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은총을 받는 칠성사 가운데 가장 핵심적이고 중심이 되는 성사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체 성사를 중심으로 신앙 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성체 성사란 그리스도로부터 축성권을 받은 사제들이 미사 거행중에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성변화시켜 그것을 배령함으로써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가져오게 하는 성사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변화된 빵과 포도주의 형상안에 살아 계시고

영광스럽게 되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모시는 영성체(領聖體)를 통해

더욱 깊이 하느님과 일치하게 되고 교회 공동체와 일치하게 됩니다.

"교회상식 교리상식 (117) 일곱성사(3) : 성체성사 "

성체성사는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파스카 사건을 기념하는 성사, 곧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로 완성된 구원 사업을 기념하고 이를 현재화하는 성사"를 말합니다. '미사' 또는 '성찬례'라고 부르는 성사가 바로 성체성사입니다. 미사에 대해서는 '미사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소개한 바 있습니다(888호 2006년 9월 17일자~893호 2006년 10월 29일자). 이번 호에서는 「가톨릭교회교리서」(이하 교리서)(1322-1419항)를 중심으로 알아봅니다.
 
 ◇입문성사의 완결인 성체성사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교 입문성사를 완결짓는 성사입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로 하느님 자녀로 다시 태어나 대사제인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며 왕다운 사제 품위에 올려지지요. 또 견진성사로 그리스도를 더욱 닮게 됩니다. 이제 성체성사로써 우리는 온 교회 공동체와 함께 주님의 파스카 희생제사에 참여하며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받아 모시고 주님과 일치합니다.
 
 ◇교회 생활의 원천이며 정점인 성체성사
 성체성사를 "교회 생활의 원천이며 정점"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여러 성사들이 성찬례 곧 성체성사와 연결돼 있을 뿐 아니라 성찬례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 성찬례를 통해,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성부께 단 한 번이자 영원히 봉헌하신 찬미와 감사 제사에 교회와 교회의 모든 지체를 참여시키기 때문입니다.

 ◇성체성사의 다양한 이름
 성체성사 곧 성찬례는 감사 제사, 주님의 만찬, 빵 나눔, 성찬 모임, 희생 제사, 미사 등으로 다양하게 불립니다. 감사 제사는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실 때 빵과 포도주를 들고 '감사를 드리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눠 주신 데서 비롯하지요.
 '주님의 만찬'은 주님께서 수난 전날 제자들과 함께 드신 최후 만찬과 관련되고, '빵 나눔'이란 이름은 최후 만찬 때에 빵을 축복해 제자들에게 나눠 주신 것과 관련됩니다. 또 '성찬 모임'은 성찬례가 신자들의 모임에서 거행되기 때문입니다.
 '희생 제사'는 성체성사가 그리스도의 유일한 제사를 재현하고 교회의 봉헌도 담고 있기 때문이며, '미사'라고 부르는 것은 이 성사가 일상 생활 안에서 하느님 뜻을 실천하도록 신자들을 파견(missio)함으로써 끝나기 때문입니다.
 
 ◇성체성사의 성격
 성체성사의 다양한 이름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성체성사는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성격을 지닙니다.
 첫째, 하느님 아버지(성부)께 드리는 감사와 찬미입니다. 이 감사와 찬미는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 , 당신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감사와 찬미 제사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희생을 기념하는 제사입니다.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십자가 희생제사를 재현하며 이를 현재화합니다. 또 이 제사에 교회는 자신을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온전히 봉헌합니다.
 셋째, 성체성사를 통해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성령의 힘으로 특히 성체 형상 안에 온전히 현존하십니다. 빵과 포도주 형상 안에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실재로, 그리고 실체적으로 현존하십니다. 빵과 포도주가 사제의 축성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꾸는 이 거룩한 변화를 '실체변화'라고 부릅니다.
 
 ◇파스카 잔치인 성체성사
 성체성사는 영성체를 통해 빵과 포도주 형상 안에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를 받아 모시는 거룩한 친교 잔치입니다. 그러나 이 잔치에 참여해 성체를 받아 모시려면 은총의 상태에 있어야 합니다. 곧 대죄 중에 있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이 대죄 중이라고 생각하는 신자는 먼저 고해성사를 보고 죄를 용서받은 후에야 비로소 성체를 모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모심으로써 우리는 주님과 더욱 깊은 친교를 이룰 수 있을 뿐 아니라 소죄를 용서받고 대죄를 짓지 않을 힘을 얻게 됩니다. 또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교회의 다른 지체들과도 일치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서 신비체인 교회 전체 일치도 강화되지요.
 
 ◇다가올 영광의 보증인 성체성사
 성찬례는 하늘에서 누릴 천상 잔치 영광을 미리 누리게 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이제부터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마태 26,29)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성찬례를 거행할 때마다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기도합니다. 그리고 성체 안에서 힘을 얻습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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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받은 신자가 받는 성사로서, 주교의 안수와 축성 성유의 도유를 통해서 성령의

은혜를 받는 성사입니다. 여기서 성령의 은혜란 무엇보다도 세례를 인준하고 세례의

은총을 굳건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세례 성사가 사람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해주는 성사라면 견진 성사는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신앙적 용기와 영적인 성장을 가져오게 하는 성령의 성사입니다.

즉, 견진 성사는 세례 성사를 통해서 받은 은혜를 굳건하게 해주고 증대시키어

교회와 세상에 더욱 봉사하며 우리의 증거생활을 통하여

성숙한 신앙인으로 다시 성장토록하는 성사입니다.

"[교회상식 교리상식 ](116) 일곱성사(2) 견진성사 "

견진성사는 세례로써 하느님 자녀가 된 신자를 신앙 안에서 더욱 굳세고 성숙하게 해주는 성사입니다. 견진성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봅니다.
 
 ◇견진성사란
 "견진성사는 세례성사의 은총을 완성한다. 견진성사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더 깊이 뿌리 내리게 하고, 그리스도와 더 굳게 결합시키며, 교회와 유대를 더욱 튼튼하게 하고, 교회의 사명에 더욱 깊이 참여하게 하며, 실천이 따르는 말로써 그리스도교 신앙을 증언하도록 돕는 성사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1316항).
 교리서의 이 내용을 유심히 살펴보면 견진성사에 대한 설명은 세례성사에 대한 설명에서 "더욱"이라는 표현을 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리서는 견진성사가 "세례성사의 은총을 완성한다"고 정의하는 것입니다.
 견진성사는 세례성사 및 성체성사와 함께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를 이룹니다. 말하자면 세례성사 및 성체성사와 연속성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초창기 그리스도교에서는 세례와 견진을 한꺼번에 집전하고 이어서 성찬례를 거행하는 것이 보통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어린이들 세례가 많아지고 본당 수가 늘어나 교구가 커지면서 주교가 세례와 견진을 한꺼번에 줄 수가 없어지자 서방 교회에서는 세례와 견진을 점차 분리시키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동방 교회에서는 지금도 세례와 견진을 함께 줍니다. 그래서 주교가 견진을 집전하는 서방 교회와 달리 동방 교회에서는 사제가 견진성사를 집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때 반드시 주교가 축성한 성유를 사용해야 합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290항).
 
 ◇견진성사의 특징
 견진성사의 가장 큰 특징은 세례 때 받은 은총을 충만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오순절에 성령을 충만히 받아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했습니다(사도 2장). 또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여 세례를 받은 새 신자들에게 안수를 통해 성령의 선물을 베풀어주었지요(사도 8,15-17; 19,5-6).
 따라서 세례성사가 세례의 물로써 하느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새로남의 성사'라고 한다면 견진성사는 성령을 충만히 받는 '성령의 성사' 또는 '충만함의 성사'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또 세례성사의 핵심이 이마에 물을 부으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줍니다'라고 말하는 데에 있다면 견진성사의 핵심은 주교의 안수(곧 머리에 손을 얹음)와 도유(이마에 기름을 바름)에 있습니다. 물론 세례 때에도 사제는 세례받은 사람 이마에 주교가 축성한 성유를 바릅니다. 이것은 세례받은 사람이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아서, 기름부음 받은 사제이며 예언자이고 왕이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것"(「가톨릭교회교리서」 1241항)을 뜻합니다.
 이에 비해 견징성사 때의 도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과, 그분이 가득히 지니신 성령의 충만에 더 깊이 참여함으로써, 삶 전체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게"(「가톨릭교회교리서」 1295항) 하는 것입니다. 견진성사를 '세례성사의 완성' 또는'성령의 충만'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 견진받는 사람은 주교의 도유를 통해서 성령의 인호를 받습니다. 세례 때 받은 인호와 마찬가지로 이 성령의 인호는 결코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깁니다. 그래서 견진성사 역시 세례성사와 마찬가지로 일생에 한 번밖에 받을 수 없습니다.
 
 ◇알아둡시다
 견진성사는 누가 집전할 수 있을까요? "필요한 경우 주교는 사제들에게 견진성사를 집전할 권한을 줄 수 있지만 자신이 직접 이 성사를 베푸는 것이 합당하다"고 교회는 가르칩니다. 또 죽을 위험에 있는 신자들에게는 아무 사제라도 견진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견진성사는 누가 받을 수 있을까요? 견진성사는 세례를 받았지만 견진을 아직 받지 않은 신자는 누구나 받을 수 있고 또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조건이 따릅니다. 대죄 상태가 아니어야 곧 은총 상태에 있어야 합니다. 또 이성을 사용해 분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나이여야 합니다. 한국 교회는 견진성사를 받을 수 있는 나이를 만 12살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한국천주교사목지침서」 67조). 그러나 죽을 위험이 있을 때는 아직 분별력을 갖지 못한 아이라도 견진성사를 주어야 합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307항).
 견진성사 때도 세례성사 때와 마찬가지로 대부나 대모를 두어 그들의 영적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견진성사가 세례성사와 연속성을 이룬다는 점을 고려할 때 견진성사의 대부 대모는 세례성사 때의 대부 대모와 같은 사람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교회는 제시합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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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로 씻는 예절을 통하여 하느님의 은총으로

인간의 원죄를 없애 주는 성사로서 하느님의 초자연적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의공동체인 교회의 일원이 되어

죄나 죽음을 떨쳐 버린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세례(洗禮)라는 말은 과거의 잘못과 죄악을 모두 씻는다는 의미와

죽음에서 생명에로 새롭게 탄생한다는 부활의 뜻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례성사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기초이며,

신앙생활로 들어가는 입문이고 다른 성사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기 때문에

일곱가지 성사중 가장 처음에 받는 성사입니다.

"교회상식 교리상식(115) 일곱 성사 (1) : 세례성사 "

세례성사는 한 마디로 하느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해주는 성사입니다. "세례성사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기초이며, 성령 안에 사는 삶으로 들어가는 문이며, 다른 성사들로 가는 길을 여는 문이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죄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며,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교회 안에서 한 몸을 이루어 그 사명에 참여하게 된다. 세례는 물로써 그리고 말씀으로 다시 태어나는 성사다"(「가톨릭교회교리서」 1213항). 세례성사에 관한 주요 내용이 다 들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을 중심으로 세례성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봅니다.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기초
 세례성사가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기초라는 말은 세례성사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교 신자 생활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음으로써 우리는 하느님 자녀로 다시 태어납니다. 달리 말하면 하느님께서는 세례 때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당신 생명을 주십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또한 하느님의 생명 안에서, 곧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힘을 얻습니다. 세례성사를 "성령 안에 사는 삶으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 세례성사를 받지 않으면 다른 성사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세례성사를 "다른 성사들로 가는 길을 여는 문"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가톨릭교회는 일곱 성사 가운데 세례성사와 견진성사, 성체성사를 특별히 입문성사라고 부릅니다. 이 세 가지 성사를 통해 우리는 가톨릭교회에 입문해 가톨릭신자로서 온전한 자격을 갖추고 더욱 성숙한 신앙생활을 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 세 가지 성사 가운데서 가장 기초가 되는 성사가 세례성사입니다.
 
 ◇세례 의미와 효과
 '세례'(洗禮)는 라틴어 밥티스무스(baptismus)를 번역한 것인데 '물에 담금' '물에 잠김' '씻음'이라는 의미를 지니지요. 그리스도교 세례 예식은 원래 물속에 잠겼다가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물 속에 잠긴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물에서 나온다는 것은 또한 깨끗이함, 깨끗해짐을 뜻하지요.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죽었다가 깨끗하게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세례 받기 이전, 하느님을 알기 이전의 내가 완전히 죽고 하느님의 자녀로 깨끗히 새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세례성사 핵심 예절은 세례받을 사람의 이마에 물을 부으며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에게 세례를 줍니다" 하는 것인데 이마에 물을 붓는 것은 세례 물에 잠겼다가 나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를 대신해 죽으셨으나 부활하시어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드셨다'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 진리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죄에 죽고, 그리스도 부활에 동참해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죄에 죽는다는 것은 곧 죄에서 해방되어 깨끗해진다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음으로써 우리는 원죄와 본죄(本罪), 곧 우리 자신이 범한 모든 죄를 사함받고 깨끗한 상태로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들게 되지요.
 나아가 세례성사를 받을 때 우리 영혼에는 지울 수 없는 영적 표시인 인호(印號)가 새겨집니다. 이 인호를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스도께서 수행하신 사제직에 참여하며 교회 안에서 저마다의 부과 역할에 따라 교회의 지체로서 한 몸을 이룹니다. 그리하여 교회 사명인 하느님 나라 건설에 참여하는 사명을 함께 수행하는 것입니다.
 
 ◇알아둡시다
 세례성사를 주는 사람은 통상적으로 성직자(주교, 신부, 부제)입니다. 그러나 예외적인 경우에는 평신도가, 나아가 신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세례 집전에 합당한 의향을 지니고 있을 경우 세례를 줄 수 있습니다. 합당한 의향이란 교회가 세례를 줄 때에 의도하고자 하는 것과 같은 의도를 가지고 세례를 주는 것을 말합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256항).
 
 ◇한 가지 더
 세례를 받지 않고 죽은 이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신앙 때문에 죽음을 당한 사람들과, 예비신자들, 그리고 교회를 모르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의 뜻을 은총의 영향 아래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세례를 받지 않았어도 구원받을 수 있다"(1281항).
 세례를 받지는 않았지만 양심에 따라 하느님 뜻을 따르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경우를 교회는 "화세"(火洗) 또는 "열망의 세례"(熱洗)라고 부릅니다. 또 하느님을 위해, 사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의 경우에는 "피의 세례"(血洗)라고 부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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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인간 삶의 여정에 함께 하시면서 인생사의 중대한 순간마다,

그에 필요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한층 성숙한 당신의 자녀로 받아 들이시고

끊임없이 은총을 주십니다.

가톨릭교회는 신자들이 신앙 안에서 성장의 단계마다 공동체와 하느님 앞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 될 수 있도록 여러가지 특별한 예식을 통하여 더 깊은

성화의 단계로 이끌어 주십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보이는 표지로

드러내는 특별한 예식을 성사(聖事, Sacramentum)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사를 통하여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은총을 베푸시고,

교회는 그리스도와 함께 성사를 집행함으로써 하느님께 공적 예배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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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날마다 새롭게 용서하는 용기

용서 받는 겸손이라고

일기에 썼습니다

마음의 평화가 없는 것은

용서가 없기 때문이라고

기쁨이 없는 것은 사랑이 없기 때문이라고

나직히 고백합니다

수백번 입으로 외우는 기도보다

한번 크게 용서하는 행동이

더 힘있는 기도일 때도 많습니다

누가 나를 무시하고 오해해도

용서할 수 있기를

간절히 청하며 무릎을 끓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은

용서하는 기쁨

용서 받는 기쁨입니다

-이해인-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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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대림절에

- 이해인-

때가 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밝고 둥근 해님처럼
당신은 그렇게 오시렵니까?
기다림밖엔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이들의 마음에
당신은 조용히
사랑의 태양으로 뜨시렵니까

기다릴 줄 몰라
기쁨을 잃어 버렸던
우리의 어리석음을 뉘우치며
이제 우리는
기다림의 은혜를
새롭게 고마워합니다.
기다림은 곧 기도의 시작임을
다시 배웁니다

마음이 답답한 이들에겐
문이 되어 주시고
목마른 이들에겐
구원의 샘이 되시는 주님

절망하는 이들에겐 희망으로
슬퍼하는 이들에겐 기쁨으로 오십시오
앓는 이들에겐 치유자로
갇힌 이들에겐 해방자로 오십시오

이제 우리의 기다림은
잘 익은 포도주의 향기를 내고
목관악기의 소리를 냅니다
어서 오십시오. 주님

-사랑할 땐 별이 되고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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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바라보라.
성 알폰소 성인의 거룩한 묵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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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시 해미면 소재지에 위치한 '해미순교성지'

해미는 옛날 내포지역을 관할하던 관아가 있던 곳으로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끝까지 배교하지 않고 기꺼이

순교를 택했던 성지로 일명 '여숫골 성지'라고 한다.


경당 정문



성모 마리아 상



'여숫골' 표지석



순교자의 말씀



무수한 신자가생매장되었다는 '진둠벙'. 성모상도 반이나마 물에 잠겼다.



야외 성당. 신자들이 죽은 수만큼 돌을 놓았다



진둠벙가의 순례시


서문밖 성지 '자리갯돌'. 신자들을 이 위에서 자리개질(높이 들었다 메치는)하여 죽였다



아무 말없이 서있는 서문



날은 저물고......



해미읍성 정문 '진남문'



읍성 성벽



해미읍성은 천주교 성지이다



많은 순교자들이 매달려 죽어간 호야나무가 역사를 생생히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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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깨어 있듯이 우리의 이성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지식이 소용없는 밤이 있습니다.

낮에 열심히 일하듯이 우리의 노력으로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자신하지 마십시오.
일하지 못할 밤이 있습니다.

낮이 밝듯이 우리의 선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 것이 되었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어두움에 물들 밤이 있습니다.

긴 밤을 지나는 동안
하느님 나라와의 연결선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우리는 이성을 가지고 세상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성으로 하느님 나라로 가는 길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힘껏 노력하면 세상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힘으로 하느님 나라의 입구까지 도달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선한 행위로 세상에 자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한 행위로 하느님 나라의 문을 통과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가려면

이성, 힘, 행위가 소용없는 긴 밤을 지나야 합니다.


잠이 든 밤 동안에 우리를 하느님 나라로 데리고 가는 것은

오직 주님이 주신 믿음입니다.

Gabriel's Oboe / The Falls




Yo-Yo Ma, Cello / Ennio Morricone, d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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