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이야기 3

도문시 양수진 정암촌은 일명 충청도 마을이라고 한다. 일제하 충북 옥천과 청원 사람들이 집단이주하여 개척한 동네이기 때문이다.

여름의 폭양 아래 찾은 마을은 길림성 소강(小康)시범마을이 되어 마을 안길이 가로 세로 멋지게 콘크리트 포장이 되고 집도 모두 함석으로 지붕개량을 하여 빨강, 파랑의 지붕이 줄을 맞추었다. 길가에는 버들비슬이 우산 쓴 사람처럼 도열하였다. 노인회관 벽에는 충북대학교의 해외봉사활동 플래카드가 걸려 있고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제비들이 이리저리 날며 집을 짓는다. 구판장 아주머니의 말로는 한국 학생들이 한 이삼일 와서 밭일 거들어 준다고 하다가 이미 떠났단다. 아주머니에게 말을 걸며 이 얘기 저 얘기 하는데 아주머니는 틈만 나면 한국을 가야겠는데 비자가 안 나온다고 걱정이다. 동네가 150호 정도로 제법 큰데 사람들이 한국으로 연길로 산동 상해 등지로 나가서 동네가 조용하고 옛날에는 소학교가 있었는데 아이들도 없어 양수진까지 버스를 타고 다닌단다. 아이들 몇이 구판장 마당에서 배드민턴을 치며 깔깔거린다.



나는 가게를 나와 길가에 앉아 한담을 즐기는 아주머니들한테 가서 옛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노인 분을 물었다. 그래서 안내받아 간 집이 나기천 할아버지의 집이다. 할아버지는 여름인데도 골덴 바지에 긴 소매 옷을 입고 하염없이 장작을 쪼개고 계셨다. 손때 묻은 베레모 밑으로 피부는 까맣게 타고 주름은 골이 깊었다. 올해 78세이시고 9살 때 식구들이 충북 청원군 남일면에서 오셨단다. 기차를 타고 조치원을 거쳐 함경도로 이틀을 온 것이 두만강 가 온성이었고, 온성 다리를 건너 양수와 석두하를 거쳐 정자바위 동네에 오신 후로 평생을 이곳에서 살아오셨단다. 개방되며 한 번 충북대 총장인가 하는 사람이 주선하여 고향을 다녀왔는데 큰 차 타고 옥천으로 청원으로 휙 지나와서 어려서 살던 집터도 확인할 수 없었단다.

할아버지는 확실히 충청도 분이셨다. 한 마디를 한 다음 그 다음 한 마디를 기다리는데 한참이 걸렸다. 할머니는 암으로 돌아가셨고, 아들은 집을 따로 정하여 한 동네에 살긴 사는데 식사까지 따로 해 먹는단다. 딸을 둘 두었는데 큰딸은 화룡에서 소학교 선생을 하고 작은딸은 왕청에서 산단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지은 지 40년이 되었는데 이 곳 집들이 다 그렇듯이 캉에 이어 안방이 있고 이어 웃방과 골방이 있으며 캉 반대 쪽으로는 광이 있고 그 뒤에는 나지막한 외양간이 한 지붕 아래 들어있는 일자 집이다. 안방 캉에는 가마솥이 세 개가 걸려 있고 그 옆에 물 펌프가 들어와 있다.



나는 구판장에 가서 맥주 두 병과 과자 두 봉지를 사가지고 와 할아버지께 따라드렸다. 음식을 씹는 모습을 보니까 치아가 하나도 없어 합죽합죽 하신다. 젊었을 적에는 술을 마시면 동네에서 아무도 못 말렸다고 하시며 술을 너무 많이 먹어 지금은 신장이 안 좋아 약을 대놓고 드신단다. 방 한 쪽에는 크고 작은 약 병이 여러 개 놓여있고, 한 쪽에는 엽연초가 상자 채 있고 말아 피울 사각으로 썬 종이가 놓여 있다. 옛날 선친께서 피시던 그 모습 그대로이다. 문을 꼭꼭 쳐닫고 덥지 않으시냐고 하니까 몸이 안 좋아 밤에는 불을 때야 잠을 주무신단다. 바로 옆 캉에서 불을 때도 굴뚝이 높아 방안에 연기가 전혀 없고, 밥이나 반찬이나 바로 옆에서 끌어다 먹으니 한국처럼 부엌과 방이 따로 되어 있는 구조보다 아주 편하단다.

이 얘기 저 얘기하다보니 할아버지의 최대 관심사는 아들 며느리 한국 가는 문제였다. 좋은 방법이 없느냐 빨리 가야하는데 하시며 여든을 바라보는 지병을 지니신 할아버지가 아들 며느리가 자기 옆을 떠나 빨리 한국 가는 문제에 집착하신다. 아늘 며느리가 다 가면 어떡하느냐 한 명은 안 가는 게 좋지 않으냐 해도 웃기만 하신다. 결국 모든 부모가 그렇듯 자식의 소망이 그대로 부모의 소망이 된 것이다. 아들 며느리가 다 가면 저 건강에 어쩌면 혼자 세상과 이별할 수도 있는데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으셨다.

마을 뒷산 정자바위가 정암촌(亭岩村)을 내려다보는 모습을 뒤로 하고 조금은 착잡한 심정으로 마을을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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