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3대 콤플렉스
최진이(탈북여류작가)
내가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콤플렉스에 대해서다. 한국인이게는 3대 콤플렉스가 있다. 천재 콤플렉스, 성공 콤플렉스, 미모 콤플렉스가 그것이다.
한국 사회에는,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고, 천재는 만들면 된다는 인식이 사람들 속에 필요 이상 만연되어 있다. 아들애가 유치원 다닐 때의 일이다. 하루는 학부모 참여 수업에 갔는데 한 어머니가 자기 딸애에게 하는 말이 장관이었다. 딸애가 그림을 그리고 장식품을 골라 색안경을 알락달락 장식할 때마다 “우리 선주 천재야!”“우리 딸 천재야!” 하는 말을 쉴새없이 연발하는 것이었다. 그냥 해보는 말이라고 치기엔 그 정도가 너무 빈번했다.
몇 달 후 학교에 입학한 내 아들의 입에서도 천재란 말이 흘러나왔다. 점수를 잘 받거나 선생님 칭찬을 듣고 온 날엔 “오, 역시 나는 천재야!” 소리를 노래처럼 부르며 어머니 앞에 한바탕씩 으스대는 것이었다. 물론 아들애의 천재 과시욕은 매번 나의 부릅뜬 눈초리에 부딪혀 그 열기가 꺾였다.
한국인들의 두 번째 콤플렉스가 성공 콤플렉스이다. 내가 한국에 살면서 보니 이 사회는 성공한 사람은 살고 그렇지 못한 자는 죽어야 한다는 살인적 분위기에 전 국민이 내몰리는 형국이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리가 뭔지조차 모른 채 한국 사회에 만연한 이러한 거대급류에 발을 덤벙 담근 어떤 여자 탈북자는 정신이 훌러덩 뒤집혔다. 석사과정을 3학기에 끝내고 박사과정은 2학기에 끝낼 잡도리로 달려든 그녀는 그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학교 입학이 까마득한 자기 아들애에게 “너의 목표는 하버드”라고 못박아 놓았다. 너의 아빠도 하버드 공부중이라고 이미 각인시켜 놓았다. 그의 어린 아들은 지금 북한에 홀아비로 있는 제 아빠가 하버드에서 공부하고 있는 줄로 안다. 아버지의 실체를 받아드리지 않을 수 없게 될 때 아이의 충격이 나는 암만해도 상상이 안 간다. 하버드 출신이 아닌 아버지를 알게 될 때 겪게 될 미래 하버드생의 충격을 최소화하려면 그애 엄마가 하버드생과 재혼해야 할까? 아니면 하버드에 호소하여 그곳 학생 중 누군가 이애를 양자로 받아드리게 해야 할까?
한국인은 미모 콤플렉스에 마약 중독 이상으로 시달리고 있다. 나는 한국 사회에 들어서는 첫 관문인 대성공사에서부터 ‘화장’이라는 아뜩한 절벽에 부딪혀야했다. 일부 직원들이 ‘화장은 여성의 예의’라고까지 명명해가며 눈에 확 띄는 화장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화장을 강요함으로써 약소 여성을 억압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탈북 여성들이 그 압력에 순응하여 마사지와 화장을 하는 데 열심히 매달렸다. 북에서부터 얼굴에 관한 한 자연주의자였던 나는 참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었다.
북한에 있을 때 소설작가 홍석중이 쓴 소련 방문기 「형제의 나라 모스크바를 찾아서」가 북한 최고 문학잡지 『조선문학』에 실려 한때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그중 이런 문구가 나에겐 굉장히 감명깊게 다가왔다.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얼굴에 화장하지 않은 중년의 여성이 친절한 얼굴로 다가와 우리를 따듯이 안내해 주었다.”
홍석중이 묘사한 ‘화장하지 않은 여성’과 동의어인 ‘친절’과 ‘따뜻’이라는 단어들은 나의 심금을 그렇게도 소리 없이 흔들어 놓았다. 작가 홍석중의 본질과 비본질에 대한 통찰력이 예리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인간의 만남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미모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친절과 깊은 배려의 정신이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미모에 친절을 곁들이면 더 좋지 않은가 반문할 수도 있다. 미모는 ‘특정한’의 준말이다. 특정화된 대상 앞에서 평등함, 즉 자연이 주는 편안함과 안정감은 사라져 버린다.
사회를 따뜻하고 살기 편한 세상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미모가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서로의 소중한 마음에 있다. 하지만 우리 한국인들은 마치 미모만 갖추면 인간의 본성도 바뀌는 것으로, 선진국 문화에 확실히 참여할 수 있는 자격 같은 것으로 착각들을 하고 있다. 본래의 그 위대한 미를 훼손시킴으로써 스스로 선진 문화인의 자격을 박탈해가고 있다는 것을 한국인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다.
『국경을 세 번 넘은 여자 최진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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