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부르면 기도 반은 성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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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 해모수 죽음에 안방이 눈물 바다 | |
해모수의 극적인 죽음이 안방을 눈물로 젖게했다. MBC `주몽`은 3일 방송에서 해모수(허준호)가 짧은 시간 아들 주몽(송일국)과의 애틋한 시간을 보낸 후 부여군사들에 의해 참혹한 죽음을 당하는 장면을 방송했다. 특히, 이날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가슴을 아리게 할 만한 명장면이 쏟아지며 그 감동과 슬픔을 더했다. 유화(오연수)에게서 제자인 주몽이 아들이란 사실을 전해들은 해모수. 한 밤, 아들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어루만지고 쓸어보며 감격과 회한어린 표정을 지었다. 아들에 대한 애틋함과 사랑은 소리 없는 울음으로 토해졌다. 절제된 듯하면서도 가슴속에 솟구치는 안타까움이, 흔들리는 그의 표정에서 생생하게 우러났다. 주몽을 유화에게 다녀오라고 말할 때는 어떤 예감이라도 있었던지 주몽의 손을 쉽게 놓지 못했다. 아들을 한 번 이라도 더 만지고 싶은 듯 아들이 떠난 허공에 손을 짚어보는 해모수. 해모수의 안타까운 심정을 전혀 모르는 주몽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술과 고기를 가져오겠노라 즐겁게 답했다. 이것이 부자의 마지막 장면이었던 셈이다. 결국 해모수는 주몽이 없는 사이, 200 여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온 대소왕자(김승수)에 의해 가슴에 화살세례를 받고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 몸을 움찔움찔하며 주몽과 유화에 대한 못다한 사랑을 남긴 채 숨을 거두는 안타까운 모습은 많은 팬들의 눈물을 뺄 만 했다. 뒤늦게 해모수를 발견한 금와왕(전광렬)의 절규와 넋을 잃고 눈물을 흘리는 유화부인의 애달픈 표정이 눈물샘을 더욱 자극했다. 이렇듯 해모수의 극적인 죽음은 애틋하고 안타까운 부정, 유화와 해모수의 깊은 사랑, 해모수와 금와간 굳은 우정, 부여를 위해 아버지의 벗을 죽였던 대소왕자의 입장을 생생하게 부각시켰다. 허준호, 전광렬, 오연수, 김승수, 송일국이 빚어내는 각 캐릭터의 매력과 깊이가 더해졌던 회였던 셈. 각기 절절한 슬픔을 토해내는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 또한 이날의 관전포인트였다. 이와관련, 한 시청자는 "주몽을 내려보내면서 짓던 해모수의 마지막 표정, 허준호의 해모수는 평생 못 잊을 것 같다"며 가슴 저렸던 소감을 털어놨다. 또 다른 시청자는 "오늘 남자의 눈물의 진수를 보여준 금와는 절절히 심금을 울렸고, 절제된 해모수의 내면연기, 회한과 슬픔이 가득했던 고통스런 얼굴에선 가슴 저린 슬픔을 함께 느꼈다"며 "펑펑 울면서 봤다"고 전했다. 한편, 해모수의 죽음이 그려지며 팬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던 이날 시청률은 AGB닐슨 조사결과 35.7%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 해모수 죽음에 쏟아진 뜨거운 관심을 엿보게 했다. |
돈화에서 서남쪽으로 30여리떨어진 곳에 대조영이 발해를 세운 동모산으로 비정되고 있는 성산
자산이 있다. 산은 높지 않으나 한면은 물이고 사방으로 전망이 좋으며 넓은 들을 거느리고 있다
한글과 한자로 짝을 이루어 세운 안내석
안내석 뒷면. 대조영의 동모산성으로 고증되며 2000m의 성과
동서 성문, 주거지, 연병장과 연못터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어디에도 유적은 찾기 어렵고 들꽃만 무성하다
아쉬움을 안고 정상부에서 한 컷
돌아내려오다 찾은 우물터
서문터임이 분명한입구
산성에서 내려다본 성산자촌. 동네가 너무나 아름답다
성산자촌의 집들은 일정한 크기의 구멍돌로 담을 둘렀다. 발해인의 손길을 느낄 듯....
돈화의 관문 할바령. 발해와 청조의 발상지임을 자랑한다
돈화 시내에 남아있는 평지성인 오동성 안내판
안내판 뒷면
경작지로 남아있는 왕성터에는 주택이 들어설 수 없다
왕성터 옆의 민가. 성터의 돌로 축대를 쌓은 듯
도로확장으로 쫓겨나가게된 '24개돌' 유적
초기 발해 왕족이 묻혀있는 륙정산 고분군. '옛뭇묘지'란 우리말 표현이 너무 좋다
륙정산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개국성 '동모산'
돈화의 대표 사찰 정각사
대웅전의 대리석 기둥이 일품이다
이 땅에 반일민족교육의 기치를 처음 쳐든 이상설 선생의 서전서숙,
당시 룡정은 북간도의 서울이었고 반일민족 교육의 중심이었다
학교터 기념비와 또다른 청년시인 심연수의 시비
선생을 기리는 '이상설정'
기념나무
서전서숙의 옛터는 지금 룡정실험소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조선족소학교로서의 의지가 나타나 보인다
이상설 선생님과
당시의 서전서숙의 모습
마반산(磨盤山)은 작은 오녀산성인듯 사방에 절벽을 거느리고 솟아있다.입구는 하나이고 평평한 정상부에 여기저기 우묵한 건물터가 있다. 성자산성처럼 이곳 또한 고구려, 발해, 금나라를 거치는 국방의 요지였다고 파악된다.
마반산을 가는 길은 초원에 야생화로 아름답다. 뒤로 보이는 곳이 마반산정
산성 입구인 남문
서쪽 절벽 위
건물터 1
건물터 2
북쪽 절벽
가장 높은 동쪽 전망대 위치에서
동쪽 절벽 1
동쪽 절벽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