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원무 선생님은 연변의 작가이시다. 연변의 사람과 자연과 역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장편, 단편, 동화는 물론 수필과 번역에도 업적이 많다.
6월 [작가와의 만남] 시간에는 자그마한 몸집에 인자하고 겸손한 웃음의 류원무 선생님을 모시고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
< 작년 가을 북한 무산시를 배경으로 호곡령에서 찍은 선생님의 모습>
고향이 그리워
류원무
120년전에 우리네 할아버지들이 두만강을 건너고 오랑캐령(남강산 줄기)을 넘어선 그 땅이란 과연 어떠하였을까? 선조의 성지라고 청나라 황실에 의하여 2백여년 봉금(封禁)되어 온 연변 땅은 산에는 원시림이 하늘을 가리고 들판에는 버들숲, 갈대숲이 무성한 황폐한 땅이었다. 여름이면 사득판에서 흐르는 시뻘건 물이 부글부글 괴고 겨울이면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참나무가 쩡쩡 얼어터지는 험한 고장이었다. 그러한 땅에 범, 승냥이가 득실거리고 인피를 쓴 화적이 날치었다.
살길을 찾아 정든 고향을 등지고 일가친척 다 버리고 낯선 땅에 들어선 우리네 할아버지들은 고향이 그립기만 하였다. 타향살이 설움에 울고 고향이 그리워 울었다. 울면서도 서너 집, 일여덟 집 물이 맑은 샘물을 찾아 마을을 앉히고 서로간에 상부상조하며 모진 목숨을 이어가며 황무지를 일구었다. 꿈에도 그려보는 고향, 고향의 체취, 고향의 온기를 느껴보고자 우선 마을이 름을 조선식으로 지었다. 라남이요, 경성이요, 어랑촌이요 하고 고향 이름을 그대로 옮겨오기도 하고, 마을이라는 뜻으로 고향에서처럼 리(里)자를 달아 고성리요, 토성리요, 청산리요 하기도 하고, 동(洞)자를 달아 약수동이요, 봉암동이요, 신선동이요 라고 하였다. 골짜기가 좀 깊으면 안개골이요, 피나무골이요, 소골이요 하면서 한족들의 골짜기 구(沟)자를 따르지 않았다. 또 벌이 어지간히 넓으면 중평이요, 십리평이요, 룡수평이요, 구룡평이요 하고 마을 이름을 평(坪)자를 붙여지었다. 그리고는 머루, 다래, 고사리, 인삼이 나는 아름다운 산을 두고는 시루봉이요, 베개봉이요, 수리봉이요, 장고봉이요 하고 우리네 형상 사유대로 지형지모에 따라 이름을 지었다. 고향과 같이 정다운 마을 이름들, 특히 동(洞)자와 평(坪)자가 달린 마을 이름은 넓으나 넓은 중국땅에서 오로지 연변땅에 있을 뿐이다. 서쪽으로 안도현 하발령을 넘고 북으로 왕청현 로송령을 넘으면 이런 지명들이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마을들이 툰(屯)이나 촌이나 보(堡)로 불리우고 있다.
연변대학 심혜숙 교수의 저서 《중국조선족 취락지명과 인구분포》에는 조선족 마을 지명이 708개 올라있는데 그중에는 팔가자(八家子), 개산툰(开山屯), 동불사(铜佛寺) 등 한어 지명도 있고 마적달(马滴达), 합달문(哈达门), 밀강(密江) 등 만족어 지명도 많지만 태반은 순 조선말 지명이다. 그중 동(洞자가 달린 지명이 183개, 평(坪)자가 달린 지명이 64개, 골자가 달린 지명이 26개, 도합 273개로서 총지명의 3분의 1이 넘는다.
물은 생명수이고 농업의 명맥이다. 자고로 벼농사를 즐겨온 우리네 할아버지들은 그 물을 떠날 수 없어 마을 이름을 강, 하, 천, 수, 계(溪), 호, 포(浦)자를 달아지었고 그래서 생긴 이름이 룡강동(龙江洞)이요, 하전(河田)이요, 조양천(朝阳川)이요, 한수평(汉水坪)이요, 계동(溪洞)이요, 청호촌(清湖村)이요, 삼포동(三浦洞) 등인 바 연변 지역에 물을 따라 지은 마을 이름이 도합 48개이다.
이밖에도 연변지명에서 흥미있는 것은 룡(龙-龍)자가 달린 지명들이다. 룡(龙)은 위엄과 권력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물의 상징이기도 하다. 한족 지명에는 룡(龙)자가 든 것이 별로 없지만 물을 좋아하는 우리네 마을 이름에는 룡(龙)자가 달린 지명이 적지 않다. 특히 연변땅을 살찌워주고 있는 해란강 량안에 룡(龙)자가 달린 마을이름이 많다. 룡정(龙井), 화룡(和龙) 두 시의 소재지 이름을 내놓고도 룡수평이요, 룡포요, 룡원이요, 와룡이요, 룡연이요 모두 55개나 된다.
이외에도 방천이요, 남석이요, 벌등이요, 천벌이요, 새쓸이요 하는 등 순 조선말 지명이 수두룩하다.
실로 김치, 깍두기, 된장처럼 내음이 물씬물씬 풍기는 차붓하고 정이 붙는 지명들이다. 고향이 아니더라도 고향의 정취가 진하게 풍기는 지명들이다. 《고향이 따로 있는가, 정이 들면 고향이지.》 우리네 할아버지들은 중국땅에다 후손들의 고향을 개척하였다.
버드나무는 그 어디서나 자란다. 산에서도 자라고 골짜기에서도 자라고 들에서도 자라고 진펄에서도 자라고 설산, 초지, 사막에서도 자란다. 뿌리를 깊이 박고 가지를 무성히 뻗으며 버들방천, 버드나무 숲을 이룬다. 200만 조선족이야말로 다른 수목에 잡히지 않는 버드나무 족속이다.
<류원무 저 '연변취담' 중에서>
<룡정 삼합 망강각에서 선생님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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