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잡고 함께 가는 길 김성련
토요일 오후 그 날 나사렛대학교 교정은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5주에 걸쳐 수강해온 통합교육 사이버연수의 출석 필기시험이 있는 날이다. 덕산에서부터 내린 눈 속을 뚫고 온 내 차는 온통 눈에 얼음 투성이여서 양지쪽에 주차한 후 잠시 바퀴 사이에 낀 눈을 떼어내고 있었다. 그 때 저 쪽에서 흰 지팡이를 든 아가씨가 건물의 입구를 찾고 있었다. 지팡이로 계단의 방향과 높이를 재가며 입구를 찾고 있었으나 그리 쉽지 않은 모양이다. 차의 네 바퀴를 돌며 눈을 떼어내는 그 시간 내내 아가씨는 체바퀴를 돌듯 건물 앞에서 헤매고 있었다. 결국 포기하고 지팡이로 건물 벽을 쳐가며 다른 길을 찾아간다는 것이 모서리를 돌아 사람이 안 다니는 후미진 길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아!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자이구나! 나는 얼른 뛰어가서 말을 걸었다. “어디를 찾는 거예요?” “예, 여학생 기숙사요.” 여학생 기숙사가 어디인가? 추위에 종종걸음으로 지나가는 학생들을 잡고 기숙사를 묻는다. 학생들이 가리키는 기숙사는 건물 몇 개 동을 넘어 반대편에 있었다. 나는 지팡이의 한 쪽을 잡고 안내를 자처했다. 그 여학생은 별말없이 선선히 따라 주었다. 아직 시험장인 진리관을 확인하지 못한지라 서둘러 걸었지만 여학생은 모든 것을 맡긴 듯 잘 따라와 주었다. 겨울바람 속에 차가운 금속 지팡이의 한 쪽을 쥔 내 손이 시려오기 시작했다. 건물을 돌고 정원을 지나 다시 학생동아리 건물을 지나자 좁고 긴 내리막 계단이 나왔다. 긴 지팡이의 한 쪽 끝을 잡고 계단을 내려가는 것은 위험하다. “제 손을 잡으세요.” 여학생은 두말없이 손을 주었다. 가늘고 차가운 손. “하나, 하나” 계단을 세며 보조를 맞추어 내려간다. 자칫하면 넘어져 뒹굴 수도 있는 경사였지만 학생은 망설임 없이 잘 따라 내려왔다. 계단을 내려서자 길이다. “자, 여기는 턱이 있습니다.” “이제 길을 건너갑니다.” “다시 올라가는 턱입니다.” 드디어 여학생 기숙사에 도착했다. “자, 기숙사 입구예요. 여기서부터는 갈 수 있죠?” “예.” 학생은 긴 머리에 하얗고 갸름한 얼굴을 들어 내 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학생은 처음의 제의를 순순히 받아들였고, 내민 손을 순순히 잡아 주었고, 내 걸음의 속도를 순순히 따라주었다. 혼자서 지팡이로 더듬어 찾았다면 추위 속에 한 나절 헤맸을 거리를 약 20분만에 도착한 것이다. 나쁜 사람을 만나면 아주 위험할 수도 있을 텐데, 나를 전폭적으로 믿고 내 인도대로 따라준 것이다. 5주간 참여한 통합교육 사이버 연수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교육의 목적이 조화로운 인간발달을 통하여 개인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데 있다면, 특수 통합교육은 장애인이 개인차의 유형과 정도에 관계없이 가능한 한 사회의 주류에 완전히 포함되어(full inclusion) 살아갈 수 있도록 함으로써 더불어 잘 사는 공동체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다. 우리는 믿음의 손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함께 같은 방향을 향하여 걸어야 한다. 살만한 세상은 그렇게 우리들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이리라.
< 대전일보 2009.01.07. '열린마당'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