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는 전통 악기 얼후(二胡)
올 8월은 유난히도 덥다. 베이징도 그렇다. 필자는 베이징에서 한 중국어 학습지 회사의 중국언어문화캠프를 진행했다. 8박9일 동안 전국 각지에서 모인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학생 190명을 데리고 움직이는 캠프는 정말이지 긴장의 연속이다. 하루에도 수명씩 나타나는 아픈 친구들로 인해 걱정은 태산 같고, 혹시 야외 활동에 길을 잃을까 노심초사다. 하지만 짧은 기간 동안 아이들이 중국의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중국이 얼마나 변하고 있는지 알아가는 모습을 보면 한동안의 고생은 금방 씻긴다.
그런데 이번 캠프에서 우리가 역점을 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얼후(二胡)' 배우기다. 얼후라는 말에 얼른 어떤 악기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떨림이 강한 얼후의 음을 기억하면서 회상에 잠기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필자가 얼후라는 악기를 접한 지는 7년 남짓 됐다.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중국 장애우 공연단을 취재하는 일을 동행했는데 그 단원 중에 한 분이 얼후 연주자였다. 지휘를 하는 저우저우나 아름다운 무용수 타리화도 있었지만 정신지체 장애우인 그 얼후 연주자가 유독 기억에 남은 것은 그 얼후의 음색 때문이었을 것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전통악기에는 피리(笛)나 비파(琵琶), 호금(胡琴), 쟁, 북(鼓) 등이 있지만 많은 이들이 얼후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두 줄의 단조로운 악기지만 얼후는 중국인들이 가진 독특한 슬픔의 정서를 지니고 있다.
얼후가 중국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당나라 때다. 그 때는 해금(奚琴)으로 불리었는데 송(宋)나라 때 학자 진척는 악서(樂書)에서 해금이 북쪽 오랑캐의 악기라고 적었으며, 당대 시인 잠참도 “사령부에 술상 차려놓고 돌아가는 객 전송하니, 호금(얼후) 비파 오랑캐피리 소리라고 묘사했다. 이후 얼후는 장강 중하류에서 유행해 난후(南胡)로 불리기도 했으며 주로 중고음역을 담당했다. 얼후는 근대에 들어서 중국의 전통악기의 중심에 올라섰다. 샘에 달이 비추다(二泉映月), 은송, 소군 변경에 가다(昭君出塞) 등으로 유명한 아빙(阿炳 1893~1950)과 류톈화(劉天華 1895-1932) 같은 걸출한 얼후 연주자가 나오면서 그 명성이 더해졌다.
얼후는 기본적으로 현악기 구조다. 가령, 바이올린으로 봤을 때 위쪽 머리에 해당하는 것이 금축(琴軸)이다. 다음으로 목에 해당하는 것이 금간(琴杆)이다. 앞판 뒷판 등 몸통을 금통(琴筒)으로 부른다. 금통은 장고처럼 앞뒤가 있는데 앞은 구렁이 등 뱀의 가죽으로 만든다. 줄의 마찰이 이 구렁이 가죽에 닿아 소리가 나는 만큼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혈과 가죽은 직접 만나지 않고 사이에 나무로 된 작은 금마(琴碼)라는 보조장치를 끼운다. 이 재질에 따라 음색이 많이 달라진다. 지금은 다양한 재료들이 사용되어 악기의 특색을 만들기도 한다. 또 줄과 목 사이에는 천근(千斤)을 두어 음색을 조절한다. 보통 면(綿)이나 비단을 사용하지만 최근에는 유기유리(有機硫璃)나 소료(塑料)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얼후를 소리를 내게 하는 활은 궁자(弓子)라고 불린다. 줄과 만나는 부분은 수십가락의 나일론으로 만드는데, 이 나일론줄에 송진을 묻혀서 접촉 강도를 조절한다.
얼후의 소리가 나는 원리는 활이 금속줄과 마찰하면서 나는 진동이다. 이 진동은 금마를 지나서 금통의 가죽에 닿아 소리를 내게 된다.
얼후의 명곡은 1900년대 초반에 명성을 떨친 류톈화의 10대 명곡이 여전히 꼽힌다. 병중음(病中吟 1915), 월야(月夜 1918), 공산조어(空山鳥語 1918), 고민의 노래(1926), 비가(悲歌1927), 양소(良宵 1928), 한거음(閑居吟 1928), 광명행(光明行 1931), 독현조(獨弦操 1932), 촉영요홍(1932) 등이다. 또 아빙의 은송(隱松 1939), 이천영월(二泉映月), 한춘풍곡(寒春風曲)도 명곡으로 연주된다.
얼후는 경극은 물론이고 치엔콩(섬서 등 중국 서북지역의 전통 공연), 이쥐(허난성 주변의 전통 공연), 위에쥐(광둥성의 전통 공연), 추안쥐(쓰촨 주변의 전통공연) 등에도 대부분 부속 악기로 쓰인다.
이렇게 광범위하게 쓰이는 것은 얼후가 그 만큼 중국 악기 가운데 보편성을 띠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번에 우리 캠프를 지도한 이들은 중국에서 저명한 얼후 전문가들이었다.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중국 얼후 경연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얼후에서 제대로 된 소리를 내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두 줄의 현을 잘 조절하고, 활에 송진을 잘 묻혀서 소리를 내는 것은 고된 노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교육을 맡은 분은 3시간 정도의 교육이면 아이들이 간단한 곡을 연주할 수 있다고 호언했다.
그리고 3번의 교육시간이 지나자 아이들은 정말 짧지만 음악을 연주하고, 나름대로 음색을 파악하고 있었다.
사실 필자는 음악에 대해서 문외한인 만큼 얼후의 음을 제대로 들을 수 없다. 하지만 얼후의 구조나 음색이 주는 독특한 느낌은 중국인의 심사를 이해하는 작은 단초가 되기도 한다.
얼후의 음색은 대부분 구렁이 가죽으로 된 금통에서 나온다. 그 음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나는 그 구렁이라는 파충류에 유독 마음이 간다. 사실 많은 뱀의 종류에서 왜 중국인들은 구렁이를 얼후의 가죽으로 사용했을까. 구렁이는 그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뱀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크다. 또한 크기는 하지만 독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게 구렁이의 특징이다. 필자는 여기서 구렁이 가죽이 중국인들과 소리로 접속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얼후와 고향이 비슷한 몽골에는 마토우친(馬頭琴)이라는 악기가 있다. 몽골어로 ‘머린-호르’로 불리는 이 악기는 슬픈 이야기로도 유명한데, 마토우친은 뱀 가죽의 떨림으로 나는 것이 아니라 기타처럼 줄과 공명통이 어울려서 소리를 내는 악기다. 비슷한 악기지만 음을 만드는 것에서 큰 차이가 중국과 몽골의 차이로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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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빙이 연주하는 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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