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문화의 다양성

황유복


중국과 ‘중국인’을 공부하기 위해 중국대륙을 여행해본 사람들은 중국문화의 다양성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땅이 넓고 인구가 많은 큰 나라에서 다양성은 당연한 현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의 다양성은 미국의 그것과 다르다. 소수의 인디언 원주민을 제외한다면 미국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여든 이민들로 구성된 ‘이민대국’이다. 따라서 미국문화의 다양성은 ‘와스프(WASP-백색 영국계 개신교도)’문화를 중심으로 하고 세계의 여러 인종과 민족들의 문화가 섞여서 만들어지는 ‘샐러드 보울(Salad bowl)’식의 문화로 대표된다.

중국문화의 경우는 55개 소수민족의 문화를 계산하지 않더라도 한(漢)족이라는 ‘단일민족’ 문화 속의 다양성만으로도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할 때가 많다.
내가 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때의 일이다. 그때 우리 클라스 정원은 60명이었는데 한족이 52명, 소수민족 출신이 8명이었다. 소수민족이라고 해도 만족, 회족 등 자기 민족언어가 따로 없는 민족이었고, 나 혼자만 대학 입학 전 소수민족학교를 졸업한 학생이었다. 처음 나는 중국어가 너무 서툴어 남들을 따라갈 수 있겠는가를 걱정했다. 그런데 중국의 동서남북에서 모여온 학우들이 서로의 악센트에 익숙해지고 상대방의 말을 별 어려움이 없이 알아듣게 되기까지는 한 학기라는 시간이 걸렸다. 나도 그 시간을 이용하여 열심히 북경말을 배웠기 때문에 남들이 눈치 채기 전에 북경 출신 학생들 다음으로 중국어(북경말)를 유창하게 하는 학생이 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중국에는 수많은 지역 방언들이 난립해 있다. 다 같은 중국어(漢語)이지만 한국의 영남, 호남 정도의 차이가 아니고 타 지역 사람들이 완전히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차이가 크다.

음식문화도 마찬가지이다. “비행기를 빼고는 날아다니는 모든 것을, 배를 빼고는 물에서 헤엄치는 모든 것을, 상(床)을 빼고 뭍에서 네발 가진 모든 것을 먹는”다고 자랑하는 중국이야말로 ‘음식문화의 천국’이라 할 수 있다.

산초와 고추를 조미료로 사용하여 혀끝이 아리고 매운 사천요리, 단 맛을 돋보이게 하는 상해요리, 지독하게 매운 맛을 자랑하는 호북, 호남요리, 파를 많이 사용하는 산동, 북경요리, 생선 중심의 광동요리와 양고기 중심의 서북요리……지역에 따른 다양한 맛의 요리들이 있다. 그런데 그러한 지역별 음식들의 맛 차이가 너무 커 ‘단일민족’의 음식이 과연 이럴 수 있나 의심할 정도이다.

나는 식성이 까다롭지 않아 어디 가서든 음식을 별로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 나를 울게 한 음식들은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다. 광서 유주(柳州)부근 농가에서 주인이 올챙이가 둥 둥 떠있는 쌀죽을 대접했을 때 쩔쩔 맨 적이 있다. 또 호북성의 어느 시골서 어린이들이 고추를 과일처럼 먹고 있어 나도 따라 흉내 내다가 너무나 매워 눈물을 짰던 일도 있다. 중국의 음식문화를 체험하면 할수록 다양성에 놀라게 된다.

체질인류학이나 문화인류학의 시각에서 봤을 때도 중국인(漢族)이나 그들의 문화는 다양하다.

우선 남방의 한족들은 체질인류학적으로 따지면 ‘인도네시안 말레이(Indonesian malay)’계열이고, 북방 한족은 ‘아시아티크 몽고로이드(Asiatic mongoloid)’계열이다. 북방인은 보편적으로 키가 크고 체질이 강한 대신 사유방식이 간단하고 순박하며 어려운 생활환경에의 적응성이 강하다. 그에 비해 남방인은 체구가 왜소하고 두뇌가 발달되었으며 안일한 생활을 좋아하고 상인(商人)적인 기질이 강하다.

남방인들도 지역에 따라 또 다르다. 임어당(林語堂)에 따르면 양자강하류 사람들은 문학가기질과 상인기질이 강하고, 광동인들은 성미가 급하고 모험을 좋아하고 개척정신이 강하며, 호북인들은 음모술수에 능하다고 한다.

정치인들에 의해 부추겨지는 지역감정만 빼면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지역문화의 차이를 거의 감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서울을 다녀온 중국인이 한국을 보고 왔다고 한다면 적어도 50%의 신빙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경을 다녀간 한국인이 중국을 보고 왔다고 한다면 10%정도의 신빙성이 있다고도 평가하기 어렵다.

중국과 중국인을 잘 이해하려면 우선 중국문화의 다양성을 파악해야 한다.(끝)

글로벌 에티켓과 중국인들의 예절

황유복

10여 년 전 중국에서 건너간 조선족 출신의 한 교수가 한국 신문에 중국 사람들은 '며느리와 시아버지도 악수로 인사'한다는 이상한 글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한국 사람들은 중국인의 예의 하면 곧잘 '며느리와 시아버지'를 들먹인다.

악수는 중국에서 가장 보편적인 인사법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 사이의 수인사나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 간의 인사로 악수를 하게 된다. 또 특별히 감사 드려야 할 사람에게 두 손으로 상대방의 한 손을 덥석 잡으며 감사의 말을 연발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한집식구 간에 악수하는 에티켓은 없다. 다시 말해 며느리와 시아버지는 악수로 인사를 나누지 않는다. 부자지간, 형제지간, 부부지간에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인들은 흔히 중국을 한국과 같은 '예의지국'으로 생각하다가 정작 중국에 와 보고 '예의를 잃어버린 나라'라고 놀라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중국인들이 예의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한국과 다른 에티켓 문화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구상의 어느 나라나 민족이든 간에 각자의 에티켓 문화를 갖고 있다. 따라서 글로벌 에티켓 문화는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 다양한 문화들 간에 어느 나라나 어느 민족의 에티켓 문화는 선진적이라든가 좋은 것이고 어느 민족의 에티켓 문화는 낙후하거나 나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

그러한 에티켓 문화가 정착되기까지는 그 나라나 민족의 전통문화와 생존환경 등 복잡한 요소들이 작용하고 있다. 때문에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 간의 에티켓 문화는 상대적이다. 이러한 문화의 상대성(Cultural relativity)을 인정하는 것이 세계화 시대에 갖추어야 할 글로벌 에티켓 중에 가장 중요한 하나일 것이다. 예를 든다면, 한국인들의 주거문화는 온돌방이나 마루방 중심으로 되어 있지만 중국인(중원지역)들의 주거문화는 침상과 의자 중심으로 되어 있다. 큰절인사는 온돌이나 마루에서는 적합하지만 침대나 의자에서는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중국인들은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큰 절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 해서 우리가 중국 사람들은 '에티켓이 없다'라고 한다면 우리는 중국문화의 상대성을 인정하지 않는 편협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 것은 한국인들이 보신탕을 먹는다고 비방하는 일부 서양인들의 편협함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선 자세로 몸을 굽혀 남에게 존경의 뜻을 나타내는 인사법은 중국에도 있다. '국궁(鞠躬)' 법이 그 것이다. 그러나 '국궁' 법은 윗사람이나 죽은 사람 시신이나 위패 앞에서 행하는 극히 제한된 예절이다. 조문을 빼버린다면 중국인은 일생동안 세 번 국궁 예를 한다고 할 수 있다. 결혼식 때 천지신명에 한번, 부모님께 한번, 그리고 부부 대배 하는 것이 그 것이다.

서양의 악수법이 중국에 전해지기 전 중국인들의 인사는 '공수(拱手)' 법이었다. 두 손을 맞잡고 팔을 어깨 높이까지 올리면서 상대방에 공경의 뜻을 나타내는 인사법이었다. 지금도 일부 노자(老者)들 사이에 공수 인사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근대화과정에서 서양식 악수에 밀려 점차 모습을 감추게 된 중국식 인사법이었다. '한국식 예절과 인사를 그대로 갖고 가서 중국인들에게 가르쳐주면 중국인들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많이 배우리라고 믿는'다는 생각은 자기 문화의 '우월성'에 도취된 편견일 뿐이다. 근대화 이전에도 중국인들은 한국의 큰 절이나 '국궁'식 절과 완전히 다른 '공수' 인사법이 있었다는 점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일부 문화의 상대성을 무시하는 중국인들은 허리를 굽실거리며 인사하는 일본인들이나 한국인들의 인사법을 비생산적인 허위허식이라고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인들 가운데 중국인들의 남녀, 상하 관계의 설정도 '에티켓이 없는' 못마땅한 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가족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의 대인관계가 한국인들은 수직관계인데 비해 중국인들은 도리어 수평관계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 선배가 후배에게 이래라 저래라 한다든가, 교사가 학생을 체벌한다든가, 군에서 새로 입대한 병사에게 기압을 준다든가, 회사 상사가 부하 직원을, 공장 관리인이 노동자를 욕한다든가 하는 일들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다. 심지어 집주인이 가정부를 함부로 욕하지 않으며 길가다가 시끄럽게 손을 내미는 거지도 욕하지 않는다. 중국인들은 남과 여, 노와 소, 상급과 하급을 불문하고 사람들은 인간으로서 모두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중국에서 대인관계를 나타내는 기본단어는 '너(你)', '나(我)', '저 사람(他)' 식으로 간단하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그리고 아들과 손자도 다같이 '나'고 '너'고 '저 사람'이다. 사실 한국어와 같이 까다롭게 상, 하, 존, 비를 구분하여 '나는 밥을 먹고', '아버지께서는 밥을 잡숫고', '할아버지께서는 진지를 드시는' 식으로 표현하는 언어는 세상에서 찾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 해서 중국인들이 부모에 대한 효도나 윗사람에 대한 존경, 친구 간의 의리와 우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윤리관은 한국인들과 별 차이가 없다. 중국 속담에 '일일위사, 종신부모(一日爲師, 終身父母)'라는 말이 있다. '하루의 선생이라도 죽을 때 까지 부모같이 섬긴다. '는 뜻이다.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이 오래간만에 만나 악수를 청하고 '로우스 니호우(老師你好)'라고 인사를 해오지만 그들이 나에 대한 관심과 존경은 언제나 변함없다.

한국인들이 중국에서 자주 느끼게 되는 서비스 정신의 부재는 예절이라기보다 자본주의 사회와 사회주의 사회의 가치관의 차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인과 중국인의 예절문화는 옛날부터 차이가 있었다. 근대화 과정과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중국인들은 인권평등을 중심으로 하는 인간관계와 서양식 인사법(악수)을 선택하여 에티켓 문화의 세계화를 앞질러 가고 있다. (끝)



<황유복>

*1943년 2월 길림성 영길현 쌍하진에서 출생.
*1961년. 9-1966. 6 중앙민족대학 역사학부에서 민족사 전공.
*1987.9-1988.12 미국 하버드대학교 교환교수.

*현재
중앙민족대학 민족학과 사회학학원 박사생 지도교수.
중앙민족대학 한국문화연구소 소장
중국 조선(한국)사연구회 회장
중국 조선민족사학회 회장

*주요저서:
<<중국조선민족 사회와 문화의 연구>>,<<봉사도(중문)>>,
<<중국고대북방민족문화사(중문)>>(공저)등 저서 2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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