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인터뷰]엘튼 존이 작품 사간 사진가 배병우
"왜 소나무만 찍냐구요? 한국의 美는 거기 있거든요" 박종인기자 seno@chosun.com

입력 : 2005.11.04 18:24 20' / 수정 : 2005.11.05 05:21 03'
http://www.chosun.com/national/news/200511/200511040327.html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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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영국 런던에서는 한국사진계에 뜻깊은 사건이 벌어졌다.
세계적인 미술품 수집가인 가수 엘튼 존이 배병우(裵柄雨·55) 서울예대 교수의 소나무 사진(130×260㎝)을 구입한 것. 엘튼 존은 “바로 나를 위한 작품”이라며 1만5000파운드(약 2767만원)를 내고 작품을 가져갔다. 다섯 장 한정 인화한 이 작품은 다 팔리고 마지막 남은 사진은 4만2000파운드(약 7750만원)로 값이 더 올랐다. 지난주 배병우는 엘튼 존이 사간 소나무 사진을 포함한 사진집 ‘청산에 살어리랏다(열화당)’를 냈다. 소나무와 바다, 능선을 비롯해 한국미가 녹아 있는 작품들을 모은 사진집이다. 그를 만났다.배병우의 스튜디오는 경기도 파주 헤이리 예술인마을에 있다. 페인트를 칠하지 않은 잿빛 콘크리트 건물 두개를 2층에서 이어 붙였는데, 큰 건물은 스튜디오와 암실, 작은 건물은 침실과 서재·부엌이었다. 막 지은 건물이 아니다.
“한국에서 사진으로 먹고 살기 쉬운 일이 아닌데, 어찌 이리 좋은 스튜디오를 만들 수 있었나” 하자 껄껄 웃는다. “이런 스튜디오, 본창이랑 나랑 해서 몇 명 없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스튜디오 제대로 만들어 놓아야 후배들이 사진예술을 꿈꾸지 않겠는가.” 구본창과 배병우, 세계적으로 활동 중인 이들은 사진예술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동경과 흠모의 대상이다.
―엘튼 존이 사간 작품은 어떤 건가?
“이번 작품집을 위해 작업 중이던 작품이다. 올 초에 작품집 스폰서기업인 ㈜태평양의 서경배 사장이 스튜디오에 들렀다. 소나무 몇 점을 프린트해달라기에 해줬더니 그게 가나화랑으로 연결되고 그게 포토 런던이라는 사진시장에 출품된 거다.” 그가 사진집 23페이지를 열어보였다. 두 면 가득 들어오는 웅장한 송림(松林). 둔중한 소나무 두 그루가 안개 스민 숲 속에 튀어나와 있다. 경주 남산이다. 지난 2월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소나무 시리즈가 1만3400달러(약 1400만원)에 낙찰됐으니, 올 들어 해외시장에서 배병우 작품 가격은 폭등을 거듭하고 있다.
―왜 소나무인가?
“처음에는 바다 사진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한국인의 정체성이 궁금해졌다. 내가 뭐지? 우리가 뭐지? 하다가 자연스럽게 소나무로 관심이 옮겨갔다. 그게 굳어서 20년이다.”
―한국미(韓國美)라…. 현대적이지 않다.
“맞다. 사람들이 나더러 ‘당신은 현대작가가 아니다’라고들 한다. 어찌보면 나는 모더니스트다. 그러니까 촌티나게 한국미에 집착하지.” 그의 여수 고향집 뒤에 소나무가 있었다고 했다. 낙락장송이었는데 그걸 보고 자랐다. 산에 오르면 저 앞에 바다가 보였다고 했다. 또 어린 배병우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그에게 “네가 그려준 어린이회장 포스터 때문에 내가 회장했다”고 했을 정도다. 고향집의 서정과 그림 재주가 배병우를 이 시대에 가장 서정적인 사진가로 만들었다. 그런데 한때 체육학과를 갈까 했을 정도로 유도를 한 이력도 있어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몸으로 먹고사는’ 그 어떤 직업인으로 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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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가 뭔가?
유도로 다져진 팔뚝을 그가 내민다. “이 곡선과 닮은 능선, 그러니까 노년기에 접어든 우리 산하(山河)의 완만한 곡선이 한국미다. 이맘때부터 내년 봄까지, 이 잔털처럼 서 있을 소나무들과 능선이 한국미다.” 그에게 소나무가 아버지라면 바다는 어머니다. 그래서 그는 요즘 제주도 오름과 바다, 숨어 있는 계곡을 촬영 중이다. 갑자기 사진가가 벌떡 일어나더니 겸재 정선의 작품 도록을 가져왔다. “이걸 보라. 겸재의 소나무 그린 기법. 원경일 때, 근경일 때 소나무의 디테일한 표현이 다르다. 근사하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 바로 겸재다.
―겸재 그림에는 대체로 사람이 있다. 그런데 당신 사진에는 사람이 없다.
“딱히 이유는 없다. 20년 동안 소나무만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을 포함시키는 게 어려워졌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소나무를 바라보고 있자면 어느 순간 내가 소나무 숲 속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초대형 프린트가 됐건, 사진집에 있는 작은 사진이 됐건 말이다. 배병우는 그런 식으로 사람을 표현하고 있었다.
―사진이 예술이 될 수 있나?
“사진은 현대의 붓이다. 문제는 그 붓으로 뭘 그릴 것이냐다. 카메라 기술만 좋다고 다 사진가가 아니다.” 사진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손 동작도 거칠어진다. “나는 예술가지 사진가가 아니다. 사진은 내가 가지고 있는 감성을 표현하는 도구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반드시 예술적인 기초를 가지고 사진을 해야 한다”고 했다.
풍경사진의 대가였던 안셀 아담스는 작곡가였다. 영화적인 설정 속에 자화상을 찍는 미국 여성작가 신디 셔먼, 그는 남편과 함께 영화 작업을 하던 사람이었다. 녹색칠을 한 석고 고양이 떼를 찍어 ‘방사선 고양이’ 시리즈를 내놓은 샌디 스코글런디는 조각가였다. 애잔하고 충격적인 브라질의 다큐멘터리 사진가 세바스티앙 살가도, 그는 경제학박사로 제삼세계를 연구하다가 아예 그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의 분노와 비애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런 기초가 없이 남의 것이나 흉내내면 경쟁력이 없다. 한국 사진학과는 사진 기술자를 만들기는 좋지만, 예술적 소양을 일러주지는 못한다. 그게 아쉽다.” 21세기, 세계 미술시장의 30%는 사진이다. 안드레아스 구어스키 같은 작가의 사진은 100만달러가 훌쩍 넘는다.
―디지털시대다. 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필름을 쓴다.
“아날로그가 갖는 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디지털의 미학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필름시대 사진은 인화지에 코팅한 은(銀) 입자가 이미지를 만들었다. 디지털은 모니터에 부유(浮遊)하는 이미지를 종이에 잡아야 한다. 은입자에 능숙한 나처럼, 떠다니는 이미지를 포착하는 새로운 대가가 나와야 한다.” 유수의 세계 미술관들은 잉크젯프린터로 인쇄한 작품들을 구매하고 있다. 코닥·아그파·일포드 등 많은 필름·인화지 제조업체들이 생산라인을 닫고 있다. 필름이 사라지는 날, 이 대가는 어찌해야 할까, 감히 묻지 못했다.
―어떻게 사진을 하게 됐나?
“동네 형님이 서울대 미대를 나왔는데, 대학교 1학년(그는 홍익대 응용미술학과를 나왔다) 때 그 형이 사진을 권했다. 그때부터 전공인 디자인은 뒷전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디자인 배우고 나처럼 디자인 안 해 본 사람은 없을 거다.”
그러다가 4학년 때 집안이 망했다. 젊은 배병우의 지난한 삶이 시작됐다. 표정이 씁쓸해졌다. “워낙에 사진이 배고픈 일이지만, 남의 그림, 남의 조각 작품, 남의 집 사진 찍어주고 닥치는 대로 벌어서 사진했다.” 그러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군대를 갔다 와 25세에 서울예대 사진과 창설 멤버가 됐다. 강단 30년. 그동안 기업 사진들 찍으면서 돈도 많이 벌었다. 그러는 새 김중만·김아타·이불 등등 다양한 예술인과 친구가 되었다. “기초에 충실해야 한다”던 그의 말, 어디 사진뿐이겠는가. “우리 할 일 다 했으니, 이제 새로운 스타들이 나올 차례입니다.” 그가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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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세계가 반했다 | ||||||||||
2005년, 세계적인 팝 가수이자 미술품 수집가인 엘튼 존이 배병우(59)씨의 소나무 사진을 3000만원 가까운 값에 사들여 화제를 모았다. 2007년에는 세계 양대 경매사인 크리스티 옥션에서 배씨의 소나무 사진 두 장이 1억원도 훨씬 넘는 값에 낙찰됐다는 소식이 뉴스가 됐다. 사진과는 인연이 없는 사람들도 이제 ‘소나무’라고 하면 배병우라는 이름을 떠올릴 정도다. 예술로서 사진의 대중성과 위상 뿐 아니라 사진의 경제적인 가치를 끌어올리는데도 큰 역할을 한 셈이다.
소나무는 바다와 함께 배병우 사진의 원점이다. 유년시절을 보낸 여수의 고향집 뒷산의 소나무들과 멀리 내다보이던 바다는 그의 의식 깊숙한 곳에 지워지지 않는 원풍경으로 각인되었다. 그리고 40년 가까운 세월을 바다와 하늘과 나무들과 아득한 태고의 시간 속에 모든 것을 묻어버리는 새벽녘의 서늘한 대기를 가슴에 품고 살아오고 있다. 배병우의 소나무는 구도나 광선의 상태에서부터 프린트에 이르기까지 나무랄 데 없는 완벽함을 갖추고 있다. 나뭇가지나 수평선 위치를 1㎝만 옮겨도 화면의 균형이 깨져버리고 말 것 같은 미묘한 조화와 긴장감은 보는 사람을 거부하기 어려운 힘으로 사진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의 소나무는 분석이 아닌 직관을 통해서 도달하는 한국인의 정서적인 공감이다. 바꿔 말하면, 한국인의 유전자 수준에 내재되어 있는 기시적인 풍경과 같은 것이다. 눈보라와 비바람을 견디며 질긴 생명력으로 서있는 소나무는 한민족의 삶과 정신의 원형이고 상징이다. 배병우씨에게 그런 소나무는 화면을 구성하는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사진 그 자체를 성립시키는 근원적인 요소다. 전신을 뒤틀며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소나무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서구의 합리적이고 양식화된 것과는 다른 한국인의 고유한 정서(에토스)가 담긴 자연 공간을 빚어낸다. 그 때문에 역설적으로 서구를 매료시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풍경사진에는 처음으로 눈을 뜬 사람이 바라본 고대의 정경이 펼쳐져 있다. 은의 입자들이 강한 밀도로 쌓인 그의 사진 속에서는 시간은 아주 느린 속도로 흐른다. 그가 어디서 무엇을 찍었건 우리는 그것이 배병우의 사진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것은 그가 이미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었고 그의 시선이 사진을 처음 시작했던 지점에 일관되게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주제도 소재도 쉽게 바꾸는 다른 사진가들과는 달리 배병우는 한 번 잡았다 하면 수십 년 동안 같은 것을 줄기차게 찍어나간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디지털기술이 판치는 요즘도 고행자처럼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둘러메고 먼 거리를 이동하는 그는 누군가의 말마따나 ‘원시적’인 사진가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사진에는 회전이 빠른 왼쪽 뇌를 사용하는 다른 사진가들의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다. 그는 40여 년간 끊임없이 긴 거리를 이동했다. 한 장소에 이르면 다음 장소를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것은 변화나 확대가 아니라 깊이다. 그의 가슴 속에는 아직 아무도 찾아내지 못한 미답의 풍경이 펼쳐져 있고,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그는 앞으로도 그 미지의 풍경을 찾아나서는 순례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 ||||||||||
기사입력: 2009/06/23 [09:52] 최종편집: ⓒ 메스타임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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