첸리췬 前베이징대 교수 “문화혁명은 비겁한 저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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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화대혁명에 참여했던 중국 학자가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에서 문혁을 정면으로 비판한 글을 발표한다. 주인공은 20, 21일 한림대 아시아문화연구소가 개최하는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의 학문과 예술’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는 첸리췬(錢理群·중문학·67·사진) 전 베이징(北京)대 교수. 첸 교수는 미리 보내 온 ‘중국 변경지역 하급 지식인의 문혁에 대한 기억’이라는 주제의 발표문에서 중국 구이저우(貴州) 성 어문교사로 처음부터 끝까지 문혁에 적극 참여했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문혁을 비판했다.》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문혁과 관련해 중국 내에서 학술행사는 물론 출판, 공연, 전시, 영화·드라마 제작도 금지된 상황이라 첸 교수의 논문은 더욱 주목된다.
첸 교수는 자신이 중국 공산당의 관료주의에 저항하기 위해 문혁을 지지한 ‘조반파(造反派)’의 선봉에 섰다고 털어놨다. 그는 “하층 지식인,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등 하층민이 문혁에 말려든 것은 이를 권력투쟁의 장으로 이용한 상층과 달리 중국 사회와 중국 공산당 내부의 모순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라고 출발선상의 문제의식은 옹호했다. 그러나 그는 “문혁이 체제의 근본 문제는 건드리지도 못하고, 어떤 제도의 건설도 진행하지 못한 채 새로운 관료기구와 독재만을 낳았다”고 비판했다.
문혁의 불을 댕긴 마오쩌둥(毛澤東)에 대해서도 서슴없이 비판했다. 그는 “해방은 아주 제한적이었고, 시작부터 왜곡된 것이었다”며 “당의 신화와 미신이 타파된 이후 또다시 마오의 신화와 미신이 제조됐다”고 지적했다.
마오를 ‘특권계층의 억압에 저항하는 정의의 선봉자’로 믿고 매료됐던 자신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비판했다.
![]() 1966년 8월 중국 하얼빈에서 홍위병들이 펼친 ‘반란은 정당하다(造反有理)’ 공연. 중국 사진작가 리전성의 작품. 사진 제공 지식의 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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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심지어 ‘기득권의 대표’로 규정한 보수파의 마오 이해가 더 정확했다고까지 지적했다. 첸 교수는 루쉰(魯迅)의 ‘복잡한 기억’이란 글을 인용해 문혁은 강자에 대한 원망과 분노의 응어리를, 강자가 아닌 약자에게 발산한 ‘비겁한 저항’이었다며 “우리의 들끓는 분노가 가랑잎 외에 정말 무엇을 더 태웠는가”라고 반문했다.
“하층의 저항은 그들 나름의 합리성과 정의감이 있었지만 감정적으론 아주 강한 광신과 맹목의 성분이 들어 있었다. 이는 일종의 비이성적 본능의 저항이고, 그래서 쉽게 이용당하고, 오도되고,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했다.”
그는 문혁이 끝난 뒤 오류를 깨달았지만 ‘혁명과정에 반드시 치러야 할 대가’로 생각해 문혁을 전면 부정하지는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1980년대에 와서 문혁의 반인도적이고 반문화적인 본질을 깨닫고 문혁 중 수많은 폭력을 용인했던 것을 깊이 자책했으며 아직까지도 심한 가책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첸 교수는 여전히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민주화여야 한다”고 믿는 마르크스주의자다. 그러나 아직도 문혁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홍위병을 옹호하는 일부 국내 좌파학자들과 전혀 다른 용기를 보여 줬다. 권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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