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기후가 널뛰듯 혼란스럽다. 소낙비가 무섭게 퍼붓다가 순식간에 햇볕이 쨍쨍나는 아열대 동남아지역의 스콜(squall)을 연상시킨다. 비가 내려도 푹푹 찌는 무더위는 식지 않는다. 시도 때도 없이 전국에 폭염특보가 내려졌다. 8월이 시작되자마자 쉴 새 없이 비가 내렸지만, 이틀에 한 번꼴로 열대야가 발생했다. 장마철이 따로 없고 이젠 ‘우기(雨期)’를 지정해야 할 판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강우 패턴마저 변화하면서 한반도에 아열대 기후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올해 태어난 아기 칠순 되기 전 전국 아열대=기상청은 지난 3월 ‘2071~2100 전국 아열대 기후 예측도’를 통해 산악지역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2071년에는 아열대 기후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아열대 기후란 월 평균기온이 10도 이상인 달이 한 해에 8개월 이상 지속되고, 가장 추운 달의 평균기온이 18도 이하이면서 얼음이 얼지 않는 기후를 말한다. 기상청이 밝힌 아열대 기후 예측도에 따르면 지난 1971~2000년에 비해 2071~2100년이 4도 이상 더 더울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현재 서울과 서귀포의 평균기온 차가 4도 정도임을 감안하면, 21세기 말 서울도 아열대 기후가 된다는 이야기다. 먼 미래가 아니다. 현재 태어난 아이가 칠순 잔치를 하기도 전에 기후가 바뀌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미 제주를 비롯한 남부지방 일부는 아열대 기후에 들어왔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월 평균기온이 10도 이상인 달이 8개월 이상 지속된 곳은 전국 76개 기상관측소 중 무려 20곳. 4월부터 10월까지는 전국 대부분 지방의 평균기온이 10도를 넘기 때문에 11월이 아열대 기후 여부를 가늠하는 관건이다. 12월과 1, 2월 한겨울 날씨를 고려하지 않았을 때 제주와 포항 부산 군산 대구 등이 아열대 기후 기준에 들어섰다. 서울대 허창회 교수(지구환경과학)는 “여름철 평균 기상현상만 놓고 봤을 때 한반도는 이미 아열대 기후 현상을 보이고 있다. 다만 겨울철 한파가 있기 때문에 기상학적으로 아열대 기후가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문제는 이 상황에 대해 심각히 여기지 않고 대비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슈퍼 태풍 찾아온다=기온이 올라가면서 여름철 강우 패턴도 바뀌었다. 장마가 끝난 후 우산을 뚫을 듯한 호우가 쏟아져 최근 8월 강수량은 장마철인 7월보다 많다. 올 여름 전국을 널뛰듯 오르내리며 쏟아부은 게릴라성 폭우가 바로 변화된 강우 패턴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기상청은 통상 여름철 상승기류가 형성되면서 비가 자주 내리기는 하나,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올해 유독 공기의 흐름이 활발해 예측이 어려운 게릴라성 폭우가 기승을 부렸다고 말했다. 실제로 스콜과 같은 집중호우(시간당 30㎜ 이상)는 크게 증가해 1970년대 연평균 74.5회에 불과하던 것이 2000년대에는 117회로 늘었다.
가장 염려되는 것은 슈퍼 태풍이다. 2005년 미국 뉴올리언스에 무려 1800여명의 희생자와 800억달러 이상의 재산 피해를 안겨준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같은 슈퍼 태풍(중심 부근 최대 풍속이 초속 70m)이 찾아온다면 피해는 예측하기도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면서 한반도에 기존 태풍보다 훨씬 강력한 태풍이 불어닥칠 가능성이 높으며, 실제 최근 한반도를 덮친 태풍이 갈수록 위력이 강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2003년 9월 남부지방을 강타한 태풍 ‘매미’의 순간 최대 풍속은 초속 60m에 달했다.
그러나 이 같은 기후 변화의 위기와 기회에 적절히 대처할 만한 시스템이 한국에는 없다. 미국은 연간 20억달러 이상 기후변화과학프로그램을 운용해 환경 시스템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영국도 지난 1997년 기후변화영향프로그램을 마련, 연구 결과를 데이터베이스화해 국가ㆍ지방 및 지역단체에서 활용하고 수요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국가적 차원의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기후학자들은 지적했다.
성연진 기자(yjsung@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