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안구 - 새 빛으로 빛나다

16일 오후 6시30분, 김수환(金壽煥·87) 추기경이 선종(善終)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울성모병원(옛 강남성모병원) 병실에 이 병원 안과 전문의 4명이 찾아왔다. 지난 1990년 김 추기경이 약속한 각막 기증을 받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김 추기경의 병세가 위중하다는 연락을 받고 이날 오후 3시부터 수술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고 있었다. 의사들은 김 추기경의 마지막을 지켜본 정진석 추기경 등 신부, 수녀들을 잠깐 병실 밖으로 내보냈다. 안과 과장 주천기(53) 교수가 김 추기경의 유해를 향해 목멘 소리로 말했다.

"하늘나라에 가시면서 숭고한 일을 하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새 빛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변용수(30) 전문의는 "야위셨지만, 돌아가신 분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온화하고 평안한 표정이셨다"고 했다.

수술은 오후 7시부터 30분 동안 진행됐다. 의사들은 추기경의 양쪽 눈을 거둔 뒤 병원 안에 있는 '안구은행' 으로 옮겨서 이식에 적합한 상태인지 확인했다. 변 전문의는 "연세에 비해 각막이 깨끗했고, 두께와 세포 밀도도 정상이었다" 고 했다. 이날 밤 9시30분쯤 김 추기경의 유해는 명동성당으로 운구됐고, 김 추기경의 각막은 병원에 남았다.

이튿날인 17일 오전 9시쯤 각막 이식 수술 대기자인 서울의 A(73)씨와 경북의 B(70)씨 집에 전화가 걸려왔다. "각막이 준비됐으니 빨리 서울성모병원으로 오라" 는 내용이었다. A씨는 1시간 30분 만에 아들(42)의 부축을 받으며 병원에 들어서 입원 수속을 마쳤다. B씨도 오후 2시30분쯤 병원에 도착해 곧바로 수술복으로 갈아입었다.
A씨는 "19살 때 고향에서 과일을 따다가 나뭇가지에 오른쪽 눈을 찔려 시력을 완전히 잃었고, 그 후 왼쪽 눈 시력이 떨어져 1~2m 앞만 어렴풋이 분간할 수 있게 됐다" 고 했다. 2006년과 2007년에 두 차례 수술을 받고 왼쪽 눈 시력을 일부 회복했지만 이내 다시 침침해졌다고 한다. 아들은 "50년 넘게 집에서만 지내신 어머니가 이번에야말로 눈을 뜨면 좋겠다" 고 기원했다.
B씨는 "30년 전, 다니던 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나서 왼쪽 시력을 잃었다" 며 "그동안 농사일을 마음먹은 만큼 못했는데, 시력을 회복해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면 좋겠다" 고 했다.

두 사람은 병원 직원들에게 "어제(16일) 여기서 김 추기경이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며 "혹시 내가 이식받을 각막이 그분이 기증하신 것이냐" 고 물었다. 병원 직원들은 "각막 기증자와 이식 대상자의 신원을 밝히는 게 규정상 금지돼 있어 알려줄 수 없다" 고 답했다.

병원측은 "각막 이식 수술은 각막이 들어올 때마다 그때그때 이뤄진다" 고 했다. 적출된 각막의 보존 기한은 7일이지만, 대부분 만 하루 안에 이식 수술이 이뤄진다. 병원 관계자는 "양쪽 눈 실명이나 응급 안(眼) 질환을 앓는 환자, 또 나이가 적은 환자일수록 우선순위가 되며, 기증자와 이식 대상자의 나이도 고려한다" 고 했다.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 는 이날 "김 추기경이 각막을 기증한 뒤, 장기기증 서약 상담이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며 "온라인과 전화로 '추기경을 보고 나도 베풀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는 사연이 쏟아졌다" 고 했다. 김 추기경은 이 세상에 눈(目)과 사랑을 남기고 떠났다. <메디컬 한국>

두 눈까지 아낌없이 주고간 사랑에 장기 기증 신청 부쩍 늘었다

김수환 추기경이 마지막 순간까지 보여준 ‘아낌없는 사랑 실천’은 시간이 갈수록 국민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18일 명동성당 앞에 차려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등록부스에는 하루 동안 100명이 넘는 시민이 찾아와 장기 기증을 약속했다. 장기 기증 등록 엽서를 가져간 사람은 500명이 넘었다. 장기 기증을 약속한 사람은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부산에서 고속철도(KTX)를 타고 와 조문한 뒤 장기 기증을 약속한 사람, 김 추기경을 만나지 못했다는 죄스러움에 장기 기증 약속으로 대신한 사람 등 연령을 불문하고 각계각층이 찾았다.

온라인으로도 200건 넘는 장기 기증 신청이 접수됐다. 김 추기경 선종 직전 하루 평균 25건 정도 등록 건수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폭발적인 증가세다. 인천에서 온 대학생 강모(22·여)씨는 “김 추기경이 퍼트린 사랑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좋은 일에 동참하게 돼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김 추기경의 선종을 본 뒤 장기 기증을 결심했다는 이모(61)씨 부부는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김 추기경이 몸으로 보여준 메시지가 가슴에 와닿았다. 잘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다 장기 기증 등록을 했다”고 했다.
추기경의 선종은 삶과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바꾸고 있다. 퇴근길에 명동성당을 찾은 백경희(34·여)씨는 “김 추기경의 의연한 죽음을 닮고 싶다. 모든 것을 나눠준 뒤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추기경이 기증한 안구 각막은 빛을 잃은 2명에게 이식됐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 허영엽 신부는 “두 사람에게 성공적으로 이식된 것으로 안다”며 “고인이 자기를 통해 타인을 돕고 함께 나누기를 원하신 만큼 장기 기증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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