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다오 랑예타이에 있는 진시황이 서복에게 불로약을 구해오라며 보내는 장면 상>


“아는 만큼 보고 보는 만큼 느낀다”는 90년대 한국에 문화여행의 열기를 불러왔던 유홍준 교수의 말로 기억한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소쇄원, 다산초당 등 남도 땅은 물론이고 예산, 경주, 낙산 등 수많은 곳에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소중한 역할을 했다. 유홍준 선생의 가장 큰 작업은 그 지역에서 활동했던 인물이나 역사를 환기해주는 역할이었다. 사실 아무리 아름답고, 위대한 유산이라도 그곳의 이야기가 없으면 여행객들이 그곳을 받아들이는데 많은 한계가 있다.

이글을 읽는 이들 가운데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을 여행한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 여행길에서 가장 기억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볼까. 대부분은 별다른 여행의 추억이 없을 것이고, 일부는 임시정부 유적 등이 기억난다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베이징과 상하이는 우리나라에 있는 유적지에 비기지 못할지 못하겠지만 수없이 많은 우리 역사와 인연이 있다. 필자는 베이징의 곳곳에서 선조들의 온기를 느낀다. 진스팡지에, 스텅후통, 따헤이후 후통 등에서는 빈궁한 삶 가운데도 민족의 독립의지를 잃지 않았던 단재 신채호 선생의 숨결을 느끼고, 징산공원 옆 후통에서는 ‘아리랑’으로 세계를 감동시킨 김산을 만난다. 류리창에서는 당시 청나라의 거대함을 보고 탄식하던 연암 박지원을 만나고, 우리 사신들이 머물던 옥하관(명대는 회동관)이나 왕푸징 교당(동당)을 보면 소현세자나 강빈의 비통함이 느껴진다. 그럴 때 베이징은 그저 지나가는 한 여행지가 아닌 나의 심연으로 들어와서 나를 역사의 한 줄기 속으로 집어넣는 느낌을 얻는다.

상하이도 마찬가지다. 1894년 상하이를 가로지르는 쑤저우허 옆 한 여관에서 홍종우에게 살해당했던 김옥균으로부터 시작된 우리와 상하이의 만남은 그후 너무나 깊었다. 1919년 우리 임시정부가 만들어진 이후에는 수많은 이들이 상하이를 경유해서 독립의지를 불태웠다. 이런 역사는 상하이 등 대도시만이 아니다. 이런 역사와 이야기 속에서 중국을 만나면 그 장소는 더욱 더 의미가 깊어진다. 이런 이야기는 최근 유행하는 콘텐츠 산업에서도 가장 중요한 분야인 스토리텔링이다.

그럼 중국인들에게 한국 땅은 어떤 의미일까. 또 어떤 이야기가 한국을 그들에게 친숙하게 느껴지게 할까. 우선 남도의 경우 서복(徐福, ?~?)이라는 흥미로운 인물이 있다. 중국 진나라 때의 방사로 알려진 서복은 진시황제(始皇帝)가 불로불사(不老不死)약을 구하라고 동방으로 보낸 인물이다. 그는 진시황의 지시로 수천 명의 동남동녀(童男童女)를 데리고 영약(靈藥)을 찾아 바다 끝 신산(神山)을 찾아 배를 타고 떠났다. 그는 곧바로 제주도에 도착했고, 이후 경남 남해 등지를 거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홀연히 사라져버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수많은 영화를 통해 증명됐듯 진시황의 이야기는 수없이 반복되는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의 소재다. 거기에 제주도는 불로불사나 영주산(瀛州山)의 신성한 이미지가 있어서 수많은 이야기의 소재다. 또진시황은 돌아오지 않은 서복이 괴씸해서 무사를 보내어 그를 잡기했다고 하니 얼마나 변화무쌍한 이야기가 가능할까. 그냥 아름다운 경치로만 제주도를 이해한 이들과 서복이라는 인물을 통해 건강, 신성한 이미지를 같이 얻는 여행자는 다를 것이다.

필자는 2년전 제주시에 여행 비수기를 이용해 ‘서복 영화제’를 개최해 여행객들을 모으고, 궁극적으로는 건강문화제나 중일과 같이하는 서복 콘텐츠개발 등을 제안한 적이 있다. 만약 영화나 드라마 등을 통해 중국인들에게 제주도가 서복과 매칭될 경우 그 각인효과는 휠씬 클 것이다.

한라산이 영주산의 이미지가 있다면 지리산은 산심산의 하나인 방장산(方丈山)의 이미지가 있다. 중국인들의 신화속에서는 서방의 곤륜산과 동방의 삼신산은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이야기 속에서 삼신산에는 높이 3만 리에 금과 옥으로 지은 누각(樓閣)이 늘어서 있고, 주옥(珠玉)으로 된 나무가 우거져 있으며, 그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불로불사(不老不死)한다고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 중국인들에게 삼신산은 무릉도원과 같은 이미지다. 최근에 둘레길로도 부각되는 지리산은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차를 비롯해 음식, 레저 등 갖가지 요소를 갖고 있다. 또 여수 엑스포와도 연결되어 여행 중심지로 부각될 가능성이 충분하지만 중국인들을 감동시킬 이야기가 부족한 상황이다. 이런 이 지역에 방장산의 이미지와 더불어 음식의 다양한 스토리를 만들 필요가 있다. 또 전라도 광주(혹은 나주)는 중국 당대 음악계의 거장인 정율성의 고향이다. 전라도는 몰라도 정율성을 아는 이가 많은 만큼 정율성의 스토리를 살릴 필요가 있다.

그럼 경상도는 어떨까. 보통 우리나라 여행사들은 중국 관광객이 오더라도 대부분 우리나라가 선호하는 석굴암이나 불국사 등지를 주요한 여행코스로 넣는다. 실제로 중국 최대의 여행포털인 씨트립에 소개된 경주의 여행지는 경주박물관을 비롯해 석굴암, 불국사 등지다. 사실 이런 여행지들이 중국 여행객들에게 어떤 인상을 줄지는 좀 의문이 든다. 우선 중국에는 둔황, 롱먼, 윈깡 등 3대 석굴을 비롯해 수많은 석굴 문화가 있고, 4대 불교 명산을 비롯해 엄청난 규모의 사찰이 있다. 물론 필자 역시 그런 거대 석굴과 경주의 석굴암을 비교하는 우는 범하지 않는다. 단지 중국 여행자들에게 공감을 말하는 것 뿐이다.

그런데 잘 기억해보면 경주에는 중국인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엄청난 여행콘텐츠가 있다. 바로 김교각 스님이다. 필자가 이 공간을 통해 ‘중국 진출 최고의 성공사례는 신라왕자 김지장’이라는 글을 통해 자세히 소개한 김교각 스님은 바로 경주가 수도였을 때 신라의 왕자였다.

김교각 스님이 지장보살의 현신으로 추앙받는 안후이성 지우화산(九華山)은 중국 4대 불교명산 가운데도 가장 신령한 산으로 손꼽힌다. 다른 산들이 문수보살(우타이산)이나 관세음보살(푸투오산), 보현보살(어메이산) 등 불교의 주요한 인물을 모신 반면에 지우화산은 현신이 있는 산이기 때문이다. 경주가 만약 중국인들에게 문화적으로 어필하기 위해서는 김교각 스님에 관한 장소들을 많이 개발해야 한다. 현재 경기도 남양주에 ‘김교각 기념관’이 있지만 경주에도 이런 전시관을 만들고, 생가 등도 복원하면 중국인들에게 경주가 결코 낯선 땅이 아니라는 인상이 들 것이다.

또 씨트립에서 경주의 오락거리를 살펴보니 승마장, 활쏘기, 전통오락 등이 있다. 너무나 상투적인 오락거리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그

밖에 야외 공연장이 있는 데 주요한 공연은 ‘전통춤이나 악기, 퓨전 음악’이다. 물론 아주 좋은 문화 콘텐츠다.

하지만 필자는 경주시가 의지가 있다면 대형 버라이어티쇼를 한번 기획해 봤으면 싶다. 중국에 가면 항주의 '인상서호'를 비롯해 구이린의 ‘인상유삼제’, 리지앙의 ‘인상여강’ 등 대형 야외 공연이 있다. 이 공연들은 천연의 배경에 조명으로 배경을 삼고, 현지인들이 참여해 공연을 하는데, 그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상품이 됐다. 야외공연이 아니라도 괜찮다. 경주역시 보문호수라는 소중한 공간이 있기에 야외공연이 가능할 것이다. 이게 부담된다면 상설 공연장도 괜찮을 것이다. 베이징의 ‘금면왕조’나 ‘북경지야’ 항주의 ‘송성’ 등을 비롯해 많은 곳에서 독특한 대형 공연을 만들었다. 서울 올림픽이나 2002년 월드컵에서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인 우리가 중국의 이런 공연들보다 못한 공연을 할 이유는 없다. 또 스토리도 김교각 스님의 이야기 등 각 나라간의 아름다운 교류 이야기나 신화와 같이 보편적인 것으로 할 경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감동하기 충분할 것이다. 또 개관한 후 일년에 한두건의 대형행사가 열리는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도 서복을 소재로한 상설 공연이 있다면 많은 이들에게 호응을 받을 것이다.

사실 필자의 경험에서 경주 여행은 그다지 달갑지 않다. 수학여행을 갔다가 들른 식당에서 받아든 비빔밥이 너무 맛이 없어서 일행중 한명이 그걸 거꾸로 업자, 뒤이어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 위로 그릇을 업고 나왔던 안좋은 기억이다. 우리 여행자들조차 이런 인상의 경주가 국제적인 여행도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런 문화 콘텐츠를 보강해야 할 것이다.

만약 이런 공연이 생길 경우 수학여행을 가는 이들도 대부분 이 공연을 보고, 신라시대의 아름다운 한중 교류와 중국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필자가 듣기에 장예모 감독이 최근 김교각 스님의 이야기를 콘텐츠화할 마음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어찌보면 중국 최대 문화 인물의 힘을 빌어서 경주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문제는 우리쪽에서도 이 콘텐츠 제작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잘못하면 그 영화속에 신라는 김교각을 몰아내기 위한 궁중의 암투와 비정한 인물들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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