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이 오신 것은

하늘과 땅의 입맞춤

영원과 시간의 만남

인간을 하느님으로 이끌기 위하여

하느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


연길성당 성탄구유


"온세상 사람 모두 함께 예수성탄을 경축하자"

성딴콰이러 !!!

연길 지하성당 제대

겨울이라 성당안으로 모신 성모상과 성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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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는

역사가 토인비(Arnold Toynbee) 박사가 자주 인용하던 말이다.
청어 이야기
북해 바다에서 청어잡이를 하는 어부들에겐 
한 가지 큰 고민거리가 있었다. 
청어를 잡아 런던으로 이동하는 동안 
더운 배 밑창에서 청어가 죽어버리거나 
신선도가 떨어져버리는 것이 늘 문제였다. 
그러나 유독 한 어부의 배 밑에는 늘 
방금 잡은 듯 싱싱하게 펄떡이는 
청어들로 넘쳐났다. 
다른 어부들이 그 비결을 묻자, 
그 어부가 대답했다. 
“청어 속에다 굶주린 메기를 
몇 마리 집어 넣어 보시오. 
메기녀석들이 청어를 쫓아다니는 통에, 
청어들이 안 죽겠다고 발버둥을 치니깐 
저리 싱싱하지. "
***
삶도 마찬가지. 
'메기' 없는 삶이 결코 '편안한 삶'일지는 몰라도 
'바람직한 삶'은 아니다. 
편안하고 풍요로운 것만이 행복은 아니라는 것.
'메기'없는 삶은 
오히려 더운 배 밑창에서 썩어가는 
'청어들의 삶'이 되기 쉽다. 
갈등… 
우리를 괴롭히는 이  ‘메기’는 
정녕 우리를 살아있게 하고, 발전시키며, 
성공시키기 위한 
선물일지도 모른다. 
려움이나 고통으로 다가오는 과정을 
이겨내는 사람만이 
진정한 행복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
 
예수님!
그냥 놔두면 죽어 버릴 '청어'였을 나. 
흔들어 깨워 살게 하는 은인 '메기'를 
여지껏 
나의 평화를 깨는 원수로 착각하며 살진 않았는지 
돌이켜 봅니다.
내 영혼에 돋아난 몹쓸 종기를 없애게 해준 
감사하올 이웃에게
마음 한구석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 있진 않은지,
그리하여
'성전'이어야 할 내 마음을 
'감옥'으로 만들며 살지는 않았는지 
되돌아 봅니다.
눈먼 소경을 고쳐주신 주님의 그 손길로 
눈뜬 소경인 제 눈도 고쳐주시어 
오감(五感)의 한계를 넘어 올바로 볼 수 있게 하소서. 
바른 것을 바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 마저 열어 주소서. 
 박종훈 I'm Here(only for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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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사파동공동사목성당의 성탄구유>

우리에게 사람의 아들로 오신 분

우리에게 마르지 않는 진정한 희망을 주신 분

우리에게 감히 영원을 바라볼 자격을 주신 분

가슴 가득

기쁨과 설레임으로

기다립니다

당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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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아들 수도회 제대>



천주교 신자 10년간 74%증가 - 개신교계 목회사회학硏 포럼


올해 5월 통계청이 발표한 2005년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0년 간 우리나라 3대 종교 중 불교를 믿는 인구는 3.9%, 천주교는 74.4% 증가한 반면 개신교는 1.6% 감소했다.
왜 개신교 인구는 줄고, 천주교 인구는 크게 늘었을까. 그 원인을 교회를 다니다 성당으로 옮긴 개종자들에게 직접 알아본 연구 결과가 나왔다. 개신교계 목회사회학연구소(소장 조성돈ㆍ실천신학대학원 교수)는 30일 기독교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리는 ‘현대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가톨릭 성장’ 주제의 포럼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한다.

정재영 실천신학대학원 교수와 이승훈 한림대 연구교수가 함께 진행한 이 연구는 개종자 16명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고 있다. 개종자 연구로는 국내 처음인데, 서울 시내 한 성당의 도움을 받아 30~70대 여성 14명을 심층면접하고 50대 남성 2명을 서면 조사했다.

왜 교회를 떠났나, 왜 천주교에 끌렸나, 두 방향에서 질문을 던져 나온 답변은, 거칠게 요약하자면 ‘교회에 질려서, 가톨릭이 좋아 보여서’다. 이들은 강요하는 교회, 자리 싸움하고 외형에 치중하는 등 세속에 찌든 개신교가 싫다고 답했다. 반면 천주교는 성스러워 보이고, 융통성 있고, 자유롭고 품위있게 종교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개신교에 대한 이들의 반감은 그대로 한국 교회의 일그러진 초상이다. “천주교는 묵상을 강조하는 데 반해 개신교는 덮어놓고 믿으라고 한다” “ 교회 안에 헌금 그래프까지 그려놓고 헌금을 많이 내라고 강요하더라” “교인들이 장로나 권사가 되려고 선거운동 하는 모습에 질렸다” “예배에 한 번 빠지기라도 하면 죄인 취급한다” “가족 같은 분위기를 강조하며 사생활까지 마구 파고드는 교회가 불쾌하다” “막무가내식의 지나친 전도, 자기 교회에만 나오라는 강요 등이 피곤하다” 등등. 역사학 박사인 한 여성 개종자는 교회를 ‘시댁 같은 곳’이라며, ‘사모님 없는 교회, 밥 안 먹는 교회’를 찾아보니 그게 바로 성당이더라고 했다.

이들을 성당으로 이끈 가장 큰 힘은 ‘천주교는 성스럽다’는 인상이다. ‘화려하고 활기차지만 시끄럽고 가벼운’ 교회 분위기와 달리 성당은 엄숙해서 그 안에 있으면 감동을 느낀다고 했다. 천주교 성직자와 신자들의 생활 모습도 좋게 보고 있다. 이들은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는 목사들이 아무래도 돈 문제 등에서 세속적일 수 밖에 없는 데 반해 독신을 지키는 신부와 수녀들은 더 성스럽다” “교회 내 직분을 놓고 다투는 개신교와 달리 천주교 직분은 임기제라 개끗하고 암투도 없어서 좋다” “개신교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반면 천주교는 포용적이고 관대하다”고 했다.

연구를 진행한 두 교수는 개종자들이 갖고 있는 두 종교에 대한 상반된 이미지 못지않게 상당수가 큰 갈등 없이 개종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랐다고 말한다. 개종자들은 개신교와 천주교는 형제종교이며 “두 종교의 차이는 ‘하나님’과 ‘하느님’의 차이 밖에 없다”고 했다. 애초부터 개신교인으로서 종교적 정체성이 약했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이에 대해 두 연구자는 “현대인들에게 종교는 더 이상 실존 차원의 중대 결단이 아니라 지극히 사소하고 개인적인 선택임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표본이 크지 않고, 여성에 집중됐으며, 성당에서 교회로의 반대 방향 개종에 대한 연구가 아직 없어 대조해보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바람직한 종교의 모습을 생각케 하는 자료로서, 개종자들의 목소리는 새겨 들을 만 하다. 이는 신자수 감소를 겪으며 ‘교회 위기론’을 부르짖는 개신교 뿐만 아니라 시대 변화에 따른 선교 전략을 고민하는 모든 종교에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2006-11-24 한국일보, 오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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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태종대 성당의 대림초>

대림시기(待臨時期)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을 준비하고, 재림할 구세주를 기다리는 시기.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 대축일을 앞두고 대림 시기로 한 해의 전례 주기를 시작하는데, 그 기간은 4주간이다.

[유래]

교회 안에서 대림 시기의 풍습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4세기 말경에 스페인과 갈리아 지방에서 성탄 대축일을 앞두고 6주간 동안 참회의 기간을 가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때의 대림 시기는 전례와는 상관없이 성탄을 준비하기 위한 금욕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6세기 이후 로마와 라벤나에서 비로소 대림 시기가 전례 안에서 거행되기 시작하였으나 그레고리오 대 교황이 4주간으로 고정하였다. 이 지역에서는 대림 시기가 한 해의 끝 무렵에 거행되었고, 그 의미도 때가 차서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기쁨에 찬 시기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차츰 다른 지역 교회의 영향으로 구세주의 성탄을 준비하는 금욕적 성격도함께 지니게 되었다.

[전례]

예수가 승천한 후부터 다시 올 때까지 깨어 기다리는 것이 교회의 삶이라면 대림 시기는 이런 교회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는 시기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오고 우리 구원은 오직 하느님께만 있음을 확신하며 그분의 오심을 준비시키는 것이다.이렇게 해서 대림 시기의 전례는 구세주의 탄생 전 4주 동안 미사와 성무 일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구원 경륜이 완성될 마지막 날까지 교회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도해 준다.
교황청의 전례 성사성은 1970년에 개정한 '로마 미사 경본'에 수록된 <전례력과 축일표에 관한 일반 지침>(Normae universales de anno litrugico et novum calendarium romanum generale)에서 로마 전례가 지녀온 대림 시기의 두 가지 성격을 보존하여

"대림 시기는 하느님의 아드님이 사람들 사이에 오신 것을 기억하는 성탄의 대축일을 준비하는 시기요, 동시에 그와 같은 기억을 통하여 마지막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도록 영혼이 인도되는 시기이다"라고 설명한다.
이어서 "이와 같은 이중적 성격 때문에 대림 시기는 간절하고 감미로운 희망의 시기이다"라고 덧붙이고 있다(39항).

이 지침에 따라 현행 로마 전례에서는 대림 시기를 4주간으로 고정하고 전례의 성격에 따라 두 부분으로 구별한다. 대림 첫 주부터 12월 16일까지의 전반부는 종말론적인 면을 강조하면서,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도록 준비하는 기간이고, 12월 17-24일의 후반부는 임박한 구세주 탄생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대림 시기의 각 주일의 주제도 이와 같은 전례적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
대림 제 1주일은 오실 구세주를 깨어서 기다려야 하는 교회의 종말론적 자세를 강조하고,
제 2주일은 구세주의 오심에 대비하여 회개하도록 촉구한다.
제 3주일은 구세주께서 오실 날이 가까웠으니 기뻐하라고 권고하며,
제 4주일은 예수 탄생의 예고와 그분이 누구인지를 밝힌다.

대림 시기의 미사와 성무 일도의 기도문들은 주로 이사야 예언서와 세례자 요한의 설교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이유는 이사야 예언서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어렵고 쓰라린 시기에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하고 메시아와 구원 시간의 도래를 약속하기 때문이다. 또한 세례자 요한도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로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구세주가 오셨음을 선포하여 신약의 시간을 여는 역할을 담당하였기 때문이다.그리하여 그는 주님의 길을 닦는 선구자 역할을 하였고,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이미와 계신 그리스도를 가리켜 주었다.사람들에게 구세주의 오심을 알리며 회개하기를 촉구하는 세례자 요한은 '대림 시기의 설교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대림 시기는 천주의 어머니 마리아와 구원 신비와의 관계를 두드러지게 보여 주는 시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시기에, 오롯한 마음으로 성자를 기다리는 마리아는 오시는 구세주를 맞기 위하여 준비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범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때문에 하느님의 구원 경륜에 협력하는 마리아의 모습은 대림 시기 전례에서 잘 부각된다. 대림 시기에 거행되는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12월 8일)은 대림 시기를 중단하는 축일이 아니라, 구원의 신비의 한 부분을 구현하는 축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죄에 물듦이 없이 잉태된 마리아는 구원된 인류 중의 첫 사람이며, 그리스도의 오심의 결정적 열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교회는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을 대림 시기에 거행 하도록 허용한 것이다.
또한 대림 시기에는 제대 주위의 화려함을 피하고 대영광송을 하지 않는다. 오르간이나 다른 악기는 성가를 도와 주기 위해서 사용하며 단독 연주는 피한다. 사제는 회개와 속죄의 뜻으로 자색 제의를 입는다. 그리고 이 식에는 대림초를 켜는데 사철나무 위에 4개의 초를 마련한다. 사철나무는 인간에게 내려질 하느님의 새로운 생명을 뜻하고 4개의 초는 구약의 4천 년을 의미한다. 구세주가 어느 정도 가까이 오셧는지 알려 줌으로써 마음의 준비를 갖추도록 하기 위하여 매주마다 촛불을 하나씩 늘려 켜간다.

[신학적 의미와 영성]

대림 시기는 그리스도의 재림까지 지속적인 대림 시기를 살아야 하는 교회에 깊은 신학적 의미를 보여 주는 전례 시기이다. 구원 신비의 종말론적 차원이 강조되는 시기 : 인간 역사는 하느님의 구원 약속이 실현되는 장소이다.
그리스도는 육신을 취하여 이 세상에 오셨고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구세주가 되셨다. 이 부활하신 분이 시간이 다 찼을 때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오실 것을 믿고 그것이 바로 창조의 완성임을 증언하는 것이 대림 시기이다.
그리고 교회는 세상에서 순례하는 동안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이미" 완성된 구원과, 아울러 모든 신앙인 안에서 장차 실현되어야 할 구원과 마지막 날 구세주요 심판자로 다시 오시어 완료하실 구원 경륜의 "아직" 사이의 긴장 속에서 끊임없이 산다. 대림 시기의 전례는 이와 같은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구세주를 깨어 기다리는 신앙의 자세를 흐트리지 않도록 강조한다.
희망에 찬 기다림의 시기 : 대림 시기는 신앙인으로서 항상 지녀야 할 자세. 즉 희망에 찬 기다림의 자세를 가르쳐 주는 영성의 학교이다.그래서 이 시기의 전례는 신앙인들에게 구세주의 오심을 기쁨과 희망 속에서 깨어 기다리도독 강조한다. 첫 주부터 "야회여, 내 영혼이 당신을 우러러 뵈옵니다. 나의 하느님, 당신만을 믿사오니, 부끄러운 꼴 당하지 않게 하시고 원수들이 으스대는 꼴 보지 않게 하소서"(시편 25편)라고 고백한다.
계시의 하느님은 약속에 충실한 분이기에 약속한 구세주를 깨어 기다릴 때 신앙인 개개인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된다.
그러나 교인들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적으로 드러난 실재 즉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다. 구세주가 오고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알리는 구원의 소식은 신앙인들에게 기쁨으로 가득 찬 새로운 미래를 약속한다.
지금은 거울을 통해서 희미하게 보지만 어느 날 얼굴을 맞대고 볼 날이 올 것이기에(1고린 13,12) 교회는 이 만남을 깨어 기다리며 기쁨 가운데 살아간다. 대림 시기에 교회가 드리는 기도문 "오소서, 주 예수여!"(묵시 22,20)는 기쁨에 차서 기다리는 교회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회개의 시기 : 주님께로 향하는 회개 없이는 그분의 오심을 깨어 기다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삶을 정비하고 새롭게 주님께로 향하여 구세주의 오심을 기다리는 것이 대림 시기의 영성이다. 가깝게는 임박한 성탄을, 더 나아가서는 마지막 날에 오실 구세주를 만나 뵈올 준비를 하는것이다. 그리스도의 육화를 통하여 인간의 역사 안에 들어오신 하느님은 당신과 친교를 맺도록 인간을 부르시고 당신으로부터 멀어진 사람이 다시 당신께로 향하도록 끊임없는 회개를 촉구한다.
대림 시기는 이렇게 회개를 재촉하는 하느님의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에 응답하는 시기이다.그래서 회개하라고 외치는 세례자 요한의 소리는 참으로 대림 시기의 소리이다. 회개하고 주님의 길을 닦아, 오시는 그분을 영접하라고 재촉하는 외침이다.

길을 닦는 방법은 무엇인가?
겸손하고 온유하고 봉사하는 사람들, 즉 예수가 "복된 사람"이라고 선포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됨으로써 하느님과 형제들을 향하여 자기 자신을 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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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란?
하느님은 인간 삶의 여정에 함께 하시면서 인생사의 중대한 순간마다, 그에 필요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한층 성숙한 당신의 자녀로 받아들이시고 끊임없이 은총을 주십니다.

가톨릭교회는 신자들이 신앙 안에서 성장의 단계마다 공동체와 하느님 앞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여러가지 특별한 예식을 통하여 더 깊은 성화의 단계로 이끌어 주십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보이는 표지. 드러내는 특별한 예식을 성사(聖事, Sacramentum)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사를 통하여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은총을 베푸시고, 교회는 그리스도와 함께 성사를 집행함으로써 하느님께 공적 예배를 드립니다.


세례 성사
물로 씻는 예절을 통하여 하느님의 은총으로 인간의 원죄를 없애 주는 성사로서 하느님의 초자연적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의공동체인 교회의 일원이 되어 죄나 죽음을 떨쳐 버린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세례(洗禮)라는 말은 과거의 잘못과 죄악을 모두 씻는다는 의미와 죽음에서 생명에로 새롭게 탄생한다는 부활의 뜻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례성사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기초이며, 신앙생활로 들어가는 입문이고 다른 성사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기 때문에 일곱가지 성사 중 가장 처음에 받는 성사입니다 .


견진 성사
세례받은 신자가 받는 성사로서, 주교의 안수와 축성 성유의 도유를 통해서 성령의 은총을 굳건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세례 성사가 사람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해주는 성사라면, 견진 성사는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신앙적 용기와 영적인 성장을 가져오게 하는 성령의 성사입니다.

즉, 견진 성사는 세례 성사를 통해서 받은 은혜를 굳건하게 해주고 증대시키어 교회와 세상에 더욱 봉사하며 우리의 증거생활을 통하여 성숙한 신앙인으로 다시 성장토록 하는 성사입니다.



성체 성사
하느님의 은총을 받는 칠성사 가운데 가장 핵심적이고 중심이 되는 성사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체 성사를 중심으로 신앙 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성체 성사란 그리스도로부터 축성권을 받은 사제들이 미사 거행중에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성변화시켜 그것을 배령함으로써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가져오게 하는 성사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변화된 빵과 포도주의 형상안에 살아 계시고 영광스럽게 되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모시는 영성체(領聖體)를 통해 더욱 깊이 하느님과 일치하게 되고 교회 공동체와 일치하게 됩니다.


고해 성사
우리는 세례성사로써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세례를 받은 이후에도 악으로 이끌리는 경향은 그대로 계속 남아서 또다시 죄를 짓게 되어 영혼의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몸이 아프면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 약을 먹거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습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비슷한 형태로 이루어집니다.

영혼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지은 죄를 용서받아야 하는데 바로 이를 위해서 고해성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고해성사를 통하여 하느님과 화해하고 교회공동체와도 화해를 합니다.


병자 성사
병자 성사란 여러 가지 질병을 앓고 있거나 신체적 결함으로 고통받는 환자들과 죽을 위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위로와 희망을 베푸는 성사입니다.

병과 고통은 인간의 삶에 시련을 가져다 줍니다. 사람들은 병으로 인해 자신의 무능과 한계, 인간의 유한성을 체험합니다.

병자성사를 통하여 병고로 허약해진 환자의 마음과 신앙을 굳세게 하고, 병자의 구원에 도움이 된다면, 잃어버린 건강을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 은혜를 청합니다.


성품 성사

성품 성사란 교회 내의 신자들 중에서 하느님의 백성을 위해 일할 봉사자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신적능력과 권위를 받는 성사입니다.

교회 내에 다양한 봉사자들이 있지만 성품 성사를 받는 이들은 부제, 사제, 주교가 되어 하느님 백성을 위해 일하도록 특별히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에 자발적으로 응답을 한 이들입니다.


혼인 성사
혼인 성사는 그리스도교 신자인 남녀가 서로 사랑하면서 한가정을 이루어 행복한 생활을 하도록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성사입니다.

교회의 칠성사 가운데 다른 성사들은 그것을 받는 사람이개인적인 것이라면, 혼인 성사는 결혼을 통하여 한몸을 이루고 부부로 맺어지는 남녀가 공동으로 받는 성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혼인 성사는 남녀가 결합하여 이루는 한 가정 공동체를 위한 은사이며, 남편의 역할과 아내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게 해줍니다.

준성사는 성사자체는 아니지만

성사의 버금가는 은총을 받도록 도와주는 것을 말합니다.

성사는 그 거행자체로써 은총을 받게 되는 사효적 효과가 강하다면,

준성사는 그것을 받고자하는 사람의 신심의 정도에 따라 그 효과가 주어지는

인효적 성격이 더 잘 드러납니다.

그런데 준성사란 그리스도께서 직접 세우신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권능을 대리하는 교회가 신자들의 영신적 유익을 위해

제정한것입니다. 이에는 구마, 축복, 축성의 행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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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웅진 신부 항소심서 명예회복


국내 최대 사회복지시설인 꽃동네 운영과 관련,4년여 동안 지루한 법정 공방을 벌여왔던 오웅진(60) 신부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명예를 회복했다.

대전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강일원)는 17일 보조금의 예산 및 관리에 관한 법률위반, 업무방해,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기소된 꽃동네 오웅진(60) 신부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오 신부는 1976년 음성군 맹동면에 꽃동네를 설립, 30년간 부랑인과 알코올 중독자, 정신지체자 등 오갈 곳이 없는 이들에 대한 구제활동을 벌여와 사회복지의 대부로 불려왔다.

그러나 꽃동네의 규모가 커지면서 운영상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꽃동네 자금의 일부가 오 신부 친.인척에게 흘러들어갔다는 의혹이 일어 2003년 1월 검찰의 내사가 시작됐다.

청주지검 충주지청은 1년 8개월여 만인 이듬해 8월 오 신부를 불구속 기소했고 지난해 6월 1심에서 보조금의 예산 및 관리에 관한 법률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당시 재판부는 "오 신부 가족 명의로 구입한 토지는 대학 설립 등에 필요한 등기절차 편의를 위해 명의만 일시적으로 빌린 것으로 보인다"고 횡령 혐의는 무죄를 선고했으나 "허위로 서류를 작성해 5억여원의 국고보조금을 받은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국고보조금을 받아 실제로는 달리 사용한 것이 적절하지 않고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보조금을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꽃동네 운영을 위해 사용한 점이 인정된다"며 무죄를 선고, 오 신부는 4년여 동안 끌어왔던 각종 의혹을모두 털어버리고 명예회복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오 신부와 꽃동네는 적지 않은 시련을 맞기도 했다.

음성 꽃동네는 물론 꽃동네 서울사무소, 경기도 가평 꽃동네, 청원군 현도면 현도사회복지대학 등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는 수모를 겪었다.

오 신부에 대한 수사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동안 꽃동네 운영이 투명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고 꽃동네에 대한 후원자와 자원 봉사자들이 크게 줄기도 했다.

천주교계에서도 오 신부에 대한 수사는 큰 충격이었다.

결국 2003년 3월 오 신부가 꽃동네 회장에서 퇴진하고 청주교구에 꽃동네 대책위원회가 구성되고 신순군 신부가 회장으로 임명됐다.

그 뒤 신 신부를 중심으로 꽃동네가 운영되면서 정상을 되찾기 시작, 신자들을 중심으로 오 신부의 무죄를 요구하는 서명운동도 벌어져 20여만명이 참여했으며 최근에는 꽃동네를 재단법인으로 전환하기 위해 '예수의 꽃동네 유지재단' 설립이 진행 중이다.

오 신부는 이 재단의 이사장으로 추대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 신부의 무죄 판결이 알려지자 천주교계와 꽃동네 신자, 시설 수용자들은 "평생을 부랑자 등을 위해 헌신을 해 왔던 오 신부의 명예가 회복됐다"며 크게 반기고 있다.

이날 대전고법에서 재판을 방청했던 300여명의 신자와 꽃동네 관계자들도 재판을 마친 뒤 오 신부와 함께 현도사회복지대 구내 식당에서 같이 식사를 하며 기쁨을나눴다.

꽃동네 관계자는 "성직자로서 불쌍한 이웃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 온 오 신부의 무죄판결은 당연한 것"이라며 "앞으로도 꽃동네와 오 신부는 갈 곳 없고 사람들을 위한 영원한 안식처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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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의 동식물 이야기]

가난한 사람들의 식량 보리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생소한 단어지만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다. 햇보리가 나올 때까지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으로, 지난해 가을 수확한 묵은 곡식은 다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아 농촌 식량 사정이 가장 어려운 때를 비유로 이르는 말이다.

 이솝우화에 보리 한 알에 욕심을 내다가 덫에 걸린 종달새 이야기가 있다. 종달새는 이렇게 탄식했다. "나는 그 누구에게서도 금과 은처럼 귀중한 것을 하나도 훔친 일이 없다. 한갓 작은 보리 알갱이 하나로 목숨을 잃게 됐으니 나는 얼마나 운이 없고 불쌍한 새인가."

 아주 하찮은 이익을 위해 크나큰 위험을 저지르는 사람에게 교훈을 주는 이야기다. 보리는 일반적으로 값싸고 하찮은 가치 없는 것을 비유할 때 곧 잘 사용한다.

 밀, 벼, 옥수수와 함께 세계 4대 식량작물에 속하는 보리는 맥류 중에서도 생육기간이 가장 짧아 여름이 짧은 곳에서도 재배가 가능하며 온대, 아열대 지역에서 널리 재배한다. 구석기 유적에서도 발견되고 있다니 보리 재배 역사가 오래됐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보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밀 다음가는 주요 식량자원이다. 밀에 비해 값이 싸서 중동지역에서는 지금도 가난한 사람들의 주된 식량으로 이용된다. 우리나라도 쌀이 귀한 1970년대에 쌀과 보리를 반반씩 섞어 먹자는 혼식운동을 펼쳤다.

 성경에서도 보리는 가난의 상징으로 쓰였다. 미디안족이 가난하고 겸손한 기드온을 업신여겨 보리빵으로 비유하는 대목이 나온다.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들이 몰려와서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골짜기에 진을 쳤다. 기드온은 하느님이 이르신 대로 밤중에 미디안 진중으로 들어갔다. 그때 마침 어떤 사람이 동료에게 꿈 이야기를 하는 것을 엿듣게 되었는데 꿈 내용은 보리빵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중에 굴러와 장막을 쳐서 무너뜨렸다는 것이었다. 그 보리빵은 이스라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날이었다(판관 7, 12-15).

 그러나 하찮게 여겼던 보리빵이 하느님 손으로 기적을 행하는 능력이 나타났음을 성경 여러 곳에서 보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보리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 사건이다. 이 기적에서 어린이가 내 놓은 하찮은 보리빵이라도 하느님 축복으로 큰 능력이 됨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요한 6, 1-15).

 성경에서 보리는 죄악과 연관됐고 비열한 사람, 하찮은 것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지금도 베드윈족은 '보리빵의 영혼'이라는 말을 적에 대한 철저한 경멸의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내 간통을 의심하며 질투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아내를 사제에게 데리고 와야 하는데 이때 보릿가루 십분의 일 에파를 예물로 가져와야 했다. 그 예물에는 기름을 따라서도 안 되고 유향을 얹어서도 안 됐다. 그것은 질투의 곡식 제물이며, 죄를 상기시키는 기억의 곡식 제물이기 때문이다(민수 5, 14-15).

 룻기에도 보리와 관련한 이야기가 있다. 나오미는 흉년이 들자 베들레헴에서 기근을 피해 모압 지방으로 이주했는데 남편과 두 아들을 잃게 된다. 나오미가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올 때 모압인 며느리 룻도 함께 따라온다. 보리 수확 때 보리 이삭을 주워 홀 시어머니 나오미를 봉양하는 룻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큰 귀감이 된다(룻 2, 1-23).

 웰빙 열풍이 불면서 가난을 상징하던 보리가 오늘날에는 훌륭한 건강식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보리는 쌀에 비해 열배 이상 풍부한 식이섬유를 함유하고 있어 장 운동 활성화에 도움을 주고 혈중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키는 등 성인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보리는 더 이상 가난을 상징하는 식량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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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의 동식물 이야기]

하느님의 어린 양 - 희생 제물로서 예수 그리스도 상징




 초식동물인 양은 성질이 매우 온순하다. 양에게 소금 또는 먹이를 주거나 위험에서 구해 주면 양은 그것을 기억하고 몸으로 신뢰의 정을 나타낸다고 한다.

 양은 사자나 이리 등 맹수 공격을 방어할 뿔이나 날카로운 발톱, 이빨과 같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따라서 맹수의 공격 앞에서 양은 다만 목자에게 온전히 보호를 요청해야한다.

 양의 털과 가죽은 섬유와 의류로, 고기와 젖은 음식으로 사용한다. 내장과 뼈까지 하나도 버리는 것이 없는 유익한 동물이다. 양은 다른 양을 따라 행동하는 습성이 있다. 예를 들어 앞서 가는 양이 구덩이에 빠지면 뒤따르는 양은 피할 줄을 모르고 계속해서 그 구덩이에 빠진다고 한다.

 또한 양은 성질이 유순해 양털을 깎을때 온 몸을 내맡기고 혹시 상처가 나더라도 묵묵히 참는다. 유목민들이 양식과 옷감을 얻으려고 기르는 양들은 극소한 양의 물과 잔디만으로도 생존할 수 있고, 건조한 시기에는 새로운 풀밭과 물을 찾아 이주할 수 있기에 지중해 동부 메마른 지역에서는 자연적으로 삶의 일부가 됐다.

 양은 성경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동물이다. 구약시대 하느님 앞에 바친 많은 제물 중에 대표될 만한 것이 흠 없고 순진한 1년 된 양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탈출하기 전날 밤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引枋)에 바르고 그 안에서 양고기를 불에 구워 먹고 누룩 없는 빵과 쓴 나물을 먹었다. 그들은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었다(탈출 12, 6-11). 이스라엘 백성의 다급한 상황을 잘 연상할 수 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은 것은 먼 여행길을 떠나는 준비된 종의 자세다.

 성경에서 양을 치는 목자에 대한 언급은 거의 백번이 넘게 나온다. 그만큼 양을 치는 목자는 성경에서 중요한 상징적 의미을 나타낸다. 아브라함, 이삭, 모세, 다윗, 아모스는 모두 목자들이다. 목자들이 항상 남자는 아니다. 리브가(창세 29, 9)와 이드로의 딸들은 여자 목자다.

 양들을 밤에 양우리에서 돌보고 풀과 물이 있는 곳으로 안전하게 인도하는 것은 목자 임무다. 목자들은 아침에 양에게 풀과 물을 먹인 후 한낮에는 보통 그늘지고 시원한 곳에 몇 시간 동안 누워서 쉰다(아가 1, 7). 저녁엔 우리로 돌아와 열병에 걸렸거나 상처를 입은 양들을 돌보곤 한다.

 목자들은 양들을 맹수들로부터 보호하려고 지팡이와 막대기를 지니고 다닌다. 하나는 곤봉같이 생긴 무기와 맹수로부터 양을 구출하고 보호하려고 사용된 손잡이가 구부러진 것이었다. 목자들은 양들의 공급자요, 인도자요, 보호자다.

 히브리인들의 유목 및 농경 생활에서 양의 중요성을 볼 때 성경에서 양과 목자가 영적 진리를 위한 비유로 등장하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양은 일찍부터 이스라엘 경제의 중심을 이뤘다(창세 4, 2).

 양들은 구약 희생제사 제도에서도 매우 중요했다. 양들의 무력함은 성경에서 돌봄과 자비의 대표적 예로 등장하는 선한 목자의 행동과 성품을 잘 설명해준다.

 양은 희생 제물로서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세례자 요한은 이러한 예수님에 대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에 비유했다(요한 1, 29). 신약에서 예수님은 종종 어린 양으로 비유됐다.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흠 없고 티 없는 어린 양"이라고 찬양했다(1베드 1, 19).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희생적이신 목자인 동시에 인간 구원을 위해 희생되신 양이셨다.

(사진설명)
마르끄(Marc, 1931~), '하느님의 어린양', 유리화, 1964~1970년, 취리히 근처 교회, 스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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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의 동식물 이야기]

축복의 근원이 된 밀 - 가나안 축복 약속에 등장한 첫 식물


 오늘날 밀이라고 하면 대부분 밀가루로 쓰인다. 서구 문화는 밀에 기초했다고 할 수 있다.

 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곡물로 수십억 인류의 주식이다. 학자들에 따르면, 밀은 지리학적 식물학적 고고학적으로 빙하기 말기인 기원전 1만5000년~l만년 께부터 이미 있었던 식물이라고 한다. 밀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코카사스까지에 이르는, 서아시아 지역이 원산지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인류와 오랜 역사를 함께한 대표적 농작물이다.

 그 흔적을 살펴보면 67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옛 유적지에서 밀이 발견됐다. 이집트 고분과 신석기시대 유적지에서도 밀이 발견됐다. 또한 기원전 3000년 께 고대 이집트인들이 발효 빵을 만들었다는 학설도 있다.

 발효 빵을 만들게 된 배경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이집트 어떤 게으른 사람이 밀가루를 반죽했다가 빵을 굽지 않고 그대로 두어서 하룻밤이 지난 뒤에 보니, 껍질이 썩은 것처럼 거품이 생겼다. 그래도 버릴 수 없어서 구웠더니, 딱딱한 무교병보다 연하고 맛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 후부터 밀가루에 효모를 넣는 제빵 기술이 개발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밀은 중국을 거쳐 들어왔다. 신라, 백제의 유적에서 밀이 발견된다. 확실한 도입 연대는 알 수 없지만중국과 문물교환이 빈번했던 삼국시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밀은 성경에 수없이 등장하는 중요한 농작물이다.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 가나안 축복 약속에 등장하는 일곱 가지 식물(밀, 보리, 포도, 무화과, 석류, 올리브, 대추야자) 중에서 첫째로 등장하는 중요한 곡물이 밀이다(신명 8, 8).

 성경에서 밀이 처음 나오는 대목은 창세기에서 인간 형상을 한 하느님을 만나는 대목이다. 아브라함은 한창 더운 대낮에 천막 어귀에 앉아 있다가 지나가는 나그네를 만나서 자기 천막에 초대한다. 아브라함은 사라에게 고운 밀가루로 빵을 굽게 한다. 아브라함의 지극한 손님 접대로 사라가 자식을 얻을 것이라는 축복을 받게 된다(창세 18,1-15). 이런 이유로 밀은 축복의 근원이 됐다.

 하란 고원은 밀의 풍산지로 알려져 있는데, 11~12월에 파종해 그 다음해 4~5월에 수확한다. 밀 수확기는 계절 구분의 하나다(탈출 34,22). 보리 수확기보다 약 1개월이 늦다. 밀의 첫 수확은 오순절 제사에 바쳤다. 이 시기에는 한 달씩이나 이삭줍기를 할 수 있었다.

 고대 바빌론이나 시리아, 팔레스티나 등은 관개시설이 없어 자연강우에 의존해서 농사를 지었다. 가뭄으로 흉년이 들어서 기근에 허덕이는 것을, 성경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요셉 시대나 룻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집트는 관개시설이 잘 돼 있어서 농사가 잘 되기에, 기근으로 허덕이는 이웃나라들을 도왔다. 이처럼 이집트의 부유함은 나일강 물로 재배한 밀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집트는 로마제국이나 비잔틴제국의 곡창지대였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왕조 이후 곡물을 수출하는 나라로 번성했다. 솔로몬왕은 성전 건축을 위해 티로임금 히람에게서 건축재를 제공받고 밀을 보내주었다(1열왕 5, 25). 밀은 가루로 만들어 하느님 제단에 드리는 제물용 빵을 만드는 재료였고(탈출 29,2), 혼합빵의 재료이며(에제 4,9), 발효빵을 만드는 재료였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을 신앙에 비유했다(요한 12,24). 밀과 가라지 비유에도 나온다(마태 13,24-30). 예수님은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통해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30배, 60배, 100배 결실을 낸다고 하셨다(마태 13,3-8).

 실제로 밀은 보통 한 알에서 평균 30배 수확을 거두며, 옥토에서는 지금도 100배 수확도 올릴 수 있으니 결코 과장된 표현은 아니다.

(사진설명)
'가라지의 비유', 12세기, 유리화, 영국 켄터베리 대성당. 상단에는 밀을 수확하는 농부가 있고 하단에는 주인 명령에 따라 가라지를 불태우고 있다. '가라지의 비유'는 세상에 선인과 악인이 뒤섞여 있지만 주님의 심판날이 되면 분명히 구별되어 영생과 영벌에 처해진다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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