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족들에게 신적인 존재 ― 도(桃)


최 철

내 고향의 한족들은 새 집을 짓거나 새 집에 이사를 들 때면 뒤뜰이거나 앞뜰에 복숭아나무를 심는 습관이 있다. 옛날 내가 근무하던 시골학교에서 새 교사를 지을 때였다. 선배님이 어디서 구하여 오신것인지 복숭아나무를 한그루 얻어왔다.

한족들이 좋다는건데 우리도 심자며 선배님은 우리 젊은 교원들과 함께 구덩이를 파고 복숭아나무를 교사의 뒤뜰에 심었다. 모래가 섞인 메마른 땅이였는데도 복숭아나무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3년이 지나자 봄이면 연분홍 꽃이 피고 여름이면 탐스러운 복숭아가 가지마다 열리군 하였다. 그런데 2003년에는 새봄이 찾아왔지만 싱싱하던 복숭아나무가 꽃도 피지 않고 리유없이 시들시들 여위여만 갔다.

여름방학무렵에는 아예 바싹 말라 죽어버리였다. 그 전해까지만 해도 복숭아가 주렁주렁 열려서 선생님과 학생들이 속살이 빨갛게 익은 복숭아를 맛있게 먹었는데 그 복숭아나무가 아쉽게도 죽어버린것이였다.

여름방학이 되자 40여년동안이나 이어지던 우리 조선족학교는 학생래원의 축소로 현교육국에서 페교시켰고 교원들과 학생들은 현성의 조선족학교로 합병시켰다. 학교를 지을 때 심었던 복숭아나무가 페교와 함께 죽어버렸으니 신비롭기도 하고 나의 호기심을 잔뜩 불러일으켰다.

복숭아가 정말 령기(靈氣)가 있단 말인가? 한족들에게 복숭아는 틀별한 나무이기도 하였다. 중국신화에 복숭아나무는 신의 지팽이가 변한것이라고도 하였고 북두칠성이 지상에 내려온것이라고도 하였다. 그래서인지 한족들은 복숭아나무를 오목지수(五木之首)로 신적인 상징물로 여긴다. 고대 중국사람들은 먼 길을 떠날 때면 복숭아나무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다녔다고 한다. 려로의 순조로움을 바라는 뜻에서였다.

여기에서 온 성구가 도호극시(桃弧棘矢)라는 말이다. 인감(印鑒)을 만들 때도 그들은 복숭아나무인감(桃印)을 선호하며 지팽이도 복숭아나무로 만든 지팽이(桃杖)가 좋다고 한다.

중국의 민간전설에 강태공은 도목검(桃木劍)으로 잡귀신을 물리치고 주나라의 길운을 빌었다고 한다.지금도 한족들은 복숭아나무로 목검(木劍)을 깎아 거실이나 침실에 걸어놓고 액운을 쫓아내고 행운을 불러온다고 한다.

도시의 아빠트에 사는 한족들은 분재(盆栽)로 키작은 복숭아나무를 가꾸기도 한다. 관광지나 공예품상점에 가면 복숭아나무거나 복숭아씨로 뱀,룡,토끼,돼지,쥐 등 모양을 조각하여 만든 공예품들을 볼수 있다. 그걸 목걸이마냥 걸고 다니면 길운을 지켜준다는 한족들의 신적인 믿음과 풍속이 있기 때문이다. 몸이 약한 애들이나 신수를 보아 나쁜 점괴(占卦)가 나오면 한족사람들은 복숭아씨거나 복숭아나무로 목우(木偶)를 만들어 빨간목천에 싸서 목에 걸고 다닌다. 액운에서 도망간다고 한다.

단오날이면 한족들은 싱싱한 복숭아나무가지를 꺾어다가 처마밑에 군데군데 꽂아놓는 풍속이 있다. 새해가 되면 복숭아나무쪽에 문신(門神, 郁壘)의 그림이거나 문신의 이름을 새기여 대문의 량쪽에 걸어놓고 잡귀신을 쫓는 풍속이 있는데 이것이 옛날 한족들의 도부(桃符)라는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한족들의 음력설 풍속인 춘련으로 파생된것이다. 미신적으로 흉년(凶年)이라는 해에는 한족들은 꼭 복숭아과실을 선물해야 하는 풍속도 있다. 어떤 해에는 고모가 조카들에게 선물해야 하고 어떤 해에는 누님이 동생들한테 선물해야 한다는 풍속의 덕을 입어 실리적으로 톡톡하게 챙기는 사람들은 과일가게주인들이다.

어떤 사람은 복숭아를 사지 못해 복숭아통졸임을 선물하기도 한다. 복숭아과실을 선도(仙桃),수도(壽桃)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로인들에게 만년장수하시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선물로 복숭아를 선사하기도 한다.

옛날 도요(桃夭)라는 시가가 있었는데 결혼축복의 가사로 행사때마다 꼭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역시 복숭아와 복숭아꽃을 빌어서 신혼부부의 행복을 기원했던것이였다. 한족들은 현실을 떠난 아늑한 곳을 세외도원(世外桃源)이라고 하고 경치가 아름다운 곳을 도원경(桃源境)이라고도 하며 신선처럼 아늑하고 행복하고 화목하게 사는것을 도원(桃源)생활을 한다고 말한다.

봄에 내리는 눈을 도화설(桃花雪)이라고 하고 3월을 도월(桃月)이라고도 하며 핑크빛 색갈을 도홍(桃紅)빛이라고 한다.

또 아름다운 봄날의 경치를 도리정연(桃李爭姸), 류록도홍(柳綠桃紅),도계류묵(桃蹊柳陌)이라는 말들로 묘사한다. 남자들에게 녀자가 생기는 운수를 도화운(桃花運)이 있다고 하며 따라서 남녀사이 스캔들도 도색뉴스(桃色新聞)라고도 한다.

이쁘고 아름다운 녀자들을 표현하는 말로 도요류미(桃夭柳媚), 도사류안(桃腮柳眼), 도수행양(桃羞杏讓)이라는 성구가 있으며 우정의 깊음을 도화담수(桃花潭水),훌륭한 교육을 받았음을 도리춘풍(桃李春風), 제자가 많다는것을 도리만천하(桃李滿天下)라고 한다. 입이 무겁고 허풍을 치지 않는 웅심깊은 사람을 도리불언(桃李不言)이라고 하며 진심과 진실이 인간을 감동시킨다는 말로 도리불언 하자성계(桃李不言,下自成蹊)라고 한다. 동진시대 대문학가이며 시인인 도연명은 《도화원기(桃花源記)》란 산문을 남겼고 《삼국연의》에서 류비, 관우, 장비는 도원에서 도원결의(桃源結義)를 맺었다고 하였다.

임금이 죽기 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살았을 때 완공되여 자기의 무덤안에서 연회까지 베풀었다는 명13릉(明十三陵) 주위에는 복숭아나무가 숲을 이루었다. 명나라 임금님들이 저승에서도 오래오래 장수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숙원이 아니였을가? 지금도 한족들의 민화인 년화(年畵)를 보면 꼭 복숭아가 큼직하게 그려져 있다. 도(桃)는 오늘까지도 한족들에게는 신비롭고 신적인 특별한 존재인듯싶다. 언젠가 한족친구한테 신적인 도(桃)에 대하여 문의한적이 있다.

운이 사나운 사람들이 복숭아씨를 목에 걸고 다니는것은 액운에서 도망간다는 뜻이라고 하였다. 한자어발음에 도(桃)자는 같은 발음으로 도망간다는 도(逃)의 발음이기도 하고 복숭아가 길운을 불러온다는것도 도(桃)자가 같은 한자어발음에 얻는다는 토(擎)자와 같기도 하여 길운을 불러올수 있는것이라고 하였다. 도(桃)에 대한 친구의 해학적인 풀이였다.

《신자유지(信者有之)》라고 믿음이란 마음가짐에 달린것이다. 도(桃)는 수천년간 한족들의 얼을 달래며 령물로 자라왔고 미래에도 생활을 사랑하는 그들의 정감속에서 신적인 존재로 뿌리깊게 살아있을것이다.


(길림신문 2007-08-25. 이글은 조선어규범에 입각한 맞춤법을 따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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