Tracy Chevalier의 소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영화화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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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atest thing

You'll ever learn

Is just to love

And be loved

In return.

This story is about

Truth, Beauty, Freedom,

But above all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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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동안 5,100위안 저축한 주은래 총리 부부

'영원한 총리'이면서 '인민의 진정한 충복이자 벗'으로 중국인들의 사랑을 함몸에 받고 있는 주은래 전총리. 얼마전 주은래 전 총리부부가 평생동안 저축한 돈이 인민폐 5,100위안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1976년 총리 사망후 그들 부부의 수입과 지출장부를 정리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주총리의 수입은 오직 월급 400위안과 월급을 저축해서 생긴 이자가 전부이다.주요 지출 내역은 식비, 국가를 위한 기부, 주택 임대료, 신문과 도서 구입비, 기타 지출과 친인척 보조와 그외 기부금 등이다. 1958~1976년까지 총 161,442위안의 수입이 있었는데, 그 중 친인척 직원들과 벗들을 돕는데 46,863위안을 써 그의 수입 전체에서 약 1/4을 차지했다.

그는 월급으로 이웃들을 도우면서도 국가에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고 그것을 지켰다. 또한 그는 저금에 대해서도 원칙이 하나 있었다. 저금 총액이 5,000위안에 이르면 다른 곳에 사용하지 않고 국가에 기부했는데 그가 평생 기부한 돈은 총 14,000위안이었다.

이들 부부의 저금으로 보아 매우 검소한 생활을 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세운 원칙을 철저히 지켰음을 알 수 있다. - 동북저널에서 -

"11년전 그 때 그 옷이야" - 국민 감동 원 총리의 '겨울 점퍼'

원자바오 중국총리의 겨울 점퍼 하나가 중국인들을 감동시켰다. 지난 춘절 전날인 지난 1월 28일 산동성 농가를 방문하면서 입고 갔던 점퍼이다. 원총리는 이 옷을 1995년 겨울에도 입었다. 정치국후보위원 시절 산동성 서우광을 방문 했을 때다.

기억력 좋은 한 네티즌이 이걸 놓치지 않고 인터넷에 올린 것이다. 라오치라는 이 네티즌은 1월 30일 따중왕이라는 인터넷 뉴스사이트에서 원 총리의 산동성 방문기사를 읽었다. 그는 기사와 함께 소개된 사진 속의 원 총리 점퍼가 매우 눈에 익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1995년 원 총리가 서우광 채소시장을 방문했을 때의 사진을 꺼내 대조해 보았다. 옷의 여러 위치가 비슷하여 같은 점퍼라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자세히 보고 또 봤지만 11년전 바로 그 점퍼였다. 총리는 아직 그 겨울 옷을 입고 있었다. 총리여, 아 총리여!"

라오치는 따중왕의 그 기사에 200자 내외의 댓글을 달고 두 장의 사진을 함께 올렸다. 이 글을 읽은 수많은 네티즌들이 그 내용을 다른 사이트로 옮기면서 무려 23만여개 사이트에 원 총리의 점퍼 이야기가 올라갔다.

"주름지고 해진 녹새 점퍼를 입은 총리, 그는 보통의 노인 같다." "감동했다. 부디 원 총리가 갈수록 주은래 총리를 닮기를..." - 베이징 저널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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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건강학] 슬플 땐 울어라! 그래야 오래 산다


1997년 8월, 영국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자 영국 국민들은 비탄에 빠져, 눈물을 흘리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이상하게도 그 후 한동안 영국의 정신병원과 심리상담소에 우울증 환자 방문이 절반으로 줄었다. 정신과 의사들은 다이애나의 장례식 때 실컷 울고 카타르시스를 느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이를 ‘다이애나 효과’라고 불렀다.

웃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해서 억지로 웃게 만드는 ‘웃음 치료’가 각광 받고 있지만 잘 우는 것도 웃는 것만큼 건강에 도움이 된다. 웃음이 면역력을 높여 주는 것처럼 울음 역시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눈물을 ‘신이 인간에게 준 치유의 물’이라고 말하는 의사들도 있다.


◆ 슬플 때 울지 않으면, 다른 장기가 대신 운다


영국의 저명한 정신과의사 헨리 모슬리경이 남긴 말이다. 슬플 때 울 수 있는 사람이 병에 덜 걸린다는 사실은 임상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미국 피츠버그대 연구팀이 건강한 사람과 위궤양이 있는 남·녀 137명을 나눠 조사했더니 위궤양 환자보다 건강한 사람들이 우는 것에 대해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필요한 경우 더 잘 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슬퍼도 울음을 참는 사람이 스트레스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위궤양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동맥경화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 우는 사람보다 소리를 내서 “엉~엉~” 우는 사람의 심장마비 발병률이 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증 류머티즘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울고 난 다음엔 스트레스 호르몬과 류머티즘을 악화시키는 물질인 ‘인터루킨-6’의 수치가 떨어졌다.

한편 눈물을 통해 스트레스 물질도 배출된다. 슬픈 영화를 볼 때와 양파를 썰 때 눈이 매워 나오는 눈물을 비교한 실험에서 ‘영화 눈물’은 ‘양파 눈물’보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카테콜아민이 더 많이 함유된 것으로 나타났다. 카테콜아민은 혈관을 수축시켜 심혈관에 부담을 준다. 즉 눈물이 스트레스 호르몬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다.

◆ 남자들이여, 울음을 참지 마라


미국 여성들은 한 달 평균 5.3회 우는 반면, 남자는 1.4회 운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자는 태어날 때와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등 평생 3번만 울어야 한다고 가르쳐 왔다. 눈물에 관한 한 불평등 대우를 받아왔던 것이다.

울산의대 강릉아산병원 정신과 백상빈 교수는 “남자의 평균수명이 더 짧은 이유 중 하나가 여자보다 덜 울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16세기말까지만 해도 오페라나 연극에서 남자가 우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으나 산업혁명 이후 남자의 눈물이 ‘남자답지 못함’을 의미하게 됐다”며 “남자나 여자나 모두 울고 나서 심신의 상태가 좋아지는 것을 느끼는 것은 똑같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이목 때문에 울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눈물 방’이 있다고 한다.


◆ 아이가 운다고 야단을 치지 마라


아이가 말을 하지 못할 때는 울음이 유일한 의사 표현 수단이다. 그런데 말을 할 만큼 큰 아이의 경우에도 울음은 나름의 의사 표현 수단으로 사용된다. 예컨대 아이가 병원에 갔을 때 우는 것은 병원에 대한 공포를 울음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운 아이들이 오히려 병원에 대한 공포가 표출돼서 병에서 회복되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억지로 울음을 그치게 하면 회복도 늦고 병원에 대한 공포감도 지속된다고 알려져 있다.

한림의대 한강성심병원 정신과 함병주 교수는 “잘 울지 않는 아이는 걱정거리가 있을 때 땀이나 침을 과도하게 흘리는 등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다”며 “어린이들은 필요한 경우 실컷 울었을 때 사물이나 현실을 왜곡된 시각으로 보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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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나는 너에게 봄을 보낸다.

이 봄은 지난해의 봄도 그 전의 봄도 아니야

지금까지 어디에도 없었던 새롭고 완전한 봄이야

어느 날은 싹이 날거야

어느 날은 꽃이 필거야

어느 날은 보슬비가 내리고

어느 날은 꽃바람이 불거야

언젠가 본 듯하지만 사실은 모두 새로운 거야

그리고 모두 네 것이야


친구야

너는 오늘부터 새사람이야

이 세상 어느 들판의 봄보다 어느 호숫가의 봄보다

너는 더 새롭고 놀라운 봄이야

내가 너에게 봄을 보냈으므로

네 삶의 이름은 오늘부터 “희망”이라 부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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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가 중국과 옛 소련에 있는 외국 국적의 재외동포들에게 '방문취업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한국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방문취업제'가 도입될 경우 이르면 금년 7월부터 중국과 옛 소련에 있는 외국 국적 동포들에게 한국 취업과 방문을 자유롭게 할수있는 5년짜리 복수비자가 발급될 예정이다. 이 비자는 1회 방문시 최장 2년까지 한국체류가 가능하며, 일부 퇴폐적인 업종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업종에 취업할 수 있게 된다. 비자발급 대상은 한국에 친인척이 없는 동포도 포함되며, 한국어 성적순으로 입국을 허용할 방침이다.

현재 이 지역 동포는 한국내 호적에 올라 있거나, 한국 국내 친족의 초청이 있을 경우 또는 독립유공자의 자손에 한해 취업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방문취업제' 도입은 큰 의미를 가진다. 한국 법무부는 "외국 국적 동포를 '외국인력 관리' 차원이 아닌 '한민족 네트워크' 형성을 위해 이같은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또한 "저출산, 고령화 시대의 부족한 산업인력을 외국 국적 동포가 대체함으로써 외국인력 도입에 따른 사회적 비용과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외국국적 동포에는 중국 조선족, 옛 소련 고려인, 일본 국적을 취득한 재일동포,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재미동포 등이 포함된다. 이들은 일제시대 때 중국, 연해주, 일본, 미국 등지로 이주한 한인들 또는 그들의 후손들, 그리고 1965년 이후 새로운 기회를 찾아 미국, 일본 등으로 건너간 한국인들 또는 그 후손들이다. 2005년 1월 기준으로 한국의 재외동포는 663만 명으로 이 중 378만 명이 외국 국적 동포이며, 외국 국적 동포 중 약 16만 명 정도가 한국내에 체류하고 있다. 국적별로는 중국이 147,927명으로 가장 많고, 미국 18,273명, 옛 소련이 1,223명 등이다.

한국은 재외동포를 위한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체류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지만, 단순 노무활동에 종사할 목적으로 입국하려는 재외동포는 그 동안 자격에서 제외되어 왔었다. 한편, 한국 입국 후에도 복잡한 고용 절차, 취업 허용 업종 한정 등의 원인으로 불법체류 중이거나 한국 입국이 규제되고 있는 재외동포에 대한 구제 정책도 '방문취업제' 도입과 함께 시행할 방침이다. 올해 상반기 중에 2차 '자진귀국 프로그램'을 시행해 합법적인 재입국 기회를 부여할 예정인데, 이미 2005년 3월 한 차례 시행했던 1차 귀국 프로그램의 성공으로 많은 참여가 예상된다. 또한 과거 불법체류로 입국 규제된 3만 여명에 대해서도 입국 허용 방안을 마련 중인데, 형사범, 불법 입국알선 등 사회질서 문란자는 대상에서 제외된다.

올해 안에 외국 국적 동포에 대한 방문 취업제가 도입 정착되면 중국, 옛 소련 거주 외국 동포들이 한국을 자유롭게 왕래하고 한국에서 취업 활동을 할수있게 돼 불법 취업문제가 다소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또 한국 중소기업들은 의사소통이 원활한 동포인력을 필요한 시기에 고용할 수 있어 기업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다.

참고로 '재외동포'란 '재외국민'과 '외국 국적 동포'를 통틀어 일컫는 용어이다. <동북저널>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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