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고 풀은 누웠다
<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바람이 불고 풀은 누웠다
<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자귀나무
손영자
나는 새가 되려다 꽃이 되었다
잎이 되었다
아니. 나무가 되었다
내 꽃은
깃털 중에서도 가장 보드라운 가슴깃털로 피고
내 잎새들은 질서 정연하게 날개깃털로 줄을 선다
오뉴월 햇볕 맑은 날
바람이 한바탕 숲을 휘저으면
나는
숲 속에 내려앉은 한 마리 봉황이 되어
학 보다도 더 우아하게 춤춘다
내 춤은 비상(飛翔)을 위한
몸짓이기에
밤이 되면 나는 드디어
내 보드라운 꽃을 이마 위에 볏으로 꽂고
잎새를 넓게 펴서 퍼덕이며
달빛을 차며 날아오르는
커다란 새로 환생(還生)하는 것이다.
자귀나무 꽃필 때
김사랑
자귀나무 꽃 필적에
푸른 잎새 묻어 둔
그리운 마음을 보셨나요
보고싶다
서쪽하늘 맴돌다오면
붉게 물들어 버린
철없이 좋아했던
그 마음을 아시는지요
가랑비에 속눈썹 적시던
그 사랑 때문에
내 사랑은 마냥 심장이 뛰던
자귀나무 꽃술처럼
부드러운 바람에 입맞춤하면
수줍게 꽁꽁 숨어버린
그녀를 아시는지요
초사흘 핼쑥해진 낮달처럼
스무살 열병으로 앓아대더니
덜익는 풋사랑이라서
남 몰래 고백 못하고
세월속에 묻어버린
희미해진 옛 사랑이여
가슴속에 키우던 속절없는
그 사랑을 아시나요
■哀絶한 逸話, 사랑의 傳說
자귀나무의 잎은 버드나무 잎처럼 가늘며 마주 붙어 있는 겹잎이다. 그런데 낮에는 그 잎이 활짝 펴져 있다가 밤이 되면 반으로 딱 접힌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잎들이 사이좋게 붙어 잔다고 생각했다. ‘저녁이면 어김없이 껴안고 잠을 자는 잎’ 그래서자귀나무의 또 다른 이름은 합환목(合歡木), 야합수(夜合樹), 유정수(有情樹) 등이다.
예부터 자귀나무는 사이좋은 부부에 비유되곤 했다. 그래서 이 나무를 안마당에 심으면 부부의 금슬이 좋아진다 해서 많이 심었다. 옛날 중국에 우고라는 사람이 조씨 성을 가진 부인과 살았다.
조씨 부인은 단오가 되면 자귀나무의 꽃을 따서 말린 후, 그 꽃잎을 베개 속에 넣어 두었다가 남편이 우울해하거나 불쾌해하는 기색이 보이면 말린 꽃잎을 조금씩 꺼내 술에 넣어 마시게 했다.
그 술을 마신 남편은 곧 전과 같이 명랑해졌다고 한다.
또 옛날 어떤 댕기머리 총각이 이웃에 사는 처녀에게 은밀히 자귀나무 꽃떨기를 건네주며 사랑을 고백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결혼했다. 그러나 아기자기한 밀애(蜜愛)는 오래 지속될 수 없었나 보다.지혜 있는 아내는 단옷날 서실 책상에 슬쩍 자귀나무 꽃병을 올려놓았다. 그랬더니 남편은 외도를 싹 끊고 아내 곁에 돌아왔다. 미약(媚藥) 효험에 넘어간 처녀 때의 재치에 이번에는 남편이 몽혼(朦昏)된 것이다.
이 같은 우스개 탓인지 조상들은 자식이 결혼하면 예부터 신방 앞뜰에 자귀나무를 심었다고 전한다. 백년해로의 금슬을 기원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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