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북당 성당, 프랑스 예수회 선교사 장 드 퐁타네 신부가 1703년에 건축. 한국 최초의 신자인 이승훈이 세례를 받은 곳>

나의 신앙의 길 8. 예수님이 제3자라구?!

- 전 사베리아

북경 北堂에 류철(刘哲)신부님이 계시는데 이 신부님은 종교윤리학 특히 혼인윤리에 대해 전공하신분이다. 이 신부님의 작품에는 ≪결혼, 당신은 준비되었나요?(结婚,你准备好了吗?)≫ 등이 있다. 류철신부님은 전국 각지를 다니면서 윤리에 대한 특강을 하시는데 얼마나 강의를 멋지게 하시는지 전국에 팬이 널렸다고 한다. 지어 어떤 팬은 류철신부님의 사진을 지갑에 넣고다닐 지경이다.

가끔 남당에 오셔서 토요일 저녁 북경시청년들의 미사를 집전하시기에 나도 한번 강론을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이 신부님의 결혼강좌에 대한 DVD를 본적있는데 이런 이야기가 언급되어있었다.

하루는 어떤 처녀애가 신부님을 찾아와서 남자친구가 연인관계를 그만두자고 한다면서 고민을 털어놨다고 한다. 그 이유인즉 천주교를 믿지 않는 그 남자친구가 예수님이 제3자로 자신들의 혼인을 방해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 처녀애는 독실한 천주교 신도였는데 어찌나 예수님을 사랑했으면 그 남자친구한테 그렇게 보였을가?

예수님이 제3자라구? 당시 그 강좌를 듣던 많은 사람들이 웃음보를 터뜨렸다. 류철신부님은 그 처녀애한테 성당에 나오는 차수를 좀 줄이면서 남자친구를 많이 동무해주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남자친구를 좀 더 관심해주고 사랑해주면서 그 남자친구가 예수님은 제3자가 아니라 두 사람의 혼인을 행복하게 지켜주는 분임을 알게 하라고 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사회문화적으로 종교가 얼마나 낯설었으면 이렇게 예수님이 제3자로 군림하는 현상이 나타날가?

얼마 전에 한 신도를 알게 되였는데 신앙생활에 너무나 충실했던 그 신도는 주말을 자원봉사에 바치다보니 종교를 믿지 않는 남자친구와 데이트 할 사이마저 없어서 끝내 헤어졌다고 한다. 나는 그 신도한테 우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자 그 신도는 자원봉사가 신앙생활의 전부가 아닌데 너무나 거기에 집착했기에 남자친구를 잃게 되었다면서 좀 더 신중할걸 그랬다고 했다.

서로 신앙의 차이로 헤어진다면 다른 문제이지만 이미 천주교신도라는 것을 알고 사귀였는데 여자친구의 열광에 가까운 신앙생활이 남자친구로 하여금 소외감을 느끼게 하였다면 그때는 신앙 즉 예수님이 제3자로 군림하는 것이다. 물론 남자친구와 헤어질 정도로 신앙에 충실했다는 증명으로도 되겠지만 이러한 결과가 진정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일가?

예수님이 제3자로 군림한다면 종교문화가 보편화된 외국에서는 이해 못할 일로서 어처구니없는 웃음밖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난 너무나 이해가 갔다. 왜냐하면 결혼 전 나도 바로 그런 선택의 갈림길에 섰었기 때문이다.

결혼을 앞두고 나는 서로 속이는 것이 없어야 되겠다싶어서 남편(당시의 남자친구)한테 세례를 받은 사실을 털어놓았다. 한창 아무 말이 없던 남편은 굳은 표정으로 예수님과 자신가운데 하나를 택하라고 했다. 우리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졸업 때까지 친구로 지내왔지만 나는 그때 처음으로 그렇게 무서운 남편의 모습을 보았다. 남편이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한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내가 처음에 기독교 교회당에 몇 번 다닐 때 친구였던 그도 함께 갔었는데 나처럼 기독교에 대한 인상이 별로 좋지 않았다. 후에 나는 천주교에 나갔지만 두 종교의 차이를 똑똑히 알지 못했던 남편은 종교신앙문제에서 나한테 불쾌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한번은 내가 수녀로 되고싶다고한적이 있다. 이것이 남편한테는 결정적인 상처였다. 그때 말이 동창생이고 친구이지 한창 나한테 공력을 들이고 있던 남편이었던지라 수녀가 되고 싶다는 나의 생각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나는 정말 수녀가 되고 싶었었다. 그때는 믿음이 굳건하지 않을 때였는데 그저 무작정 수녀로 되는 꿈을 간직하게 되었던 것이다. 참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종교를 알기 퍽 이전에 나는 점을 본적이 있다. 그때 점괘에 의하면 내가 전생에 스님이었다고 한다. 깨달음이 부족하여 열반의 경지에 못 올라 윤회에 떨어진 불쌍한 영혼. 그 기운이 있어서인지 나는 20대에 수녀로 되고 싶었다. 물론 지금도 나는 수도자라면 신부님이건, 수녀님이건, 스님이건, 비구니건, 도사(중국의 도교 사제)건 상관없이 맹목적으로 존경하고 부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나는 부름 받지 못했거니와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따로 있었기에 나는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나의 심경을 잘 알고 있었던 남편인지라 내가 세례를 받았다는 말에 그처럼 놀라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했던 것이다. 남편한테 나의 신앙은 곧바로 수도자의 길로 비쳤으니까. 지금도 내가 종교에 대해 말하면 남편은 나를 잃는 줄 안다. 두 사람의 신앙의 차이를 떠나서 나의 끈질긴 신앙이 자신을 밀어낼가 저어하는 눈치다.

나는 그때 속으로 신앙은 마음에 간직하기만 하면 나중에라도 계속 믿을 수 있지만 이 남자를 놓치면 내 인생이 참 힘들겠다 싶어서 일단 성당에 나가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며 결혼을 했다. 당시 만일 내가 류철신부님과 같은 신부님한테 이런 상황을 이야기했었다면 아마 그 신부님도 류철신부님과 비슷한 조언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성당에 나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나는 남편 몰래,직장 몰래일년에 한번정도라도 성당에 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여러 가지 환경 때문에 아무리 안된다고 도망을 쳐도 가끔 내 발길은 성당으로 향했다. 나는 그냥 성당 구석진 곳에 조용히 앉아 미사에 참여했고 미사가 끝나면 도망가듯 성당을 나오군 했었다.

그러나 성당에 다녀온 날이면 나는 말이 적어졌고 웃음도 사라졌다. 미사에 참여했으면 응당 홀가분하고 기뻐야 할텐데 그때마다 나는 생각이 복잡해지고 마음이 무거워졌던 것이다. 이럴 때면 남편은 내가 그 무슨 딴생각을 하기에 나의 속을 알 수 없다면서 불평을 터놓군 하였다.

나는 지금 몇 달째 정말로 신나게 성당에 다니고 있다. 남편이 반년째 출국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귀국날자가 곧 다가오는데 이제 귀국하면 나는 또 전처럼 무거운 마음으로 성당에 나가야 하는 것일가?

나는 얼마전부터 귀국하기 전에 남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열려고 메신저로 인생관에 대한 대화를 나누군 했다.

요즘처럼 사회적으로 가치관이 많이 흔들리고 있는 이때 남편은 진리를 견지하면서 자연의 섭리에 따라 양심적으로 사는 것이 자신의 인생관이라고 했다. 나는 이때다 싶어서 내 인생관도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다만 나는 그 진리요 섭리요 양심이요 하는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표현 할 뿐인데 우리 둘의 인생관이 다를게 뭐가 있냐고 했다. 그리고 우리 둘이 즐겁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 것을 예수님도 바라는 것이니 이제 귀국하면 우리 전보다 더 이해하고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살지 않겠냐고 물었다. 물론 나는 이미 당신과 전보다 더 잘 살아볼 준비가 되어있다는 말도 전했고. 그리고 당신이 나의 신앙을 막으니까 나는 몰래 성당에 가게 되고 그때마다 마음이 무겁고 외로웠다고 전했다.

처음에는 약간 격렬한 대화도 오갔지만 도를 넘는다싶으면 나는 화제를 바꾸면서 조심조심 종교에 대한 설명을 하군 하였다. 종교를 입 밖에 꺼내는 것조차 싫어하던 남편이 지금은 천주교와 서방문화에 대해 아는대로 설명해보라고까지 한다. 그리고 가장 큰 성과는 눈치껏 성당에 나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것이다.

그사이 나는 남편의 감정이 상하지 않게 신앙에 대한 나의 마음을 전하느라고 참으로 많은 공력을 들였다. 전보다 더 남편한테 아첨(?)했고 남편이 부탁하는 원고심부름을 어김없이 해주었다.

그러나 나는 견진성사를 받은 사실은 말할 수 없다. 견진성사가 무엇인지 모르거니와 남편의 불필요한 오해를 사고싶지 않아서이다. 나는 지금 나의 혼인에 전보다 더 충성하는것이 내 신앙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혼인과 신앙은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그런 모순된 존재가 아니다. 나는 둘 다 완벽하게 얻고자 한다. 나는 신앙인다운 나의 행동으로 나의 신앙이 올바른 선택임을 남편한테 보여줘야 한다.

신앙에 대한 세계관적인 차이를 떠나 아직도 예수님(신앙)이 제3자로 군림하는 이런 문화적 환경에서 복음전파의 길은 참으로 멀고도 멀다.

(2011.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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