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윤동주, 친동생에게 듣는 이야기


▲ 고(故) 윤동주 시인 친 누이동생 '윤혜원'씨, 매제 '오형범'씨

"오빠는 한 점 부끄럼없이 살아온 '천사'였습니다"

▲ 고(故) 윤동주 시인
‘서시(序詩)'로유명한 항일 민족시인 윤동주(1917-1945).27년이란 짧은 인생을 살다 갔지만 진정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게' 살다간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의 아들이었다.

현재 호주에 살고 있는 윤동주 시인의 친누이 동생인 윤혜원(84세)씨와매제 오형범(82세)씨가 ‘2005년 윤동주 문학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1년 만에 연변을 찾았다. 이 분들을 통해 윤동주 시인의 진솔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호주에서는 언제부터 살고 계신가요.

우리 부부는 1947년 용정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그 해 한국으로 이사를 갔다오. 1985년 호주로 이민을 갔고 지금까지 호주에서 살고있지. 1년에한번씩 ‘윤동주 문학상' 시상식에참가할 겸, 또 나고 자란 연변 땅이 그리워 한번씩찾아오곤 함네. 우리가 살던 옛 집터에도 가보고 오빠와 함께 했던 추억도 더듬어 보노라면 눈물이 앞설 때가 많소.

할머니 기억 속의 윤 시인은 어떤 분이셨어요?

우리 오빠야 정말 선비였고 천사였지.자상하고 생각 깊고 맏아들다운 효자였소, 친구들이 옷 없다면 옷 벗어 주고, 배고프다면 자기 밥그릇을 덜어주던 오빠요. 또 동생들은 좀이나 고와했소? 나와 남동생 둘은 방학에 동주 오빠가 오면 서로 오빠 무릎을 베고 옆에 앉으려 했소. 오빠는 우리에게 노래 가르쳐주는 걸 좋아했지. 서울에서 공부할 때도 동생들 생각에 ‘아동잡지'를 계속 부쳐 보내곤 했소.특히, 셋째 동생 일주(성균관대 건축학 교수, 시인 1985년 타계)는 오빠의 영향을 제일 많이 받아 시인이 되지 않았소? 일주가 오빠를 많이 좋아했지.

윤 시인에 대해 제일 인상 깊었던 일은?

서울에서 공부하는 오빠가 오면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동네에 나갈 때는 사각모자를 쓰고 다녀라”하면서 흐뭇해 했거든. 할아버지 소원인지라 사각모자를 쓰고 나갔다가도 집식구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서 담장 너머로 훌쩍 던져 버리고 밀짚모자를 쓰고 다녔소.할아버지 삼베적삼을 입고 밀짚모자를 쓰고 소 방목하러 나가서는 소를 나무에 매놓고 그 밑에서 온 종일 책만 읽던 모습이 생생합네.

오빠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언제인가요?

일본에서 공부하던 오빠가 방학에 잠깐 집에 들른다고 연락이 왔댔소. 나는 너무 좋아 한 달음에 오빠를 마중하러 개산툰 상상봉 친척집에 가서 기다렸소.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짐만 오고 오빠는 돌아오지 않는거요. 그러던 중 집에서 온 전화를 받게 되었지. “혜원아, 동주가 안 온단다”

아버지의 짧은 한마디에 가슴이 첨벙내려앉았지. 오빠가 일본에서 사상범으로 몰려 잡히게 된 거요. 감옥에 갇힌 후 집에 엽서가 왔는데 “혜원이를 빨리 시집 보내세요.”라는 글이 써 있었소. 갖은 고문과 아픔을 삼키면서도 이 동생을걱정하는 동주오빠였소.

윤 시인의 꿈은 원래부터 시인이었어요?

오빠는 시인으로 살기를 결심한 사람이었소. 하지만 맏아들이 보란 듯한 직업을 갖기를 바랬던 아버지는 항상 오빠가 의과대학에 가기를 원했지. “아버지,나는 의과대학 못 갑니다. 문학합니다.” 아버지말씀이면 모두 따르던 오빠가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랑 다투는 것을 보았소.

윤 시인은 사랑을 해본 적이 있었나요?

이건 아직 언론에 한번도 이야기 안 했던 사실인데… 당시만 해도 거의 17-18세에 시집장가를 보내는 시기였지만 우리 집은 “성공하기전에는 결혼하지 말라.”는 가풍이 있었소.

여자에 별 관심이 없던 동주 오빠가 어느 방학인가 친구 여동생이라며 한 여자 사진을 들고 나타난 거요. 그리고선 할아버지와 아버지께 “일본에서 음악대학을 다니는 처녀이고 목사의 딸입니다. 일본에서 김치 먹고 싶으면 이 집으로 달려갑니다."라는 얘기를 꺼내는 거요.

우리랑 같은 기독교 신자라는 말에 할아버지는 단통 ‘이번에 돌아가면 잘 해봐라'하시면서 기뻐했소. 그런데 방학이 지나 일본으로 돌아가니 이미 그 분이 약혼을 했다는 게 아니겠소? 사랑의 고백을하지도 못했지만 그 분이 동주 오빠에게는 첫사랑이 아니었는가 생각되오.

윤 시인과 그 분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말씀은…

60세에윤동주의 시를 읽고 인생관이 바뀌었다는 현봉학(아주대학병리학 교수)교수, 처음으로 윤동주 무덤을 찾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 일본의 오무라 박사, 하루에 4시간만 잠을 자며 윤동주 연구를 해온 홍장학 선생 등 모든 분께 감사하오.

앞으로는 오빠의 시를 읽는 많은 사람들이 시를 통한 문학적 가치를 더듬는 것과 함께 오빠의 인품과 인격을 이해한 기초 위에서 시에 대한 이해를 깊이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소.


고(古) 윤동주 시인의 생가 대성중학 옛터(용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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