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베스트셀러 소설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인간의 7대 죄악을 논한 에세이를 조선일보에 주간 연재합니다. 일곱 가지 대죄(大罪)란 가톨릭에서 교만, 인색, 음욕, 탐욕, 질투, 분노, 나태를 가리킵니다. 유네스코의 ‘영적 집중과 상호문화교류’ 프로그램 특별자문위원이기도 한 코엘료는 가톨릭뿐만 아니라 불교, 이슬람, 유대교, 도교 등 다른 종교의 가르침도 끌어오고, 현대 문명이 범한 잘못도 지적합니다.]

7대 대죄는 초기 기독교 시대에 그리스의 수도자 에바그리오 도 폰토에 의해 처음 체계화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여덟 가지였으며 인간이 그르치기 쉬운 부정적 성향들을 정의하고 있습니다(에바그리오가 꼽은 목록에서 가장 심각한 죄악이 탐욕(탐식)이라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죄악들 모두 우리를 지옥에 떨어뜨릴 수 있는 것들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16세기에 이르러 그레고리우스 교황은 이 목록에 ‘질투’를 포함시키고, 기존의 ‘교만’과 ‘허영’을 하나로 합쳤습니다. 17세기에 이 목록은 다시 수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리하여 ‘멜랑콜리’를 더 이상 죄에 포함시키지 않는 대신 ‘나태’가 새로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쓰게 될 일곱 편의 칼럼은 7대 대죄에 관한 것입니다. 나는 7대 대죄들을 규정짓는 무수한 정의들을 따라가면서 우리의 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 높이 더 높이… 부풀어 오른 자만심은 질병
  • 코엘료의 에세이 '일곱가지 대죄' <1> 교만
    神보다 우위에 서려는 마음이 시초… 유대교 “빈껍데기 인간들의 욕심”
    老子도 “지나치게 날선 칼 오래 못가”


    ◆ ‘교만’의 고전적 의미

    첫 번째 대죄인 교만은 라틴어의 Superbia에서 유래한 여성 명사로 오만, 자만심, 거만함, 무례함을 말합니다. 가톨릭교회에서 ‘교만’은 도를 넘어선, 신에 대한 사랑보다도 우위에 서고자 하는 자부심입니다. 이는 첫 번째 계율인 ‘너희는 나 이외의 신을 섬기지 말라’에 반하는 죄악입니다. 가톨릭에서는 이 열망이 천사들의 반란을 부추기고 루시퍼의 몰락을 가져왔다고 말합니다.



    • ▲인간의 교만 때문에 건설됐다가 신의 분노를 샀다는 전설의 바벨탑. 그림은 16세기 플랑드르 화가 브뤼겔의 회화‘바벨탑’.
    교만의 개념은 동양의 불교 우화 속에서 이렇게 나타나기도 합니다.일본 교토에 있는 동복사(東福寺)의 선사(禪師)는 승려들이 하나같이 바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행자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일꾼들은 누군가를 영접하기 위해 줄을 서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냐?”

    선사는 궁금했습니다.

    그때, 군인 하나가 선사에게 다가오더니 패를 하나 내밀었는데 거기엔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교토의 통치자 기타가키님이 지금 곧 도착하시는데, 만나 뵙기를 청합니다.’

    “나는 이야기할 게 없소.” 선사가 말했습니다.

    잠시 후, 통치자가 도착했습니다.

    통치자는 선사에게 다가와서 예의를 갖춰 고개 숙이고는, 패에 쓰인 글 위에 줄을 긋고 고쳐 쓴 후 다시 선사에게 패를 내밀었습니다.

    “기타가키가 만나 뵙기를 청합니다.”

    “환영합니다.” 동복사의 선사가 대답했습니다.

    ◆ 현대의 ‘교만’

    미국의 한 항공모함에는 ‘임무 완수’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2003년 5월 1일,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에서의 주요 군사작전이 종료되었음을 선언했을 때 USS 링컨 호의 깃발에 새긴 문구입니다. 바로 그날, 사망한 미군 장병의 숫자는 217명에 달했는데 이 칼럼을 쓰는 지금, 사망자 수는 2700명을 넘어섰습니다.

    ◆유대교가 말하는 ‘교만’

    랍비 아딘 스타인살츠의 ‘교만’에 대한 정의는 이렇습니다.

    “사람들이 곁다리에 불과한 비교방식을 사용하여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자 애쓴다면, 빈껍데기들만 발견하게 된다. 이 빈껍데기들이 그럴듯해지기 위해서는 서로가 필요하다. 자신을 톰의 친구, 딕의 아들, 대단한 자리에 있는 중역, 이러저러한 업무를 하는 누구로 정의 내리는 것은 옳은 방식이 아니다. 이런 방식은 모두 우리들의 한 면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들은 대개 비관적이고 불완전한 것으로, 다른 이들을 희생시켜서라도 눈에 띄고자 하는 이들의 특성이다. 진실한 단 하나의 관계는 하느님과의 관계이다. 그 관계가 이루어진 다음부터 모든 것은 이치에 맞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는 보다 위대한 의미에 눈뜨게 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노자(老子)가 말한 ‘교만’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교만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자만심일 뿐이다. 부풀어 오르는 것은 커다랗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질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도덕경에는 ‘교만’에 관한 경구가 씌어있습니다. ‘만약 꽃병에 물이 가득 차 있다면 그것을 나르려고 하기보다는 꽃병을 가득 채우지 않는 편이 낫다. 우리가 칼날을 지나치게 날카롭게 갈아놓는다면, 칼날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금과 옥이 방에 가득하다면, 그 주인은 그 물건을 안전하게 지킬 수 없다. 재산과 명예가 오만함으로 이어질 때, 틀림없이 악이 뒤따른다. 우리가 우리의 직분을 다해 이름을 얻기 시작할 때, 일이 완수되자마자 지혜는 미망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 품에서 썩고 있는 보물을 꺼내십시오
  • 코엘료의 에세이 '일곱가지 대최' <2> 인색

    ‘인색’은 라틴어 ‘Avaritia’에서 온 여성 명사입니다. 돈에 대한 욕심, 인색함, 비열함에 대한 과도한 맹신을 뜻하는 말이지요. 인색을 가톨릭교회에서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아홉 번째 계율(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과 열 번째 계율(네 이웃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에 반하는 것이라고요. 인색은 쾌락 또는 소유에 관한 무절제한 성향입니다.

    ◆ 인색에 대한 우화

    ‘사막의 은자(隱者)’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자이시여.” 수련수사가 대수도원장에게 말했습니다. “제 가슴은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고, 제 영혼은 악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다음 단계는 무엇입니까?”

    대수도원장이 수사에게 병자성사에 같이 가자고 말했습니다. 환자의 가족들을 위로한 대수도원장은 집 한구석에 여행 가방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물었습니다.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삼촌이 한 번도 입지 않았던 옷들이 들어 있습니다.” 환자의 조카가 대답했습니다. “삼촌은 그 옷들을 입을 적당한 때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샀지요. 하지만 가방 안에서 썩고 있습니다.”

    “저 가방을 잊지 말거라.” 그곳을 떠나면서 대수도원장이 수련수사에게 말했습니다. “만약 네 마음에 영적인 보물을 간직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그것을 사용해라. 그렇지 않으면 그 보물들은 썩어 사라질 것이다.”



    • ▲‘가톨릭대사전’은‘인색’에 대해“재물에 대한 무절제한 욕구로서, 정당한 이유나 목적 없이 세상 물질에 대해 지나친 애착을 가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림은 체코 화가 프란티셰크 쿠프카의 1899년 유화작품 ‘돈’(프라하국립미술관 소장).
    ◆ 현대 문명의 인색

    1997년에 저는 아시아의 경제 위기를 진단한 글을 읽었습니다.

    ‘브로커들은 세계가 변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며 사고 판다. 그들이 해야 할 것이라고는 더 많이 투자하고 자신들의 재산이 늘어나는 것을 지켜보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통화 문제(말레이시아)가 불러일으킨 해악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순식간에 5천억 달러의 통화가 사라졌다. 수년간 알뜰히 모아온 저축을 날리고 크나큰 희생을 감수해야 한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할 시간이 왔을 때, 그들은 대답했다. “그것은 시장의 실패로 인한 것입니다.” 사실은 그들이 시장이었다.

    ◆ 유대교와 ‘도덕경’이 말하는 인색

    수백 년 전, 랍비 모세 벤 마이몬은 하나님은 인간에게 죽음이라는 이름의 사자(使者)를 보냈다고 말했습니다. 신의 영원한 섭리는 자신으로 하여금 인간의 건강을 돌보게 하는 것이라고요. 그는 기도했습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사랑이 매 순간 나를 인도하게 하소서. 탐욕이나 권력에 대한 욕망, 혹은 인정 받고자 하는 욕망에 나의 눈이 멀지 않게 하시고, 인간이 존재하는 목적은 자신이 가진 것 가운데 최고의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기 위함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도덕경’에는 ‘갖가지 색깔은 인간의 눈을 멀게 한다. 온갖 음악이 인간의 귀를 먹게 한다. 기름진 음식이 사람의 혀를 버려놓는다. 말 달리며 사냥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 분노와 과격한 열정을 심어놓는다. 얻기 어려운 재화는 위험한 장애물을 낳기에 화를 초래한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 현자는 피상적인 것을 거부하고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좋아한다’ 라고 씌어 있습니다.

  • ‘단 11분’의 쾌락을 위해 당신이 잃어버리는 것들…
  • 코엘료의 에세이 '일곱가지 대죄' <3> 음욕

    ‘음욕(색욕)’은 라틴어 ‘Luxuria’에서 파생된 여성 명사입니다. 호색, 육욕, 음탕함을 뜻하는 이 말은 식물의 무성함 또는 수액의 충만함으로 정의되기도 합니다.

    가톨릭에서는 성적 쾌락에 대한 무절제한 욕구를 ‘음욕’이라고 말합니다. 욕망과 행동에 있어서 신의 목적은 배우자 간의 상호적인 사랑을 조화시키고 자식을 얻는 것입니다. 음욕은 여섯 번째 계율 ‘간음하지 말라’에 반하는 것이지요.

    불교에서 전해 내려오는 우화가 있습니다.

    주와 우는 사찰에서 일주일 참선을 마친 후 귀가했습니다. 그들은 유혹이 어떤 식으로 모습을 드러내는지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강둑에 도달했을 때, 한 아름다운 여인이 강을 건너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는 그녀를 안아 강을 건너 주고 가던 길을 계속 갔습니다.

    어느 순간, 우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유혹에 대해 말하고 있었는데, 자네는 그 여인을 팔로 안았네. 그건 죄악이 자네 영혼에 스며들 기회를 제공한 거네.”

    주가 대답했습니다.



    “도반(道伴)이여, 나는 우러나는 대로 행동한 걸세. 나는 그 여인을 건너게 한 후, 강 반대편에 남겨놓고 왔네. 그러나 자네는 계속 생각 속에 그녀를 담아두고 있네. 그러니 자네가 죄에 더 가까이 있는 걸세.”

    또 한 창녀는 자신의 일기에 이런 글을 썼답니다.

    ‘나는 남자와 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 350 스위스 프랑을 벌었다. 나는 과장되게 행동했다. 만약 옷 벗는 시간, 좋아하는 척 꾸미는 시간, 뻔한 이야기들로 잡담하는 시간 그리고 옷 입는 시간을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이 한 시간은 실제로 행위를 하는 데 드는 11분으로 줄 수 있을 것이다.

    11분. 세상은 겨우 11분밖에 걸리지 않는 무언가의 언저리를 배회하고 있다. 사람들이 결혼하고, 가정을 유지하고, 아이들의 울음을 참고, 집에 늦게 들어오면 그 이유를 설명하느라 애쓰고, 제네바 호수 주변을 같이 산책하고 싶은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의 다른 여인들을 쳐다보고, 자신들이 입을 비싼 옷을 사고, 그것보다 더 비싼 옷을 자신의 부인을 위해 사고,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 잃어버린 것을 보충하기 위해 창녀에게 돈을 지불하고, 화장품·다이어트·운동·포르노·권력이라는 거대산업을 부양하는 것은 바로 하루 24시간 중 이 11분 때문이다. 남자들이 그들의 부인과 매일 사랑을 나눈다는 것을 고려할 때 그렇다. 하지만 ‘매일’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진짜 터무니없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남자들은 다른 남자들과 함께 있을 때, 여자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일에 대해, 돈과 스포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문명에는 아주 큰 결함이 있습니다.

  • 마음껏 먹어라, 네가 먹힐 것이니
  • 코엘료의 에세이 '일곱가지 대죄' <4> 탐식



    • 천주교에서는‘탐식’을“이성의 판단이나 윤리적 자유 를 상실케 하여 인간의 품위를 하락시킨다”고 말한다. 그림은 네덜란드 화가 프란스 할스의‘유쾌한 술꾼’.

    ‘탐식’은 라틴어 ‘gula’에서 온 여성 명사로 과다하게 먹고 마시는 행위를 말합니다.

    ◆가톨릭의 ‘탐식’

    가톨릭교회에서 ‘탐식’은 음식에서 쾌락을 찾는 무절제한 욕망입니다. 인간은 건강에 나쁜 음식을 먹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주위 사람들보다 음식에 더 신경을 쓰고 있는 것처럼 내보여서도 안 됩니다. 물론 아무 이유 없이 술에 취하는 것은 완전히 몰지각한 행동이며 대죄(大罪)라고 말합니다.

    ◆사막교부들의 금언

    애보트 신부는 한 수사(修士)와 함께 식사 초대를 받게 되었습니다. 집주인은 최고의 음식을 내오라고 시켰습니다. 그런데 수사는 단식 중이었습니다. 음식이 나오자, 수사는 콩 한 쪽을 집더니 천천히 씹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더 이상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나오자마자 애보트 신부가 수사에게 말했습니다. “형제님, 남의 집을 방문할 때에는 당신의 고결함이 상대방에게 모욕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다음 단식 때는 식사 초대에 응하지 마십시오.”

    ◆현대의 탐식

    현재 개발도상국의 기아 인구는 7억7천7백만 명에 달합니다. 1996년 열린 세계식량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목표수치(1990년부터 1992년 사이의 기아 인구 8억1천5백만 명의 절반)를 2030년까지 달성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합니다. 이는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지역 때문입니다. 고질적인 영양 실조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수가 1억9천4백만 명에서 2030년에 1억8천3백만 명으로 밖에 줄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슬람 수피(Sufi) 우화 속의 ‘탐식’

    현자 우와이스를 만나고 싶어하는 빵 굽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우와이스가 거지로 변장하고 그 빵집에 가서 빵 하나를 집어 먹었습니다. 그러자 빵장수는 그를 때리며 길바닥으로 내쫓았습니다. 이를 본 우와이스의 제자가 말했습니다. “미쳤군요! 방금 내쫓은 사람이 바로 당신이 그렇게 만나고 싶어했던 스승님입니다.”

    빵장수는 깊이 뉘우치고서 어떻게 하면 용서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우와이스 말이 자신과 제자들을 식사에 초대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빵장수는 그들을 근사한 식당에 데리고 가서 가장 비싼 음식들을 주문했습니다. 식사 중에 우와이스가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이렇게 구별하는 걸세. 저 사람은 내가 유명하기 때문에 금화 열 냥을 들여가며 진수성찬을 대접하지만, 배고픈 거지에게는 빵 한 조각도 줄 수 없는 사람이라네.”

    ◆도덕경의 가르침

    ‘하나의 바퀴를 완성하려면 바퀴살 서른 개가 필요하다. 그러나 마차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바퀴 가운데의 빈 공간이다. 이렇게 누군가가 유용한 것을 만들어도, 그것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빈 공간이다’

    (※한국교회사연구소가 펴낸 ‘가톨릭대사전’의 ‘칠죄종(七罪宗·일곱가지 대죄)’ 항목엔 ‘탐식’을 ‘탐욕’으로 번역하고 있으나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시리즈에서는 ‘탐식’으로 번역했습니다.)

  • 불멸의 영혼 깨달으면 싸움은 불가능
  • 코엘료의 에세이 ' 일곱가지 대죄'5 <분노>

    ‘분노’는 라틴어 ‘Ira’에서 온 여성 명사입니다. 성마름, 노여움, 분개, 복수심을 뜻하는 말이지요. 가톨릭교회는 “분노는 단지 타인을 향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스스로 마음에 증오의 씨를 뿌린 우리 자신에게도 분노할 수 있다. 이런 경우는 대개 자살로 끝이 난다. 우리는 단죄와 형벌이 신에 귀속된 것임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사막교부들의 금언

    사하라 사막의 예배당에 함께 기거하던 두 현자가 어느 날 담소를 나누었답니다. 한 현자가 말했습니다.

    “우리 싸움 한판 합시다. 이렇게 고립된 생활을 하니 인류에게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소. 싸움이라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끝내 인간을 괴롭히는 정념들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게 될 것이오.”

    “어떻게 싸움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뭐, 이렇게 해봅시다. 내가 이 벽돌을 여기 가운데에다가 놓을 테니 당신은 벽돌이 당신 것이라고 말하시오. 그러면 내가 아니다, 이 벽돌은 내 것이라고 반박하겠소. 이렇게 옥신각신하다 보면 결국 싸우게 될 것 아니겠소.”

    그래서 두 현자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다 싸우는 방법을 모르겠다던 현자가 말했습니다.

    “우리 이 일로 시간 낭비하지 맙시다. 이 벽돌은 당신이 가지시오. 싸움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 불멸의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싸움은 불가능합니다.”



    • 러시아 화가 일리야 레핀의‘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아들을 때려 죽인 아버지의 넋이 나간 표정에서 분노의 참담한 결과를 읽을 수 있다.

    ◆과학적 연구

    재니스 윌리엄스(Janice Williams)라는 분은 45세에서 64세까지의 연령대에 속한 남녀 13,000명의 행동을 연구한 결과, 심하게 화를 내고 또 걸핏하면 짜증을 내는 사람들이 역경에 빠졌을 때 좀 더 차분하게 대처하는 사람들보다 심장마비에 걸릴 확률이 세 배나 높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 이유는 매번 화를 낼 때마다 아드레날린이 혈액 속에 추가로 방출되기 때문이랍니다. 아드레날린 농도가 강해지면 심박수가 증가하는 동시에 혈관이 좁아져 혈압이 높아지고, 이런 증상이 반복되다 보면 일반적으로 심장마비와 관련된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하나는 심장이 뛰는 속도가 변하게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동맥에 쌓인 지방이 갑자기 팽창하게 되는 것입니다. (발론 G. J.의 책 ‘부정적인 감정, 화와 증오’)

    ◆‘도덕경’의 가르침

    도덕경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모든 무기는 악의 도구이다. 따라서 현명한 군주라면 절대로 그러한 도구를 사용해선 안 되며,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때에만 사용해야 한다. 군주가 가치를 두는 것은 고요함과 평안이다. 군주에게 무력(武力)으로 얻은 승리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도덕경은 군주의 분노가 살육을 부를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무력은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그가 다른 사람들을 죽이는 일을 즐긴다는 뜻이다. 살육을 즐기는 사람이 제국을 다스리게 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의 힘을 꺾고 싶으면 먼저 상대의 힘을 북돋아야 하고, 때려눕히고 싶으면 먼저 일으켜야 하며, 빼앗고자 한다면 먼저 선물을 주어야 한다. 이것이 이른바 사물을 꿰뚫는 통찰력이다. 이리하면, 약자가 강자를 이길 것이다.”

  • 질투는 나의 힘? 사탄의 힘!
  • 코엘료의 에세이 '일곱가지 대죄' <6>질투

    여섯 번째 죄악인 ‘질투’는 라틴어 ‘Invidia’에 그 어원이 있습니다. ‘질투’는 고통과 분노가 혼재하는 감정이자 타인의 번영과 행복에 대해 불쾌하게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남이 가진 것을 탐하는 마음이지요. 가톨릭교회는 “‘질투’는 “이웃의 것을 탐하지 말라”고 한 십계의 마지막 계율을 반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질투’는 창세기의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 처음 등장합니다.

    ◆유대교의 질투= 한 제자가 랍비에게 창세기의 한 대목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신께서는 아벨이 바친 제물은 기쁘게 받으셨지만 카인의 제물에는 만족스러워하시지 않았습니다. 이에 카인이 굉장히 화가 나서 얼굴이 일그러지니까 신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왜 화가 나서 얼굴을 일그러뜨렸느냐?’ 이 부분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랍비가 대답했습니다. “신께서 카인에게 이렇게 물었어야 했네. ‘왜 화가 났느냐? 내가 너의 제물을 받지 않아서냐, 아니면 내가 아벨의 제물을 받아서냐?’”

    ◆작가가 본 ‘질투’= 작가 지오바니 파피니는 “내가 내 자신을 비하하길 바라는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최고의 길은 더 높은 정상에 오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내가 밑바닥에 떨어지기 바라는 사람으로부터 어떤 자극이 없다면 나는 그렇게 높이 올라갈 수 없을 것이다.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손상된 명예를 발판으로 해서 자신의 초상화를 더 아름답게 다듬고 빛 때문에 생긴 그림자를 없앤다. 질투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상대방이 자아를 완성하는 데 협력하게 된다”고 말입니다.



    • ▲19세기 화가 샌디스의 회화작품‘사랑의 어두운 측면’. 여인의 질투에 가득 찬 표정을 절묘하게 담고 있다.

    ◆과학자의 분석= 과학자이자 연구자인 윌리엄 M. 셸턴 박사는 ‘질투’를 낙오자들의 전형적 반응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들은 ‘도덕적 가치’ ‘고귀한 사상’ ‘사회 정의’를 이 사회에 복귀시키려는 성전(聖戰) 뒤에 숨어서 현실을 회피한다는 것이죠. 셸턴 박사는 학교가 학생으로 하여금 성공한 사람들을 경멸하고 어떤 성공이든 늘 부패, 조작, 도덕적 타락과 연결시킬 때 상황은 위험해진다고 지적합니다. 성공의 추구는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본질적인 조건이며, 학생들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는 성공을 증오하는 정신분열적 상태에 빠짐으로써,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사회를 새롭게 발전시킬 수 있는 역량을 떨어뜨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과 악마의 이야기= 악마들이 ‘어둠의 왕자’를 찾아가 불평을 늘어놓았답니다. 2년 동안 사막에 사는 어떤 수도사를 유혹했는데 돈이든 여자든 그들이 가진 걸 다 내밀어도 소용없었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유혹하는 법을 잘 모르는구나. 날 따라와서 이런 경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보아라.” 사탄이 말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고결한 수도사가 사는 동굴로 날아갔습니다. 거기서 사탄이 수도사 귀에다 대고 속삭였습니다.

    “네 친구 마카리우스가 방금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로 승진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도사는 하늘에 대고 욕을 퍼붓더니 정신을 잃었답니다.

  • 아침에 눈떠 할 일이 없다… 그곳이 바로 지옥!
  • 코엘료의 에세이 '일곱가지 대죄' <7> 나태

    7대 죄악 중 마지막인 ‘나태’는 라틴어 ‘Prigritia’에서 온 여성 명사입니다.

    ◆가톨릭의 가르침= 가톨릭교회는 움직이는 모든 생명체는 매일 땀 흘려서 빵을 벌어야 하고, 일신의 안일(安逸)과 당장의 결과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나태는 육체적, 정신적 노력의 결핍에서 오며, 영혼을 타락시키고 결국 비탄과 우울에 빠지게 만든다는 것이죠.

    ◆고대의 우화= 후안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죽자마자 자신이 매우 아름다운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꿈에서 그리던 안락함과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그때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원하는 건 뭐든지 해도 됩니다. 무슨 음식이든 실컷 먹고 재미있고 즐겁게 지내세요.”

    후안은 너무 기뻐서 그가 살았을 때 꿈꾸던 것들을 다 해봤습니다. 몇 년 동안 즐겁게 지내던 후안은 어느 날 하얀 옷을 입은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이미 제가 하고 싶은 일은 다 했습니다. 이젠 약간의 일이 필요합니다.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고 싶습니다.”

    “미안합니다.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없는 것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일입니다. 이곳엔 전혀 할 일이 없습니다.”

    “영원히 지루하게 살라는 말입니까? 차라리 지옥에 가겠습니다.”

    그러자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다가와서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당신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 ▲브뤼겔의 회화‘게으름뱅이의 천국’. 가톨릭교회는‘나태’를“육체적·영성적 수고에 대한 염증”으로 풀이하고 있다.

    ◆나태의 사회학= “과도하게 일하는 사람과 일을 거부하는 사람은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반응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모든 인간이 겪는 자연스런 문제들로부터 도망치려 하고, 현실이나 삶에 본질적으로 수반되는 책임을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출처 ‘강박적으로 일하는 사람’·The compulsive worker, 옥스포드, 2001)

    ◆불교의 우화= 불교전통에서는 영혼의 깨우침을 가로막는 주요 장애물 중 하나로 ‘나태’를 들면서 이것이 세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나태로 항상 같은 곳에 머무는 것을 말합니다. 두 번째는 마음의 나태로 용기를 잃거나 자극이 없을 때이고, 마지막 무관심의 나태는 모든 일이 다 무의미하고, 우리 자신이 이미 이 세상의 일부가 아닌 상태를 말합니다.

    ◆작가의 말= 우리는 자신에게 묻곤 합니다. 영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인생의 즐거움은 어디에 있지? 비록 내가 원했던 곳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노력했고, 가족을 부양했으며, 최선을 다해 올바르게 행동했으니까, 이 모든 노력이 가치 있는 것일까?

    빛의 전사는 깨달음이 긴 과정이며, 원하는 곳에 도달하려면 명상과 노동을 균형 있게 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도달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집착하면 우리는 변할 수 없습니다.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우리의 질문 속에 나태와 냉담의 싹트고 있습니다.

    모든 일을 잘 해냈지만 결과가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저는 분명 결과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 결과는 언젠가 분명히 나타날 것입니다.

    모두가 행복하게 일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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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 1억 명의 독자를 거느린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60)가 중앙일보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코엘료는 한국에서만 12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연금술사'의 작가입니다. 현재 그의 작품은 56개 언어, 150여 개 국가에 소개돼 있습니다. 코엘료는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작가입니다. 전 세계가 그를 찾아 읽는 이유입니다. 바로 그 코엘료가 오늘부터 매주 토요일 믿음.소망.사랑.지혜.정의.용기.절제의 일곱 가지 덕목을 주제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늘이 그 첫 번째로 '믿음'의 차례입니다. 이 칼럼은 전 세계 31개국 31개 언론사가 싣습니다. 한국에선 중앙일보가 독점 연재합니다.]



    이전에 나는 일곱 가지 죄악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어 개인적으로 무척 기뻤습니다. 그럼 이제 일곱 가지 기본 덕목에 대해 이야기해 보는 건 어떨까요?

    이상한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죄와 선(善), 두 가지 중에서 우선하는 것은 선이 아니라 죄입니다. 어느 현자(賢者)의 말처럼, 죄를 지어본 적 없는 사람의 선함은 진정한 선함이 아닙니다. 유혹을 극복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 종교의 성자들을 살펴보면, 그들은 대개 종교에 투신하기 전까지 문란하거나 냉담한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까지 죄악에 대해 이야기했으니, 위와 같은 이치에 따라 지금부터는 '믿음'을 시작으로 일곱 가지 덕목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이 덕목들은 신학적 덕목 세 가지와, 훗날 성(聖) 아우구스티누스와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계승한 플라톤 철학에 기초한 네 가지 덕목입니다. 무엇을 기본 덕목으로 규정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지만, 나는 여기서 전통적인 견해를 따르고자 합니다.

    코엘료의 일곱가지 이야기 ① 믿음 [중앙일보]
    무너진 집 파묻힌 부부 `남편을 먼저 구해주세요` `난 괜찮으니 아내 먼저`
    이런 믿음이 세상을 정화합니다





    ◆믿음의 사전적 의미

    '믿음'이라는 영어 단어 'faith'는 같은 뜻의 라틴어 'fide'에서 유래했습니다. 이는 '신앙, 어떤 사람이나 사실을 믿는 마음,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강한 신념, 신학적 덕목'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성경의 '누가복음' 17장 5절은 믿음에 대한 다음과 같은 유명한 구절을 담고 있습니다. 어느 날 사도들이 예수에게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예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뽕나무에 '뽑혀서 바다에 심기라'고 말해 보라. 그러면 너희 뜻대로 될 것이다."

    또한 '법구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 마음 하나로 세상을 만들기도, 파괴하기도 한다'.

    '거짓된 마음보다 나쁜 것은 없다. 적과 적이 서로 겨루고, 원수끼리 물어뜯으며 싸운다 한들 거짓된 마음으로 저지르는 해악보다는 영향이 적다'.

    '바른 마음보다 복된 것은 없다. 부모가 주는 것도, 친척이 주는 것도 선의 길로 향하는 마음이 주는 행복에 미치지 못한다'.

    ◆아부 무사 알 쿠마시와 그의 부인 이야기

    한 제자가 현자 이븐 알 후세인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희가 세계를 정화할 수 있습니까?"

    이븐 알 후세인은 대답합니다.

    "다마스쿠스에 아부 무사 알 쿠마시라는 교주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지혜로움을 높이 샀으나, 그가 선한 자인지는 알지 못했다. 어느 날 오후, 교주와 부인이 함께 살던 집이 부실하게 지어진 탓에 무너지고 말았다. 놀란 이웃들이 달려들어 무너진 폐허를 파헤쳤고, 얼마 뒤에 교주의 부인을 겨우 찾아냈다. 그녀가 말했다. '나는 내버려두고, 먼저 남편을 구해 주세요. 저 근방에 앉아 있었어요'. 이웃들은 그녀가 가리킨 부근의 잔해를 제거하고 교주를 발견했다. 그러자 교주가 말했다. '나는 괜찮으니 내 아내를 먼저 구해 주시오. 저쪽에 누워 있었소'. 누군가 이들 부부처럼 행동한다면, 그는 생명과 사랑에 대한 믿음으로 온 세상을 정화할 수 있다."

    ◆현실마저 부정하는 그릇된 신념

    2004년 4월 30일,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1년 전 우리가 사담 후세인을 권력에서 몰아내는 중차대한 목적과 임무를 달성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 결과 이제 고문실과 공동묘지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같은 달, 세계는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 미군에 의해 자행되는 고문 사진들을 목격했고, 내가 칼럼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시아파와 수니파의 대규모 전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코엘료의 일곱가지 이야기 ② 소망 [중앙일보]
    불행이 온 세상에 가득할 때 맞서 싸울 유일한 무기는 ‘희망’



    ◆사전적 정의=소망은 어떤 일을 이루거나 얻고자 기대하고 바람, 또는 좋은 일을 기대하고 바라는 마음입니다. 신학적 덕목의 한 가지로서 희망·기대 등의 뜻을 지닙니다. 예수는 ‘마태복음’ 6장 26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너희는 옷 걱정을 하느냐? 들판의 백합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 보아라.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도, 하느님께서 이와 같이 입히시거늘 하물며 너희를 입히시지 않겠느냐?”

    ◆고대 그리스=그리스 신화를 보면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 형제가 신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독립을 안겨줍니다. 그러자 이에 화가 난 제우스가 판도라를 보내 에피메테우스와 결혼을 시킵니다. 판도라는 상자를 하나 가지고 갔는데, 절대 열어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에덴의 동산에서 이브가 그랬듯이, 판도라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상자를 열어 보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상자에 들어 있던 온갖 불행이 쏟아져 나와 온 세상에 퍼졌습니다. 그러나 상자 속에 맨 마지막까지 남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희망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희망은 세상에 퍼져나간 불행과 싸우는 단 하나의 무기가 되었습니다.

    ◆인류의 네 가지 큰 소망=1996년, 사람들에게 신문 머리기사로 실렸으면 하는 소식이 무엇인지 물어보았습니다. 1위는 메시아의 왕림이었습니다. 2위는 암의 완치, 3위는 외계인의 발견, 그리고 4위는 세계 평화였다고 합니다.

    어빙 월리스가 『북 오브 리스트』(1977)에서 소개한 사람들의 ‘개인의 소망 네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며, 둘째는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것, 셋째는 질병에서 해방되는 것, 그리고 넷째는 죽음에서 해방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세기의 육상인=글렌 커닝엄은 다섯 살의 나이에 다리에 중대한 화상을 입었습니다. 의사들은 그가 치유될 가망이 없으며, 평생을 휠체어에 의지해야 한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나 커닝엄은 의사의 절망적인 진단에 신경 쓰지 않았고, 사고가 난 다음주에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의사들은 내 다리만 보았지 내 마음을 보지 않았다. 이제 나는 누구보다도 빨리 달릴 것이다.”

    1934년, 그는 4분 6초로 육상 1500미터 세계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세기의 육상인’으로 호명되는 명예를 안았습니다.

    ◆알 라키드 대왕의 소망=칼리프 알럼 알 라키드 대왕은 자신의 치세를 기념하는 새 왕궁을 짓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왕궁 자리로 선택된 곳 바로 곁에 낡은 오두막이 서 있었습니다. 알 라키드 대왕은 신하를 시켜 오두막 주인인 늙은이를 설득해 오두막을 사들인 다음에 철거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신하는 끝내 노인을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왕궁에서는 그냥 노인을 쫓아버리면 그만이 아니냐고들 했습니다. 하지만 알 라키드 대왕은 반대했습니다.

    “그것은 아니 되오. 왕궁은 내 백성에게 전해질 내 유산이오. 백성들은 왕궁을 보고 내가 위대한 왕이었다고 말할 게요. 그리고 그 옆에 그대로 서 있는 오두막을 보면, 내가 다른 이의 소망을 존중한 의로운 왕이었다고 말할 것이오.”

    코엘료의 일곱가지 이야기 ③ 사랑 [중앙일보]
    신은 사랑을 이용해 천국 한가운데 지옥을 숨겼다





    ◆사전적 정의=라틴어 ‘amor’에서 유래한 ‘사랑(Amore)‘이라는 말은 어떤 대상을 갈망하게 하는 강한 감정, 몸과 마음의 기울어짐, 애정, 열정, 자비, 종교적 은총을 뜻합니다. 성경의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스인의 사랑=고대 그리스인은 ‘사랑’이라는 의미로 세 가지 단어 에로스, 필로스, 아가페를 썼습니다. 에로스는 두 사람 사이의 건강한 사랑을 의미하며, 살아가는 이유가 되고, 인류를 영속시킵니다. 필로스는 친구에게 느끼는 애정 어린 감정입니다. 아가페는 에로스와 필로스를 내포하는 동시에,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을 넘어서는 차원의 사랑입니다. 아가페적 사랑은 사랑을 느끼는 사람의 존재마저 삼켜버리고 마는 타인본위의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가톨릭에서 이는 예수가 인류에게 느낀 것과 같은 사랑, 즉 너무도 위대하여 하늘의 별을 뒤흔들고 인류 역사의 과정을 바꾸어 놓은 그런 절대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아가페를 알고 느끼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사랑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천재 작가가 노래한 사랑=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사랑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가 사랑하는 이를 죽인다./모든 이여 이 말을 새기라./어떤 이는 신랄한 표정으로/어떤 이는 달콤한 말로,/겁쟁이는 키스로,/용감한 이는 칼로!’ -‘리딩 감옥의 발라드’ 부분

    ◆작가가 받은 이메일=저는 어느 날 한 독자로부터 다음과 같은 e-메일을 받았습니다.

     ‘내가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았을 때, 나는 단 한 번도 슬픔에 찬 아침을 맞거나,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 후로 내 삶은 고통과 상실과 혼란의 연속입니다. 신은 사랑을 이용해 천국 한가운데에 지옥을 숨겨놓은 것 같습니다.’

    ◆과학이 바라본 사랑=2000년,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과학자 안드리아 바틀과 세미르 제키는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실험 결과, 사랑의 감정으로 자극을 받아 활동하는 뇌의 영역이 어느 부분인지를 찾아냈다고 합니다. 그들은 먼저, 사랑의 감정에 영향을 받는 영역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작으며, 이는 코카인과 같은 도취제가 자극하는 곳과 동일한 곳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그들은 사랑이란, 마약으로 인한 의존증 같은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또 러저 대학의 과학자 헬렌 피셔는 동일한 방식의 뇌 스캔을 통해, 사랑의 세 가지 특징인 낭만, 섹스, 상호 의존성이 대뇌 피질의 각기 다른 부분들을 자극한다는 것, 따라서 인간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동시에, 다른 사람과 섹스를 하고, 또 다른 사람과 동거 생활을 할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시인의 관점=칼릴 지브란은 사랑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사랑은 소유하지도 소유되지도 않는 것. 사랑은 사랑으로 충분한 것이기에./사랑은 우리를 자라게 하고, 추수하여 땅에 쓰러뜨리는 것./사랑은 우리를 체로 쳐 쓸데없는 모든 쭉정이를 털어내는 것./사랑은 우리를 뒤흔들어 모든 불결함을 털어내는 것./사랑은 우리를 부드러워질 때까지 반죽하는 것./그리고 마침내 신의 거룩한 향연을 위한 신성한 빵으로 구워지도록 성스러운 불꽃 위에 올려놓는 것.’

    코엘료의 일곱가지 이야기 ④ 지혜 [중앙일보]
    지혜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어리석은 것을 택하셨다 …

    ◆한없이 겸손한 지혜=지혜는 사전적으로 ‘사물에 대한 타고난, 혹은 습득된 깊은 이해· 박식함· 판단의 정확성’을 뜻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고린도전서’ 1장 25절에서 지혜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을 때, 그 처지가 어떠하였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육신의 기준으로 보아, 지혜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권력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가문이 훌륭한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택하셨으며,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을 택하셨습니다.”

    ◆타인이 가진 것, 내가 가진 것=한편 이슬람교에서는 이렇게 전합니다. 한 현자가 마크바라는 마을에 도착했으나 그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일부 젊은이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현자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히려 그는 주민들의 놀림감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현자가 그의 제자들을 이끌고 대로를 걷고 있을 때, 한 무리의 남자와 여자들이 그를 모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현자는 오히려 그 사람들에게 다가가 축복을 기원했습니다.

    그들이 떠나고 난 뒤, 한 제자가 말했습니다.

    “저들이 끔찍한 말을 퍼부었건만, 선생님은 좋은 말씀을 해 주시네요.”

    그러자 현자가 대답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이 가진 것만 줄 수 있다.”

    ◆서투른 목수가 연장을 탓한다=1997년에 제가 직접 목격한 장면입니다. 한 종교 교파에 헌신하던 학생이 그의 스승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려는 욕심에 마법책을 읽고 거기에 나오는 재료들을 사기로 했습니다. 그는 손에 넣기 힘든 향과 부적, 성스러운 글자가 특정한 순서로 새겨진 나무 구조물을 어렵사리 손에 넣었습니다. 그가 스승과 함께 아침식사를 할 때, 스승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는 목에 컴퓨터 전선을 감는다고 컴퓨터의 효율성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가? 모자와 고상한 옷을 샀다고 해서, 그것을 만든 사람의 고상한 안목까지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가? 물질은 든든한 아군이 되어줄 수는 있지만, 아무런 지혜도 깃들어 있지 않다네. 우선 전심을 다해 연마하게. 나머지 것은 차차 따라오는 법이야.”

    ◆지혜로운 부탁=그리스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낙시메네스가 그의 도시를 구하기 위해 알렉산더 대왕 앞에 나섰습니다. 그러자 알렉산더가 말했습니다.

    “나는 그대가 현명한 자이기에 그대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왕의 이름을 걸고 말하건대, 그대가 내게 부탁하려 하는 것은 절대 들어줄 수 없다.”

    그러자 아낙시메네스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대왕께 저의 도시를 파괴해달라고 부탁하러 왔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낙시메네스의 도시는 파괴를 모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코엘료의 일곱가지 이야기 ⑤ 정의 [중앙일보]
    악을 처벌하는 것이 정의가 아닙니다
    악이 참회의 눈물을 흘리도록 감싸세요





    세계적 베스트셀러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일곱가지 덕목에 대한 이야기로 매주 토요일 중앙일보 독자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지난주 ‘지혜’에 이어 오늘은 다섯번째로 ‘정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무엇이 정의인가=정의를 뜻하는 영어단어 ‘justice’는 정의와 평등을 의미하는 라틴어 ‘justitias’에서 유래했습니다. 이는 ‘각자에게 합당한 몫을 주는 행위, 또는 평등’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마태복음’ 5장 38절이 가르치는 정의는 조금 다릅니다.

    “너희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고 이른 것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한 ‘마태복음’ 21장 12절은 이러한 사건을 전합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뜰 안에서 팔고 사는 사람을 다 내쫓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의 의자를 엎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반케이 선사의 일화=임제종 승려 반케이 선사가 문하생을 가르칠 때의 일입니다. 문하생 중 하나가 도둑질을 하다가 붙잡혔습니다. 다른 문하생들이 그를 쫓아내자고 했으나, 반케이 선사는 그를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 다음 주에 그 문하생은 또 도둑질을 했습니다. 화가 난 문하생들은 반드시 그를 처벌해야 한다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그러자 반케이 선사가 말했습니다.

     “너희는 모두 현명하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고 있으니 어디서든 너희가 내키는 곳에서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하는 이 불쌍한 자를 가르칠 사람은 오직 나밖에 없다. 그러니 나는 이 자를 계속 가르칠 작정이다.”
    이 말을 들은 도둑은 참회의 눈물을 쏟았다고 합니다.


    ◆어느 사형수의 편지=“사형수의 감방은 권력과 처벌과 폭력의 정치가 콘크리트와 쇠를 통해 행해지는 곳입니다. 죄수가 쇠와 콘크리트 그 자체가 될 때까지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강할지라도 쇠는 결국 구부러지지만, 심장은 아무리 콘크리트처럼 굳어져도 박동은 멈추지 않습니다.”
     2006년 8월 24일 텍사스에서 처형된 저스틴 풀러라는 사형수가 남긴 말입니다.


    ◆정의의 서글픈 얼굴=15세기에 이단자의 심판을 맡은 신부들은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큰 광장에 주민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들은 설교를 끝낸 뒤, 무작위로 예닐곱 명을 지명하고 그들 이웃의 동향에 대해 심문했습니다. 불려 나온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이단자로 낙인찍힐까 두려워 다른 누군가를 고발했다고 합니다. 정치학 교수인 파울로 세르조 피네이로는 말합니다.

     “범죄 수사의 방편이자 증거 확보의 수단으로 고문을 행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그럼에도 수세기 동안 고문은 진실을 캐내기 위한 수단으로 자행되어 왔다.”

    ◆페르시아 왕과 스승의 일화=페르시아의 왕 코스로스 1세는 어렸을 때, 한 스승의 훌륭한 가르침을 받고 모든 과목에서 뛰어난 학생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스승은 뚜렷한 이유도 없이 그에게 혹독한 벌을 내렸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코스로스는 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는 왕좌에 오르자마자 먼저 옛 스승을 불러 스승이 내렸던 불공정한 처벌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습니다. 왕의 스승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어릴 적 폐하의 영리함을 보고, 저는 일찌감치 폐하께서 왕위에 오르실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불의가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에서 깊이 각인되어 남는지 보여드린 것이지요. 부디 폐하는 합당한 이유 없이 그 누구도 벌하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코엘료의 일곱가지 이야기 ⑥ 용기

    용기는 허세·오만·광기와 다릅니다
    믿는 것을 행하며, 결과는 감수하죠



    용기를 뜻하는 영어단어 ‘커리지’(courage)는 심장이라는 뜻의 라틴어 ‘코르’(cor)에서 유래했습니다. 이는 사전적으로 위험 앞에서 드러나는 정신의 강인함·의기·씩씩함·인내력을 뜻합니다. 마태복음 5장 13절은 용기를 다음과 같이 비유하였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짠맛을 내겠느냐? 그러면 아무 쓸 데가 없으므로 바깥에 내버리니, 사람들이 짓밟을 뿐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동네는 숨길 수 없다. 또 사람들은 등불을 켜서 됫박 아래에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춘다.”

    ◆격렬한 투쟁의 현장

    북아일랜드 가톨릭 정치운동가인 베나디트 델빈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제 나는 투쟁의 용기가 있었다. 오늘은 승리의 용기를 얻을 것이다.”

    ◆사자와 신부

    세타의 수도원에서 온 한 무리의 수도승이 이집트의 사막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대수도원장 니세리우스도 있었는데, 갑자기 사자를 만난 이들은 모두 다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뒤에 니세리우스가 임종을 맞을 때, 한 수도승이 물었습니다.

    “대원장님, 저희가 사자와 맞닥뜨렸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당신이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나는 사자를 두려워했던 것이 아니라네.”

    “그럼 왜 저희와 함께 도망치셨습니까?”

    “사자를 피해 한나절 도망치는 것이, 남은 평생 허영심을 피해 도망 다니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네.”

    ◆노벨평화상 연설 중에서

    양심수로서 28년간을 감옥에 갇혔던 넬슨 만델라는 1993년 10월 12일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말합니다.

    “무수한 사람이 인간을 주인과 노예로 가르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모독을 외면하고, 살기 위해 다른 이를 죽이는 육식 동물로 탈바꿈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생명과 자유, 번영과 인권, 올바른 통치를 누릴 권리를 지니고 태어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양심수가 사라질 것이며, 어떠한 인권 침해도 결코 용인되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악 앞에서

    독일 나치의 공포 아래에서 어느 두 랍비는 유대인의 정신적 힘이 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들은 일 년 동안 두려움에 떨면서, 비밀 경찰의 눈을 피해 여러 유대인 공동체에서 종교 의식을 행했습니다. 그러다 그만 두 랍비는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한 랍비는 앞으로 닥칠 일을 두려워하며 기도를 멈추지 않았으나 다른 랍비는 하루 종일 누워 잠만 잤습니다.

    “어찌 잠만 자는 것이오?” 두려움에 사로잡힌 랍비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두렵지도 않소?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른단 말이오?”

    “우리가 체포되기 전까지는 나도 두려웠소. 이제 이렇게 잡힌 몸이니 두려워해 봤자 무슨 소용이겠소? 두려움에 떨던 시간은 지났소. 지금은 용기를 내어 운명과 맞설 시간이오.”

    ◆사랑과 용기

    마하트마 간디는 용기에 대해 이렇게 역설했습니다.

    “용기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다. 용기는 허세나 오만이나 광기와 다르다. 용감한 자는 정치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혹은 개인적인 일이든 간에,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하며, 그 결과를 의연하게 감수해낸다. 인간이 다른 이에게 순종하는 이유는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나 사랑, 오로지 이 두 가지뿐이다. 사랑에서 오는 순종은 처벌의 두려움으로 인한 순종보다 몇 천 배 강하다.”

    코엘료의 일곱가지 이야기 ⑦ 절제

    참지 못한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나쁜 마음 먹은 것이 잘못입니다



    이번 칼럼을 마지막으로 신학적 덕목 세 가지(믿음, 소망, 사랑)와 전통적 덕목 네 가지(지혜, 정의, 용기, 절제)를 합한 기본 일곱 가지 덕목 시리즈를 마감하고자 합니다.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요한계시록 3장 14절은 절제를 이렇게 묘사합니다(아마도 이 덕목을 그리 탐탁해하지 않는 듯합니다).

     아멘이신 분이시요, 신실하시고 참되신 증인이시요, 하느님의 창조의 처음이신 분이 말씀하신다. 나는 네 행위를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겠다.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내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절제와 소통=선불교에서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옵니다.

     열렬한 불교 신자인 한 여인은 중생을 섬기기 위해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매번 그녀가 시장에 갈 때마다 한 상인이 이 여인에게 추근댔습니다.

     어느 비 오는 날 아침, 그 남자가 다시 추근대자 여인이 참지 못하고 우산으로 남자의 얼굴을 후려쳤습니다. 그날 오후, 그녀는 스님을 찾아가 아침의 일을 털어놓았습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겠어요.

     그러자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그를 미워한 것은 잘못입니다. 다음에 그 자가 다시 무슨 말을 하면, 선한 마음을 먹고, 우산으로 다시 후려치십시오. 그 자는 오직 그렇게 해야만 말을 알아들을 테니까요. 

     ◆두 친구의 일화=독실한 이슬람교도인 압둘라만수르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압둘라가 만수르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꽤 흘렀지만 만수르는 압둘라를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만수르가 압둘라에게 물었습니다.

     형제여, 자네가 내게 도움을 청하였건만, 나는 이제껏 들어주지 않았네. 그런데도 자네는 섭섭해하지 않는 것 같군.

    압둘라가 대답합니다.

     우리는 오랜 친구 사이 아닌가. 자네가 내 마음에 자리 잡은 것은 내가 자네의 도움을 필요로 하기 훨씬 전부터일세. 자네가 나를 도와주는 것과 관계없이 자네에 대한 나의 애정은 변함없다네.

     이 말을 들은 만수르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자네의 바람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알아보려고 자네를 돕지 않았다네. 이제 자네의 마음이 불화나 미움보다 더 강한 것을 알았으니, 내일 당장 자네의 부탁을 들어주겠네.  

     ◆이 시리즈를 끝내기 전에 들려주고 싶은 유머

    나이 든 부부: 결혼 50주년을 맞은 노부부가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토스트의 바삭한 껍질에 버터를 발라 남편에게 건네주고, 대신 부드러운 부분은 자기 몫으로 남겨놓았다.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언제나 이 맛있는 부분을 먹고 싶었어. 하지만 당신 생각해서 지난 50년 동안 꾹 참고 당신에게 이 맛있는 부분을 주었지.

     그러나 놀랍게도 빵 껍질을 받은 남편이 활짝 미소를 지었습니다. 고마워요, 여보. 지난 50년 간 내가 얼마나 빵 껍질을 먹고 싶었는지 모른다오. 그런데 당신이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 좀 달라고 할 엄두도 못 냈지.

     젊은 부부:크리스마스 선물로 남편은 아내에게 멋진 넥타이를 두 장 선물 받았습니다. 흐뭇한 마음에 남편은 가장 멋진 옷을 차려입고, 선물 받은 넥타이 중 하나를 골라 매고 아내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아내는 몹시 슬퍼 보였습니다.

     한참을 말없이 있던 아내가 입을 열었다. 여보, 나는 혼란스럽고 걱정이 돼요. 왜 그 넥타이를 맸어요? 다른 건 맘에 들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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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울로 코엘료=1947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브라질 한 대기업의 임원이었던 86년 어느 날, 불쑥 사표를 던지고 스페인 '산티아고의 길'로 순례를 떠난다. 그리고 이듬해 그 순례의 경험을 토대로 첫 작품 '순례자'를 발표한다. 이후 '연금술사'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11분' '오 자히르' 등 내놓는 작품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됐다. 지난해 9월 출간한 '포르토벨로의 마녀'를 비롯해 모두 11편의 소설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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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석 추기경 “나라의 마지막 권위마저 실종돼 걱정”



    미국을 방문 중인 정진석 추기경이 19일 낮 미국 워싱턴 근교의 한 식당에서 한국 언론사 워싱턴 주재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워싱턴에 가족은 함께들 와 있는 건가요?"
    .

    19일 정오 미국 워싱턴 근교의 한 식당.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은 워싱턴특파원단과의 간담회를 이 질문으로 시작했다. 미국 방문 목적인 워싱턴 국립대성당 '한국 성모자 및 순교자 부조상' 설치 축복미사에 관한 설명 보다 "특파원들이 일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는 건 아닌지"를 먼저 염려한 것이다. "인생에서 행복의 기본은 가족"이라는 설명과 함께.

    .

    한국 종교계의 대표적인 지도자이자 사회 원로인 정 추기경은 이날 한국 사회, 정치, 종교 전반에 대해 쏟아지는 질문들에 조심스럽게, 그러나 쉽고도 간결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

    최근 납골당 건설을 이유로 추기경이 탄 차에 계란을 던진 일 등 한국사회에서 권위가 무시되는 현상이 걱정스럽다는 질문에 정 추기경은 "사람은 다 결점이 있고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므로 절대적으로 존경을 받는 사람은 존재하기 어렵다"며 말을 이어갔다.

    .

    "권위는 사람이 부여하는 게 아니라 사회전체가 인정하는, 즉 민심이 천심이라 할 때 그런 민심이 부여하는 것이지요. 다만 미국에선 '법이 이렇게 되어 있다'고 하면 그걸로 끝인데 한국에선 법관 판결에 달려들기도 해요. 어디로 가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라가 진정으로 발전하려면 국민 전체가 인정하는 마지막 권위는 있어야 하는데…그런 권위의 실종이 아쉽습니다. 아무리 경제가 발전해도 누구나 인정하는 권위가 있어야 행복과 연결될 수 있을 텐데… 그런 것 없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그게 걱정입니다."

    .

    학력 위조파문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정 추기경은 "부풀려서 하려는 사회 분위기가 문제"라며 "물론 (학력을 위조한) 본인들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순 없겠지만…사회 전체가 정직한 사회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

    최근 물의를 빚은 종교 관련 각종 사태들에 대한 의견을 묻자 그는 "내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되듯이 내 종교를 위해 다른 종교에 피해를 주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예수님께서는 '네가 남에게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줘라'고 하셨다. 내 이익만 생각하지 말고 상대방 이익도 생각하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

    지난해 3월 추기경 서임 이후 생활에 달라진 것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추기경은 교황을 보좌하는 참모이므로 교황께서 한국과 동북아 문제에 많은 걸 물어 오신다"며 "답변을 준비하면서 내가 모르는 게 너무나 많구나, 너무 자격이 없구나 하는 걸 실감한다. 이건 겸손이 아니다. 보잘 것 없는 답변서를 쓰면서 항상 송구스런 심정"이라고 말했다. 정 추기경은 '공부벌레'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가톨릭 내 석학으로 꼽히며 저서와 번역서만 45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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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추기경은 올해 아시아 2명을 포함해 전 세계 15명의 추기경으로 구성되는 교황청 감사위원이 됐다. 한 관계자는 "한국 천주교의 위상이 높아진 것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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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경제 등 사회현실에 대한 발언을 자제하는 이유에 대해 정 추기경은 "정치, 경제 문제는 가치관이 상대적이어서 절대적 의견이 존재하기 어렵다. 더 낫다는 차원이지 이것만이 옳다는 건 불가능하며 오십보백보다. 그리고 하느님이 주신 절대적인 가치인 생명윤리 문제에 대해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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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을 대표하는 최대 성당이며 관광 명소인 워싱턴 국립대성당에 순교로 꽃피운 한국 가톨릭 신앙을 상징하는 성모자, 순교자 부조상이 영구 설치됐다.

    약 10만 명에 달하는 미국 내 한인 가톨릭 신자들은 4년여에 걸친 모금과 준비 끝에 워싱턴 대성당에 한국 성모자, 순교자상 건립을 마치고 22일 오후 1시 정진석 추기경 집전으로 축복미사를 거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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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성당 입구 바로 왼쪽에 설치된 순교자상(최의순 작)은 한복을 입은 성모 마리아 양쪽으로 남녀 순교자가 순교 직전 절규하는 모습이다.

    입구 오른쪽에 설치된 성모자상(임송자 작)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성모 마리아가 지켜보는 가운데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모습을 담았다.

    이들 작품에 나오는 예수와 마리아는 한국의 전통 옷을 입고 신발을 신었으며, 술 항아리도 전래의 오지그릇 형상이다. 각각 너비 3.58m 높이 2.44m이며 한국에서 부조 틀을 만든 뒤 이탈리아에서 대리석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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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카톨릭 주교회의는 2003년 한인 이민 100주년을 맞아 한국 성모자, 순교자상 설치를 승인한 바 있다. 워싱턴 대성당엔 이민자의 나라를 상징하는 70여 개국에서 만든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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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추기경은 "1849년 건립된 워싱턴 국립대성당의 정식 명칭은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대성당(Basilica of the National Shrine of the Immaculate Conception)'이며 명동대성당도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마리아께 봉헌된 성당주 보호성인이 성모 마리아"라며 "한국 이민 100주년을 기념해 설치된 부조상의 축복미사를 명동성당 축성 100주년때 서울대교구장이 된 제가 하게 된 것도 그렇게 이 모든 일이 우연이 아니라고 여겨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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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는 예수 그리스도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음을 뜻하는 차원이 아니라 성모 마리아가 원죄 없이 태어난 존재임을 뜻한다고 정 추기경은 설명했다. 여기서 원죄는 사람들이 짓는 그런 죄를 뜻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 멀어지는 경향을 의미한다.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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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동성당은 풍화된 벽돌을 갈아 끼우는 외벽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다. 공사 현장을 덮은 가림막에는 성당의 전면과 측면이 실물대(實物大)로 그려져 있다. 공사는 내년 말에 끝난다. 명동성당 언덕바지 초입에서 오른쪽 옆으로 길을 잡으면 붉은 벽돌로 지은 서울대교구청 건물이 나온다. 정진석(鄭鎭奭·76) 추기경 집무실은 교구청 3층에 있다.

    추기경 집무실에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상과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초상이 걸려 있다. 저술이 많고 책을 좋아하기 때문인지 책장이 한쪽 벽면을 가득 메웠다. 눈에 띄는 장식이 별로 없고 소박한 인상을 주었다.

    정 추기경은 태어나면서부터 명동성당과 인연을 맺었다. 서울 중구 수표동에서 출생한 직후 명동성당에서 유아세례를 받았다. 계성초등학교 4학년 때는 명동성당에서 견진성사를 받았다. 세례·견진·성체·고해·신품·혼인(婚姻)·병자(病者) 7개 성사(聖事) 중 5개를 명동성당에서 했다.

    그는 명동성당 보좌신부이던 노기남 신부의 새벽미사 복사(服事·신부의 미사 집전을 보좌하는 소년)를 하루도 빠지지 않아 십자가를 상으로 받았다. 노 신부가 1942년 한국인 최초의 주교로 서품 받을 때 복사를 맡았던 소년은 명동성당이 주교좌인 서울대교구의 추기경 교구장이 됐다.

    행사에 참석 중인 추기경을 기다리는 동안 마영주씨가 막간을 이용해 정 추기경에 관한 이야기를 이것저것 들려주었다. 서울대교구의 홍보를 담당하는 마씨는 인터뷰 일정이 잡힌 뒤 필자의 자료 수집을 도와주었다. 추기경을 대중에게 바로 알리기 위해 정성을 다한다는 느낌이었다. 추기경 인터뷰에는 서울대교구 홍보실장인 허영엽 신부와 마씨가 배석했다.

    .

    인권은 생명의 시작이자 끝

    ▼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추기경이 되셨는데요. 추기경은 하느님으로부터 어떤 직분을 부여받은 사람입니까. 비(非)신자도 알아들을 수 있게 쉬운 말로 설명해주시죠.

    “예수님께서 가톨릭교회를 세우시면서 로마의 주교가 당신의 대리자가 되도록 정하셨습니다. 로마의 주교가 바로 교황님이세요. 교황님이 전세계의 가톨릭교회를 이끌어 나가는데 가장 측근에서 협조하는 고문 노릇을 하는 사람이 추기경입니다. 교황님이 세상을 떠나는 경우 추기경들 중에서 후임자를 선출하지요.

    대주교가 전세계에 한 600명 됩니다. 추기경은 그보다 수가 훨씬 적지요. 교황 선거권을 가진 사람은 만 80세가 되지 않은 추기경들이에요. 우리 교회 규정으로는 교황 선거권을 갖는 추기경 수는 상한선이 120명입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연세가 높아 제가 추기경이 됐죠. 아시아에서 필리핀말고 추기경이 두 명 이상인 나라는 없어요. 교황님이 한국 교회에 대해 알 수 있는 길은 두 갈래가 있습니다. 교황청 대사와 추기경을 통해서, 세속적인 표현으로 한국 천주교의 정보를 들을 수 있는 거죠.”

    ▼ 본가와 외가 양쪽이 4대(代) 신자라고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와 엄혹한 탄압을 받지 않았습니까. 순교자도 많이 나왔죠. 증조할아버지가 천주교에 귀의했을 때는 대원군 치하였습니까.

    “조선왕조에서 일어난 마지막 천주교 박해 사건이 1866년 병인박해입니다. 1866년부터 76년까지 10년 동안 진행됐어요. 증조부는 병인박해가 끝난 직후에 입교했지요.”

    병인박해는 1866년 대원군 치하에서 프랑스 선교사 12명 중 9명이 학살당한 것을 시작으로 몇 달 사이에 국내 신도 8000여 명이 순교한 사건을 말한다. 탈출에 성공한 리델 신부가 중국 톈진(天津)에 있는 프랑스 해군사령관 로즈 제독에게 이 사실을 알려 병인양요가 일어났다.

    ▼ 우리나라가 권위주의 독재체제의 지배를 받을 때는 명동성당이 민주화운동에 기여한 공이 큽니다.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해 천주교 성직자들이 민주화를 위해 직접, 간접으로 나섰지요.

    “천주교가 정치의 어떤 측면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으로 (일반 국민이) 혹시라도 오해할까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인권은 바로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고 사람이 조작할 수 없는 신성한 권리입니다. 인권은 생명의 시작이고 끝이죠. 그중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좁은 의미의 인권도 있고, 넓은 의미의 인권도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모든 권리, 그것은 하느님의 영역입니다.

    하느님의 영역을 인간이 함부로 침해하는 것에 대해서는 천주교가 발언을 하지요. 어떤 때는 정치적 견해와 병행할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습니다. 교회의 일관된 생각은 하느님에서 비롯된 신성한 인권을 존중하자는 것이죠. 과거에는 정치적인 측면에서 인권이 훼손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 발언한 거고, 근래에는 제가 배아(胚芽)의 인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

    천문학 오류는 인정하지만…

    ▼ ‘배아의 인권’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천주교는 배아도 인간 생명이라는 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 역사에서 종교와 과학이 갈등을 빚었을 때 종국적으로 과학이 승리한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소위 지동설(地動說)에 대한 종교재판도 그런 사례지요. 과학자들 중에는 줄기세포 연구에 가톨릭이 지나치게 보수적이어서 과학 발전에 장애가 되지 않겠느냐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갈릴레오 사건은 물리과학 분야지요. 우리 교회가 천문학 분야에서 오류를 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생명은 신비예요. 저는 생명은 인간이 조작할 수 없는 분야라고 봅니다. 물질 측면에서는 우리가 실험을 할 수가 있는데, 생명은 실험의 대상이 아니죠. 배아줄기세포는 사람이 인공적으로 조작할 분야가 아니라고 교회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지금 황 위원처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그러나 우리 교회가 성체줄기세포 연구를 지원함으로써 줄기세포 연구 분야가 더 넓어졌어요. 배아에서 바로 줄기세포를 만드는 것은 어떻게 보면 쉽지요. 그렇게 해서는 안 되니까 다른 게 있을까 하고 찾다가 성체줄기세포로 눈길이 간 겁니다. 과학 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표현엔 조금 어폐가 있습니다.

    생명체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생명의 현상은 과학적으로 증명되는데, 생명 자체는 우리 감각으로는 모르는 거예요. 생명 현상은 인간의 인식능력을 초월한 겁니다. 우리가 생명을 엉뚱하게 조작했다가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죠.”

    ▼ 황우석 박사가 논문 조작으로 추락하기 전에 추기경께서 황 박사를 만난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대화를 나눴습니까.

    “난치병 환자의 치료를 위해 우리 모두 노력하자는 데 대해서는 뜻이 같았지요. 줄기세포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까지도 공감했어요. 그런데 줄기세포를 어디서 추출하느냐 하는 문제에서 내가 ‘배아로부터 줄기세포를 얻는 것은 안 되고 성체줄기세포 연구는 가능하다’고 분명하게 얘기했습니다. 상당히 강한 수준의 얘기가 오갔지만 큰소리가 나진 않았어요. 배아줄기세포에 문제점이 없지 않다는 것을 황 박사가 인정했죠. 황 박사도 내 얘기에 동의하면서 성체줄기세포가 확실한 단계에 이르면 자기 연구는 스톱하겠다고 하더군요.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함으로써 성체줄기세포 연구가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정 추기경은 진홍색 수단(가톨릭 성직자의 평상복)과 주케토(가톨릭 성직자가 쓰는 빵모자) 차림이었다. 주케토는 탁발 수도사들이 정수리를 햇볕과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쓰던 것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성직자의 위계(位階)에 따라 수단과 주케토의 색깔이 다르다. 교황은 흰색, 추기경은 진홍색, 주교는 자주색, 사제는 검은색이다. 교황의 흰색은 하느님의 대리자임을 상징한다. 진홍색은 순교자의 피다. 피를 흘려서라도 교회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투신하라는 의미다. 검은색은 하느님과 교회에 봉사하기 위해 세속의 자신을 죽였다는 뜻.

    정 추기경이 주교 시절 찍은 사진을 보면 머리숱이 많아 앞머리가 자주색 주케토 밖으로 밀려나와 있다. 그러나 추기경도 세월을 붙잡을 수 없었던지 지금은 빨간 캡 밑에서 바로 이마가 드러난다.

    .

    하느님이 정한 ‘사람의 길’

    ▼ 선진국에서 저출산 문제가 아주 심각한데요. 우리나라는 그 첨단을 달리고 있습니다. 피임과 낙태 금지 교리를 실천하는 천주교 신자가 늘어나면 저출산 해소에 도움이 되리라고 보는데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생명은 하느님의 영역이기 때문에 인간이 조작하면 안 됩니다. 인간이 조작하면 악으로 기울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역사적으로 모든 과학적인 발명은 선의에서 출발했지요. 그런데 종국에는 전부 대량살상무기화 했어요. 화약도 그렇죠. 인간이 하늘을 날고 싶다는 원초적 욕망에서 발명된 비행기는 대량살상무기인 폭격기, 전투기가 됐죠. 유전자조작농산물(GMO)도 처음에는 병충해에 강한 농산물을 만들겠다고 시작했는데 현재는 돈벌이에 악용되고 있거든요. 인체 유해성에 개의치 않고 GMO를 개발하고 있어요. 배아줄기세포도 악용될 소지를 예견할 수 있습니다.”




    필자는 천주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동아일보 가톨릭 신우회의 도움을 받아 인터뷰 질문을 만들었다. 김일동 회장이 회원들한테 메일을 보내 정 추기경한테 묻고 싶은 질문 20개가량을 모아 필자에게 보냈다.

    ▼ 가톨릭 신자인 동아일보 여성 논설위원(정성희)에게 추기경을 만나면 어떤 질문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이런 질문을 해보라고 하더군요. 세상 사람들의 생활과 윤리관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 않습니까. 천주교가 아직도 여성 사제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시대에 뒤처진 것이라는 의견이었어요. 천주교가 동성애를 죄악으로 보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이 질문에 정 추기경과 배석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추기경은 “여성 사제 문제는 동성애하고는 아주 다른 얘기인데…”라고 말해 필자는 여성 사제 문제부터 대답해달라고 요청했다.

    “여성 사제 문제는 대답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예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다고 얘기합니다. 예수님께서 정하신 일을 더 얘기하는 것은 부질없는 논쟁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 질문에 대해선 제가 여기서 답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대답이 신통치 않아서 미안합니다(웃음).”

    ▼ 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초파리에게서도 동성애가 발견됩니다. 동성애는 후천적 선택이라기보다는 타고난다는 과학적 근거가 발견되고 있어요. 그렇다면 죄악으로 볼 수 없는 것 아닌가요.

    “우리는 죄악으로 봅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어긋납니다. 본성에 대해 조금 설명할게요. 우주 만물이 자연적으로 생긴 게 아닙니다. 하느님이 만드신 거죠. 이게 창조설이죠. 아주 쉬운 표현으로 달과 별들이 해와 충돌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것은 우주 만물에 운동법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법칙이죠. 하느님은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을 때 당신의 지성으로 질서 있게 만드셨습니다. 있어야 될 곳에 다 있는 거죠. 이 질서를 사람이 인식했는데 그것이 자연법이죠. 자연법의 한 부분을 우리는 본성이라고 합니다. 동물은 본능이고, 인간은 본성입니다. 같은 말이에요. 인간에게 양심은 습득에 의한 지식이 아니고, 본성적으로 아는 거예요. 인간 본성의 근원은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새겨주신 자연법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하시고 무한하신 분이니까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죠.

    자연법은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자연과학에 속하는 물리법칙, 인간에게 속하는 윤리법칙, 미학에 속하는 예술법칙이 있어요. 예술은 선과 악이 아니거든요. ‘보기 싫어’라고 말해도 악은 아니라고요. 그러나 물리법칙은 어기면 파멸이에요. 과학적인 기계를 만들 때 자연법칙을 어길 수가 없지요. 작동이 안 될 테니까요. 물리법칙에는 자유가 없어요. 기차는 궤도를 벗어나면 전복됩니다. 윤리법칙도 사람이 가는 길, 양심을 벗어나면 파멸이에요. 그런데 윤리법칙은 어길 자유가 있어요. 그런데 어길 자유를 엄격한 의미의 자유라고 말할 수 없지요. 어기면 파멸이니까.

    그런데 이 윤리법칙에 대해 어길 자유가 있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게 바로 악이에요. 기차가 궤도를 벗어나면 파멸이듯 사람의 길도 벗어나면 파멸입니다. 예수님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길부터 말씀하셨어요. 예수님은 하느님이시면서 사람이시니까 중개자지요. 예수님은 하느님이 사람에게 오신 길이고 사람이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으로 가는 길이에요. 이 길을 벗어나면 파멸입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느님이 정한 사람의 본성에 맞느냐 안 맞느냐가 기준입니다. 생명은 바로 가장 민감하고 핵심적인 부분이에요. 내가 ‘타협하고 양보하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생명 문제만 나오면 아주 옹고집이 됩니다. 하느님의 영역이기에 양보할 수 없는 거지요.”

    “조금 설명하겠다”고 시작한 답변이 긴 강론으로 이어졌다. 답변 속에서 동성애란 단어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추기경이 언급하기에 부적절한 죄악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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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敎勢, 세속세력과 무관치 않다”

    ▼ 한국 개신교가 한때 급성장해 세계가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지금도 비행기 타고 밤에 서울 상공을 지나다 보면 십자가 천지예요. 그런데 요즘에는 개신교 신도 숫자가 감소하고 있다고 해요. 이에 비해 통계청 발표로 보면 가톨릭은 지난 10년 동안 신도가 74% 증가했다고 합니다. 개신교는 신도 숫자가 주는 데 가톨릭은 늘어나니 추기경으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겠어요(웃음).

    “조선 왕조가 미국과 수교한 것이 1882년이고, 프랑스와 수교한 것이 1886년입니다. 미국과 수교하면서 프로테스탄트 개신교 목사님들이 왔지요. 돈 많이 갖고 와 학교와 병원을 지었어요. 남자대학뿐 아니라 여자대학까지. 천주교는 그때 순교시대가 끝난 거죠. 미국 선교사들은 평안도에 주로 진출했어요. 평양이 개신교의 중심지로 동양의 예루살렘이라는 별칭이 생겼습니다. 우리 개신교 사상 처음으로 목사님 7명이 바로 그 지역에서 서임을 받았어요. 해방되었을 때 평양시민의 30%가 개신교 신자였답니다. 김일성 외삼촌(강양욱)이 목사님이잖아요.

    일본의 크리스천이 천주교, 개신교를 합해 1%도 안 돼요. 식민지시대에도 일본 사람들은 크리스천에 대해서 배타적인 정책을 썼습니다. 해방될 때까지 남쪽에서는 천주교나 개신교나 세력이 미미했습니다. 해방 때는 아마 개신교와 천주교 신도 수가 비슷했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해방이 되자 남쪽에는 미군이 진주했어요. 미국은 개신교 세력이 큰 나라니까 자연스럽게 개신교의 영향력이 커졌죠.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개신교 신자이고, 첫 번째 내각에도 개신교 신자가 많이 들어가 자유당 정권 내내 개신교 세력이 압도했어요. 그래서 1950년대, 60년대에 개신교가 확 늘어난 거예요. 교세(敎勢) 발전도 세속적인 세력과 무관하지 않으니까요. 천주교의 기대가 컸던 장면 정권이 단명하면서 천주교는 신장할 기회를 놓쳤죠. 그런데 천주교는 뒤늦게 1980, 90년대에 성장기가 찾아왔지요.

    이제 밸런스가 잡혀간다고 할까요. 지금 개신교 신도수가 전 국민의 20~25%라고 하는데 만일 가톨릭이 25%가 되면 합해서 50%가 되잖아요. 불교 신자와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도 상당수 있지요. 신도수의 균형이 잘 잡혀야 나라가 편안합니다. 균형이 깨지면 사회적으로 불안한 나라가 됩니다. 우리나라는 다(多)종교 국가로서 여러 종교가 평화스럽게 공존하는 거의 유일한 나라래요. 큰 차이 없이 균형잡혀 있기 때문이죠. 천주교가 무한정 커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그는 두 손을 앞에 모으고 정면을 응시하며 책을 읽듯 또박또박 말했다. 인터뷰를 시작한 지 20분가량 지나서야 굳은 자세가 풀리고 간간이 제스처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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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돌릭 신자 20% 시대 올 것

    ▼ 평신도들 중에는 개신교 교회에 가면 돈 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 부담스럽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상가에 세든 개신교 교회는 슈퍼마켓이나 복덕방과 붙어 있어 성스러운 분위기가 덜하다는 말도 나오지요. 상대적으로 천주교는 돈 이야기를 덜해 부담이 적다고 합니다. 천주교 신부들은 교구청에서 월급 주는, 공무원 비슷하니까 생존 압박을 덜 받고, 개신교 목사는 스스로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자영업이라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톨릭교회가 중세 때 역사적으로 떳떳하지 못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정권을 가진 사람과 교권을 가진 사람이 합당하지 않게 밀착하면 부패가 생기지요. 제가 이런 표현을 하면 조금 어폐가 있을 것도 같은데 어떤 교회가 적정 규모 이상으로 세력이 커질 때 세속 세력이 그것을 이용하려 든다거나, 교회에 속한 사람이 세속적인 물이 들 경우 언짢은 방향으로 흐르게 되지요. 적정선을 잘 지켜야 하는데 과욕을 부리면 문제가 생깁니다.

    모든 종교는 근본적으로 항상 깨끗해야 합니다. 어떤 교파냐를 떠나 모든 종교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도덕성을 보여주는 모범이 돼야 합니다. 종교가 적정선을 넘어 세속적인 세력을 가질 때에는 자정(自淨) 능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황 위원께서 말한 개신교의 어떤 점은 가톨릭에도 언제든지 해당될 수 있는 말이죠.”

    ▼ 반 농담으로 여쭤보는 것인데요, 신부님들이 목사님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강론을 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목사님들은 자영업이라서 설교를 못하면 신도가 줄고 생계를 위협받는데 신부님들은 일종의 공무원처럼 교구청에서 봉급이 나오니까(웃음)…. 그러나 강론을 너무 못하면 포교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요.

    “일리 있는 말씀이에요. 저도 농담 비슷하게 대답을 한다면, 지금 목사님 숫자가 많아요. 16만명이라고 합니다. 천주교 신부는 4000명 선이거든요. 황 위원 말씀대로 천주교 신부들은 가만히 있어도 생활 보장은 되는 거예요(웃음). 그런데 목사님은 1년에 3000명씩 새로 배출돼 경쟁이 아주 치열하지요. 문화관광부 통계를 봤는데 예배당이 6만3000개예요. 우리나라 인구를 4800만명으로 잡고, 개신교 신도수를 20%라고 하면 교회마다 평균 150명이죠. 대형 교회를 빼면 작은 교회의 평균 신자수가 얼마나 되겠어요. 제가 언뜻 듣기에 절반 이상의 교회가 50명 정도의 신자를 갖고 있대요. 목사님이 생활을 영위하려다 남의 눈에 옳게 안 보이는 모습이 나타날 때도 있다면 그것이 염려스럽죠.”

    모든 종교가 말하는 신도수를 합하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몇 배가 된다. 그만큼 종교별 정확한 신도수를 집계하기란 지난한 작업이다. 정 추기경은 가톨릭 인구가 10%를 약간 넘은 것 같다고 말했다.

    ▼ 추기경께서 2020년까지 가톨릭 신자를 20%로 만드는 2020운동을 펼친다고 들었는데요.

    “개신교 신도가 인구의 20~25%라고 하니 우리 천주교도 그 정도는 돼야 한국 전체의 종교 간에 적정선이 유지된다는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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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악한 자연조건과 테러

    ▼ 중동지방에서 발원한 세 종교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인데요. 구약성경을 믿고 유일신 교리를 갖고 있어요. 그래서 이 세 종교가 근본적으로 다른 종교와 화합하기 어려운 펀더멘털리즘 요소를 갖고 있다고 보는 관점이 있어요.

    지난해 성탄절을 앞두고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을 찾은 정진석 추기경.

    “저도 공감합니다. 세 종교 다 유일신교지요. 뿌리가 같아요. 코란에 따르면 이슬람 사람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아브라함이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삭을 낳기 전에 이스마엘을 낳았는데, 이스마엘이 아랍인의 조상이라 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유일신을 믿는 거예요. 그러니까 펀더멘털리즘으로 갈 수밖에 없지요. 다른 종교를 인정할 수 없는 거죠. 창조론을 믿으면 유일신을 믿을 수밖에 없는 거죠. 어떻게 여러 신이 우주를 만들 수 있습니까. 절대신 하나가 우주를 만드는 거지요.”

    ▼ 새뮤얼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에서 각종 유혈분쟁 통계를 분석해 ‘이슬람의 국경선은 피에 젖어 있다’고 서술했어요. 중동 지방의 이슬람교 국가에서는 테러와 유혈분쟁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교리상의 문제라기보다는 낮은 교육수준, 빈곤과 실업의 영향이 아닐까요.

    “인류가 풀어 나가야 할 난제지요. 중동지방의 자연조건이 너무 열악한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봐요. 기후조건이나 강우량이 사람 살기에 적합하지 않죠.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이죠. 자살폭탄 테러가 많은 이유는 직업이 없는 사람이 많아서 그렇다는 분석도 있어요. 산유국이라 외관상 GDP는 높은데 일거리가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행복을 느끼려면 적당하게 일하고 적당하게 쉬고 기후도 좋아야 하는데 중동은 여러 가지로 사람이 생존하기에 좋지 않은 조건이라는 설명을 듣고 아,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자연조건 탓만 하기도 어려운 게, 바로 옆에 있는 이스라엘은 경제 수준이 높지 않습니까.

    “글쎄, 그건 제가 명쾌하게 설명을 드릴 수 없는 문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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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은 존경의 표현

    ▼ 제 집사람은 가톨릭에서 세례를 받아 세례명이 ‘카타리나’인데 성당에는 잘 안 나가더라고요. 그런 사람을 보고 냉담신자라고 하지요.

    배석한 허영엽 신부가 “요즘은 ‘냉담신자’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쉬고 있는 신자’라고 말한다”고 거들었다.

    ▼ 하여튼 집사람이 ‘쉬고 있는’ 신자인데요. 함께 등산 갔다가 절에 들르면 시주함에 돈을 넣고 부처님 앞에 절해요. 대개 자식들 좋은 대학 들어가게 해달라는 소원을 비는 것 같아요. 천주교 신자가 부처님 앞에서 절하는 것을 천주교 교리로 용인할 수 있습니까.

    “그전에는 우리도 조금 옹졸해서 절대로 안 된다고 했습니다. 용인을 안 했죠. 근래에는 좀 융통성 있게 대처하지요.”

    정진석 추기경은 불기(佛紀) 2551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 불교 신자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부처님께서 설파하신 자비와 예수님께서 새로운 계명으로 주신 사랑은 본질적으로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 서로 사랑과 자비를 베풀기 위해 노력할 때, 서로 안에서 부처님과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하고, 보다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길에서 동반자요 동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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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사는 조상에 대한 공경

    ▼ 크리스천 중에는 제사를 지내는 사람도 있고, 안 지내는 사람도 있어요. 교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저는 돌아가신 부모님 영정 앞에 절하는 것은 조상에 대한 예절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것을 미신이나 우상숭배라고 보는 것은 편협한 펀더멘털리즘이 아닐까요.

    “이런 문제가 처음으로 부각된 것이 1600년대 중국에서였어요. 마테오 리치(1552~1610)는 굉장한 분이에요. 예수회 회원이던 그분이 중국어로 ‘천주실의(天主實義)’라는 책을 썼습니다. 잘된 책이에요. 그 책을 통해 중국, 조선, 일본이 천주교 사상을 처음으로 접하게 됐지요. 그 책은 제사를 용인했어요. 마테오 리치는 학자로서 중국의 지성인들과 교류했지요. 그때 중국 지성인들이 다 제사를 지냈습니다. 지성인들이라서 제사와 우상숭배를 구별할 줄 알았죠.

    그런데 천주교 수도회에 분파가 있죠. 마테오 리치는 예수회 소속이죠. 예수회는 서강대학교를 세운 수도회죠. 지성인을 상대해요. 그런데 프란체스코회라는 수도회도 있어요. 우리나라에도 서울 정동에 있어요. 프란체스코회는 서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해요. 그들이 마테오 리치보다 100년 후에 중국에 왔어요. 프란체스코회 사람들이 보기엔 중국 서민이 제사를 지내는 게 우상숭배와 구별이 안 된 거죠. 그래서 교황청에 예수회가 잘못한다고 보고한 거예요. 교황청에서는 제사가 뭔지 모르는 데다 안전하게 가야 되니까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했어요. 그 결정문을 받아본 프란체스코 회원들이 서민층 신자들에게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한 거죠. 결국 제사 폐지 때문에 박해가 시작됐습니다. 마테오 리치 때는 전도가 잘 됐어요. 중국에서 1800년대에 박해가 시작됐고, 우리나라도 뒤를 따랐어요. 우리 천주교 역사에서 최초의 박해가 조상의 위패를 불태운 사건 때문에 일어났죠.”

    신해박해는 1791년 정조 15년에 일어났다. 전라도 진산(珍山)에서 윤지충이라는 천주교 신도가 베이징 교구장 구베아(Gouvea) 주교의 제사 금지령에 따라 제사를 지내지 않고 신주를 불태워 땅에 묻었다. 친척과 이웃들이 윤지충을 무군무부(無君無父)의 불효자로 고발하면서 천주교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됐다.

    “저는 근본적으로는 마테오 리치가 제사 문제를 옳게 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교육받은 사람은 제사와 미신을 구별해요. 제사는 조상에 대한 공경이지, 거짓 신에 대한 미혹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천주교에서 용인하는 거예요. 미신은 점 보러 가는 거지요(웃음). 제사는 우상숭배나 미신이 아닙니다.”

    ▼ 그러면 장례식장에서 망자(亡者)에게 절을 해도 되는 겁니까.

    “그렇죠. 망자를 신격화해서 절하는 게 아니고 그냥 존경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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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 정진석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우리나라를 두 번 방문했습니다. 1984년 여의도에서 열린 큰 집회가 천주교 교세 신장의 계기가 됐다고 봅니다. 현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 있습니까? 천주교 신자들이 궁금할 거 같아요.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한국에 대해서는 잘 아시는 편입니다. 그런데 연세가 있으시죠. 1984년 한국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64세였어요. 1989년 69세 때 또 오셨죠. 그런데 지금 교황님은 80세예요. 여행하는 데 60대 교황님과 80대 교황님은 상당히 차이가 나잖아요. 한국에 오실 수 있는지에 대해 제가 대답할 수 없지요. 5월9~14일 남미에 다녀오셨는데 조금 무리하신 것같이 느껴져요.”

    ▼ 베네딕토 16세가 신학교 학생이던 14세 때 히틀러 유겐트(소년단)에 가입했습니다. 1943년에는 징집돼 뮌헨 근교 BMW 항공기 엔진 공장의 방공포대에서 근무했습니다. 나중에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국경지대에서 탱크 저지선 공사를 하다가 1944년 4월 탈영해 연합군 포로수용소에 수감됐지요.

    “1927년생이니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에 18세잖아요. 히틀러 시대에 독일 청소년의 유겐트 가입은 의무사항이었죠. 저도 일제시대 때 학교(중앙중학교) 교복이 군복 비슷했어요. 바지에 각반 매고 학교 다녔어요.”

    정 추기경은 종아리를 내밀고 손으로 각반 차는 동작을 보여주었다.

    “각반을 잘못 매면 풀어지거든요. 안 풀어지게 매는 요령이 있어요. 이거 매려면 몇 분 까먹죠. 아침에 바빠요. 군복 입고 군사훈련을 받고 독일이나 우리나 똑같았던 거죠. 나는 1931년생인데도 한국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거죠. 강제로 시키니까.”

    6·25전쟁으로 학업(서울대 화공과)을 중단한 정 추기경은 1954년 23세 때 가톨릭대학 신학부에 입학했다. 필자가 “1954년 3월 이전에는 보통의 청년이었겠지요?”라고 묻자 그는 “그렇죠”라고 대답했다. “신부가 되기 전에 혹시 이성과 사랑을 해보신 적이 있는지요”라는 질문에 “아, 그게 6·25 때 죽을 고비를 몇 번씩 넘겼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여유 있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할 겨를이 없이 살았어요”라고 대답했다.

    ▼ 사랑이 사치스럽다는 말입니까.

    “아니, 내가 19세 때 전쟁이 터졌지요. 22세 때 전쟁이 끝났어요. 3년 동안 내내 전쟁터로만 끌려다니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잖아요. 전쟁 끝나자마자 바로 신학교 간 거예요. 나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데 관심이 집중돼 있었지, 나머지 일에 대해서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거예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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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越北한 공산주의자 아버지

    ▼ 결례되는 질문 같습니다만 간혹 장가가서 아들딸 낳고 평범한 신도 생활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그냥 ‘아니다’라고 대답하긴 어렵겠죠. 전쟁 중에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어요. 그때부터 나는 덤으로 산다고 생각했어요. 벌써 이 세상에서 죽은 몸이고 나머지 인생은 많은 사람에게 뭔가 좋은 일을 하라고 하느님이 덤으로 주신 삶이죠. 국민방위군에 편입돼 남한강 위를 걸어가다 바로 뒤따라오던 사람들이 강물에 빠져 죽는 것을 봤어요. 행군 중에 지뢰를 밟아 죽기도 했고…. 매일 오늘이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지금까지 잊어본 적이 없어요.”

    ▼ 추기경이 되신 후에 아버지가 북한에서 공업성 차관을 지낸 정원모(鄭元謨)씨라는 이야기가 알려졌잖아요. 가톨릭 집안인데 아버님이 무신론에 빠져든 사연이 궁금합니다.

    “어머님은 아버님에 대해 일절 말을 안 했어요. 해방됐을 때 제가 만 16세였거든요. 저는 그때 똑같이 벌어서 똑같이 나눠 먹자는 사상에 매력을 느꼈어요. 그 사상이 한 1년 갔지요. 그때 가르치던 사람이 고려대 학생이었어요. 이름도 얼굴도 기억 안 나요. 하여튼 고려대에 중앙고 선배가 많았으니까요. 선배 한 사람이 ‘같이 벌어서 같이 나눠 먹는 이상사회’에 대해 설파했죠. 그거 옳잖아요. 분배가 공정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단점은 안 가르쳐줬어요. 장점만 보면 그럴 듯하지요. 거기서 아버지를 이해한 거예요. 아버지도 그렇게 빠져들었겠죠. 해방 직후 혼란한 사회에서 귀국한 일본 유학생들이 거의 전부 좌익사상을 가졌어요. 아버지는 대학생이었죠. 그 시대의 지성인으로 그 사상에 물들었겠지요. 아버지가 북한의 공업성 차관인 것은 신문에 보도된 뒤에 알았죠. 그전에는 아무도 이야기 안 해주고 대학생이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죠.”

    ▼ 아버지가 일제하에서 장기 복역을 했나요.

    “나는 몰랐는데 그랬던가봐요. 어머니가 나를 수태했을 때 잡혀갔나봐요. 기록을 보면 그래요. 사상범은 재판 안 하고 감옥에 가두어놓고 몇 년 질질 끌다가 재판해 몇 년 딱 때렸답니다. 내가 몇 살 된 다음에 풀려난 것 같은데 그 무렵에는 외가와 같이 살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요. 짐작이에요. 하여튼 나는 외가에서 자랐어요. 외가 식구 중에 아버지에 대해 아무도 말을 안 해줬어요.”

    추기경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명동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부친은 살림이 넉넉했던 장인 집에서 처가살이를 했다. 추기경의 외가는 서울 수표동에서 경대를 만드는 가구공장을 운영했다. 추기경은 평생 아버지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부친은 1931년 ‘조선공산당 재건 국내공작위원회 사건’의 핵심인물로 구속돼 3년 여 동안 옥고를 치렀다. 1944년에는 ‘공산주의자협의회 사건’으로 다시 구속돼 경기도경에서 수사를 받다가 광복을 맞아 석방됐다. 정 추기경은 신문에 난 아버지의 사진을 보고서야 자신의 얼굴이 아버지를 닮았음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내가 아주 미련해서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아버지 없이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필자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태어난 것처럼요?”라고 묻자 추기경은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게 아니고…”라고 말해 모두 웃었다. 그는 “사람이 태어나려면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도 필요하다는 것을 몰랐어요”라고 말했다.

    “친구들이 ‘너도 아버지가 있을 거야’라고 했을 때 나는 ‘결혼한 부부 중에 아기를 원하는데 아기가 없는 부부도 있지 않으냐. 그러니까 여자가 혼자 낳는 거지’라고 우겼어요. 그 정도로 내가 순박했다고…. 그런데 중학교에서 생물을 배우지요. 생물책에 수정(受精)이라는 게 나오더라고요. 생물 공부를 하면서 나도 아버지가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죠.”

    ▼ 저서와 역서가 45권이나 되던데요. ‘모세’를 상중하(上中下) 3부작으로 쓰셨더군요. 상은 ‘민족해방의 영도자’, 중은 ‘율법의 제정자’, 하는 ‘민족공동체의 창설자’이더군요. 모세는 어떤 점에서 위대하고 어떤 점에서 실패했다고 보는지요.

    “우리 교회 안에서 모세가 가장 위대한 리더입니다. 이분이 어떤 분일까, 나한테 무슨 도움이 될까 하는 궁금증에서 책을 쓰기 시작했죠. 책을 쓰면 유익한 점이 많아요. 그냥 막연하게 알고 있거나 부정확하게 대충 알고 있던 것을 책을 쓰려면 정확하게 알아야 되잖아요. 공부를 많이 하게 됐지요. 모세도 약점이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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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교구장 된 사연

    ▼ 모세에겐 어떤 약점이 있었습니까.

    “모세가 샘물을 두 번 친 것은 화를 표출한 거지요. 그것 때문에 가나안땅에 못 들어갔죠. 지도자는 화를 내면 안 되는구나 하는 큰 교훈을 제게 주지요.”

    ▼ 가톨릭 신자가 됐든 비신자가 됐든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소개해주시죠.

    “성경 이상의 책은 이 세상에 있을 수 없어요, 그게 답이에요. 하여튼 성경은 읽으면 읽을수록 굉장한 교훈을 받아요.”

    필자가 “이 질문을 할 때 틀림없이 성경이라는 대답이 나오리라고 예상했다”고 말하자 추기경은 웃으며 “그렇게 뻔한 대답이지만 나한테는 뻔한 대답이 아니다”라고 했다.

    ▼ 성경 빼놓고 평생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 책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해방 직후 나도 ‘종교는 아편’이라는 사상에 빠졌다가 1년 후에 탈출했는데, 신앙에 복귀하는 계기가 있었죠. 하나님을 부정하는 좌익사상이 무비판적으로 쏟아져 들어오던 1947년 윤형중 신부님이 명동성당에서 2월23일부터 3월30일까지 7주 동안 7번 강의를 했어요. 그 강연이 나를 신앙인으로 회복시켜준 거예요. 그 강연 원고가 6·25전쟁에서 살아남아 전쟁 직후 ‘종교의 근본문제’라는 책으로 출간됐는데 1987년까지 14판이 나왔어요. 그 책이 나한테는 깊은 영향을 줬습니다. 탁월한 책이죠. 그것을 번안해 내가 신판으로 낸 게 ‘우주를 알면 하느님이 보인다’입니다.”

    그는 가톨릭출판사에서 나온 이 책에 ‘황호택 님께/정진석 추기경’이라는 글씨를 적어주었다.

    ▼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직하고 계신데, 가톨릭에서 지금 평양에 파견한 사제가 있습니까.

    “파견한 사제는 없습니다. 해방됐을 때 북에 신자가 5만명 있었습니다. 남쪽 신자 10만명을 합해 가톨릭 식구가 15만명이었죠. 북에 성당이 58개 있었습니다. 신부님이 안 계신 곳을 공소라고 하는데, 공소가 한 200개 있었죠. 북에 소련군이 진주하고 1948년 공산정권이 수립된 후 1년 만에 성직자들이 모두 행방불명됐어요. 1949년 5월이에요. 천주교, 개신교 종교지도자들이 일시에 없어졌어요. 내 추측으로는, 전쟁 준비를 하면서 방해꾼들을 다 정리한 거죠. 그때 북에서 천주교 성직자 100여 명이 행방불명되면서 한 명도 안 남게 된 거죠. 지금까지 생사를 몰라요. 여러 번 그분들의 생사를 알려달라고 했는데 대답이 없어요.

    평안남북도는 평양교구였고, 황해도는 서울교구예요. 함경남북도는 함흥교구였죠. 그리고 원산에는 수도회가 있었어요. 수도회는 교구에 속하지 않은 준교구예요. 이렇게 북에 교구가 3개 있었어요. 오늘날에도 천주교 신자가 1000명에서 3000명은 남아 있을 거라고 봅니다. 천주교는 교구라는 이름이 있으면 누군가가 교구장 직함을 가져야 돼요. 그래서 교황님께서 나보고 평양교구장을 겸해라 한 것이지만 이름뿐이지요.”

    정 추기경은 평양은 물론 금강산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북한에는 장충성당과 봉수교회, 칠골교회가 있다.

    ▼ 저는 봉수교회에 가봤는데 북한에 자주 다니는 사람 얘기를 들으니까 장충성당에서 본 신자를 봉수교회와 칠골교회에서 보게 된다는 군요. 전시용 행사에 동원된 신자만 있다는 거죠.

    “6·25전쟁 중에 성당, 예배당이 다 없어졌어요. 예배당은 한 3000개 됐대요. 천주교는 아까 말한 대로 250개쯤 없어졌어요. 그 사람들은 미 제국주의 군대가 없앤 거라고 둘러대요. 하여튼 전쟁 중에 다 없어졌어요. 장충성당은 1988년에 생겼어요. 그해에 우리가 올림픽을 하면서 세계의 기자들이 다 왔잖아요. 그러니까 북에서 자기들도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표시로 갑작스럽게 두 개의 교회당을 만들었는데 하나는 봉수교회고 하나는 장충성당입니다. 닮은꼴이에요. 한 사람이 설계한 거죠.”


    ▼ 천주교도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사업을 하고 있습니까.

    “5만명의 신자가 있었으니까 지하에서 혹시 그 자손들이 부모님한테서 세례를 받았을 수도 있지요. 조금이라도 있기는 있을 겁니다. 노출되면 위험하겠지요. 우리가 북에 인도적인 차원에서 지원해 숨어 있는 신자들이 혜택을 입으면 좋겠어요.”

    .

    오웅진 신부를 돕다

    ▼ 제가 평양에 갔을 때 중국에서도 공산당원은 교회를 못 다니던데 북한에서는 어떠냐고 공산당원 신분의 공직자에게 물었죠. 그 사람이 반말투로 ‘공산당원은 두 개의 종교를 가질 수 없어’라고 하더군요.

    “솔직한 얘기군요.”

    ▼ 미국의 종교 통계 사이트인 애드히런츠닷컴(adherents.com)이 ‘북한의 주체사상이 신봉자 수에서 세계 10대 종교 안에 들어간다’고 최근 발표했습니다. 주체사상을 종교라고 본 것이 흥미로워요. 일종의 사이비 종교로 본 거겠죠.

    “김일성 주석의 시신을 금수산기념궁전에 모셔놓고, 그 사람 생일을 태양절이라고 부르죠. 말할 때마다 종교냄새가 나는 용어를 많이 쓰잖아요. 그러니까 종교집단이라고 한 거겠죠.”

    ▼ 건강관리는 어떻게 합니까.

    “청주교구장으로 있을 때는 일주일에 몇 번씩 우암산에 올라갔어요. 서울에 와서는 여기 테니스장에서 맨발로 한 시간씩 걸어요. 그게 유일한 운동입니다.”

    그의 모친은 나눔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던 독실한 신자였다. 이웃의 가난한 아기들이 젖동냥을 오면 주저 없이 젖을 물렸다. 그러나 돌림병을 옮길까봐 외아들에게 줄 다른 쪽 젖은 물리지 않았다. 정 추기경은 어머니가 생전에 장기 기증을 약속해 돌아가셨을 때 안구 적출 수술을 하는 것을 직접 지켜보았다. 아들은 어머니를 음성 꽃동네 묘역에 모셨다.

    ▼ 청주교구장 시절에 오웅진 신부의 음성 꽃동네를 많이 도와주셨다고 하던데요. 나중에 오 신부가 수사에 휘말리고 재판을 받기도 했지요.

    “오 신부님이 1976년에 사제 서품을 받고 처음 주임신부를 맡은 성당이 음성 무극 본당이죠. 주임신부가 되자마자 읍내 다리 밑에 있던 거지들을 돌보기 시작했어요. 그 사람들을 위해 조그만 집을 지어 18명을 수용했어요. 그러다가 땅을 마련해 갖고 옮겨간 것이 오늘날의 꽃동네예요. 처음 시작할 때는 음성군수가 왜 전국의 거지를 음성에 모으냐고 싫어했지요. 그럴 때에 나는 뒤에서 보호해준 거죠. 나와 관계가 좋았던 김종호 도지사가 적극적으로 오 신부를 도와주니까 음성군수도 싫은 내색을 안 하게 됐죠. 음성 꽃동네가 커지면서 정부의 돈을 많이 받게 됐죠. 그게 불씨가 돼 문제가 생긴 거예요. 관(官)의 돈을 받았는데 제대로 썼느냐는 검증이 시작된 거죠. 몇 년 동안 수사와 재판을 하고서 무죄로 결론났어요.”

    ▼ 오 신부가 좋은 일을 많이 한 건데요.

    “그렇죠. 꽃동네 시설이 놀라울 정도로 어마어마합니다. 오웅진 신부가 한 푼이라도 떼어먹었으면 그런 시설이 만들어질 수가 없지요. 한 신부가 30년 동안 큰 건물을 10개 이상 지은 거예요. 가평과 음성을 합해 3000명의 노숙자를 수용해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어떤 사람이 너무 커지니까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생긴 거죠. 내가 보기에 오웅진 신부는 사심이 없는 사람이고 받은 돈 다 쏟아 넣었습니다.”

    ▼ 천주교에서도 대학과 중·고등학교를 다수 운영하고 있는데요. 사학 쪽에서는 자율이 중요하다고 하고, 전교조와 집권 세력 쪽에서는 개방형 이사를 통해 사학 경영을 투명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지요.

    “근본적으로 공립학교 외에 사학이 존재하는 이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립학교는 공립학교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있습니다. 공립학교는 교육 당국의 통제하에 당연히 들어가지요. 그런데 왜 사립학교까지 공립화하려는 겁니까. 그게 내 근본적인 문제의식이에요.”

    .

    고해성사…기억의 의지 없어야

    ▼ 가톨릭의 역사상 오류, 예를 들면 십자군전쟁, 마녀재판, 지동설 부정, 면죄부 판매에 대해 로마 교황청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적이 있는데요. 그렇다면 현재 가톨릭의 어떤 교리도 좀더 과학이 진보한 미래에 비과학적이었다는 비판을 받을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는지요.

    “십자군전쟁은 교회의 이름을 차용한 정치활동이죠. 갈릴레오 재판은 성경을 잘못 해석한 사람들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면죄부 문제는 어떤 사람의 남용에 의해 그렇게 된 거예요. 우리가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용서받잖아요. 고해성사는 자기 지역에서만 봐야 돼요. 그런데 헌금을 한 사람에게는 ‘너는 어디 가서든지 고해성사를 볼 수 있다’는 증명서를 줬어요. 그 자체가 죄를 용서해주는 증명이 아니고 어디 가서든지 고해성사를 볼 수 있다는 증명서였지요. 이게 잘못 해석돼 돈과 죄의 용서가 결부된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거죠. 1870년에 교황국이 없어진 이후 우리 천주교회는 더 이상 정치세력이 아닙니다. 정치세력과 결별해 정치 때문에 잘못되는 일은 없어졌지요. 중세 때는 교황국 때문에 비난을 받았거든요.”

    ▼ 신부로 일할 때는 고해성사를 많이 받으셨겠죠. 가리개가 있어 서로 얼굴을 못 보지만 목소리를 들으면 누군지는 대개 알 수 있을 텐데요. 신도들이 지은 죄를 일일이 듣고 있으면 나중에 생각이 복잡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참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데, 거기서 나오면 다 잊어버려요. 기억하면 미칠 거예요. 온갖 지저분한 얘기를 다 하는데 잊어버리지 않으면 미치지요. 이게 하나님의 은총이에요. 나오면 잊어버려요.”

    필자가 “기억을 녹음기처럼 자유자재로 지우실 수 있군요”라고 말하자 그는 “아니, 기억하려는 의지가 없으니까 들으면 그냥 끝나는 거지요”라고 말했다.

    “기억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 기억이 되지, 기억하려는 의지가 없을 때는 기억이 안 되는 거죠. 사람이 무슨 얘기를 많이 듣지만 저 말은 내가 언제 써먹어야지 할 때는 딱 기억 속으로 들어가요. 그런 마음이 없으면 무슨 얘기했지 하고 생각이 안 나는 거죠. 고해성사 내용을 다 기억하면 삶이 괴롭겠지요.”

    인터뷰가 2시간을 넘기자 다소 피곤해 하는 기색이 보였다. 옆에서 허 신부가 약속한 시간을 넘겼다고 신호를 보낸 지 오래됐다.

    정 추기경은 호박이 박힌 금반지를 끼고 있었다. 필자가 사연이 있는 반지냐고 묻자 “아니 내가 그냥 편해서…”라고만 대답했다. 필자가 “장시간 인터뷰를 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하자 추기경은 “이렇게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도 답변하기 힘들었지만 질문하시기가 더 힘드셨지”라고 말했다.



    황호택 동아일보 수석 논설위원 <신동아>

    정진석 추기경이 필자에게 줄 책에 사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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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년 봉사 접고 말없이 떠난 소록도 두 천사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주민들이 열흘 넘게
    성당과 치료소에 모여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43년 동안 환자들을 보살피다 지난달 21일 귀국한
    오스트리아 수녀 두 분의 은혜에 감사하며

    이별의 슬픔을 누르는 기도다.

    마리안네 스퇴거(71), 마가레트 피사렉(70) 수녀는 주민들에게
    헤어지는 아픔을 주기 싫다며 ‘사랑하는 친구·은인들에게’라는
    편지 한 장만 남기고 새벽에 몰래 섬을 떠났다.

    두 수녀는 편지에서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할 때”라며 “부족한 외국인이
    큰 사랑을 받았다”고 오히려 감사했다.

    오스트리아 간호학교를 나온 두 수녀는
    소록도병원이 간호사를 원한다는 소식이 소속 수녀회에 전해지자
    1962년과 66년 차례로 소록도에 왔다.
    두 사람은 섬에 발을 디딘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마리안네 & 마가레트’라는 표찰이 붙은 방에서 환자를 보살폈다.

    환자들이 말리는데도 약을 꼼꼼히 발라야 한다며
    장갑도 끼지 않고 상처를 만졌다.
    오후엔 죽도 쑤고 과자도 구워 들고 마을을 돌았다.
    사람들은 전라도 사투리에 한글까지 깨친

    두 수녀를 ‘할매’라고 불렀다.
    꽃다운 20대는 수천 환자의 손과 발로 살아가며

    일흔 할머니가 됐다.

    숨어 어루만지는 손의 기적과,
    주님밖엔 누구에게도 얼굴을 알리지 않는 베풂이
    참베풂임을 믿었던 두 사람은 상이나 인터뷰를 번번이 물리쳤다.

    10여년 전 오스트리아 정부 훈장은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가 섬까지 찾아와서야 줄 수 있었다.
    병원측이 마련한 회갑잔치마저 “기도하러 간다”며 피했다.

    월 10만원씩 나오는 장기봉사자 식비도 마다해
    병원측이 “식비를 안 받으면 봉사자 자격을 잃는다”고 해
    간신히 손에 쥐여줄 수 있었다.

    두 수녀는 이 돈은 물론, 본국 수녀회가 보내오는
    생활비까지 환자들 우유와 간식비,
    그리고 성한 몸이 돼 떠나는 사람들의 노자로 나눠줬다.
    두 수녀의 귀향길엔.......
    소록도에 올 때 가져왔던 해진 가방만 들려 있었다고 한다.

    외로운 섬, 상처받은 사람들을 반세기 가깝게 위로한
    두 수녀님의 사랑의 향기는 민들레 씨앗처럼 바람에 날려
    어두운 곳을 밝히고 추운 세상을 덥혀 주리라고 믿는다.




    전라남도 고흥반도의 녹동항구에서 조금 떨어진 섬,
    생긴 모양이 "어린 사슴"같다 하여

    이름 지은 소록도(少鹿島)

     

    " 이제는 70세가 된 마리안 수녀 "
    "처음 갔을 때 환자가 6000명이었어요. 아이들도 200명쯤 되었고, 약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한사람 한사람 치료해 주려면 평생 이곳에서 살아야 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 두분은 팔을 걷어 붙이고, 환자들을 직접 치료하기 시작한 것이 40년이 된 것이다. 할 일을 지천이었고, 돌봐야 할 사람은 끝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두 분은 가족에게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을 여러차례 전했다고 한다. 마가레트 수녀의 언니(73세)는 '소록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한다고 들었기에, 마가레트가 언젠가는 재로 변해 돌아올 거라 생각을 하였단다.그렇게 40년의 숨은 봉사...이렇게 정성을 쏟은 소록도는 이제 많이 좋아져서,환자도 600명 정도로 크게 줄었단다. 이들은 40년동안 함께 일한 한국인 간호원장이 은퇴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면서, 이제는 한국을 떠나도 되겠다고 결심했단다. 소록도의 지금 인구는 약 400가구, 직원 포함하여 약 1,700명400가정을 대상으로 한 평생을 조용히 섬기며 살았다. 그리고 또 누군가에게 알려질 까봐, 
    요란한 송별식이 될까봐 조용히 떠나갔다. 두 분은 배를 타고 소록도를 떠나던 날, 멀어지는 섬과 사람들을 멀리서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고 했다. 20대부터 40년을 살았던 소록도 였기에,소록도가 그들에게는 고향과 같았기에,이제 돌아가 고향 오스트리아는 도리어 낯선 땅이 되었지만,3평 남짓 방한칸에 살면서방을 온통 한국의 장식품으로 꾸며놓고오늘도 '소록도의 꿈'을 꾼다고 했다. 그 분의 방문 앞에는 그분의 마음에 평생 담아두었던 말이 한국말로 써 있다.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라'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기자에게 '알사탕 몇알을 꼬옥 쥐어주는 그녀,그리고 '밥을 차려 주지 못해 미안하다' 하면서 하는 말, "지금도 우리 집, 우리 병원 다 생각나요.바다는 얼마나 푸르고 아름다운지...하지만 괜찮아요. 마음은 소록도에 두고 왔으니까요!"
    -----------------------------------------------------



    43년간 소록도에서 봉사활동을 한 마가레트 수녀(왼쪽)와
    마리안 수녀(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출국 인사를 하기 위해
    지난달 21일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최창무 대주교(왼쪽에서
     두 번째), 윤공희(가운데) 김희중 주교와 기념촬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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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信就是所望之事的实底, 是未见之事的确据.

    (希伯来书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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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사따라 성지따라 5] 예루살렘 올리브산

    "아직도 자고 있느냐? 아직도 쉬고 있느냐"

    (사진설명)


    ▲ 하늘에서 내려다 본 올리브 산 전경. 올리브 산에는 겟세마니 성당을 비롯해 예수님 승천 경당, 주님의 기도 성당, 주님 눈물 성당 등이 산재해 있다.

    ▲ 겟세마니 바위. 예수님께서 수난 전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셨던 곳으로 전해지는 이 바위는 겟세마니 성당 중앙 제대 앞에 자리잡고 있다.

    ▲ 예수님 승천 경당. 예수님 승천 자리로 전해지는 이 경당 안에는 예수께서 남기셨다고 전해지는 발자국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오늘날 아랍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올리브 산은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약 3.2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높이는 해발 820m 정도다. 예루살렘이 해발 720m이니 100m 정도 높은 셈이다.

     올리브 나무가 많아 예수 시대부터 올리브 나무 숲이란 뜻의 '엘라이온'이란 불린 이 산은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다.

     올리브 산은 구약성경에 단 2번 나온다. 다윗이 압살롬 소동으로 올리브 산으로 피신했다(2사무 15장)는 기록과 즈카르야 예언자가 '주님의 날'에 벌어질 일(즈카 14,4)을 가시적으로 표현한 대목이다.

     올리브 산은 또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한 주간과 관련돼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예수께서는 올리브 산에서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셨고(루카 19,41-44), 종말에 관해 설교(마르 13,3-13; 마태 24,3-14; 루카 21,7-19)를 하셨다.

    예수께서는 낮엔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르치고 밤엔 올리브 산에 올라가 쉬셨다(루카 22,37-38). 또 예수께서는 최후의 만찬 후 제자들을 데리고 올리브 산으로 올라가 하느님께 기도를 드린 후 그 곳에서 체포되셨다(마르 14,26-50; 마태 26,31-56; 루카 22, 31-53; 요한 13,36-38; 요한 18,1-11). 그리고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올리브 산에서 승천하셨다(사도 1,6-12).

     이처럼 올리브 산에는 예수님과 관련한 성지가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올리브 산에는 신앙의 자유을 얻은 후 4세기 중엽부터 성당이 지어졌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겟세마니 성당과 동굴 경당, 주님 눈물 성당(Dominus flebit), 예수님 승천 경당, 주님의 기도 성당(Pater Noster) 등이다.

     ▨ 겟세마니 성당

     아람어 겟세마니는 '기름을 짜는 기계'라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수난 전 이 곳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셨다. 그래서 겟세마니 성당이 '고난의 성당'이라고도 불린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께서 베드로와 제베데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기도하러 겟세마니에 오셨다. 성경학자들은 겟세마니는 베다니아와 벳파게로 가는 길목에 있어 예수께서 자주 들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때는 과월절을 앞둔 니산달(4월) 초 목요일 저녁, 예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마치신 후 세 제자와 함께 겟세마니에 갔다. 수난과 죽음이 닥쳐온 것을 안 예수께서는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라는 말씀으로 세 번이나 같은 기도를 하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자고 있는 제자들을 세 번 흔들어 깨우셨다.

     아울러 예수께서 체포되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고, 예수께선 유다인 최고의회와 빌라도, 헤로데 앞에서 세 번 재판을 받으셨다. 그리고 사형선고 후 골고타에 세 개의 십자가가 세워졌고, 예수께서 죽으신 후 사흘만에 부활하셨다.

     성경학자들은 복음서에 나타난 이 3의 구도를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겟세마니에 성당이 세워진 것은 4세기 후반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재위 379~395년) 때다. 비잔틴 양식의 우아한 이 성전은 614년 이슬람군에 의해 파괴됐다. 이 성전 자리에 1170년경 십자군에 의해 다시 성전이 세워졌으나 14세기 이후 폐허로 변했다.

     지금의 성당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여러 나라에서 건축비를 지원받아 프란치스코회가 1919년에 착공, 1924년에 완공했다. 그래서 '여러 민족의 성당' 또는 '만백성 성당'으로 불리기도 한다.

     바실리카 양식의 이 성당 중앙 제대 앞에는 예수께서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셨던 곳(마태 26,39; 마르 14,35; 루카 22,41)으로 전해지는 넓다란 바위가 놓여있다.

     가시 면류관 장식에 둘러싸인 바위!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깨어 있어라."

     "자고 있느냐?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

     예수님의 간절하고 비통한 절규에 순례자 가슴에 흐르는 참회의 고백은 단 한 마디뿐.

     "주님! 제가 회개하게 해 주십시오."

     그리스도의 체취를 느끼게 하는 바위 외에도 4세기 비잔틴 성당 모자이크 잔해가 남아있다. 또 성당 뜰에는 예수 시대 때부터 있던 올리브 고목 여덟 그루가 그리스도의 수난을 증거하고 있다.

     ▨ 겟세마니 동굴 경당

     겟세마니 성당에서 북서쪽으로 약 200여m를 가면 겟세마니 동굴 경당이 나온다. 예수님께서 유다의 배신으로 체포되신 곳이라 한다(마르 14,41-46). 1681년부터 프란치스코회가 관리하는 이 경당에는 비잔틴 시대 모자이크와 십자군 시대 벽화가 남아 있다.

     ▨ 주님 눈물 성당

     주님 눈물 성당은 겟세마니 성당에서 동쪽으로 약 300여m 떨어진 올리브 산 중턱에 있다. 이곳 역시 프란치스코회가 관리한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 전 이 곳에서 도성을 바라보고 우시면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셨다(루카 19,42-44).

     돔 형태 비잔틴 양식의 아담한 이 소성당에선 예루살렘 시가지를 한 눈에 내다 볼 수 있다. 성당 제대에 장식된 새끼를 품고 있는 펠리칸 모자이크가 인상적이다.

     ▨ 주님의 기도 성당

     주님 눈물 성당에서 오르막 길로 약 200m 올라가면 주님의 기도 성당이 나온다. 가르멜 수녀원이 관리하는 이 성당에는 예수님께서 가끔 머무시면서 기도하셨고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치셨다고 전해지는 동굴이 있다(마태 6,9-13; 루카 11,2-4).

     일부 성경고고학자들은 이 곳이 예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과 최후의 심판(마태 24,1-26,2)에 대해 말씀하신 곳이라고 주장한다.

     예수님 부활 기념 성당, 베들레헴 예수님 탄생 기념 성당과 함께 콘스탄티누스 시대 3대 대성당으로 불린 주님의 기도 성당은 614년 이슬람 군에 의해 파괴됐다. 지금 성당은 1875년에 건립한 것으로 60여개국 언어로 쓰여진 주님의 기도문 판이 현시돼 있다. 부산교구가 기증한 우리말 기도문도 있다.

     ▨ 예수님 승천 경당

     예수님 승천 경당은 올리브 산 정상에 있다. 예수님 승천 이야기는 루카복음서(24,50-52)와 사도행전(1,1-12)에만 나온다. 이 경당 안에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남겨 놓았다고 전해지는 오른발 자국이 찍힌 바위가 보관돼 있다.

    [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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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다인들 손님 접대 풍습


     중국 운귀고원 중부에 살고 있는 부이족은 손님을 반기고 열정적으로 접대하는 풍속이 있다고 한다. 우선 손님이 방문하면 음식을 대접하는데 젓가락으로 오리 머리를 집어 손님에게 드린 다음 오리발을 집어서 손님 앞에 있는 그릇에 놓아준다.

    이 행동은 오리 한 마리를 머리부터 다리까지 손님에게 모두 대접한다는 뜻이다. 이때 손님은 사양해선 안 되며, 또 모두 먹어야 결례가 안 된다.

     접대는 '마땅한 예로써 대함''서로에 대한 배려, 예의로써 대한다'는 아름다운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접대문화라고 하면 불행히도 유흥업소에서 술과 여흥을 함께 하는 남성 중심의 왜곡된 술 접대문화가 관행처럼 되었다.

    그러나 본래 우리나라도 나그네를 따뜻하게 대접하는 좋은 풍습과 손님 접대 예식이 엄연히 존재했다. 손님 접대 풍습은 나라와 지역마다 다르지만 손님을 환대하는 취지는 같다고 할 수 있다.

     구약성서에 보면 유다인의 손님 접대문화를 엿볼 수 있다. 유다인들은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극진히 대접했다(창세 18-19장 참조).

     유다인들이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했던 이유는 그들 유목생활에서 찾을 수 있다. 척박한 땅을 떠돌면서 가축떼를 돌보던 당시 사람들이 나그네를 후대하는 행동은 자신들 생존과 직접 관계가 있었다.

    자신들도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언제 어떠한 어려움을 겪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당연히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했다. 따라서 유다인들은 가난한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지 않고 혼자 먹는 것은 죄악이라 생각했다.

     또한 유다인들에게 손님 접대는 종교적 측면이 있었다. 유다인들은 하느님이 가끔 천사들을 보내서 시험을 할 때가 있다고 믿었다. 즉 하느님이 사람 모습으로 찾아오는 천사들을 환대하는지 확인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은 바로 신앙 행위였다(창세 18장 참조).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나그네가 마을 입구에 도착하면 서로 먼저 모시려고 경쟁을 벌였다. 때로는 손님을 자기 집으로 모시려고 싸움을 벌이는 일까지도 있었다고 한다.

    유다인들은 손님이 찾아오면 처음 보는 사람일지라도 만나자마자 거리낌없이 끌어안으며 한 가족처럼 환영한다. 손님에게 신분을 묻는 법이 없고 반가움을 전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리고 손님이 아무리 늦은 시각에 방문한다 하더라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주인은 손님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비로소 남은 음식 먹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주인의 초대를 받은 손님은 사흘 동안 당당하게 묵어갈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그리고 손님이 다시 길을 떠나려할 때 주인은 더 묵어가기를 간청하는 것이 일반적 풍습이었다.

    그리고 손님이 묵던 집을 나와서 길을 떠나도 집주인은 일정 기간 나그네가 가는 길을 보호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신약성서에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마르타 집을 방문했다(루가 10,38-42 참조). 마르타는 손님 접대를 위해 음식을 장만하느라 분주했지만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에 앉아서 그분 말씀을 들었다.

    마르타가 동생 행동에 화를 내는 장면이 있다. 이 성서 말씀을 사람들은 마르타는 세상일에 신경을 쓰고 마리아는 영적 일을 하고 있다고 쉽게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 유다인들은 음식을 잘 준비해서 내는 것은 물론 손님과 대화를 하면서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 역시 손님을 접대하는 중요한 일로 간주했다. 그러므로 두 가지 일은 모두 손님 접대에서 꼭 필요한 행동이었다.

     오늘날 이스라엘 지역에서 성서에 기록된 손님 환대 모습은 찾기 어렵다. 하지만 팔레스티나 광야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베두인족에게는 옛 손님 접대 풍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옛 유다인들이 손님을 마치 하느님이 보낸 천사처럼 맞이했다고 하는 대목은 깊이 묵상해볼 일이다.


    (사진설명)
    '아브라함과 세 천사', 샤갈(Chagall, 1887~1985), 1981년, 유화, 62.5X49cm, 국립 성서 미술관, 니스, 프랑스.자료제공=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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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사따라 성지따라 4] '예수의 제2 고향' 카파르나움

    구원의 기쁜 소식 전한 '위로의 마을'


     꽃이 너무 아름다워 시간을 잊고 마냥 그 자리에 서 있을 때가 있다. 이스라엘 갈릴래아 호수 북서부 연안의 작은 어촌 카파르나움은 이름 그대로 아름다운 환경이 주는 평온한 분위기여서 마냥 머물며 살고 싶은 마을이다. 카파르나움은 히브리 말로 '위로의 마을''아름다운 마을'이란 뜻이다.

     카파르나움은 예수의 제2 고향이다. 복음서에서 카파르나움은 '예수의 고을'(마태 9,1), '예수의 집이 있는 곳'(마르 2,1)이라고 불릴 만큼 예수의 활동 중심지였다. 예수시대 카파르나움은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와 예루살렘을 잇는 교통 요충지로 로마 군대가 주둔해 있었고 세관도 있던 번화한 행정도시였다.

     이 고을 이름이 '카파르나움'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다. 먼저 '경제지역''제한지역'이란 뜻의 히브리 말 '케파르 테구민'에서 나왔다는 설. 그 이유는 카파르나움이 갈릴래아와 골란 지방 사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설은 '나훔의 마을'이란 뜻의 히브리 말 '케파르 나훔'에서 나왔다는 주장이다. 예언자 나훔의 고향인 '엘코스'가 원래 이 마을 이름이었으나 마을 주민들이 그를 존경해 '케파르 나훔'으로 고을 이름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성서학자들은 대체로 후자를 더 신빙성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예수는 세례자 요한이 체포됐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나자렛을 떠나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예수는 이 곳에서 이 지역 출신인 베드로와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로 삼았다. 또 베드로의 병든 장모를 비롯해 백인대장의 종, 중풍병자, 나병환자, 마귀들린 자들을 고쳐주었고,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는 기적을 행했다.

     예수는 아울러 이 곳에서 율법학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권위있는 가르침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회개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것을 설교했다. 하지만 카파르나움 사람들은 예수의 설교와 놀라운 기적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았다.

     예수는 너무나 실망해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마태 11,23-24; 루카 10,15)고 저주했다. 예수의 말 때문인지 영화롭던 카파르나움은 7세기 초 페르시아 군대의 침입으로 폐허가 됐다.

     카파르나움은 고고학자들에 의해 오늘날까지 가장 잘 확인된 성지 가운데 하나로 인정되고 있다.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예수 시대 카파르나움은 그 길이가 1km에 달했다고 한다. 2세기 말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절 예루살렘의 유다인들이 대거 카파르나움으로 이주해 이 도시는 더욱 번창해졌다. 그래서 4세기 경에는 예수가 새로운 가르침을 전하던 카파르나움 회당을 부수고 그 자리에 더 큰 회당을 세웠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교회 창설 초기부터 카파르나움에 살던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베드로의 집에 모여들어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함께 기도했다고 한다. 5세기 경 갈릴래아 지역 신자들은 베드로의 집을 개축해 팔각형의 큰 성당으로 꾸몄다. 하지만 이 성당은 614년 무슬림 페르시아군의 침입으로 페허가 됐다. 그 후 1200여년 동안 베드로의 집은 카파르나움과 함께 인적이 끊긴 채 무성한 들풀만 자라는 성경 속의 안식처가 되고 말았다.

     카파르나움에 대한 본격적 발굴작업은 1894년 작은형제회가 일대 부지를 매입하면서 시작됐다. 작은형제회는 1921~1926년, 1968~1984년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발굴 작업을 벌였다. 그 결과 회당과 베드로의 집터를 발굴했다.

     베드로의 집은 카파르나움 회장에서 약 30m 떨어져 있다. 베드로의 집은 5세기 경에 지은 팔각형 성당 한 가운데에 보존돼 있다. 이 곳이 베드로의 집터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 그리스 말로 쓰여진 '베드로'라는 푯말과 어선의 그림을 이 집에서 발굴했기 때문이다. 현재 작은형제회는 베드로의 집터를 보존하려 그 위에 팔각형 성당을 지어 순례자들을 맞고 있다.

     베드로의 집은 곧 예수의 집이다. 예수는 베드로의 집에 자주 묵었다(마르 1,29-30; 2,1; 3,20-21; 요한 1,38-39; 2,12). 예수의 숨결과 체취뿐 아니라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열정과 번뇌가 배어있는 집이다. 온 힘을 다해 제자들을 가르치고, 지친 몸을 뉘었던 예수의 안식처를 카파르나움은 품고 있다. 카파르나움 베드로의 집은 부활한 예수를 만나기 전 사도들의 피난처였을 가능성이 크다. 부활하신 예수가 제자들에게 발현해 베드로에게 수위권을 준 타브가와 크게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의 체취를 느끼고 예수의 안식처에서 믿음의 삶을 되돌아 보고자 위로의 마을 카파르나움에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바람이 꽃의 눈물을 보고 꽃의 소리를 전해 주듯, 순례자들은 이 곳에서 인간 예수를 보고, 돌같이 굳은 영혼을 살같이 부드럽게 되돌리는 생명의 소리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평화신문


    (사진설명)
    ▲카파르나움은 예수의 가르침과 무수한 기적을 보고서도 회개하지 않았다. 예수의 예언대로 7세기 무슬림의 침입으로 멸망한 이래 지금까지 페허로 남아있다. ▲20세기에 발굴된 베드로 집터. 이 집터는 예수께서 카파르나움에서 새로운 가르침을 선포하신 후 묵었던 안식처로, 카파르나움이 예수뿐 아니라 사도들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위로의 마을임을 느끼게 해 준다. ▲예수께서 하느님 나라에 대한 새로운 가르침을 선포하셨던 카파르나움 회당터. 오늘날 발굴된 이 터는 예수 시대 회당을 부수고 4세기 이후 개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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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다인들의 인사법


     사람은 만남에서 첫인상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보통 첫인상은 인간관계 출발점이기에 외모나 스타일뿐만 아니라 '인사'하는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다. 인사의 본질은 상대방에 대한 존경심과 반가움의 표현이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인사는 악수다.

     인사의 표현방식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띠고 있다. 마사이 부족 사람들은 반가움의 표시로 얼굴에 침을 뱉는다. 뉴질랜드 마오리족은 서로 코를 두번씩 비비는 코인사를 한다. 태국의 전통인사는 두손을 모으고 팔과 팔꿈치를 몸에 붙인 채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이때 합장한 손이 위로 올라갈수록 공경의 정도가 크다고 한다. 성서에서 예수님은 제자 72명을 둘씩 짝지어 파견하시면서 명령하셨다. "누구와 인사하느라고 가던 길을 멈추지 말라"(루가 10,4 참조).

     예수님은 왜 이런 명령을 내리셨을까. 복음 전파를 위해 예절이나 인간관계는 무시하라는 말씀일까? 물론 아니다. 예수님 말씀은 당시 유다 사람들의 풍습처럼 인사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이었다. 따라서 예수님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유다인들의 인사 풍습을 잘 알아야 한다.

     유다인들은 인사를 나누면서 보내는 시간은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유다인들은 아는 사람을 만나면 우선 서로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 다음에는 각자 오른손을 자신의 가슴에 올려놓았다. 이것은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그 손을 다시 입술에 가져다 댔다. 이 행동은 '당신과 우정의 입맞춤을 하고 싶다'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당신에게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는 의미로 손을 천천히 이마 높이까지 올린 뒤에 서로의 손을 굳게 움켜쥔다. 이런 뒤에 서로의 안부를 묻고 상대방을 향해 대략 반시간 정도 칭찬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유다인들은 대개 이런 인사를 주고받았다.

     유다인들이 즐겨하는 인사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먼저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는 인사법이 있었다. 이때는 인사말을 건넬 수도 있고, 말 대신 그냥 손으로 반갑다는 의사를 표시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건네는 인사말에는 그리스식으로 '기뻐하시오', '평안하냐?'(마태 28,9 참조) 또는 '여러분에게 평화'라는 표현들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입맞춤도 인사법 가운데 하나였다. 이 인사법은 서로 각자 어깨에 손을 얹고 앞으로 끌어당기면서 오른쪽 뺨과 왼쪽 뺨에 번갈아 가면서 입을 맞추었다. 사도 바오로가 로마교회 교인들에게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편지한 것도 이 인사법을 의미한 것이었다(로마 16,16 참조). 그런데 나중에 이런 입맞춤을 남용하는 일이 벌어지자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만 서로 '거룩한 입맞춤'을 나누도록 제한하는 규정까지 등장했다.

     지금도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과거의 손님 환대 풍습이 남아있는 곳도 있다. 물론 성서에 나오는 수준의 손님 환대 모습은 찾기 어렵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광야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베두인족들은 지금도 손님을 환대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유다인들은 나름대로 기간을 정해 놓고 위험한 광야를 가는 나그네를 일정 기간 보호해주는 것이 관례였다. 유다인의 풍속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유다인들의 인사법을 올바르게 아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평화신문>
    (사진설명)
    예수께 입맞춤하는 유다(부분), 1295, 프레스코, 모나스트리성당, 마케도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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