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이 산속의 절에 가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밤은 깊어 가는데 잠은 오지 않았다. 그런데 창밖에서 비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래서 어린 동자스님을 불러서 밖에 비가 오냐고 물었더니 동자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시내 남쪽 나무에 달이 걸려 있는걸요.”라고 대답한다.

정철이 무릎을 치고 시 한수를 짓는다.


蕭蕭落木聲(소소락목성) 우수수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錯認爲疎雨(착인위소우) 성근 빗소리인줄 알고

呼僧出門看(호승출문간) 스님 불러서 문밖에 나가 보라 했더니

月掛溪南樹(월괘계남수) ‘시내 남쪽 나무에 달이 걸렸네요.’


보고 또 봐도 정말 기가 막히는 시(詩)의 재미가 있다. 시 속의 동자 스님이 그저 정철이 묻는 말에 “비가 오지 않는데요.”라고 했다면 시의 화제가 되지도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가 오는가 하는 질문에 달이 밝다고 하니 그것은 달이 떴는데 무슨 비가 오겠냐는 재미있는 말이다. 다소 엉뚱한 대답인 것 같지만, 얼마나 여유가 있고 운치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시(詩)는 이루어진다.


< 신향숙 수필 '왜 옌지에서 살지요?'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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