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를 달리며

김성련

새로 난 고속도로를 달린다.

씽씽 잘도 나아간다.

예전에 골짝길 지나 들판 건너 마을 앞으로

한없이 가던 길을 단숨에 주파한다.

서천 장항도 잠깐이면 가고

당진 대전도 멀지 않다.

고속도로는 근대화의 상징이다.


고속도로를 달린다.

좌우로 보이는 게 없다.

정산 지나 미당 지나 장평 지나

다시 은산으로 홍산으로 문산으로 가던 길을,

이 동네는 고추가 많이 나고

저 동네는 보신탕이 유명하고

여기는 들이 넓어 부자가 많고

저기는 친구 아무개의 고향이라고 다니던 길을

다 잃어버리고 앞만 보고 간다.

고속도로에는 사연이 없다.


새로 난 고속도로를 달린다.

쭉쭉 뻗은 새 길은

땅값싼 산자락을 골라서 치고 나아가고

골짜기는 아득한 기둥 위로 건넌다.

산줄기는 곳곳마다 브이자로 잘렸다.

산줄기를 타고 내려와 마을로 들로 이어지던

땅속 물줄기가 끊어지고 길이 없어지고

고라니도 오소리도 토끼도 뱀도

멧돼지도 노루도 고슴도치도 다람쥐도

산 위에 갇혀 밤으로 낮으로

건널 수 없는 길만 내려다본다.

고속도로는 오만한 일방통행이다.

2009.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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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 나는 광주 산곡을 헤매이다 문득 혼자 죽어 넘어진 국군을 만났다. ―

-모윤숙 -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 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식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

나는 죽었노라. 스물 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내 손에는 범치 못할 총자루, 내 머리엔 깨지지 않을 철모가 씌워져

원수와 싸우기에 한 번도 비겁하지 않았노라.

그보다도 내 핏속엔 더 강한 대한의 혼이 소리쳐

나는 달리었노라. 산과 골짜기, 무덤 위와 가시숲을

이순신같이, 나폴레온같이, 시이저같이,

조국의 위험을 막기 위해 밤낮으로 앞으로 앞으로 진격! 진격!

원수를 밀어 가며 싸웠노라.

나는 더 가고 싶었노라. 저 원수의 하늘까지

밀어서 밀어서 폭풍우같이 모스코바 크레믈린 탑까지

밀어 가고 싶었노라.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소녀도 있었노라.

내 청춘은 봉오리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함께

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었나니

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날으는 내 나라의 새들과 함께

나는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어라.

나는 그래서 더 용감히 싸웠노라. 그러다가 죽었노라.

아무도 나의 주검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여!

숨 지어 넘어진 내 얼굴의 땀방울을

지나가는 미풍이 이처럼 다정하게 씻어 주고

저 하늘의 푸른 별들이 밤새 내 외롬을 위안해 주지 않는가?

나는 조국의 군복을 입은 채

골짜기 풀숲에 유쾌히 쉬노라.

이제 나는 잠시 피곤한 몸을 쉬이고

저 하늘에 날으는 바람을 마시게 되었노라.

나는 자랑스런 내 어머니 조국을 위해 싸웠고

내 조국을 위해 또한 영광스리 숨 지었노니

여기 내 몸 누운 곳 이름 모를 골짜기에

밤이슬 나리는 풀숲에 나는 아무도 모르게 우는

나이팅게일의 영원한 짝이 되었노라.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 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고.

저 가볍게 날으는 봄나라 새여

혹시 네가 날으는 어느 창가에서

내 사랑하는 소녀를 만나거든

나를 그리워 울지 말고 거룩한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일러 다고.

조국이여! 동포여! 내 사랑하는 소녀여!

나는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간다.

내가 못 이룬 소원, 물리치지 못한 원수,

나를 위해 내 청춘을 위해 물리쳐 다오.

물러감은 비겁하다. 항복보다 노예보다 비겁하다.

둘러싼 군사가 다아 물러가도 대한민국 국군아! 너만은

이 땅에서 싸워야 이긴다. 이 땅에서 죽어야 산다.

한 번 버린 조국은 다시 오지 않으리라. 다시 오지 않으리라.

보라! 폭풍이 온다. 대한민국이여!

이리와 사자 떼가 강과 산을 넘는다.

내 사랑하는 형과 아우는 서백리아 먼 길에 유랑을 떠난다.

운명이라 이 슬픔을 모른 체 하려는가?

아니다. 운명이 아니다. 아니 운명이라도 좋다.

우리는 운명보다는 강하다. 강하다.

이 원수의 운명을 파괴하라. 내 친구여!

그 억센 팔 다리. 그 붉은 단군의 피와 혼,

싸울 곳에 주저 말고 죽을 곳에 죽어서

숨지려는 조국의 생명을 불러 일으켜라.

조국을 위해선 이 몸 이 숨길 무덤도 내 시체를 담을

작은 관도 사양하노라.

오래지 않아 거친 바람이 내 몸을 쓸어가고

저 땅의 벌레들이 내 몸을 즐겨 뜯어가도

나는 즐거이 이들과 함께 벗이 되어

행복해질 조국을 기다리며

이 골짜기 내 나라 땅에 한 줌 흙이 되기 소원이노라.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운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식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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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지개 빛깔의 새해 엽서/이해인빨강 - 그 눈부신 열정의 빛깔로새해에는나의 가족, 친지, 이웃들은더욱 진심으로 사랑하고하느님과 자연과 주변의 사물생명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겠습니다결점이 많아 마음에 안 드는 나 자신을올바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렵니다주황 - 그 타오르는 환희의 빛깔로 새해에는내게 오는 시간들을 성실하게 관리하고내가 맡은 일들에는 인내와 정성과 책임을 다해알찬 열매 맺도록 힘쓰겠습니다노랑 - 그 부드러운 평화의 빛깔로새해에는 누구에게나 밝고 따스한 말씨친절하고 온유한 말씨를 씀으로써듣는 이를 행복하게 하는지혜로운 매일을 가꾸어가겠습니다초록 - 그 싱그러운 생명의 빛깔로새해에는크고 작은 어려움이 힘들게 하더라도절망의 늪으로 빠지지 않고초록빛 물감을 풀어 희망을 짜는희망의 사람이 되겠습니다파랑 - 그 열려 있는 바다빛으로새해에는더욱 푸른 꿈과 소망을 키우고이상을 넓혀가며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로삶의 바다를 힘차게 항해하는부지런한 순례자가 되겠습니다남색 - 그 마르지 않는 잉크빛으로새해에는 가슴 깊이 묻어둔 사랑의 말을 꺼내편지를 쓰고, 일기를 쓰고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사색의 뜰을 풍요롭게 가꾸는창조적인 기쁨을 누리겠습니다보라 - 그 은은한 신비의 빛깔로새해에는잃어버렸던 기도의 말을 다시 찾아고운 설빔으로 차려입고하루의 일과를 깊이 반성할 줄 알며감사로 마무리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내가 원하는 것을다른 이에게 거듭 강요하기보다는조용한 실천으로 먼저 깨어 있는침묵의 사람이 되렵니다빨. 주. 노. 초. 파. 남. 보일곱 가지 무지개 빛깔로새로운 결심을 꽃피우며또 한 해의 길을우리 함께 떠나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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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진출한 소설가 허련순
[조글로미디어]




<허련순 작가>

작가는 연예인에 비해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못하고있다. 연예인을 손꼽으라면 자신있게 단숨에 10~20명씩 줄줄 외우는 분들이 많지만 작가이름을 말하라면 1~2명도 말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 우리 중국조선족가운데는 우수한 연예인도 많지만 우수한 작가들도 많다. 그중에는 허련순도 있다.

허련순은 누구인가? 허련순은 소설가이다. 허련순은 어떤 소설가인가? 허련순은 중국조선족의 저명한 소설가이면서도 한국의 유명한 문인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수 있는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소설가이다. 중국조선족이라면 우리에게도 허련순처럼 우리 민족을 빛내고있는 유명한 소설가가 있다는것을 알아야 할것이다. 여기서 그녀를 녀류소설가라고 특별히 지칭하지 않은것은 그녀가 남성작가들에 비해 조금도 짝지지 않기때문이다.

밥짓는 남편과 글쓰는 안해

허련순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세수를 마친후 습관적으로 컴퓨터앞에 마주앉아 메일함부터 검사해본다. 날마다 이역만리에 가있는 딸 홍예화에게서 온 편지를 읽어보는것이 그녀에게는 글쓰는것과 마찬가지로 하루일과였다. “엄마, 안녕?”으로부터 시작되는 딸의 편지는 날마다 새로운 정보를 전하고있는데 단순히 소식을 전하는데 그치는것이 아니라 그 정보를 심도있고 예리하게 분석하고 자신의 독특한 견해까지 상세하게 밝히고있어 한편의 론문같기도 하고 한편의 수필같기도 했다. 과연 뉴질랜드의 오클랜드대학에서 박사공부를 하고있는 류학생이 다르긴 달랐다.

딸의 편지를 다 읽고나서 허련순은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가족과 주위에서 생긴 새로운 소식을 전해주고나서 딸과 엄마만이 주고받을수 있는 화제를 편지에 담았다. 그녀가 부지런히 컴퓨터건반을 두드리고있는데 주방에서 밥을 짓고있던 남편 홍성빈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어서 와서 아침식사를 하오!”

“네, 알았어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허련순은 답장에 종지부를 찍고 보내기를 클릭하고서야 일어나 밥상으로 다가갔다. 남편은 벌써 밥상을 다 차려놓고 수저까지 받쳐놓고서 그녀가 와서 식사하기를 기다리고있었다. 허련순의 가정은 여느 가정과는 달리 남편이 가정주부(家庭主夫)로 되여 가정의 살림살이를 맡아서 꾸려가고있었다. 허련순의 남편 홍성빈은 원래 기자생활을 하던 청년시절에 시인이 되려는 꿈을 가지고 시를 썼다. 그런데 허련순은 두 사람이 모두 글을 쓰면 살림살이를 돌볼 시간이 없다면서 남편이 시를 쓰는것을 반대했다. 홍성빈은 안해의 재주를 미리 알아보는 혜안이 있었던지 자신을 희생하고 안해의 문학을 지지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때로부터 그는 수십년간 소설가인 안해를 위해 쌀과 남새를 사들이고 밥을 짓고 빨래를 하는 등 집안일을 도맡아했다. 집안일뿐만아니라 안해가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몸을 아끼지 않고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었다.

10년전까지만 해도 컴퓨터가 보편화되지 않아서 허련순은 창작한 소설원고를 우편으로 부치군 했는데 매 원고마다 남편이 직접 가지고가서 부쳐보내군 했었다. 허련순이 장편소설 《바람꽃》을 흑룡강신문에 련재하고있을 때의 일이다. 그 당시 허련순은 완고된 소설을 보낸것이 아니라 쓰는족족 련재하고있었는데 한번은 우편으로 부치면 제시간에 편집부에 도착하지 못하게 되였다. 안해가 안달아하고있는것을 본 홍성빈은 직접 기차를 타고 할빈에 있는 흑룡강신문사까지 찾아가서 원고를 전해주었다. 이렇게 3개월간 련재된 장편소설 《바람꽃》은 나중에 단행본으로 출판되였는데 중국조선족작가가 쓴 책중에서 제일 잘 팔리는 책으로 되였으며 한국에서도 출판되여 대인기를 끌기도 했다.

허련순은 “우리 남편은 나의 문학을 100%가 아니라 150%로 지지해주는 분”이라고 말하면서 남편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여 미안하단다. 허련순은 쌀가격이 얼마인지, 남새가격이 얼마인지, 두부값이 올랐다고 하는데 지금은 얼마인지도 모른다. 그런것은 응당 남편의 몫으로만 생각했다. 허련순은 퇴직후 할일이 없는 남편이 할일이 많은 안해를 위해 헌신하고있는데 자신은 자신이 하고싶은 일만 하기때문에 리기적이라고 말하면서 연길시조선족장기협회 회장으로 있는 남편을 위해 뭔가 좀 해주고싶어 한국으로 나갔을 때 적극적으로 뛰여다니면서 후원을 받아다가 남편이 4년동안 한해에 평균 2차씩 국제장기대회를 열수 있게 해주었다.

소설을 쓰면서 소설속에 사는 소설가

허련순은 문학속의 현실을 자신의 삶이라고 여기고 문학을 자신의 생명처럼 생각하는 소설가이다. 허련순은 집안일은 나몰라라 하고 글만 쓰는 소설가이다. 그녀는 출판에 교부할 소설을 제때에 완고하기 위해 친척들의 음력설모임에는 물론 시부모가 사망됐을 때도 가보지 못했다. 이렇게 가정에서 문학이 중요한 위치이기때문에 남편 홍성빈도 식사가 끝나면 설겆이를 마치고 집안청소를 하고나서 안해가 글쓰는데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 집에서 나간다고 한다. 그런데 남편은 저녁에 돌아와서는 늘 “오늘은 또 뭘 썼소?”라고 물어보는가 하면 안해가 컴퓨터앞에 마주앉아있지 않고 휴식하고있으면 “왜 쓰지 않소? 이제 또 뭘 쓰려고 하오?”라고 물어보군 한다. 그리고 또 어느 작가는 무슨 소설을 쓰고있는중이고 어느 작가는 새로운 장편을 련재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안해더러 빨리 쓰라고 재촉하기도 한다. 안해의 글쓰는 모습을 보는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여기고있는 남편이기때문이다. 그러나 허련순은 남편의 이런 지나친 관심이 오히려 부담이 되고 스트레스가 된다고 한다. 그녀는 온종일 글을 쓰느라고 지쳐있는 자신에게 왜 쓰지 않느냐고 물으면서 더 쓰기를 바라는 남편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면서 “남편은 그저 쓰면 되는줄 아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1975년부터 시, 희곡, 가사를 쓰던 허련순은 1986년에 첫 소설 《안해의 고뇌》를 쓰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소설창작에 들어갔다. 허련순은 중국조선족작가중에서 한국에 제일 먼저 나갔고 한국문단에 제일 먼저 진출한 작가이다. 1989년에 처음 한국에 나갔을 때 허련순은 한국의 대형서점인 교보문고에 가보고 한국문인들과 접촉하면서 큰 충격을 받게 되였으며 자신은 여태껏 우물안의 개구리였구나 하는 느낌이 들면서 단편소설 몇편을 써서는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였다. 그리고 중국조선족문학이 살아남으려면 국제적인 시각을 가지고 의식을 바꿔야 한다고 느꼈다.

귀국후 우물안에만 갇혀있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허련순은 즉시 사직서를 냈다. 당시 그녀가 몸담고있던 연길시문화관의 책임자는 철밥통을 버리려고 하는 그녀의 결정에 깜짝 놀라면서 나가더라도 적을 남겨두고 나가라고 권고했다.

그후 허련순은 2년동안 석사공부를 하면서 한국문학을 연구했으며 자기만의 개성있고 독특한 문학을 확립하게 되였다. 1991년에 한국 동아일보사에서는 허련순의 중단편소설집 《사내 많은 녀인》을 출판했다. 그리고 허련순은 륙속 한국에서 《바람꽃》, 《바람을 몰고 온 녀인》, 《뻐꾸기는 울어도》,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 등 책을 출판하여 한국에서 소설을 가장 많이 출판한 중국조선족작가로 되였다. 금년에 54세인 허련순은 1년에 적어도 두번정도는 한국으로 나간다. 꼭 무슨 일이 있어서만 가는게 아니다. 작품 한편을 끝내면 허전해서 다시 한국으로 가고싶어 견딜수가 없다고 한다. 어느 한 평론가는 “한국에 한번 갔다오면 허련순의 소설은 달라진다”고 말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글을 담아가지고 왔기때문이다.

가족이 함께 쓰는 소설

허련순은 남편에게는 훌륭한 안해가 못되여 미안하지만 딸에게만은 좋은 어머니로 되려고 애쓰면서 딸에 대한 교양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딸이 대학공부를 할 때에는 영양보충을 위해 최소 4가지 반찬은 보장했다. 어머니를 닮아 총명하고 글도 잘 썼던 딸 홍예화는 연변대학에서 비교문학석사공부를 끝내고 뉴질랜드의 오클랜드대학에서 사회학을 연구한지 벌써 3년철을 잡고있다. 홍예화는 연변대학에서 석사론문을 발표할 때도 쉬운 조선어를 포기하고 어려운 중국어로 론문을 발표했는데 론문을 읽는것이 아니라 원고를 보지 않고도 줄줄 내리 외우기도 했다. 홍예화는 낯선 뉴질랜드에 가서도 이악스레 달라붙어 영어관부터 넘은후 오스트랄리아에서 론문을 발표했는데 저명한 교수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세계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이 모인 그번의 론문발표회에서 전례가 없던 최우수론문발표자상을 수상받기도 했다.

낯선 고장에서 아는 사람이 없는 홍예화는 매일 엄마와 편지로 대화를 하는것이 하루일과중의 중요한 부분이였다. 조선족결혼이민의 총체성을 연구하고있는 홍예화는 연구가 깊고 사유가 새로와서 엄마한테 보내온 편지마다 한편의 론문이면서도 따분하지 않아서 아름다운 수필이라고 할수 있었다. 홍예화는 “엄마는 소설로 조선족총체성문제를 다루고 딸은 론문으로 조선족총체성을 연구하기때문에 엄마는 뿌리고 딸은 거둔다”고 하면서 자신의 연구와 엄마의 창작을 아주 재치있게 비유했다. 허련순은 남편은 후원자이고 딸은 동반자라고 말하면서 가족이 함께 소설을 쓰는것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허련순은 딸한테서 온 편지를 《연변녀성》잡지에 련재중이라고 하면서 앞으로 책으로 출판하여 딸의 졸업선물로 주려고 한다고 했다. 허련순은 딸은 늘 새로운 견해로 세계적인 추세와 세계적인 흐름을 관찰하면서 가치있는 정보를 보내주기때문에 자신의 소설에 힌트를 주기도 하고 무게의 깊이를 더해주기도 한다고 하면서 문학이란 영원히 변화과정에서 창조되기때문에 내 문학이 살아남자면 한곳에 영원히 머물지 않고 부단히 새로운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허련순의 장편소설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며 한국으로 밀항을 시도한 조선족동포들의 실패한 도항얘기이다. 허련순은 한국에서 문학팬들을 가지고있는 유명한 문인들만 가능한 싸인회까지 가졌는데 1시간밖에 주어지지 않는 싸인회에서 400권이나 팔았다. 한국의 유명한 문인들도 보통 200권정도 나가면 표준인데 독자권을 가지고있지 못한 연변작가가 400권을 팔았다는것은 기적이 아닐수 없었다. 허련순의 책은 인기판매도서매대에 진렬되기도 했다.

녀성문제와 중국조선족의 총체성을 주로 다루고있는 허련순은 문학인생을 살면서 “문학에는 정상이 없고 부단히 새로운 글을 창작하는것”이라고 말하면서 “문학은 남과 비기지 말아야 한다. 남과 비기는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신의 문학세계를 구축하여 내가 나를 넘어서는것이 문학의 성공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허련순은 한국문학의 우수성과 연변문학의 전통성을 결합하여 한국에 발을 붙이고 자신의 문학세계를 넓혀가고있다.

연변대학교 조선어학부를 졸업한 허련순은 중국작가협회 회원이고 국가1급작가이며 연변녀성문인협회 회장이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잃어버린 밤》, 《바람꽃》, 《뻐꾸기는 울어도》,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 등과 소설집 《사내 많은 녀인》, 《유혹》, 《우주의 자궁》, 《바람을 몰고 온 녀인》 등외에 텔레비죤련속극 《갈꽃》, 《녀자란 무엇입니까》, 《떠나는 사람들》 그리고 6막 장막극 《과부골목》 등이 있다. 중국소수민족문학상, 길림성정부소수민족문학상, 동북3성금호상, 연변문학상, 도라지문학상, 장백산문학상, 신춘문예상, 윤동주문학상, 김학철문학상 대상, 제8회작가협회문학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한국에 가서 한국문학을 전공했으며 중국조선족작가로서는 한국에서 책을 가장 많이 낸 허련순은 한국의 유명한 문인들과 동등하게 선 소설가이며 새로운것을 빨리 받아들이고 항상 사유가 열려있는 소설가이다. 그녀에게서 앞으로의 타산같은것은 물어보나마나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앞으로도 소설을 쓸것이기때문이다. 어떤 소설을 쓰느냐도 중요하지 않다. 그녀는 건강이 허락되는 한 언제나 자신을 넘어서고 앞서가는 문학을 하려고 하는 자세가 갖추어져있는 소설가이기때문이다.

(본문은 중국 조선어어문규정에 입각하였음) 연변라지오TV신문 김희수기자

[출처:조글미디어 media.zogl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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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메시지"★




조인스닷컴과 SK텔레콤·한국정보 문화진흥원이
펼치고 있는 '올바른 휴대 전화 사용 문화 만들기'
캠페인의 수기 공모전에서 1등으로 당선된
손현숙씨의글


'하늘 나라 네 시어머니가 '문자'를 안 받아 ! '
(1등으로 당선된 손현숙씨의 글)


첨부이미지


내게는 핸드폰 두 대가 있다.
한 대는 내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 나라에 계신 시어머님 것이다.
내가 시부모님께 핸드폰을 사드린 건 2년 전.
두 분의 결혼 기념일에 커플 핸드폰을 사드렸다.

문자 기능을 알려 드리자 두 분은 며칠 동안
끙끙대시더니 서로 문자도 나누시게 되었다.
그러던 올 3월 시어머님이 갑자기
암으로 돌아가셔서 유품 가운데 핸드폰을
내가 보관하게 되었다.

그러고 한 달 정도 지날 무렵.
아버님이 아파트 경비 일을 보시러 나가신 후
'띵 동'하고 문자 메시지가 들어왔다.
어머님 것이었다."여보, 오늘 ‘야간 조’니까
저녁 어멈이랑 맛있게 드시구려."

순간 난 너무 놀랐다.혹시
어머니가 돌아가신 충격으로 치매 증상이
오신 게 아닌가 하는 불길함이 몰려왔다.
그날 밤 또 문자가 날아왔다.

"여보, 날 추운데 이불 덮고 잘 자구려. 사랑하오."
남편과 나는 그 문자를 보며 눈물을 흘렸고,
남편은 좀 더 지켜보자고 했다.아버님은 그 후
"김 여사 비 오는데 우산 가지고 마중 가려는데
몇 시에 갈까요?


아니지. 내가 미친 것 같소. 보고 싶네"라는 문자를 끝으로
한동안 메시지를 보내지 않으셨다.

그 얼마 후 내 핸드폰으로 문자가 왔다.
"어미야, 오늘 월급날인데 필요한 거 있니?
있으면 문자 보내거라."난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네. 아버님. 동태 2마리만 사오세요" 하고
답장을 보냈다.

그 날 저녁 우리 식구는 아버님이 사 오신 동태로
매운탕을 끊인 후 소주 한 잔과 함께
아버님이 하시는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


"아직도 네 시어미가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다.
그냥 네 어머니랑 했던 대로 문자를 보낸 거란다.
답장이 안 오더라.
그제야 네 어머니가 돌아가신 걸 알았다.

모두들 내가 이상해진 것 같아 내 눈치를 보며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던 것도 안다. 미안하다."
그 날 이후 아버님은 다시 어머님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지 않으신다.

하지만 요즘은 내게 문자를 보내신다.
지금 나도 아버님께 문자를 보낸다.


"아버님. 빨래하려고 하는데
아버님 속옷은 어디다 숨겨 두셨어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2악장 안단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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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앙코르왓트는

캄보디아 씨엠랩에 있는 앙코르왓트는
위대한 왕의 영광의 도성이다.
밀림속 도성이 너무 크고 정교해서 놀라움이다.
갑자기 부릅뜬 눈과 마주치는 무서움이다.
곳곳에서 달려드는 일곱머리 뱀과 만나는 두려움이다.
나무 뿌리가 사원을 뒤덮은 기이함이다.
가는 곳마다 압살라 손가락 꼬는 유혹이다.
온통 힌두와 불교가 만나는 종교스러움이고
그 신화가 조각으로 벽을 채우는 예술스러움이다.


그리고 앙코르왓트는
위대했던 왕의 영광의 뒤안길이다.
천년의 사연이 입을 다물어 버린 온통 검은 침묵이다.
현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진공의 단절이다.
손발 잃은 상이군인의 아리랑 연주와
맨발의 어린애가 일달라를 외치는 안쓰러움이다.
옛 영광이 오히려 부끄러운
현존재의 가벼움이다.



앙코르 앙코르왓트

스펑나무는 사원에 뒤틀고 앉아

무상의 세월을 지내왔다.

데바타와 압살라는 봉긋한 가슴에

요염하게 발과 손가락을 꼬고,

큰 바위얼굴의 바이욘 관음상은 검은 이끼를 덮고

두툼한 입술에 여전한 미소를 띄우는데,

코브라를 닮은 머리 일곱달린 나가상은

머리를 곧추 세우고 곳곳에서 달려든다.

테라스는 테라스로 이어지고

회랑은 회랑으로 이어지는데

앙코르의 이야기는 부조로 빼곡하게 벽을 채웠다.

힘센 크메르왕 호령하던 시절

백만 백성이 흥청이던 앙코르톰, 앙코르왓트가

지금은 박제된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이 되어

수많은 발걸음으로 닳아간다.

세계문화유산은

지뢰피해군인들의 슬픈 아리랑 가락과

맨발로 따라오며 일달라를 외치던 아이들의

까만 눈동자와 겹쳐내내 가슴을 울린다.

앙코르

앙코르

앙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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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안부

박복화


지금
그대 춥거던
내 마음을 입으시라
내복 같은 내 마음을 입으시라
우리의 추운 기억들은
따뜻한 입김으로 부디 용서하시라
당신과 나의 거리가
차라리 유리창 하나로 막혀
빤히 바라볼 수 있다면 좋으리
차가운 경계를 사이에 두고
언 손 마주 대고 있어도 좋으리
성에를 닦아내듯
쉽게 들여다보이는 안팍이면 좋으리
시린 발바닥에 다시 살얼음이
티눈으로 박히는 계절
한 뼘의 고드름을 키우는
바람소리 깊어지면
눈빛 하나로 따스했던 그대만
나는 기억하리
나조차 낯설어지는 시간
스스로 기다림의 박제가 되는 저녁
입술이 기억하지 못하는
절실한 그대의 안부
지금
내 마음처럼 그대 춥거던
이 그리움을 입으시라



부산출생
현재 부산거주
<시마을> 최우수작가 선정(2003.12월)
현대시문학 2회 추천을 받아 문단에 등단
* 현재 시마을에서 필명 "아침노을"로 활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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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조(Li Qingzhao(리칭자오))는 송(宋) 나라 시대에 태어난 여류시인이다.

가끔 조선의 허난설헌과 비교하여 연구되는 중국의 유명한 시인이다.

그는 산동성 제남에서 태어났다.

제남은 공자님의 곡부로 유명한 곳이기도 한데, 나는곡부보다는이청조의 흔적을 보고 싶어서 제남에 가고 싶다.

이청조는문명으로 유명한 집안에서 자라 어렸을 때부터 시를 지어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하였고, 그의 문학적 재능을 인정해주었던 좋은 남편을 만나 비교적 순탄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

남편과의 사이가 좋았던지 남편이 먼저 병사한 후에 남편을 그리는 시도 많이 지었다.

하지만 남편 조명성이 죽고 난 후의 이청조의 삶은 슬픔에 가득찬 삶으로 전환되고 만다.

사랑하는 사람도, 남겨진 아이도 없이 홀로 외롭게 살아야 했으니 그가 남긴 사(詞)가 약 50여 편 되는데, 후기의 작품은 거의 슬픔에 찬 고통의 삶을 그린 것이 대부분이다.

한문에 능통하지 않은 내가 봐도 이청조의 작품은 참으로 대단하여 가히 남송사의 대표시인이며, 중국문학의 최고 여류시인이라는 칭호가 전혀 아깝지 않은 것 같다.

그의 문학을 논하자는 것은 아니고, 갑자기 그의 시 한 수가 떠오른 이유는 내가 자꾸 이것저것 물어보는 장면이 이청조의 시의 장면과오버랩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청조의 여몽령(如夢令)이란 작품이다.

昨夜雨疏風驟(작야우소풍취) 어젯밤 성긴 비에 세찬 바람
濃睡不消殘酒(농수불소잔주)깊은 잠도 남은 술기운 깨우지 못해
試問捲簾人(시문권렴인) 발 걷는 아이에게 물어보니
却道海棠依舊(각도해당의구) 도리어 해당화는 전과 같다고 말하네
知否知否(지부지부) 그럴 리가, 그럴 리가
應是綠肥紅瘦(응시록비홍수) 푸른 잎새는 짙어지고 붉은 꽃잎은 말랐을 텐데

전날밤에 비가 흩뿌리고 바람은 세차서작가는 그 소리를 들으며 아마 마당의 해당화가 분명히 꽃잎이 졌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차마 내다보지도 못하고 그저 술만 마시며 떨어지는 꽃잎을 아쉬워할 뿐이다.

꽃잎은 어쩜 늙어가는 여인의 청춘에 대한 아쉬움의 상징일 것이다. 슬픔과 아쉬움을 잊기 위해 간밤에 마셨던 술이 채 깨지도 않아 아침에 침상에 누워서 떨어진 해당화 꽃잎이 궁금해 주렴을 걷는 종 아이에게 물어본다.

종 아이는 주인의 깊은 시름에는 관심이 없는 듯, 그저 "어제와 똑같은데요-'라고만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하기야 어린 종은 꽃이 피든 지든 상관이 없었으리라.

그럴 리가 있을까? 분명히 잎새는 푸르러지고, 꽃잎은 한 두 잎 떨어졌겠지 라고 생각한다.

어찌 떨어지는 해당화 꽃잎만 아쉬워 했겠는가? 청춘이 지나가는 것을 아쉬워하고 애달파하는 시인의 마음일 것이다.

< 신향숙 수필 '눈오는 밤에 바다꿈을 꾸며'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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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이 산속의 절에 가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밤은 깊어 가는데 잠은 오지 않았다. 그런데 창밖에서 비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래서 어린 동자스님을 불러서 밖에 비가 오냐고 물었더니 동자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시내 남쪽 나무에 달이 걸려 있는걸요.”라고 대답한다.

정철이 무릎을 치고 시 한수를 짓는다.


蕭蕭落木聲(소소락목성) 우수수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錯認爲疎雨(착인위소우) 성근 빗소리인줄 알고

呼僧出門看(호승출문간) 스님 불러서 문밖에 나가 보라 했더니

月掛溪南樹(월괘계남수) ‘시내 남쪽 나무에 달이 걸렸네요.’


보고 또 봐도 정말 기가 막히는 시(詩)의 재미가 있다. 시 속의 동자 스님이 그저 정철이 묻는 말에 “비가 오지 않는데요.”라고 했다면 시의 화제가 되지도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가 오는가 하는 질문에 달이 밝다고 하니 그것은 달이 떴는데 무슨 비가 오겠냐는 재미있는 말이다. 다소 엉뚱한 대답인 것 같지만, 얼마나 여유가 있고 운치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시(詩)는 이루어진다.


< 신향숙 수필 '왜 옌지에서 살지요?'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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