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수요일 아침에

이해인수녀

"사람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십시오."

이마에 재를 얹어 주는 사제의 목소리도
잿빛으로 가라앉은 재의 수요일 아침


꽃 한 송이 없는 제단 앞에서 눈을 감으면
삶은 하나의 시장끼임이 문득 새롭습니다

죽어 가는 이들을 가까이 지켜보면서도
자기의 죽음은 너무 멀리 있다고만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 속에 나도 숨어 있습니다

아름다움의 발견에 차츰 무디어 가는
내 마음을 위해서도
오늘은 맑게 울어야겠습니다


먼지 낀 마음의 유리창을
오랜만에 닦아 내며

하늘을 바라보는 겸허한 아침


하늘을 자주 바라봄으로써
땅도 사람도 가까워질 수 있음을
새롭게 배웁니다

사랑 없으면 더욱 짐이 되는 일상의 무게와
나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조차
담담히 받아들이는 일


이 또한 기도의 시작임을 깨닫는
재의 수요일 아침입니다


재의 수요일은 주님의 수난과 돌아가심을 묵상하는 사순절의 첫날입니다.

"사순"이란 우리말로 "사십"을 뜻하는데 재의 수요일로부터

40일간 주님의 수난을 묵상한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재의 수요일"로부터 "예수부활대축일"까지는 실제로 46일이 소요되는데

이 46일 중에 주일을 제외하면 정확하게 40일이 되는 것입니다.

"재의 수요일"이라는 명칭은 바로 이날 신자들이 회개의 의미로

머리에 재를 얹는 예식을 거행함으로부터 유래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예식에 사용되는재에 성수를 뿌리지만

어떤 지역교회에서는 예비자 성유나 다른 기름을 섞기도 합니다.

이 때 예식의 주례자는 먼저 자신의 머리에 재를 바르고

다음으로 예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이마에 재를 바르는데

재를 바르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또는

"+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이는 고대 근동 지역에서 죄를 지은 사람이 자신의 머리에 재를 뿌리며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던 전통에서 유래한 예식입니다.

"저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먼지와 잿더미에 앉아 참회합니다." (욥 42,6)

"이 소식이 니네베 임금에게 전해지자,

그도 왕좌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자루옷을 걸친 다음 잿더미 위에 앉았다." (요나 3,6)

가톨릭 교회에서는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머리에 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날은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표지로 "단식"을 행합니다.

이 날 만 18세에서 59세까지의 남녀 가톨릭 신자들은 한 끼는 충분히 먹고

두 끼는 간소하게 먹으며 회개의 고행을 실천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 최소한의 규정을 넘어서

하루를 온전히 단식하며 지내기도 합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이날 만21세부터 60세까지의 성인들이

한 끼를 단식하는 것으로 정해 놓고 있습니다.

재의 수요일은 또한 금육을 실행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 날 만 14세 이상의 모든 남녀 신자들은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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