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서는 눈 뜨고 펀치 맞죠, 난관 닥쳐도 눈 감지 마세요”

정영재의 스포츠 오디세이 <14> 스물여섯 챔프 김주희가 청춘에게 주는 글

 

 

딸 둘을 버리고 집을 나간 어머니, 치매로 걸핏하면 사고를 치는 아버지, 동생과 아버지 뒷바라지에 허리 펼 날이 없었던 언니…. 곰팡내 나는 지하 월셋방에는 햇볕 한 줌 들어오지 않았다. 300원짜리 크림빵을 훔쳐먹고는 자책감과 서러움에 제 뺨을 때리며 울었다.

편의점·주유소·호프집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언니는 몰래 권투체육관을 다니고 있었다. 1999년 겨울, 언니 심부름으로 동생은 문래동 거인체육관을 찾는다. 그리고 권투라는 운명과 정문호 관장이라는 ‘새아버지’를 만난다.

김미나의 동생 김주희는 언니 대신에, 언니가 내준 회비로 권투를 배웠다. 권투가 너무나 좋아 죽을 만큼 훈련에 매달렸다. 주희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다. 악성 빈혈이 있었고, 뼈는 쉽게 부러지는 ‘닭뼈’다. 희고 고운 피부는 몇 대만 맞으면 퉁퉁 부어올라 권투선수로서는 핸디캡이다.

김주희는 이 모든 역경을 넘어서 세계 정상에 있다. 고3이었던 2004년 12월 국제여자복싱협회(IFBA) 최연소 챔피언에 올랐다. 차근차근 챔피언 벨트를 수집했고, 지난 9일 여자국제복싱평의회(WI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이겨 세계 여자프로복싱 5대 기구 통합 챔피언에 등극했다.

형편은 나아졌지만 아직 그가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는 줄어들지 않았다. 요양원에 모신 아버지는 풍까지 맞았다. 혈혈단신 미국으로 날아간 언니는 고된 노동 때문에 암에 걸려 수술을 받았다. 2006년 염증으로 오른쪽 엄지발가락(사진)을 잘라낸 그는 권투를 그만둬야 할지도 모를 벼랑 끝까지 몰렸다.

김주희는 왼손이 강하다. 약점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강점이었다. [중앙포토]
그래도 김주희는 씩씩하다. 자신을 덮친 모진 운명을 향해 쉴 새 없이 펀치를 날린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지만 대학원(중부대 교육학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졸업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요즘은 기업체 특강 강사로도 인기 절정이다. ‘도전과 열정’을 주제로 담담하게 풀어내는 그의 이야기는 어떤 고담준론보다 울림이 크다. 지난달에는 책도 냈다. 자서전 할 수 있다, 믿는다, 괜찮다(다산북스)의 부제는 ‘스물여섯 챔피언 김주희의 청춘노트’다.

스포츠 오디세이가 지난 22일 거인체육관을 찾았다. 김주희의 왼쪽 눈은 아직 충혈되고 부기가 빠지지 않았다. 요즘 사는 얘기로 가볍게 몸을 푼 뒤 ‘본 게임’은 책 얘기로 했다. 밑줄 치며 읽었던 단락을 내놓으면 그가 차분하게 설명하는 식이었다. 스물여섯 김주희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을 향해 조용조용 말을 풀어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온 삶과 체중이 실린 강펀치였다.
 
-기회가 찾아온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기적 같은 일이었으니까.(35p)
언니는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미국에 편도 비행기표만 들고 갔다. 우린 비빌 언덕도 없었다. 뭘 배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기회다. 기회는 찾아왔을 때 만들어가야 한다. 언니가 어렵게 번 돈으로 배운 권투니까 열심히 해야 했다. 언제까지 다닐 수 없다는 불안감 속에서 정말 최선을 다했다.

-왼손을 재발견하고 나서는 누구에게도 고정된 단점이나 장점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47p)
보통 오른손잡이에게 왼손은 잽을 던지는 선제 손이다. 난 빈혈·닭뼈·약한 피부 등 모든 게 핸디캡이었다. 그런데 관장님과 훈련을 하다가 왼손이 굉장히 강하다는 걸 알게 됐다. 생각해 보니 어릴 적 난 왼손잡이였다. 왼손이 강하니 상대가 압박을 받았다. 날 때부터 단점만 갖고 태어난 사람은 없다.

-헝그리 정신이란 배고픈 것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62p)
권투선수에게 헝그리 정신은 다운 당한 뒤 벌떡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누구나 위기에 처했을 때 극복해 나가는 방법이 있겠지만 권투선수는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걸 배운다. 권투를 통해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극복할 수 있다는 배포가 생겼다. 배추 장사를 한다고 해도 그 분야에서 톱이 될 자신 있다.

-두렵다고 눈을 감아버려서는 안 된다. 눈을 감는다고 벌어진 일을 피해가지는 못하니까. 아무리 무
섭더라도 눈 똑바로 뜨고 맞서야 하는 것이다.(71p)
권투선수는 펀치를 맞는 순간에도 눈을 뜨고 있어야 한다. 눈을 감는 순간 또 맞는다. 어려운 일을 만나면 눈 질끈 감아버린다고, 참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나도 힘든 일 있을 때 방에 틀어박혀 울고불고 아무한테도 못 털어놓고 꾹꾹 참아본 적도 있다. 포기하는 것보다 그나마 낫지만, 문제 해결 방법은 아니다. 눈 부릅뜨고 정면으로 맞서 치고 나가는 게 가장 현명하고 마음 편하다.

-상상할 수 없이 멋진 일들이 세상에는 많았고, 권투로도 그런 멋진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느꼈다.(92p)
모든 순간이 다 멋졌지만, 18세에 첫 세계챔피언이 된 순간(사진)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내가 뭐 대단하다고 TV에 나오고, 영화 찍고, 강의하고. 이렇게 강의할 날이 올 줄은 정말 몰랐다. 원고도 없다. 처음부터 제 얘기를 하는 것뿐인데 호응해 주시는 게 신기할 뿐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로 직업을 삼고 돈 버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고 좋은 일이다.

-무식한 자는 복종을 못하지만 지혜가 있는 자는 기꺼이 순종할 수 있다.(160p)
관장님은 권투선수 무식하다는 얘기를 가장 싫어하신다. 그래서 늘 “공부해라” “책 읽어라” 얘기하신다. 난 관장님 뜻을 잘 알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한다. 링에 올라가면 제정신이 아니다. 본능적으로 때리고 피한다. 10년 이상 함께한 관장님은 쟤가 왜 저런 제스처 하는지 안다. 그래서 지시를 내리고 작전을 바꾼다. 권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팀워크다.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 ‘그만’이라고 말을 해서는 안 된다.(169p)
관장님은 내가 운동하다 쓰러져도 물을 뿌리며 “일어나” 하실 분이다. 그런데 내가 발가락 수술 이후 심각한 우울증 증세를 보이니까 정말 진심으로 그만두라고 하셨다. 수술 직후에 꼼짝도 할 수 없어 바지에 소변을 본 적도 있다. 그때 관장님이 병원에 찾아오셔서 맛있는 것 잔뜩 사주시고는 “주희야, 이제 그만하자. 이젠 네가 스무 살 예쁜 아가씨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난 “지금까지 관장님이 모두 옳았지만 지금 하신 말씀은 틀린 거예요. 정말 힘들었지만 권투 하면서 살 수 있었어요. 저보고 그만두라면 죽으라는 겁니다”라고 말씀 드렸다. 그리고 한 번만 더 링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울며 매달렸다.

-진짜로 걱정해야 하는 순간까지는 걱정하면 안 된다. 걱정과 싸우면 누구든 지게 돼 있다.(203p)
난 하루에도 수십 가지 걱정을 달고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 달 동안 극도의 긴장과 집중 속에 준비한 경기가 끝나면 난 가장 겸 주부로 돌아간다. 월세와 공과금을 내고, 밀린 빨래와 청소를 하고, 아빠가 또 사고친 건 없는지 챙기고, 대학원 리포트 내고, 스파링 준비하고…. 처음엔 걱정에 포위돼 살았지만 지금은 20분 이상 생각해서 그날 해결 안 나면 다음 날로 갖고 간다. 이미 벌어진 일은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결해 나갈 건지만 생각한다.

-‘밥도 못 먹는 처지에 대학은 무슨 대학! 분수껏 살아라’라고 한 사람들에게, 분수껏 살라는 말을 듣고 눈물 흘렸을 나 같은 아이들에게, 나는 증거가 될지도 모른다.(225p)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사람들이 성공할 확률이 높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이라고 탈선하라는 법은 없다. 편견을 갖고 계신 분들이 적지 않다. 자기 처지에 대해 원망하면 끝이 없다. 누구든 열심히 했을 때 기회가 있고, 도와주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 열심히 하다 보면 좋은 날이 온다는 증거가 되고 싶었다. 난 ‘권투선수의 체중 감량에 대한 연구’로 석사 논문을 준비 중이다. 박사 과정을 밟아 내 분야의 최연소 교수가 되는 게 꿈이다. 지금은 넉넉하지 않지만 앞으로 돈도 많이 번다면 어려운 환경에 있는 친구들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내 인생의 최종 목표다.
-비가 오는 날에는 근처의 쇼핑센터로 가서 카트를 제자리에 밀어놓고 100원을 번다.(241p)
체육관 가는 길에 문래동 홈플러스가 있다. 쇼핑센터 입구에 쇼핑객이 택시를 타면서 버려놓고 간 카트가 몇 개씩 있다. 그거 다 돈이다. 알아보는 사람도 있지만 신경 안 쓴다. 카트 제자리 꽂아두는 게 뭐 훔치는 건 아니니까. 10원짜리 하나가 없어서 배고파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아끼는 게 습관이 됐다. 그런데 언니는 내가 궁상 떤다고 가슴 아파한다. 하지만 난 내가 맞아가며 떳떳하게 번 돈 일부를 기부한다. 남들보다 힘도 세니까 고아원이나 양로원 같은 데 가서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한다.

-성적표, 증서, 시합 때 입었던 운동복, 심지어 빠진 발톱까지 하나하나 모았다.(246p)
관장님은 “네가 다음에 유명해질 것에 대비해서 너의 역사가 될 만한 것을 모아라”고 늘 말씀하셨다. 그래서 훈련하며 빠진 발톱까지 모았다.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자신을 채찍질하기 위해서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내가 이렇게 좋았던 순간이 있지 않았나. 그 무대에 다시 오르는데 왜 그걸 두려워하나’라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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