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회화나무>

 

 

회화나무 심은 뜻은

   이유미/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회화나무가 보인다. 회화나무는 이곳저곳 공원이나 길가에 제법 많이 심어져 있으며 한여름 피기 시작한 꽃들은 여름이 다 가도록 여전히 지지 않고 있으니 해마다 회화나무를 자주 보아 왔지만 올해 비로소 본 듯한 느낌이 든다. 이제야 회화나무를 제대로 느끼게 된 것이다.


지난해에는 싸리나무 잎에 물든 노란 단풍이었다. 싸리라고 하면 나무로 쳐도 굵은 줄기 하나 없는 작고 왜소한 관목이며, 꽃도 잔잔하고 잎은 그저 동들동글해 비범한 것이라곤 하나도 찾을 수 없는 그런 나무다. 그런데 지난해 가을이 깊어가면서 문득문득 산길에서 눈길을 잡고, 마음 깊은 곳을 톡톡 건드리며 흔들어 놓은 것은 어김없이 싸리 잎의 노란빛이었다. 서늘한 가을 기운에 흩어지는 그 노란빛이 어찌나 애잔하던지….


올해는 조금 일찍 여름부터 그렇게 눈길과 마음을 잡는 나무가 바로 회화나무였다. 밤이 깊어가기 시작할 즈음 달빛이었는지, 먼 가로등 빛이었는지 어느 순간 눈앞이 환해지도록 풍성하게 눈부신 꽃송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평생 나무와 풀을 공부하는 사람임에도 마치 처음 보는 나무인가 싶을 만큼 새로운 모습이었다. 회화나무에 대한 숱한 사람의 칭송을 이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가는 곳마다 회화나무가 눈으로 마음으로 가득가득 보인다.


회화나무는 영어로는 ‘차이니스 스칼라 트리(Chinese scholar tree)’, 그래서 학자수(學者樹)라고 부른다. 옛 사람들은 집안에 이 나무를 심고 학자들이 나오기를 바랐다. 그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 주나라 때 조정 뜰에 세 그루의 회화나무를 심고 우리나라의 3정승에 해당되는 삼공(三公)이 각각 회화나무와 마주 앉도록 했다고 한다. 그래서 최고 벼슬의 상징이 바로 회화나무가 되었다. 정승의 벼슬을 한다는 것은 출세를 하는 것이니 이를 바라면서 심기도 하고 과거에 합격하면 회화나무를 심어 기념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출세수(出世樹), 행복을 준다 하여 행복수(幸福樹)라 했고, 이러한 것은 양반들의 전유물이었던 까닭에 양반수(兩班樹)란 별칭도 가졌다. 또한 판관(判官)이 송사(訟事)를 들을 때에는 회화나무를 가지고 재판을 했다. 그 연유는 회화나무의 정갈함으로 진실을 찾을 수 있도록 하고자 함이었다고 한다. 모든 좋은 것의 상징인 길상목(吉祥木)이었다.


꽤 여러해 전 재미난 일이 었었다. 나무를 키워 팔던 한 분이 내게만 특별히 천기를 알려 준다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고 건넨 말이, 회화나무를 심으면 부자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 증거로 자기도 회화나무를 키워 팔면서 소득이 늘었고 무엇보다도 가장 부유한 동네인 압구정동 가로수가 회화나무라는 것이었다. 출세와 행복에 이르는 가치 기준이 학문을 이루는 것에서 부(富)를 이루는 것으로 바뀌었나 보다 싶었다. 하지만 회화나무 가로수는 부자 동네, 가난한 동네 할 것 없이 골고루 볼 수 있다.


일단 마음에 회화나무를 두고 보니 회화나무는 참 멋진 나무다. 녹색의 기운이 도는 유백색 꽃빛이며,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을 받으면서 만들어내는 그 푸른 그늘, 오늘처럼 몹시 비바람이 치고 난 뒤 우수수 바닥에 떨어진 꽃송이들의 장렬함, 밤하늘에 눈부셨던 특별한 변신…. 이제 하나둘씩 꽃들은 잘록잘록 귀여운 열매로 바뀌어 가는데 꽃빛과 열매의 때깔이나 그 그윽함이라니. 수백 년씩 살아가는 고목에 매년 돋아나는 잎과 꽃들은 언제나 청년처럼 싱그러운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처음 보면서 돋보이지 않은 나무라고 생각했던 선입견에 갇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무수한 모습들을 새로이 알게 되면서, 나무를 바라보는 내 안목이 여전히 일천한 것에 실망하고 반성하게 된다. 또 한편으론 이 무궁한 자연 속의 풀과 나무들은 또 어떤 모습으로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나를 설레게 할까 싶어 기대도 된다.


그리고 나무든, 풀이든 혹은 사람이든 한 면만 보고, 한 번의 선입견으로 속단하지 말라는 말없는 경고도 함께 읽는다. 나무도, 사람도 참으로 다양한 모습을 담은 무궁한 존재다. 그럼에도 회화나무를 편갈랐던 나도, 오늘날의 우리 사회도 무엇이든 속단하고 내가 속한 사회의 틀 안에서 그 밖의 것들은 무조건 흑백논리로 양분하여 편가르는 일들이 더욱 심해지고 있지 않은가.


회화나무는 한자로 ‘괴(槐)’로 쓰고, 이를 중국어 발음으로 ‘훼’ 혹은 ‘회’라고 읽어 회화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회화나무의 그 맑은 빛의 꽃들은 괴화(槐花)라고 하여 꽃차를 만들어 마신다. 이 꽃차에는 루틴이라는 성분이 있어 눈을 밝게 한다고 한다. 매년 여름이면 피어나는 은은한 회화나무 꽃 향기는 갈수록 편협해지고 고집스러워지는 내게 또는 우리들에게 눈과 마음을 밝게 깨우고 살아야 한다는 경종이 될 것 같다.


가을이 오기 전에 더위에 흩어진 마음을 푸르게 가다듬어 보려 한다면 회화나무 구경을 하길 권해 본다. 동네의 가로수로 심어져 있거나, 오래된 서원이나 마을 어귀를 지키고 있는 회화나무를 찾아봐도 좋고, 서울이라면 정동길이나 창덕궁의 수백 년 된 회화나무도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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