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으로 걸으며 ''신''을 느끼다

2007년 10월 11일 (목) 09:39 세계일보




“감히 말하건대, 나는 신을 느꼈다.”
소설가 박범신(61)씨가 최근 펴낸 명상수필집 ‘카일라스 가는 길’(문이당)은 신성과 영적 깨달음으로 가득하다. 지난해 7∼8월 티베트 일대를 순례하며 기록한 25편의 글에는 해탈로 인도하는 만트라 ‘옴 마니 팟메 훔’의 진동이 담겨 있다. 카일라스(해발 6714m)는 티베트인이 우주의 중심, 세상의 배꼽이라 믿는 산이다. 불교를 비롯한 동양 4대 종교의 성지이며 숱한 성인들이 깨달음을 얻은 장소이기도 하다. 카일라스를 세 바퀴만 순례하면 일생의 업이 사라진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성스럽다.
몇해 전, 작가는 로버트 서먼이 쓴 ‘티베트의 영혼 카일라스’를 읽고, 완전히 매료됐다. 삭막한 경쟁사회가 거북살스러운 작가는 “신생아로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순례에 나선다.

염세적 투덜이가 되는 대신 그는 잠자코 수행길을 걷는다. 책은 낭만적인 티베트 기행이 아닌 해탈을 염원하는 구도자의 내적 독백이다.
그는 티베트 여행을 ‘내 안으로 걷기’라고 이름했다.
여로에서 만난 승려, 학생, 오체투지 수행자들과 대화하면서 생의 비밀을 깨닫는다. “죽음을 뭐라고 생각하시나요?”라는 작가의 물음에 노스님은 답한다.
“죽음은 없어. 그냥 껍데기에 불과한 몸이 죽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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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은 한국, 영혼은 티베트인에 가까운 작가는 중국의 영토 탐심이 못마땅하다. 2006년 중국은 티베트에 ‘칭짱철로’를 개설해 군사물자 수송, 관광 통로를 확보했다. 달라이 라마가 ‘문화적 대학살’이라 표현한 철도 건설에 작가 역시 반감을 느낀다. 특히 관광객이 티베트의 순수를 훼손하는 광경이 심란하다.
“나는 소란스럽게 밀려다니는 한족 단체 관광객들 때문에 여러 번 눈살을 찌푸려야 했다. 그들은 오만하고 불경했으며 거침이 없었다.”(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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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에 마음을 내는 것은 부처의 길이 아니다. 작가는 발길을 돌려 카일라스로 용맹정진한다. ‘신의 얼굴’ 카일라스와 대면한 순간 그는 전율한다. “그것은 습관과 관습에 의지해 살아온 나의 낡은 자아를 카일라스가 두건을 벗기는 것처럼 단번에 벗기는, 그런 느낌이다.”(212쪽)
작가는 히말라야 일대를 친구집 가듯 방문해왔다. 이미 여덟 차례나 다녀왔고, 2005년 히말라야 여행기 ‘비우니 향기롭다’를 펴냈다. 아내가 “히말라야 쫓아다니다가 당신 어떻게 된 거 아냐”라고 쏘아붙일 정도로 그는 대자연이 주는 깨달음에 갈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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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티베트에서 “성냄과 욕망과 무지의 삼독(三毒)이 내 속에서 소멸되고 있다는 판타지를 맛본다”고 말한다. 젊은 시절 그는 무당으로부터 “중이 될 팔자가 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내가 그리는 것들의 태반은 저잣거리에 있지 않다. 요컨대 삶은 유한하고 내가 그리는 불멸의 사랑은 대부분 하늘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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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라스 산은 티베트 서북 지방 황량한 고원 지대에 우뚝 솟아 있다. 누구는 전설 속의 산 메루라고 하고 누구는 수미산이라고도 한다. 불교와 힌두교, 자이나교, 그리고 티베트의 전통 종교인 뵌교, 이 네 종교의 신자들에게는 신이 상주하고 있는 성스러운 산으로 알려져 있다.

티베트 사람들은 카일라스를 캉 티세 혹은 캉 림보체라 부른다. '눈의 보석'이라는 뜻이다.

그 산을 도는 순례의 길을 코라라고 하는데 한 바퀴 돌면 지은 죄가 소멸되고 108번 돌게 되면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한 바퀴 도는 거리는 52킬로미터로 4,600~5,700미터의 높은 고갯길을 넘어야 하는 고행이지만 많은 순례자들이 저마다의 신을 찾아 코라를 돈다.
티벳 민화속의 카일라스
거대한 자연의 피라미드 카일라스


카일라스 아래의 호수 마나사로바
한역 경전에 `아뇩달지(阿縟達地)` 또는 청량호(淸凉湖)로 나타나는 이 호수는 석가모니의 모친 마야부인이 성욕(聖縟)을 함으로써 붓다를 잉태한 전설로 유명한 곳인데, 실제로는 카일라스산과 히말라야 산맥 사이 해발 4560m의 스와스티카(Swastika) 고원에 가로누워 있다. 빛과 지혜를 상징하는 이 호수는 불교도를 비롯한 4대종교 순례자들의 영혼의 고향이며 온갖 물새와 물고기들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그들은 둘레가 110km나 되는 이 거대한 `하늘호수`를 3박 4일간 오체투지로 순례하면서, 그선량한 사람들이 무슨 죄업을 지었을까마는, 그래도 혹 자신도 모르게 지었을지도 모를 죄업을 참회하며 보다 나은 내생을 기원한다.
서부 티벳 지도. 네팔과 인도, 중국의 접경지역에 자리한 신산(神山,카일라스)과 성호(聖湖,마나사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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