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回 國 -
한 학기가 끝나고 잠시 귀국한다. 중국말로는歸國이 아니라 回國이 맞다. 돌아가자면 선물이 신경 쓰인다. 한번은 명태를 사가고, 또 한번은 모시이불을 사갔다. 내가 6남매고, 처가가 7남매니 그것만 하여도 13집,어머님, 장모님, 작은댁, 그리고 가까운 모임 등. 준비와 운반이 쉽지 않지만 줄 때는 너무 사소하여 손이 부끄럽다. 이번에는 많은 부분을 포기한다. 서시장을 들러 옥 장식물 약간과 장갑, 그리고 마른 송이를 산다. 가방 둘에 나누어 넣고 공항으로 간다.
대기선 앞에 젊은 엄마와 소학교 2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섰다. 아이는 한껏 들떠있다. 까닭없이 뛰고 몸을 돌리고 엄마를 빙빙 돈다. 아주 정겨운 아이의 연변 사투리. 아빠를 보러 한국에 간단다. 처음 타보는 비행기. 아빠 외에 할아버지, 할머니도 만난다는데 키에 비해 아직 유치원생이란다. 한국 가서 부디 귀여움만 받고 놀림은 받지 말기를 기원한다. 보기 드물게 한족 아줌마도 있다.한분이 떠나는데 7, 8명의 가족이 나왔다. 서로 부둥켜 안고 울다가 눈가를 훔치다가 다시 껴안는다. 연길 공항에서 흔히 보는 장면이다.
12:30 이륙시간. 날씨가 맑아 연길 시내가 선명히 내려다 보인다. 부르하통하, 연집하, 광명가, 내가 사는 아파트, 그리고 우리 학교도 보인다. 이제는 너무 익숙한 연길, 그리고 연변 땅!!! 延邊이란 이름은 해방전까지 우리에게는 없는 이름이다. 그때는 間島였다. 중국이 개방개혁이 되며 '朝鮮族'이라는 이름과 함께 우리에게 다가온 이름 '延邊'. 그러나 한국인에게 그 이름은 여러가지를 생각케 한다. 어떤 개그맨은 연변을 아주 과장된, 허황한 땅으로 묘사했고, 노총각들에게는색시감을 얻을 수 있는 땅으로 다가왔고, 이제는 많은 왕래가오가고 있지만 잘못된 인식은 아직도 상존한다. 중국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조선족'이라는 민족명칭이 한국에 오면 엉뚱한 느낌으로 받아들이듯이.
비행기는 동북의 하늘을 난다. 천지가 눈이다. 산과 강, 그리고넓은 들이 겨울의 골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중국의 곡창, 많이 것이 풍요로운 땅, 우리와 국경이 직접 맞닿아 있는 곳, 옛날 우리 조상이 살아온 터전. 그리고 지금도 우리 동포들이 살고 있는 곳.
- 入 國 -
두시간 반. 비행기는 가볍게 착륙한다. 착륙만 하면 으례히 안전띠를 풀고 선반의 짐을 내리려는 사람들이 있다. 친절한 기장이 기겁을 하며 쫗아간다. 착륙한 비행기는 연길공항과는 달리 긴 거리를 이동한 다음에야 멈춘다. 공항내 이동이간단치만은 않아 혼동할 사람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동선이 분명치 않은 경우도 있고, 짐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무슨 서류를 어디에서 제시해야 하는지..... 세관 통과시에는 외국인, 한국인의 창구가 다르다. 같이 내린 많은 승객들이 외국인 창구 쪽으로 몰린다. 별 느낌없이 같이 타고온 동포들인데 그들은 분명 중국인이다.
한결이가 나와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 공항버스에 오른다. 8,000원. 시내로 들어서며 길은 이리저리 갈리고 차는 길게 신호대기하고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한다. 거리의 사람들 걸음도 바쁘다. 여기는 서울이다. 가방을 가지고 지하철 환승하는 것이 만만찮다. 제각기 바쁜 한국인들 속에서 나는 혼자 낯설다.
- 서 울 驛 -
잠시 아이들 집에 들렀다가 나와서 저녁을 먹는다. 한국은 역시 식사 주문하기가 편하다. 손님이 오면 먼저 자리를 안내하고 앉으면물이 나온다. 오징어 볶음을 시키자 곧 여러 반찬이 맞추어 나온다. 중국은 이름도 맛도 낯설은 음식을 차이(菜)를 먼저 시키고, 주식은또 뭘로 해야 하는지 그리고 음료는? 음료에는 심지어 물까지 포함된다. 필요하면 광천수라고 하여 생수를 한병 사먹어야 한다. 둘이 저녁 먹은 값이 20,000원. 중국돈으로 180위안 정도이다. 정말 비싸다. 그리고 화폐단위가 너무 높다. 기본단위 1원은 어디로 갔는가? 이제는 10원도 쓸데가 없다.
천안에 내려가기 위해 KTX를 타러 서울역으로 향한다. 표를 사고 3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 앉으려고 보니대합실 내 의자 여기저기에 홈리스들이 많다. 등산 가방을 하나씩 가지고 모자를 눌러쓰고 앉아 조는 사람, 좌석 여러개를 차지하고 자는 사람, 아주 바닥에 들어누운 사람. 냄새가 심하여 일반 승객들은 멀찍이 떨어져 앉든지 아예 서서 텔레비젼을 본다. 많은 외국인들도 오가는 대한민국의 1번지 중앙역인 서울역, 서울역은 홈리스들이 점령했다. 이것이 우리의 이미지이다. 역무원들도 어쩌지 못하는가 보다. 그들이 안쓰럽지 않아서가 아니다. 적어도 공공장소의 질서와 공공성은 살아야 하는 것이다. 중국 공안의 권위는 확실하다. 북경역이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것도 민주화의 부산물인가?
- 아 파 트 -
한국의 어디를 가든 우후죽순 솟는 것이 아파트이다. 논가에 아니면 산자락을 끼고 순식간에 개발되어 주택지가 된다. 아마 그런 곳에 땅을 사둔 사람은 꽤 돈을 벌기도 할 것이다.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면 먼저 기웃거려 동수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나면 라인에 맞추어 입구를 찾아야 하고. 입구를 찾아도들어갈 수가 없다. 집집마다 가족마다 가지고 있는 인식카드가 있다.카드를 갖다대면 삐이익 하고 자동으로 문이 열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자기집 문앞에 서면 문의 비밀번호를 눌러야 한다. 먼저 작동키를 누르고 비밀번호 7자리를 누르고 다시 작동키를 누르면 찌이익하고 문이 따지는 소리가 난다. 그래야 자기집에 들어갈 수가 있다.
잠시 밖에 나갈려면 출입인식카드를 반드시 챙겨야 한다. 깜박 잊고 나갔다면 누군가가 열 때까지 기다렸다가 얼른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그런 행동은 의심받기 쉽상이다. 출입하는 모든 사람은 'CCTV 작동중' 모두 감시된다. 차량도 마찬가지. 앞에 인식카드가 없으면 출입막대가 움직이지 않는다. 나를 보호하는 것인지, 내가 갇혀있는 것인지 조금 헷갈린다.
- 出 勤 -
아내가 출근을 한다. 어둠 속에서 먼저 알람이 울린다. 잠이 깬 아내는 잠시 뒤척이다가 일어난다. 씻는 소리, 화장품 들었다 놓았다 하는 소리. 아침은 아예 먹을 생각도 못한다. 내가 집에 있으니 기차역까지 실어다 준다. 혼자 출근할 때는 차를 가지고 가서 주차를 해놓아야 퇴근 때 다시 타고 오는데 하루 주차비가 5,000원이다. 약간은 어두운 미명에 차에 시동을 건다. 큰길로 나오면 벌써 많은 차들이 쏜살같이 내달리고 있다. U턴, 신호대기, 신호대기 또 신호대기. 시간은 빠듯하여 아내는 늦는다고 동동거린다. 들판에 새로들어선 역으로 가는 길은 이미 승용차들의 후미등으로 빨갛다. "큰일났네, 늦는데"하는 사이 검표소까지 온다. 팔을 뻗쳐 주차권을 뽑아야 막대가 올라간다. 빙빙돌아 역앞에 아내를 내려 놓는다. 출근전쟁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역 이름이 참으로 길다. '천안아산역(온양온천)'이다. 그 이름 가지고 천안과 아산이 피터지게 싸웠다. KTX가 뚫리며 천안에서 한번 서게 되었는데 역 건물이 아산 땅에 물려있다. 두 지역은 명칭을 가지고 오래 싸웠다. 결국 천안과 아산을 병기했는데 아산하면 잘 모르니까 옛날의 온양이며온양에는 온천이 있으니 많이 놀러오라는 뜻을 싣다보니 황희정승 재판하듯 이름이 길어졌다.역앞 안내판에'아산방향진입금지'라고 보이고 반대쪽에 가면 '천안방향진입금지'라고 하여 차량이 통과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아내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에서 공주대학교 명칭을 가지고 공주와 천안이 줄다리기하는 대담이 길게 나온다.땅은 좁고 사람은 많아 매사에 첨예한 것인가? 아니면 한국사람이 원래 참여의식이 높아서 그런 것인가?
- 다시 연길로 -
해외파견공무원은 1년에 20일 이상 파견국을 벗어날 수 없다. 당연히 파견국에서 임무를 다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여름방학 열흘, 겨울방학 열흘은 너무 짧다. 열흘이래야 가는데 하루 오는데 하루를 빼면 일주일이다. 어머님 뵙고 형제들 보고 친구들 보고하면 일주일은 살처럼 지나간다. 규정이 좀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에 있는 아이들과의 시간을 갖기 위하여 하루 앞서 서울로 올라와 저녁을 먹고 쇼핑하고 책도 사고 돌아와 텔레비젼 보고 내일을 위하여 좀일찍 잠을 청한다.
출국일. 새벽부터 정신없다. 아내는 KTX로 대전까지 출근하고, 나는 10:00시인 이륙시간 두 시간 전까지 공항에 도착하도록 서둘러 집을 나선다. 티켓팅하고 마일리지 정리하고 모처럼 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대학 이야기, 군대 이야기, 카메라와 오토바이 이야기 등등. 사실은 미어지는 마음을 달래가며 아무렇지 않은듯 대화를 한 시간이다.
9시쯤 아들과 헤어져 출국심사하고 34번 게이트를 찾아간다. 연길 손님들이 이미 많이 모여있다. 그런데 창밖이 심상치 않다. 안개가 점점 짙어지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10:00시발이 12:50분발로 연기된다.항공사에서 만원짜리 식권을 배부하여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다시 돌아와 기다리는데 항공기 연결문제로 13:30분으로 다시 연기된다는 안내방송이다. 게이트도 29번으로 바뀌었다. 한층 아래인 29번을 찾아 다시 기다린다. 그러나 시간이 되어도 탑승수속을 하지 않는다. 드디어 나이가 지긋한 손님이 항공사로 전화를 한다. 날씨 관계로 지연되는 것은 할수 없다손치더라도 사람도 안와보고 자세한 안내도 없다는 불만이다. 일본으로 마카오로 잘들 떠나는데 연길은 기약이 없다. 어느 사이 시간이 다시 연기되어 14:20분발이란다.승객들은 지치고 여승무원 혼자서 이런저런 항의에 얼굴이 벌겋다. 3시쯤 되어 셔틀버스를 탄다. 가려나 했더니 비행기에 탑승하고서 다시 기다린다. 활주로에 이륙 대기중인항공기가 많이 밀렸단다. 기다리다 지쳐 모두 파김치가 되고 승객 한명이 이는 계약위반이라며 내린다고 야단을 치자 기장의 안내방송이 나온다.우리 비행기가 대기순위 3순위가 되었다는 것이다. 시간은 이미 3시 50분이 되었다.
드디어 비행기는 가볍게 이륙한다. 비행시간 2시간 30분. 바다위를한동안 날다가 요동반도로 접어든다. 끝없이 펼쳐지는 동북의 산하. 갈수록 지면에눈이 점점 많아지며 심양을 지나 연길로 접어든다. 구름위에서 보는 석양은 아름답다. 하늘 모습을 여러번 카메라에 담는다. 연길 도착이 중국시간으로 5시가 넘는다. 밖은 이미 깜깜하다. 한국에서 연길 오는데 고박 하루가 걸린 것이다.연길공항 출국장에는 오전부터 출국을 기다려온 승객들이 지친 눈으로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아는 분들, 우리 학교 학생들도 여럿 있다. 공항을 빠져 나오자 시내는 뿌연 안개와 연기 속에 변함없는 모습으로 나를반긴다. 약간은 어색한듯, 그러나 반가운듯..... 내가 없는 동안 눈이 많이도 내렸다. 길가에 치워놓은 눈의 높이가 제법이다. 가로등도 불빛을 내리깔고 도열해 있다. 잠시 주인없던 집으로 들어선다. 사물들이 익숙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제2의 고향이 될 연길. 다시 한 학기의 중국생활이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