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연길성당 - 天主敎堂>
<중국 연길성당 미사>
<중국 연길성당 - 조선족 고등학생들의 부채춤>
나의 신앙의 길 4. 십자가앞에 무릎을 꿇어
- 전 사베리아
나는 세례를 받고 북경에 온 후 세례 받은 사실을 극력 숨겨왔다. 북경은 수도인 것만큼 무난하게 살려면 주류를 따르는 것이 편하니까. 때문에 내 가까이에 있는 한 두 명 친구를 제외하고는 내가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다들 모른다. 나는 퇴직 한 후에 성당에 다니기로 하고 재직으로 있을 때는 극력 피하려고 했었다.
나는 그렇게 아닌 척 살았고 아닌 척 살다보니 때론 내가 정말 신앙을 가진 적 없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였다.
사실 나의 직장은 위그르족, 하사크족, 몽골족, 회족, 장족(티베트족) 등 여려 민족이 어울려있기에 종교 신앙에 대해 그리 각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위그르족이나 하사크족 장족 등은 그 민족 자체가 전부 종교를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설사 공산당에 가입한다 해도 민족전통습관의 각도에서 이슬람교나 라마교가 지켜야할 모든 풍습들을 지키고 있다. 사실 그들 속에는 당원이 많다.
민족정책이나 종교정책의 모범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우리직장은 종교신앙에 관대할 수 있다. 하지만 상기한 민족들은 민족공동체가 종교를 신앙하고 민족과 종교가 상호 떨어질 수 없는 개념으로 각인되고 있다. 예컨대 위그르족, 하사크족, 회족 하면 이슬람교민족이고 몽골족, 장족 하면 라마교민족이다. 허나 우리 민족은 다르다. 천주교가 우리 민족 군체가 대대손손 믿어온 종교가 아니기에 신앙과 민족이 별개의 문제이다. 이슬람교나 라마교가 상기한 민족들에게 역사적으로 전해져 내려온 종교이기에 전반 민족적인 정서를 고려하여 그들의 신앙에 관대할지 모르지만 우리와 같은 경우는 다를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필경은 중앙 직속 사업단위가 아닌가. 그리고 우리 사무실은 거의 전부가 당원이며 우리 직장에서 기독교나 천주교는 불가이해의 존재이다.
때문에 나는 극력 내가 천주교를 믿는다는 사실을 숨겨왔다. 무난히 직장생활을 하다가 퇴직하면 되니까.
하지만 2년 전 중앙직속사업단위 간부등기표를 다시 작성할 때 사실 나는 조직에 내가 종교를 믿는다는 것을 회보한 셈이다.
그 번 간부조사등기표에는 “종교를 신앙하느냐?”라는 물음이 있었고 “예, 아니요”로 대답함과 아울러 자신이 믿는 종교를 적어넣어야 했다. 나는 한창 망설였다. 남편도 싫어하고 주위사람들 눈치도 보이고 직장에서의 앞날도 생각하면 두렵지 않을 수 없었다. “예”라고 적으려니 고려되는 점이 한두가지 아니었고 그렇다고 죽어도 “아니요”라고는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참말이지 나는 그 부분을 훌쩍 뛰어넘고 싶었다. 여짓껏 잘 속여왔는데... 고민고민 하다가 나는 “예”라고 적었고 믿는 종교가 “천주교”라고 적었다. 아무렴 종교신앙이 법적으로 자유인데 설마 무슨 일이야 생기겠는가. 그리고 누가 그 많은 사람들이 적어내는 당안(서류)을 일일이 펼쳐본단 말인가. 고의로 나를 흠집 내지 않는 한 누가 내 서류를 조사하겠는가. 나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위로하면서 서류를 조직에 바쳤다. 예상대로 누구도 남의 서류를 뒤지지 않는지라 지금까지 별 탈이 없다. 아무튼 이렇게 나는 조직에 내가 종교를 믿는다는 것을 회보한 셈이다.
헌데 천주교를 믿는다고 적고나니 순간 더 두려운 것이 있었다. 내가 정말 신앙인답게 다른 사람들한테 모범을 보였을가? 혹 나의 부족함이 나의 종교를 욕보이지나 않았을가?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잘했을걸...
나는 이렇게 내 신앙의 불씨를 가슴 깊은 곳에 숨기고 살았었다.
하지만 나는 세상의 어떤 일들이 숨긴다고 해서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도망간다고 해서 도망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사실 2003년도쯤 나는 이상한 것을 체험했다. 한번은 내가 길을 걸어가는데 내 오른쪽 어깨위의 20센티쯤 높은 곳에 누군가가 있었다. 나는 뒤에서 걸어오던 키 큰 사람이 나를 지나치려나 보다 하여 옆으로 비켜서며 길을 내주었다. 헌데 뒤에 사람이 없었다. 순간 나는 섬직한 생각이 들었다. “귀신이 매달렸나.” 그런데 무섭지 않았다. 잠간 눈을 감고 모습을 새겨봤는데 놀랍게도 타원형으로 둘러싸인 성모님의 반신상이었다. 성모님은 머리를 앞쪽으로 기울여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에야 나는 금방 길을 걸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성모경을 외우고 있었다는 것도 생각해냈다. 나는 지금도 그것이 착각인지, 환각인지, 상상인지 모른다. 내가 이것을 주위사람들과 이야기하면 그들은 십중팔구 내 정신에 문제가 생겼다고 할 것이다. 착각이라 해도 좋고 환각이라 해도 좋고 상상이라 해도 좋다. 그만큼 내 잠의식속에 이미 내 신앙이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는 반증이 아닐가?
아주 가끔이지만 나는 갑자기 한 며칠씩 묵주기도를 부지런히 한 적도 있다. 그냥 그 어떤 충동을 받아서 기도하군 했었다. 하지만 그 며칠이 지나면 나는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 살아가군 했었다. 이렇게 나는 번번이 성모님이 잡아주는 손에서 스스르 미끌어져 내려왔다.
헌데 올 4월에는 성모님 모습이 아니라 십자고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이 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직장에서 일도 손에 잘 잡히지 않았고 그냥 한 며칠 십자가를 끌어안고 울고싶었다.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멍하니 성당에 가서 앉아있고 싶었다. 나름 부족함이 없이 산다고 자부하는 편인데 도대체 무엇때문이지?
나는 성당을 향했다. 성당에서 조용히 그분을 바라보며 앉아있고 싶어서였다. 헌데 성당안의 예수님은 천으로 가리워져 있었다. 웬일이지? 사순시기라고 한다. 사순시기가 뭐지?
도망가기에 바빠서 나는 이것조차 몰랐다. 교리학습 할 때 들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없다. 나는 예수님을 못 만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인터넷이며 책들을 뒤지면서 사순시기가 뭔가 찾아보았고 부활의 의미를 새겨보았다. 나는 ≪예수 수난기≫란 영화를 보았고 신약성경을 읽었다. 그리고 많이 울었다.
그렇게 피하고 도망가고 한 나를 계속 기다리고 지켜주신 그 분 앞에 나는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이젠 피할 수도 없고 피하지도 않으련다. 아직 15년이나 있어야 정년퇴직하지만 나는 더 이상 퇴직할 날을 기다릴 수가 없다. 물론 아직도 두려움이 남아있어 이 카페에서 실명조차 밝히지 못하지만 그래도 신앙의 길에서 더 이상 피하지는 않겠다.
올 4월 나는 참으로 거룩하게 보냈다. 나는 십자가 앞에 온전히 마음을 열고 무릎을 꿇었다.
나는 당시의 내 마음을 시로 적어보았다.
4월의 어느날
못견디게
당신이 그리웠던
4월의 어느날
당신의 무릎아래 꿇어앉아
이유없이 울고싶었던
4월의 어느날
모시빛 햇살 사이로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를 감싸안은
평화의 하늘자락
그리고
내 마음 안에
눈물로 피어나는
당신의 거룩한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