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처럼]
2010. 3. 9. 18:53
2010. 3. 9. 18:53
꽃이름 외우듯이 / 이해인우리 산우리 들에 피는 꽃꽃이름 알아가는 기쁨으로새해, 새날을 시작하자회리바람꽃, 초롱꽃, 돌꽃, 벌깨덩굴꽃큰바늘꽃, 구름채꽃, 바위솔, 모싯대족두리풀, 오리풀, 까치수염, 솔나리외우다 보면웃음으로 꽃물이 드는정든 모국어꽃이름 외우듯이새봄을 시작하자꽃이름 외우듯이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즐거움으로우리의 첫 만남을 시작하자우리 서로 사랑하면언제라도 봄먼데서도 날아오는 꽃향기처럼봄바람 타고어디든지 희망을 실어나르는
동백꽃이 질 때 / 이 해 인비에 젖은 동백꽃이 바다를 안고종일토록 토해내는 처절한 울음소리들어보셨어요?피 흘려도사랑은 찬란한 것이라고순간마다 외치며 꽃을 피워냈듯이이제는 온몸으로 노래하며떨어지는 꽃잎들사랑하면서도상처를 거부하고편히 살고 싶은 나의 생각들쌓이고 쌓이면죄가 될 것 같아서마침내 여기 섬에 이르러 행복하네요동백꽃 지고 나면내가 그대로붉게 타오르는 꽃이 되려는 남쪽의 동백섬에서...
꽃 한 송이 되어 /이 해 인 비 오는 날 오동꽃이 보랏빛 우산을 쓰고 나에게 말했습니다 넓어져라 높아져라 더 넓게 더 높게 살려면 향기가 없어도 괜찮다 나는 얼른 꽃 한 송이 되어 올라갔습니다 처음으로 올라가본 오동나무의 집은 하도 편안해 내려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신도 오실래요?
꽃멀미 / 이해인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면 말에 취해서 멀미가 나고, 꽃들을 너무 많이 대하면 향기에 취해서 멀미가 나지. 살아 있는 것은 아픈 것, 아름다운 것은 어지러운 것. 너무 많아도 싫지 않은 꽃을 보면서 나는 더욱 사람들을 사랑하기 시작하지. 사람들에게도 꽃처럼 향기가 있다는 걸 새롭게 배우기 시작하지
꽃마음 별마음 /이 해 인오래 오래 꽃을 바라보면 꽃마음이 됩니다. 소리없이 피어나 먼데까지 향기를 날리는 한 송이의 꽃처럼. 나도 만나는 이들에게 기쁨의 향기 전하는 꽃마음 고운 마음으로 매일을 살고 싶습니다. 오래 오래 별을 올려다보면 별마음이 됩니다. 하늘 높이 떠서도 뽑내지 않고 소리없이 빛을 뿜어 내는 한 점 별처럼, 나도 누구에게나 빛을 건네 주는 별마음 밝은 마음으로 매일을 살고 싶습니다.
꽃밭에 서면 / 이해인꽃밭에 서면 큰 소리로 꽈리를 불고 싶다피리를 불듯이순결한 마음으로꽈리 속의 자디잔 씨알처럼내 가슴에 가득 찬 근심 걱정후련히 쏟아 내며꽈리를 불고 싶다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동그란 마음으로꽃밭에 서면저녁노을 바라보며지는 꽃의 아름다움에흠뻑 취하고 싶다남의 잘못을진심으로 용서하고나의 잘못을진심으로 용서받고 싶다꽃들의 죄없는 웃음소리붉게 타오르는꽃밭에 서면
꽃샘바람 /이해인속으론 나를 좋아하면서도만나면 짐짓 모른체하던어느 옛친구를 닮았네꽃을 피우기 위해선쌀쌀한 냉랭함도꼭 필요한 것이라고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으면서얄밉도록 오래 부는눈매 고운 꽃샘바람나는 갑자기아프고 싶다
꽃씨를 닮은 마침표처럼 / 이해인내가 심은 꽃씨가 처음으로 꽃을 피우던 날의 그 고운 설레임으로 며칠을 앓고 난 후 창문을 열고 푸른 하늘을 바라볼 때의 그 눈부신 감동으로 비온 뒤의 햇빛 속에 나무들이 들려주는 그 깨끗한 목소리로 별것 아닌 일로 마음이 꽁꽁 얼어 붙었던 친구와 오랜만에 화해한 후의 그 티없는 웃음으로 나는 항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 못 견디게 힘든 때에도 다시 기뻐하고 다시 시작하여 끝내는 꽃씨를 닮은 마침표 찍힌 한통의 아름다운 편지로 매일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