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이야기 2

연길에서 삼도 가는 길은 풍광이 빼어나다. 드넓은 벌판을 거쳐 천주교 마을 팔도 옆을 지나 감도는 구수하를 끼고 가면 연길시의 급수원인 오도저수지가 나온다. 중국에서 보기 드문 청정수역이다. 물은 맑고 산은 푸르러 호수에 거꾸로 박힌다. 호수가 끝나고 대오도, 소오도 마을이 나온다. 이름은 그렇지만 크기는 소오도 마을이 훨씬 커서 백호 정도 되고 주민은 대부분 한족이다.

길가에 소오도천주교회가 약간은 허술하게 서 있다. 담장 그늘 아래 아주머니 두 분과 여자 아이가 담소를 즐긴다. 말을 건다. 길이 포장이 잘 되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위험하다는 이야기, 동네 이야기를 하고 성당에 신자가 많은지 묻는다. 70명쯤의 신자가 있단다. 전임신부가 없어 정식 미사는 일 년에 한두 번밖에 드리지 못한단다. 그 때 햇빛에 얼굴이 익은 아주머니 한 분이 밭에서 오니까 저 분이 특히 성당에 열심히라며 소개한다. 아주머니는 스스럼없이 인사를 하고 성당을 보고 싶냐고 묻는다. 집이 가까운 듯 금새 다녀오더니 성당 뒷집의 다른 아주머니를 부른다. 그 분이 열쇠를 가지고 있었다. 성당은 그냥 조금 큰 한 채의 일자 건물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먼저 부엌이 나오고 사제관 쯤 될 방이 있다. 다시 들어가니 제법 넓은 캉이 나온다. 이부자리가 있고 칠판에는 성가 가사가 씌어 있다. 다음 방이 성당인데 양 옆으로 의자가 있고 전면에 제대가 있고 벽을 둘러 십자가의 길인 14처가 있다. 사진을 몇 번 찍고 나오니 두 분이 성가를 부르겠단다. 칠판의 가사를 보며 부르는 시골 한족 촌부의 한어성가는 정말 아름다웠다. 나는 박수를 치고 ‘하오팅’(好听:듣기 좋다)을 연발하였다. 그런데 두 분이 다시 나를 캉에 앉으라고 하더니 앞에 서서 나를 위한 성가를 부르겠다고 한다. 내가 좀 어색해 하니까 ‘워먼떠우시이짜런’(我们都是一家人:우리 모두 한 가족이다)이니 환영과 축복의 노래를 불러야 한단다. 내용을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환영의 마음을 가득 담아 부르는 성가는 성당 안을 채웠다. 성당을 다 보고 나서 ‘깐시에니먼’(感谢你们:당신들께 감사한다)하니 서슴없이 ‘깐시에티엔주’(感谢天主:하느님께 감사한다)라고 정정하듯 답을 한다. 참으로 신앙이 몸에 배어있는 분들이다.



집에 가서 물이라도 마시고 가야한다고 하기에 좀 멈칫거려졌지만 그 태도가 너무나 스스럼없어 따라갔다. 안내한 집은 성이 이씨인 성당 회장님 댁이었고 아주머니는 그 분과 가까운 친척이셨다. 한국 교우가 왔다며 할머니, 삼도에 사는데 다니러온 딸, 손자, 그리고 다른 가게보는 아저씨 등등 여러 명이 나오며 인사를 하고 손을 끌어 방으로 안내한다. 방에는 성화와 성물이 많다. 마침 살구를 땄는데 좋은 놈으로 골라 앞에 놔주며 먹으란다. 한국의 살구와 똑같다. 할머니는 저 십자가는 미국 신부가 준 것이고, 이 사진은 그 분들이 왔을 때 찍은 거라며 가지고 오신다. 나도 안면이 있는 미국 신부님, 홍콩 신부님, 이태리 수사님들이 오셔서 가족과 찍은 것이었다.

조금 있다가 회장님이 들어오셨다. 반기는 모습이 가족처럼 따뜻하다. 말씨나 행동이 소탈하기 그지없다. 조금의 꾸밈이나 어색함이 없는 완벽한 자유스러움이라고나 할까? 수박을 썰어 여러 쪽을 먹었는데 또 하라며 나머지 한 쪽을 자기가 먹을 테니까 같이 먹어야 한단다. 나중에 다시 올 때는 마을 앞 냇가에 나가 같이 고기를 잡자고 하신다.

시간이 제법 되어 일어서려니 저녁 먹고 자고 가라고 하는데 내일 출근해야 한다며 ‘이허우이띵짜이라이’(以后一定再来:다음에 꼭 다시 오겠다)를 몇 번이고 말해야 놓아주었다. 살구를 한 봉지 가득 담아 준다. 나오는데 대문 앞에 있는 분도 교우이고, 담 너머 내다보는 분도 교우이고, 골목을 들어오는 잘 생긴 젊은 분도 교우라며 일일이 소개한다. 일일이 악수를 하며 행길까지 나왔다. 회장님께 명함을 주고 전화번호를 받는다. 자기 딸이 연길에서 간호원을 하니 우리 딸아이와 서로 사귀라고 하면서 전화번호를 적어준다. 떠나오는 한동안 회장님은 석양 속에 손을 흔들며 서있었다.

한 나절의 만남이었지만 그 분들의 몸에 밴 믿음과 넘치는 인정과 건강한 낙천성에 마음이 솜처럼 따뜻하다. 다음에 올 때는 잠도 자가며 한족들의 생활 모습도 보고 물고기도 잡고 가능하다면 미사도 같이 드리고 싶다는 행복한 심정으로 돌아왔다.





성령의 인도와

십자가 사랑의 이끄심이 아니라면

누구도 세상 유혹 벗어날 수 없나니.

주님 나의 운명을 고치시고

주님 그대 운명 바꾸시나니.

인생의 교차로곳곳마다 하느님의 은전

그 은혜 감사하여 만면에 눈물 가득하나

마음 속은 한없이 달콤하다오.

십자가 사랑으로 이끌어주셨으니

이 한 몸 평생 변할 수 없고,

주님 세상에 오시어 너를 찾으시니

무엇으로 주님 얼굴 뵈오리.

상심한 영혼 보고서야

어찌 손놓고 바라만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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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이야기 1

林紅. 흑룡강성 오상시조선족고중 3학년 여학생. 대학입시 675점으로 북경대 약학계열 합격.

그러나 임홍은 5살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소아마비 환자인 아버지를 도와 반 가장이 되어 일하며 공부해 온 학생이다. 머리를 땋아 줄 사람이 없어 늘 단발머리를 하고 아침 저녁으로 불을 때고 밥을 해서 아버지를 모셔오면서도 언제나 낙관적이고 밝은 모습이었으며, 학교를 계속 다니려면 공부를 잘해서 학용품을 타고 장학금을 타야 했기에 열심히 공부하여 늘 1,2등을 놓치지 않았단다.

동네 사람들도 임홍이를 기특히 여겨 빨래감도 가져다 빨아주고, 채소나 김치같은 먹거리를 가져다 주었단다. 임홍이가 난생 처음 새 옷을 입어본 것은 고3 때였다. 늘 남의 헌옷을 받아 입다가 교장선생님이 그것을 알고 새 옷을 사준 것인데 새 옷을 받아들고 어린애마냥 펑펑 울었단다.

흑룡강성 조선족 수험생 이과수석을 하며 북경대에 당당히 합격했으나 학비가 1년에 6천원이고 생활비에 당장 북경까지 갈 차비도 없는 처지인지라 평소 연길성당 신부님과 안면이 있는 흑룡강성 나춘봉 기자가 임홍을 데리고 밤을 새워 연길에 온 것이었다.

그날 연길성당에서는 임홍을 위하여 2차 봉헌을 했다. 많은 신자들이 나름껏 모은 돈이 당장 평소 주일봉헌금의 두 배를 넘었다. 미사가 끝나고 나는 성당 옆에 가서 두 사람을 만났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키에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안경을 끼었는데 눈빛에 총명함이 배어 있고 대답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정확했다. 나는 따로 약간의 돈을 넣은 봉투와 명함을 주었다. 나중에 어려움이 있으면 연락 달라며.... 그러나 나중에 생각하니 잘못한 것 같았다. 마음 여린 소녀가 어렵다고 어찌 먼저 도움을 청하겠는가? 이쪽에서 알아서 도와주면 몰라도. 긴 막대 휘둘러도 걸릴 것이 없는 가난한 조선족의 딸이지만 이 넓은 중국의 수도 북경에 가서 소중한 뜻 마음껏 펼치고 인재 중의 인재로 성장하길 간절히 기원하며 며칠 동안 그를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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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원무 선생님은 연변의 작가이시다. 연변의 사람과 자연과 역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장편, 단편, 동화는 물론 수필과 번역에도 업적이 많다.

6월 [작가와의 만남] 시간에는 자그마한 몸집에 인자하고 겸손한 웃음의 류원무 선생님을 모시고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




< 작년 가을 북한 무산시를 배경으로 호곡령에서 찍은 선생님의 모습>

고향이 그리워

류원무


120년전에 우리네 할아버지들이 두만강을 건너고 오랑캐령(남강산 줄기)을 넘어선 그 땅이란 과연 어떠하였을까? 선조의 성지라고 청나라 황실에 의하여 2백여년 봉금(封禁)되어 온 연변 땅은 산에는 원시림이 하늘을 가리고 들판에는 버들숲, 갈대숲이 무성한 황폐한 땅이었다. 여름이면 사득판에서 흐르는 시뻘건 물이 부글부글 괴고 겨울이면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참나무가 쩡쩡 얼어터지는 험한 고장이었다. 그러한 땅에 범, 승냥이가 득실거리고 인피를 쓴 화적이 날치었다.

살길을 찾아 정든 고향을 등지고 일가친척 다 버리고 낯선 땅에 들어선 우리네 할아버지들은 고향이 그립기만 하였다. 타향살이 설움에 울고 고향이 그리워 울었다. 울면서도 서너 집, 일여덟 집 물이 맑은 샘물을 찾아 마을을 앉히고 서로간에 상부상조하며 모진 목숨을 이어가며 황무지를 일구었다. 꿈에도 그려보는 고향, 고향의 체취, 고향의 온기를 느껴보고자 우선 마을이 름을 조선식으로 지었다. 라남이요, 경성이요, 어랑촌이요 하고 고향 이름을 그대로 옮겨오기도 하고, 마을이라는 뜻으로 고향에서처럼 리(里)자를 달아 고성리요, 토성리요, 청산리요 하기도 하고, 동(洞)자를 달아 약수동이요, 봉암동이요, 신선동이요 라고 하였다. 골짜기가 좀 깊으면 안개골이요, 피나무골이요, 소골이요 하면서 한족들의 골짜기 구(沟)자를 따르지 않았다. 또 벌이 어지간히 넓으면 중평이요, 십리평이요, 룡수평이요, 구룡평이요 하고 마을 이름을 평(坪)자를 붙여지었다. 그리고는 머루, 다래, 고사리, 인삼이 나는 아름다운 산을 두고는 시루봉이요, 베개봉이요, 수리봉이요, 장고봉이요 하고 우리네 형상 사유대로 지형지모에 따라 이름을 지었다. 고향과 같이 정다운 마을 이름들, 특히 동(洞)자와 평(坪)자가 달린 마을 이름은 넓으나 넓은 중국땅에서 오로지 연변땅에 있을 뿐이다. 서쪽으로 안도현 하발령을 넘고 북으로 왕청현 로송령을 넘으면 이런 지명들이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마을들이 툰(屯)이나 촌이나 보(堡)로 불리우고 있다.

연변대학 심혜숙 교수의 저서 《중국조선족 취락지명과 인구분포》에는 조선족 마을 지명이 708개 올라있는데 그중에는 팔가자(八家子), 개산툰(开山屯), 동불사(铜佛寺) 등 한어 지명도 있고 마적달(马滴达), 합달문(哈达门), 밀강(密江) 등 만족어 지명도 많지만 태반은 순 조선말 지명이다. 그중 동(洞자가 달린 지명이 183개, 평(坪)자가 달린 지명이 64개, 골자가 달린 지명이 26개, 도합 273개로서 총지명의 3분의 1이 넘는다.

물은 생명수이고 농업의 명맥이다. 자고로 벼농사를 즐겨온 우리네 할아버지들은 그 물을 떠날 수 없어 마을 이름을 강, 하, 천, 수, 계(溪), 호, 포(浦)자를 달아지었고 그래서 생긴 이름이 룡강동(龙江洞)이요, 하전(河田)이요, 조양천(朝阳川)이요, 한수평(汉水坪)이요, 계동(溪洞)이요, 청호촌(清湖村)이요, 삼포동(三浦洞) 등인 바 연변 지역에 물을 따라 지은 마을 이름이 도합 48개이다.

이밖에도 연변지명에서 흥미있는 것은 룡(龙-龍)자가 달린 지명들이다. 룡(龙)은 위엄과 권력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물의 상징이기도 하다. 한족 지명에는 룡(龙)자가 든 것이 별로 없지만 물을 좋아하는 우리네 마을 이름에는 룡(龙)자가 달린 지명이 적지 않다. 특히 연변땅을 살찌워주고 있는 해란강 량안에 룡(龙)자가 달린 마을이름이 많다. 룡정(龙井), 화룡(和龙) 두 시의 소재지 이름을 내놓고도 룡수평이요, 룡포요, 룡원이요, 와룡이요, 룡연이요 모두 55개나 된다.

이외에도 방천이요, 남석이요, 벌등이요, 천벌이요, 새쓸이요 하는 등 순 조선말 지명이 수두룩하다.

실로 김치, 깍두기, 된장처럼 내음이 물씬물씬 풍기는 차붓하고 정이 붙는 지명들이다. 고향이 아니더라도 고향의 정취가 진하게 풍기는 지명들이다. 《고향이 따로 있는가, 정이 들면 고향이지.》 우리네 할아버지들은 중국땅에다 후손들의 고향을 개척하였다.

버드나무는 그 어디서나 자란다. 산에서도 자라고 골짜기에서도 자라고 들에서도 자라고 진펄에서도 자라고 설산, 초지, 사막에서도 자란다. 뿌리를 깊이 박고 가지를 무성히 뻗으며 버들방천, 버드나무 숲을 이룬다. 200만 조선족이야말로 다른 수목에 잡히지 않는 버드나무 족속이다.

<류원무 저 '연변취담' 중에서>


<룡정 삼합 망강각에서 선생님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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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산에서 바라본 용정의 해란강과 서전평야>

"연변"을 "옌볜"이라 부르지 말아주세요!


우리 200만 중국 조선족에게는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곳이 있습니다. 그 곳은 우리 조상들이 직접 하나하나 손끝으로 일궈낸 터전이며, 우리들이 태어나 자란 곳이며 지금까지 백여 년간 우리글, 우리말이 살아 있는 곳이며, 우리의 전통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고장입니다. 이곳은 우리들의 자랑이며 삶의 터전입니다.

이곳을 "옌볜"이라 부르지 말아주세요! 이곳은 "연변(延边)"입니다. 그곳에는 우리 조상들이 피땀으로 일군 밭과, 손수 지은 우리 민족의 전통 가옥과,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던 학교와 그들이 돌아간 묘소가 고스란히 있습니다. 그들이 죽어서도 기억하고 있을 이름은 "연변"입니다.

연변, 우리의 고장입니다.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정다운 도시들, 그 도시들 이름 역시 우리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우리 민족의 이민사에 행낭을 풀어 놓고, 정착했던 첫 고장 - 룡정(한국어 두음법칙에 따르는 것을 용허한다면, 용정龙井), 이곳을 "룽찡"이라 부르지 말아주세요! 지금도 마르지 않고 흐르는 해란강이 신음하며 웁니다, 그것을 내려다보며 선구자 말 달리던 그 곳에 꿋꿋이 서있던 일송정이 가슴 아파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배를 타고 건너왔던, 그 설움으로 꽉 찬 가슴을 시원한 물바람으로 씻어버리고 희망을 찾아 나섰던 그 뱃길, 두만강 기슭에 자리 잡은 정다운 도시 - 도문(图们), 이곳을 "투먼"이라 부르지 말아주세요!

지금은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수부로, 번화한 도시로 발돋움한 곳 - 연길, 이곳을 "옌지"라 부르지 말아주세요! 고국행 다녀와 이곳에 터전을 마련하고, 한국의 한강이 그리워 부르하통하에 한강변 도로처럼 만들었습니다.

연변에서 한국 간 '량국화'이야기로 알 만한 사람들 다 알건데... 네, 그 곳 - 화룡(和龙)입니다. "허룽"이라 부르지 말아주세요!

중국 - 그 큰 땅덩어리 한 귀퉁이에, 반도와 이어진 그 꼭대기에 우리가 있습니다. 우리 200만 중국 조선족 동포들이 있습니다. 그 땅을 100년도 넘게 지켜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곳에서 우리글과 우리 전통, 그리고 우리 민족의 얼을 지켜 온 사람들입니다! 우리는용케 우리말을 지켜내 왔건만, 어찌 당신들이 이제 와서 우리 이름마저 제멋대로 고치려 듭니까! 중국의 다른 지명, 인명을 중국에 오래도록 살아오면서 한자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 우리 언어에 꼭 맞게 불러온 우리의 방식을 완전히 무시하고, 자신들의 협소한 생각에만 근거하여 전부다 듣도 보도 못한 발음으로 왜 고치려 하십니까!

각종 논문, 잡지, 인터넷 자료들을 보면 중국의 지명은 현재 기존의 한자어와 마구 혼동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각 항공사, 정부 부처, 학교 교과서 등 모든 지면상에서 더 이상 우리 아름다운 이름을 정확치도 않은 중국어 발음으로 잘못 부르는 오류를 즉각 시정해 주기 바랍니다.

이들을 대표하는 키워드 : 조선민족의 얼, 선구자의 노래, 아리랑, 한복 ,김치, 순대, 보신탕... 어느 하나 다른 것이 있나요?


조조의 아들 조식의 「七步詩」가 떠오르네요.

煮豆燃豆萁(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

豆在釜中泣(콩이 솥 안에서 눈물을 흘리네)

本是同根生(본래 한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相煎何太急(서로 들볶는 것이 어찌 그리 심한지)


심춘화 한국충남대학교경영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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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맞춤법 외래어표기법의 외국의 인명, 지명 표기법

중국 인명은 과거인과 현대인을 구분(1911년 신해혁명 기준)해 과거인은 우리식 한자음대로 표기하고, 현대인은 원음을 따라 표기하되 처음에 한해 한자를 괄호 속에 병기한다.
과거인 : 공자(孔子), 노자(老子), 제갈량(諸葛亮)
현대인 : 덩샤오핑(鄧小平), 주룽지(朱鎔基), 청룽(成龍)

일본 인명은 과거와 현대 구분 없이 원음을 따라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처음에 한해 한자를 괄호 속에 병기한다.

고이즈이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기타 외국 인명은 원음만 적고 로마자를 병기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토니 블레어, 사담 후세인, 조지 W 부시

단,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나 노벨상 수상자 소개 등 필요할 경우 괄호 속에 로마자를 병기할 수 있다.

윌레 소인가(Wole Soyinka) : 198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 200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한자권 외국의 지명은 원음을 따르되 처음에 한해 괄호 속에 한자를 병기한다.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도쿄(東京), 교토(京都)

기타 외국의 지명은 원음을 따라 적고 로마자는 병기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워싱턴, 로마, 런던, 벤쿠버, 취리히, 카이로, 바그다드

단 고유명사의 번역명이 통용되는 경우나 관용되고 있는 지명은 이를 허용한다.

태평양(Pacific Ocean), 흑해(Black Sea), 남미(南A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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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昌辰 : 맞는 말입니다. 제가 여기서 여러 번 이 문제를 이야기했습니다. 중국의 인명과 지명은 우리 한국어 한자음으로 발음하고 적어야 합니다. 도대체 왜 중국의 인명과 지명을 발음도 하기 어렵고 뜻도 알 수 없으며 기억하기도 어려운, 이상한 중국어를 흉내내는 겁니까? 도대체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렇게 하면 무엇이 좋습니까?

중국 땅에 사는 사람도 한국어로 '연변'이라 하는데, 왜 한국 땅에 사는 사람이 되지도 않은 중국말( 정확지도 않은 중국어 발음)로 "옌볜"이라고 병신 육갑을 떠는 겁니까? 도대체 정신들이 있는 짓거리입니까? 이걸 外來語表記法이라고 만들어놓은 인간도 문제지만, 아무 생각도 없이 그대로 따라 글을 적는 사람들도 한심하기는 똑 같습니다.
아무리 정부가 시킨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자기가 글을 적을 때는 자기 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고 이치에 맞도록 적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신문들은 정부가 정해놓았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연변'을 "옌볜"이라고 적고 있는데, 그 말이 중국 연변에 사는 우리 동포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행위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 그 행위가 원래 우리 땅이었던 간도 땅을 우리 영토가 아니라고 스스로 抛棄하는 행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만주 벌판이 옛 우리 고구리(高句麗)땅이었음을 스스로 부인하는 머저리 같은 행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중국의 東北工程을 도와주는 행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여기서 여러 번 적었지만 중국이나 일본의 인명이나 지명을 우리 한자음으로 적어온 것은 수천 년 내려오는 우리말의 悠久한 傳統입니다. 그에 반해서 그쪽 중국어나 일본의 발음대로 적으라는 것은 광복후 새로 정한 외래어표기법에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는 달리 전 세계의 모든 나라는 외국의 인명이나 지명을 모두 자기식 발음으로 말하고 적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도 안 되는 불합리한 이유 때문에 이 규정이 만들어진것도 모르고, 또 그 규정대로 외래어를 적으면 얼마나 불편하고 불합리하며 또 우리에게 불리한 결과가 오게 되는지도 모르고(혹은 알면서도),오늘날 우리 국민은 무조건 그 규정을 그대로 따라 합니다. 참으로 답답한 일입니다. 일반인이 그러는 것은 국어학의 이치를 모르니까 어쩔 수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신문사나 방송사와 같은 그래도 專門性을 갖춘 집단이 그 잘못된 규정을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저로서는 도무지 理解가 가지 않습니다. 그래 그 많은 신문 기자나 방송 기자중에 이 규정의 잘못된 점을 알아챌 만한 국어학 지식을 가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말입니까?
오죽하면 중국 동포가 우리에게 抗議하고 부탁하겠습니까? 제발 정신을 차리고 살라고 말입니다. 지금 저 신문 기사에서 "지린(吉林)성 룽징(龍井)시"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길림성 용정시"가 아닙니까? "지린성"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지린성"이라는 말을 듣고 무슨 뜻을 지닌 지역인지 짐작이 갑니까? 거기가 무슨 지린내가 나는지역입니까?왜 "지린성"입니까?그렇게 뜻도 알 수 없는 말을 왜 합니까? 우리가 모두 미친 놈입니까? 도대체 왜 이런 뜻도 모르는 말을 합니까?
"룽징(龍井)시"라는 말에서 우리는 '소리'와 '뜻'의 두 가지 요소 중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룽징"은 '소리'를 택하는 것이고(그것도 우리 소리가 아닌 중국인의 소리), '龍井(용정)'은 '뜻'을 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말을 합니까? 말은 궁극적으로 어떤 '뜻'을 전달하기 위해 하는 겁니다.'소리'는 그 뜻을 담아서 전달하기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그런데 우리가 그 지명을 '룽징'이라고 하는 것은 그 수단만 위하고 정작 그 목적인 뜻은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이른 바 "달을 가리키니까 달은 안보고손가락만 본다"는 말로 비유할 수도 있습니다.중국인은 '룽징'이라고 하면 그 지명의 '뜻'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룽징'이라고 그곳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룽징'이라고 하면 그 '뜻'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룽징'이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뜻'이 안 통하기 때문입니다.우리는'龍井(용정)'이라고 해야 그 '뜻'을 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龍井(용정)'이라고 해야 하는 겁니다. 저 중국 연변의 동포는 ''龍井(용정)'이라고 해도 그 '뜻'을 알고 '룽징'이라고 해도 압니다. 하지만 그들은 한국인이라는 自覺이 있기 때문에그 둘 중에 그래도 '龍井(용정)'을 택하여 부르는것입니다. 그런데정작 중국도 아닌 이 땅에 사는 우리가 그곳을 '룽징'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自覺도 없기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우리들이 넋이 빠진 인간들이기 때문에 그곳을 '룽징'이라고 뜻도 모르고 부르는 원숭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것입니다. 넋이 나갔기 떄문입니다. 우리 국민 전체가 집단으로 미쳤기 때문입니다.
민족시인 尹東柱 시인과 文益煥 목사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 "용정시"지 무슨 "룽징시"입니까? 왜 이런 미친 말을 합니까? 우리가 모두 중국인의 종입니까?그리고 '북경'이지 무슨 '베이징'입니까?'상해'지 무슨 '상하이'입니까?'심양'이지 무슨 '선양'입니까?그 땅들은 모두 과거에 우리 조상들이 차지하고 있던 우리 땅입니다. 그 땅을 중국말로 부르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역사를 부정하는 미친 짓입니다.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이렇게 집단으로 바보같이 미치는 민족은 망해서 역사에서 사라지는길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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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龙门石窟


金聖鍊


窟上有

窟下有

窟内有

窟外有


窟内有

窟外有

窟上有

窟下有


窟窟

成为数

佛佛相

成为十


从数身高的佛像

到小指般的菩萨

石工的念愿

连连数百

五里石

成为极


俯瞰荡漾的伊河

依托香山寺钟声

在雕刻的凿

活下身体

活下笑容

活下姿态

活下衣角


所以

佛和菩萨

金刚和仁王

罗汉和飞天

又高又低

又大又小

又粗又细

又深又浅

和和谐谐

实现大世界的

龙门石窟


2007.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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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김 성 련


부드러운 용트림으로 둘러싼 능선 아래 밭이 있고 동네가 앉고 과수원이 자리하고 시내가 흐르는 곳, 진달래 살구꽃 흐드러지게 피고 사과배 꽃봉오리 터져 벌떼가 잉잉거리는데, 산자락 솔빛 한층 싱싱하고 여린 잎으로 양손을 펼친 낙엽송 도열하여 서로 반기는 봄날, 발아래 노란 양지꽃 붉은 할미꽃 자주 제비꽃 연두 찔레 순 지천으로 깔리는 언덕에, 스승 그리워 고운 하얀돌에 창동학교사은비(昌東學校師恩碑) 세우고 의로운 죽음 기린 석천정기선추모비(石泉鄭基善追慕碑) 서 있는 와룡동(臥龍洞)의 봄날 정오. (2007. 5. 5 )

 

 

 

 

 

 

<아늑한와룡동의 모습과 마을 입구 표지석>

 

 

 

 

 

 

 

 

 


 

 

 


<봄을 자랑하는 꽃들>

 

 

 

 

 

 

 

 

<1935년 9월에 세운 사은기념비>

- 위대하도다 사은이여 아름다와라 창동이여 -

 

 

 

<1940년 4월 세운 석천거사정기선추모비>

- 목숨을 초개처럼 여기며 그 한을 황천에 뿌리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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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만나러 가는 길


꽃관 머리에 쓰고
꽃술 저고리 걸치고
아홉 폭 무지개 치마 걸쳐 입으니
어디선가 피리 소리 들려와 퍼지는구나.

비췻빛 구름 사이로
용 그림자,
말 울음소리,
넓은 바다에 반짝이는 달빛

나는야
님 만나러 가는 길이란다.


- 이경혜의《스물 일곱 송이 붉은 연꽃》에 실린
허난설헌시 <선녀의 나들이>(전문)중에서-

그네의 노래


이웃집 친구와
서로서로 그네 탈 때

날개옷 휘날리고
땋은 머리 춤추고
선녀가 되었다.

오색줄에 바람 타고
하늘 높이 훨훨

노리개 소리 찰랑찰랑
버들가지 안개 인다.

그네 타고 내려와서
고운 신발 찾아 신고

돌아와선 말없이
문 앞에 살짝 선다.

얇은 모시 적삼
땀으로 젖어 있고

떨어뜨린 비녀
주워 달라고
누구에게 말할까?

봄비(春雨)

보슬보슬 봄비는 못에 내리고 春雨暗西池

찬바람이 장막 속 스며들 제輕寒襲羅幕

뜬시름 못내 이겨 병풍 기대니愁倚小屛風

송이송이 살구꽃 담 위에 지네墻頭杏花落

곡자(哭子)

지난 해 사랑하는 딸을 잃었고 去年喪愛女
올해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今年喪愛子


슬프고 슬픈 광릉 땅이여. 哀哀廣陵土
두 무덤이 마주 보고 있구나. 雙墳相對起


백양나무에는 으스스 바람이 일어나고 蕭蕭白楊風
도깨비불은 숲속에서 번쩍인다. 鬼火明松楸


지전으로 너의 혼을 부르고, 紙錢招汝魂
너희 무덤에 술잔을 따르네. 玄酒存汝丘


아아, 너희들 남매의 혼은 應知第兄魂
밤마다 정겹게 어울려 놀으리 夜夜相追遊


비롯 뱃속에 아기가 있다 한들 縱有服中孩
어찌 그것이 자라기를 바라리오. 安可冀長成


황대노래를 부질없이 부르며 浪吟黃坮詞
피눈물로 울다가 목이 메이도다. 血泣悲呑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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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의 서정시인 이상각(李相珏)님과 함께

시인은 고향과사랑과 자연을 노래하는 이 시대 보기 드문 로맨티스트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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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절한 마음]

가고 오지 못할 길은

가지나 말 걸

오고 가야 할 길은

오지나 말 걸

가며 오며 뿌린 것이

눈물일진대

오며 가며 밟은 것이

꽃일진대

차라리 눈 감고

보지나 말 걸

그래도 미련은 남아 있던가

약속을 두고 우는 애절한 마음이여

[짝사랑]

주여, 맘 놓고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머얼리 떠나온 이 못난 사나이를

그대 사랑하지 아니하더라도

내게만은 그대를 마음으로

사랑할 자유 주소서

얄미워 하시나이까

못난이 사랑이라서

속마음 사랑인데야

죄될 게 무어리까

너그러이 살펴 주소서

그리움에 몸부림 치오니

울음만 아는 사랑이라도

내게는 소중하오니

이 가슴 쓰리도록 사랑하리다

사랑하다 죽어도 기꺼우리다

주여, 맘 놓고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민들레]

집도 없이 옷도 없이 임자도 없이

이름 없는 산비탈에 고이 피어나

소리 없이 말 없이 고개 갸웃이

속으로만 웃는 뜻 누가 알거나

괴비가 퍼부어도 우산이 없이

광풍이 몰아쳐도 선 자리에서

무심한 발길만 오고 간 시골길을

하냥 지켜선 민들레 아가씨

구수한 입담으로좌중을 압도한 시인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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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연길 새싹유치원의 어린이 축제 모습 - 건강하고 총명한 아이들로 자라고 있다>

현재 중국국적을 가지고 있는 조선족은 한민족의 일원으로 같은 조상을 가지고 있는 고국인 한국(북한포함)과 경제 및 문화적인 면을 포함해 여러 가지 방면에서 불가분리적인 유대(紐帶)관계를 가지고 있다. 현재 2~3중의 복잡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중국조선족은 중화민족이란 하나의 조국觀을 가지고 있는 중국인이나 국적과 민족을 하나로 생각하는 고국의 한국인들과는 엄연히 다른 조국觀과 고국 및 모국觀을 가지고 있다. 祖國, 故國, 母國은 비슷한 애정 및 감정유대를 가진 국가적 개념이지만 분명한 차별과 뉘앙스가 있다.

祖國의 개념은 조상 때부터 대대손손 살아오던 곳을 이르는 말이지만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현재 중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조선족들에게는 중국이 엄연한 조국이 되는 것이다. 고국의 한국인들은 조선족들의 중국 · 조국觀 인식에 대해 난해하고 섭섭해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중국 국적을 가지고 중국국민으로서 중국법률을 지키면서 살아가야 하는 조선족들은 중국을 당연히 조국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한국(북한 포함)은 조상의 뼈가 묻혀 있고 민족문화의 뿌리가 있는 곳이지만 그들에게는 고국으로 간주되지 조국으로는 되지 않는다. 더욱이 고국에서 생활하면서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적지 않은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많은 중국동포들은 엄연한 조국觀과 고국觀을 가지고 있다.

故國은 조상 적부터 대대손손 살아왔던 고향의 나라로 문화적인 뿌리와 역사적인 혈연관계가 얽혀져 있는 곳이다. 현재 중국국적을 가진 소수민족으로 중화인민공화국 56개 민족의 일원에 속하지만 한민족의 문화와 생활습관을 보유하고 있는 한민족의 일원인 조선족동포들은 최근 고국에 대한 대량 방문 및 불/합법체류를 통해 한국에서 경제적 富를 이루고 있다. 이런 면에서 고국은 한민족의 문화적인 동질감과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곳이며, 아울러 언어가 통하고 문화의 근저인 고국은 많은 중국동포들이 ‘코리안 드림’을 실현하는 노다지의 땅이자 고마움과 섭섭함이 교차되어 있는 곳이다. 한마디로 故國인 한국은 생소한 이방(異邦)이 아니라 한겨레 · 동포가 살고 있는 매정하지만 허물없는 ‘친정(本家)’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故國인 북한(조선)은 한국과 다른 이미지로 조선족들에게 각인되고 있다. 물론 같은 사회주의국가이고 냉전시기에도 상호방문과 교류가 지속되고 있었으나 개혁개방의 영향을 받아 시장경제를 일찍 접촉한 조선족사회의 동포들과 현재 폐쇄국가에서 생활하고 있는 조선(북한)인들 사이에는 여전히 동포의 정과 문화적인 유대감은 상존하지만 삶의 가치관과 생활관념 및 이념적 차이가 현저히 존재하고 있다. 최근 생활고로 많은 탈북자들이 연변 및 중국 땅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상황으로 북한동포에 대한 조선족들의 시각은 매우 복잡하며, 이해와 편견을 동반한 한민족의 일원으로 동정과 관심 및 기시가 공존해 오늘날 한국인들이 재한조선족을 바라보는 시각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祖國이란 개념은 국가와 국민의 개념으로 국적과 태어난 곳을 강조하는 의미가 짙게 깔려있고 정치이념에 대한 충성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단순한 개념에서 조국은 공민으로서의 의무를 지키고 국가에 납세하고 정부로부터 보호를 받는 국가적인 개념이다. 故國은 민족과 혈연의 의미를 많이 부여한 개념이고 선조의 고향으로 문화적인 유대를 강조하여 이르는 말이다. 조선족들에게는 민족과 국가의 개념은 별개의 존재로 이는 역사가 남겨놓은 복잡한 정체성에서 기인된다. 한마디로 민족은 고유한 전통이고 문화이며 생활인 반면에 국적 및 국가觀은 현상으로 정치적 의무이자 이념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조선족들의 현명한 인식과 슬기로운 선택이 필요하다.

母國의 개념은 '외국에서 자기나라를 이르는 말로 祖國'이라고 한국 국어사전에 적혀 있다. 이렇게 母國은 祖國과 같은 의미로 통하고 있지만 故國과는 좀 차별되는 뜻도 가지고 있다. 현재 일부 학자들이 한국을 故國이자 母國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대해 필자는 좀 견해를 달리한다. 물론 많은 동포학자들로부터 고국인 한국(북한포함)은 ‘생모(生母)’로 중국은 ‘양모(養母)’로 인식되고 있는 실정에서 조선족들에게는 한국이 故國이자 ‘母國’으로 인정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해외 및 고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많은 조선족들이 자기가 생장한 중국을 祖國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당연히 중국이 母國으로 된다. 이처럼 母國은 엄연한 조국觀과 고국觀을 가지고 있는 중국동포들에게는 변수가 많은 국가적 개념이다. 이는 현재 조선족의 특유하고 복잡한 정체성에서 기인된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중국국적을 소유하고 있는 조선족은 엄연한 중국인이자 한국족의 일원으로 해외동포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조국觀과 고국觀 및 변수로 존재하는 모국觀은 중국조선족만이 가지고 있는 민족특색으로 특유의 민족성과 국가관으로부터 형성된다. 특히 민족과 국가개념을 동일시하는 한국인들은 한민족이라 해서 모두 한국인이 될 수 없고 조선족이란 개념은 완전히 독립적인 민족개념이 아닌 중국국적을 가진 한민족에 대한 별칭으로 중국동포라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중국공민으로서 국가에 대한 의무를 이행해야 하고 조국인 중국에 충성해야 하며, 동시에 조상의 뼈와 민족의 얼이 묻혀있는 고국산천을 동경하고 고국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 중국조선족들의 고민이자 딜레마이기도 하다.

한편 고국인 한국에서 한민족이면서도 이방인의 대우를 받고 있는 중국동포 · 조선족들의 현황에 대해 한국정부의 대책과 한겨레인 한국인들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며, 더욱이 최근 朝·韓 한민족 사이에 불신과 갈등이 팽배한 현시점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고국의 한국인들은 조선족들의 민족觀과 국가觀에 대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차원에서 너그러운 이해와 관용적인 사고가 소요된다. 아울러 한민족이 분단된 ‘두개의 국가’에서 ‘두 민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20세기 치욕의 역사가 남긴 '후유증'이 하루빨리 치유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나”는 ‘양모’이자 조국인 중국을 사랑하며, 동시에 ‘생모’이자 고국인 한국(북한)도 사랑한다.

(이글은현재 한국에 와 공부하고 있는 중국학자 김범송 님의 글입니다. 조선족 입장에서의 '祖國-故國-母國'의 개념이 잘 정리되어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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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숙한 사람    성숙한 사람 


미숙한 사람은 자기와 닮은 사람만 좋아하고
성숙한 사람은 자기와 다른 사람도 좋아한다.

미숙한 사람은 인연도 악연으로 만들고

성숙한 사람은 악연이야말로 인연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미숙한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찾지만,
성숙한 사람은 꼭 해야만 하는 일들로부터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우며 산다.


미숙한 사람은 고난이나
불행한 환경을 견디지 못하지만,
성숙한 사람은 바람과 물결이 항상
유능한 항해사의 편에 선다고 믿으며
그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미숙한 사람은 좋고 싫고를 따지지만,
성숙한 사람은 옳고 그르고를 선택한다.

미숙한 사람은 조그마한 불행도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보지만,
성숙한 사람은 큰 불행도
망원경으로 들여다본다.



미숙한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바라보지만,
성숙한 사람은 미래를 내다본다.


미숙한 사람은 특별한 일들에만 관심이 있지만,
성숙한 사람은 평범하고 작은 일에서 더 많이 배운다.




미숙한 사람은 자신이 선택하려는
그 하나만을 보지만,
성숙한 사람은 선택에서 제외되는
나머지까지를 살필 줄 안다.

미숙한 사람은 구름만 쳐다보지만,
성숙한 사람은 구름에 가려진 태양을 바라본다.



미숙한 사람은 세상이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고 불평하지만,
성숙한 사람은 자신을 먼저 변화시키는 데서
세상의 변혁을 꿈꾼다.

미숙한 사람은 모든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만,
성숙한 사람은 웃음으로 세상을 맞이한다.
성숙한 사람은 결코 늙지 않는다.
그의 성장도 늙는 법이 없다. 그는 안다.
만일 절망을 두려워하면 절망을 받아들이게 되고
실패를 두려워하면 실패를 불러들이게 된다는 것을.




그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것은
자기만족에 머무는 일이다.
그는 모든 일을 자발적으로 행하여
스스로 존엄성을 지니며,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투자함으로
스스로 현명한 사람이 된다.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한 헌신을
한번의 선택이 아니라 매일의 도전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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